식객 1 - 맛의 시작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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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허영만은 이미 우리에게  '각시탈', '무당거미', '오! 한강',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미스터Q', '짜장면' 등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중견 작가이다. 앞서 열거한 만화들은 하나같이 한국 만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만화적 재미와 더불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보기 드문 수작들이다.

지은이는 만화는 어린애들이나 청소년이 보는 것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만화라는 매체를 대중 문화에 있어 새로운 위치를 점하게 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지은이가 '음식'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다시 우리곁을 찾아왔다.

4년간의 구상, 2년간의 취재, A4용지 1만장이 넘는 자료, 3박스를 가득 채운 음식사진들, 제7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에서 초대 비코프 만화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만화, 영화 '올드보이'의 제작사인 쇼이스트의 영화화 결정 등 만화 '식객'에 대하여 쏟아진 찬사는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이례적인 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혹자들은 이미 우리들에게 널리 읽혀진 일본 만화인 '미스터 초밥왕'이나 '맛의 달인'과 비슷한 구성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소재는 한정된 것이고 그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 다르듯이 지은이는 비록 소재는 유사하지만 우리네 입맛에 맞도록 아주 맛깔스럽게 요리하여 두고 있다. 일본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요리 중심의 극적인 이야기 전개보다는 팔도를 돌면서 그 지방 특유의 정서와 우리네 문화를 음식에 녹여서는 가슴 따뜻한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야채, 생선, 건어물 등을 차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31세의 성찬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우리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만들고 있으며, 거기에 간간히 곁들여지는 기자 진수와의 로맨스는 만화가 가지는 내용의 무게감에 양념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은이의 캐릭터 묘사와 배경설정 등에 들인 많은 노고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1권은 어머니의 쌀, 고추장 굴비, 가을 전어 맛은 깨가 서말, 36·2·9·60, 밥상의 주인장사꾼이라는 5가지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무엇보다도 쌀개방과 맞물린 현실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 무한한 감동을 심어 주었다.

대장금의 표절시비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올게쌀로 시작 되는 첫 에피소드에서 지은이가 우리네 농촌에 대해 가지는 따스한 시선은 이 책이 그냥 만화라고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주제임에도 쌀을 우리의 영원한 고향과도 같은 존재인 어머니에 비유하여 가슴 찡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쌀과 어머니는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최초의 맛으로 기억한다.
첫사랑이 그렇고 첫날밤이 그렇듯 처음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깊은 상흔처럼 세월 속에서도 결코 희미해지는 법이 없다.
기억은 오히려 선명해지고 향수는 깊어만 간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기어이 태생지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우리에게는 최초의 맛을 찾아
헤매는 질긴 습성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년의 밥상에 올랐던 소박한 찬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떠올리는
것은 그리움에 다름 아니다. 남루하고 고단한 삶이어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기에 함부로 좌절할 수 없듯 그 시절의 행복한 기억은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맛은 추억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훌륭한 맛이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쌀과 어머니는 닮아 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고 영원한 그리움이다.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그렇다."

그렇다.
지은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현실과 맞물린 그림을 그려왔다. 이 작품의 첫 에피소드에서도 예외없이 그는 우리네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일본의 음식만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지은이에 대한 결례라고 하겠다.

한국적인 향과 한국적인 맛이 느껴지는 그의 만화 '식객'은 아마 나의 오감을 고정시킬것이 틀림없으며, 여러분들에게도 은은한 맛을 풍기는 음식과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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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5-08-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이렇게 진지한 걸작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디다. ㅎㅎ

키노 2005-08-2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사요나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