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식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자주 나타난다. 음악 마니아로 살아오며 그간 주변에 존재했던 많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변해온 과정도 거의 이런 형태였고, 필자 자신도 결과적으로 저 공식의 연장선상에서 음악의 지평을 넓혀 온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이렇게 소위 대중음악의 종착역이라는 재즈. 여기에 도달하고 나면 흔히 사람들의 관점은 많이 변하곤 한다. 옛날에 들었던 팝이나 록, 메탈에 대한 사랑은 그저 어린 시절의 유치함의 결과로 잊혀져 가고 결국 재즈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로나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재즈만이 대중음악 범주 내에서의 유일한 '진짜 예술'로서 클래식 음악과 견줄만한 자격이 있다는 시각도 흔하다. 그럼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간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밀접하게 다룰 기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록 마니아였고, 20대 중반까지는 기타리스트로서 메탈과 록을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재즈를 주로 들으며 기타 교습과 평론을, 그리고 결국 유학을 통해 대학에서 록과 재즈를 정통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느낀 것은 재즈는 참으로 지적인 음악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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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곡과 편곡, 연주 등에 대한 재즈의 접근법은 클래식을 능가할 만큼의 이론적인 토대를 갖고 있다. 재즈의 음악 이론은 20세기 초중반 클래식 음악의 고전적/현대적 이론을 흡수하여 재창조한 것으로 그 정교함이나 섬세함의 수준은 다른 대중음악 장르에서는 분명 상상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댄스나 발라드는 물론이고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음악 조차도 화음이나 멜로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즈에 비한다면 초보적인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분명 재즈는 대중음악의 가장 고급한 형태다.
또 재즈는 비록 처음에는 어렵게 들리지만 일단 특유의 화음과 즉흥 연주에 익숙해지고 나면 정형화된 다른 음악들에서는 찾기 힘든 변화무쌍함과 세련됨이라는 쾌감을 준다. |
또 그런 지적인 부분이 단지 차갑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흑인 음악 특유의 깊은 감정과 정서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난해함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음악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깊은 정서적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재즈는 아주 좋은 음악이며, 흑인의 감성과 백인의 지성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이라면 놓치기는 참으로 아까운 음악이다.

그러나 그래서 재즈가 종착역이자 최고봉이라고 단순히 결론짓는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나이 들어 동요를 다시 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재즈를 한참 듣고 나서는 다시 록이나 팝을 들을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오래 들은 후에도 다른 많은 대중음악 곡들에 매력을 느끼고 또 즐겨 듣고 연주한다.
사실 장르에 의한 음악의 질적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필자는 취향 만능주의자는 아니며 음악에도 분명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수준은 꼭 장르의 기준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 너바나, 들국화 같은 록 밴드들, 혹은 엘튼 존이나 아바 같은 팝, 그리고 챗 앳킨스에서 존 덴버에 이르는 컨트리 계열, 또 밥 딜런에서 김광석에 이르는 포크 등 모든 종류의 음악에 걸쳐 훌륭한 뮤지션과 명곡들이 국내외적으로 무수히 존재하며, 따라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좋은 음악을 선보여 온 이들의 수준을 서로간에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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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즈의 경우, 최소한 우리에게 알려질 정도의 뮤지션이라면 대부분 다른 장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최고 수준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고 따라서 전체적으로 수준 낮은 재즈라는 것이 드물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래서 다른 음악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해야만 할 필연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은 예술 장르로서의 음악을 바라보기 위해 적합한 시각도 아닐뿐더러, 한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타난, 대중음악 전체를 쓰레기로 보는 오만한 음악 엘리트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좋은 점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
이는 예컨대 음식과 같은 것이다. 훌륭한 스테이크나 궁중요리, 고급 프랑스 요리라면 아무래도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가치 있는 것임에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것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때로는 짜장면이나 순대, 붕어빵, 핫도그 등등도 먹고 싶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음식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특성과 용도가 다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고급 요리만을 늘 먹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들이 음식으로서의 기본을 충족하고 있는지, 즉 엉터리 재료나 더러운 시설에 의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불량 식품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비싼 고급 요리라면 제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고, 길거리에 파는 순대라면 위생상 좋지 않을 가능성이 좀 더 높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최고급 스테이크에도 철사가 박혀 있을 수 있고 붕어빵에도 만드는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길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개별적 문제일 뿐 음식의 가격이나 종류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