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의 동방 기행 다빈치 art 18
르 코르뷔지에 지음, 조정훈 옮김 / 다빈치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예술쪽으로는 소질이 눈꼽만큼도 없는 나는 
항상 사진을 찍어도 썰렁하며, 영화를 봐도 영 설명이 횡설수설한데다가
미술관을 한바퀴 돌고 나와서 감상을 말해도 왜 그렇게 빼먹는 것이 많은지.
반면 내 친구는 같은 곳에 가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들어도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뭔가 근사한 사진을 찍어내며, 뭔가 멋진 글을 써낸다.
역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눈은 다 같은 눈일까?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느끼고 감상하는 눈은 역시 '시력'과는 별개의 또 다른 '눈'이 아닐까?
내 눈은 시력도 별로 좋은 편이 아니지만 감상하는 또 다른 '눈'은 더욱 형편없음이 틀림없다.

아아. 그런데 여기 귀신같은 '감상 시력'의 소유자가 있다. 바로 르 코르뷔지에.
입술을 쭈욱 내밀어야 겨우 발음이 되는 이 어려운 이름의 소유자는 건축계의 거장이며,
이 책은 위대한 건축가 코르뷔지에가 젊은 시절에 장기간 동방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다.
(여기서 동방이란 서유럽의 관점에서의 '동방'이다. 즉 동유럽과 터키, 그리스 등을 의미한다)

코르뷔지에 자신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은 글쓰는 재주는 별로 없을지 몰라도 아름다운 것을 관찰하는 재주만큼은 뛰어나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코르뷔지에의 '관찰 시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역시 거장의 '눈'은 다르다.
같은 경치를 보고,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건축물을 보아도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끌어내고 있으니까.
시시한 도자기 하나, 흔한 돌벽 하나를 보더라도
하나하나 사물을 흝어내며 세세한 디테일을 잡아낸다.
아무리 소박한 건물이라도 코르뷔지에의 눈으로 한번 걸러지면 근사한 건축으로 둔갑하고,
아무리 부잣집의 으리으리하고 화려찬란한 궁전도 코르뷔지에의 눈으로 한번 걸러지면
싸구려 취향의 품위없는 건물이 되기도 한다.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잡아냄은 물론,
아무리 유명하고 값비싼 것이라도 진정한 아름다움이 숨어있지 않으면 거침없이 비판해내는 눈.눈.눈.

이 책에는 사진이 실려있지 않은 대신 코르뷔지에가 직접 그린 수많은 스케치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어찌보면 수묵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연필로 쓱쓱 그린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 스케치들은
그 빼어난 실력에 감탄도 감탄일뿐더러
그 당시 작가가 바라보던 풍경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두 페이지에 걸쳐 시원시원하게 실린 보스포러스 해협과 모스크의 스케치.
오밀조밀하게 묘사된 시골의 농가들....

참으로 고마운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같이 형편없는 '감상 시력'을 가진 독자도 거장의 눈을 빌어
조금씩조금씩 동방의 아름다움을 감상해나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눈은 다 같은 눈이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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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6-02-2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서점 가서 들춰봐야겠습니다. ^^

Kitty 2006-02-2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들춰보고 반해서 단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