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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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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월 촛불집회 1주년 기념식이 서울역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고 말았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명박 정부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 저의를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고 정부의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외침과 일방적인 금지와 제지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상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은 한 나라의 통치구조와 기본 이념을 정해놓고 있는 그 국가의 최고법이다. 모든 통치자들은 헌법에 근거해서 나라를 통치해야 하고, 국민들은 헌법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거의 마비상태다. 지은이는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後拂制 헌법’이었고, 그 후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본서 제22쪽 참조)” 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그 값을 치뤄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완벽한 헌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통치구조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하고, 국민들의 권리에 관한 기본권 조항은 철학적 이상을 담은 것으로까지 평가될 정도로 아주 잘 만들어진 조문들이다. 지은이는 이런 헌법 조문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떨리는 가슴으로 이 땅에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구현하여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과제라고 한다.

1부에서는 헌법의 당위 즉,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지 살피고 있고, 2부에서는 권력의 실재, 즉 헌법의 절차에 따라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은 대의민주주의 정부와 국회의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예전 거침없는 이야기로 명성을 날렸던 지은이의 입담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 책은 시사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폭포수처럼 쏟아내던 냉소적이면서도 카리스마넘치는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떠한지를 성찰하는 에세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지은이가 젊은 시절 운동권 학생으로서 삶을 살아오면서 지식인으로 갖추어야 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을 못내 아쉬워하는 대목이나 자신이 장관으로 재직할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은 자칫 예전 지은이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뚱맞은 내용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가 참여정부의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재선 국회의원으로서 현실 정치판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들은 현실적이고 무척 설득력있는 내용들이다.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역주행을 하고 있는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 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진보세력들에 대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의를 저버리는 정치인이나 국가의 먼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열중하여 사자가 되지 못하고 토끼가 되는 정치인은 보수든 진보든 바랄게 없다고 한다. 국민들은 길가는 익명의 사람들보다 더 정치인들을 불신한다는 말로 현실 정치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국민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교양이 부족한 지도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일시적 위협 요인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주권 의식과 책임 의식이 부족한 국민 자신이다. 억제할 수 없는 주관적 욕망에 사로잡혀 아무런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 욕망을 무제한 충족시켜 주겠다고 공언하는 거짓 구세주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그리고 그 욕망이 충족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가차 없이 돌아서서 또 다른 메시아를 고대하는 무책임한 주권자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를 계몽하고 발전시키는 꼭 그만큼만 앞으로 나아간다(본서 제53쪽 참조).”

최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나타났듯이 언제나 영․호남으로 나누어지는 선거결과는 지역적 색을 이용해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려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선거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을 하지 않는 한 끝없는 수평을 달릴 것이고, 철새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 이 지역구 저 지역구를 기웃거리며 표를 흥정할 거다. 그런 정치인들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는데, 그런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우리 국민들을 보면 지은이가 하는 말이 딱 맞다.

기존의 지은이의 모습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글쓰기이여서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 몸담았다가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온 지은이가 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헌법이 추구하는 당위와 현실 정치가 가지는 괴리를 보여주고, 그 괴리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서우리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념을 조심스럽게 성찰하는 대목은 또 다른 지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신선하다.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풍부한 경제학, 인문학, 사회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를 접목하여 자신의 지난 날을 술회하듯이 읊어내는 문학작품을 읽은 느낌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당위와 현실간의 괴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88만원세대/우석훈,박권일
대한민국 개조론/유시민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정운영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는 나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자유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로규정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도 존중하고 사회주의자도 존중한다. 그러나 원칙도 일관성도 없이 오로지 이익만을 좇아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은,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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