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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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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에서는 학문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는 예전처럼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서만 알고 있어서는 더 이상 학문적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인문학을 등한시해서 안되고,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과학 분야에 대해서 전혀 몰라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통섭(consilience)’ 이라고 한다. 최근에 가장 각광받는 분야가 아닌가 한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은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여러 장르 중에서도 철학과 심리학이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대한 결과물도 속속 출간이 되고 있다. 철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가 힘들다.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수고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점으로 인해 철학은 오래 전부터 인접 학문을 통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택했다. 영화, 음악, 미술, 건축, 사진 등이 대표적인 분야다.

그런데 철학과 시가 만났다. 여태까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 내용이다. 몇 줄되지 않는 시를 통해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그런데 지은이는 이런 우려를 말끔이 씻어내고 있다. 철학을 이해하는데 시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는 단순히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두터운 철학책에 못지 않은 많은 생각과 고뇌, 인생이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읽고 시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지도 모른다. 여기쯤에 이르면 지은이가 시를 철학의 소재로 끌고 들어온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박노해, 기형도, 김남주, 강은교, 박정대, 유하, 원재훈, 황동규, 김수영, 도종환 등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 시인들의 시와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띵해져오는 네그리, 비트겐슈타인, 아렌트, 알튀세르, 바타이유, 벤야민, 레비나스, 니체,푸코, 가라타니 등의 현대 철학이 만나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중, 언어, 사유, 에로티즘, 타자론, 존재론, 해체론 등 언젠가 한 번쯤 정복해보겠다고 철학책을 꺼집어 내었다가는 다시 덮기를 수 차례에 걸쳐 반복하던 주제들이 술술 풀려나온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 가뜩이나 정리가 되지 않는 철학 이론을, 또 다른 철학 이론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 자체가 잘못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좌절감은 철학책을 점점 더 멀리하게 만드는 주원인이었다.

지은이는 먼저 시를 한 수 읊는다. 그리고 그 시 속에 등장하는 철학적 개념을 풀어헤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와 철학이 지은이의 이야기 속에 잘 스며들어간다. 21개의 시와 철학적 주제는 한 권의 책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다. 지은이는 깊이 있는 책읽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각 장의 말미에는 ‘더 읽어볼 책들’ 이라는 제목으로 한 번쯤 읽고 넘어가야 할 시집과 철학책을 소개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시를 통해 철학을 읽는 독특한 글쓰기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철학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꺼내 읽어보며, 지난 시절 철학에 목말라하던 열정을 다시금 불태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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