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난 한국에 있을 때 꽤나 책을 열심히 읽는 편이었다. 학생 때도 그랬지만 회사 다니면서도 한달에 20권쯤은 여유로 읽었고 도서관에 열심히 출근 도장을 찍다 못해 회사내 도서관 관리자에게 압력;;;을 넣어서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게 한 후 빌려다 읽는 비리도 자주 저질렀다.
일본에 있을 때도 책은 열심히 읽었다. 워낙 책값이 저렴하기도 하고 (문고판의 경우), 책을 읽으면 내용뿐만 아니라 일어 공부가 보너스로 따라붙는데다가 반질반질 예쁜 책도 많아서 즐거웠다. 일반 서적도 그렇지만 내가 싸랑해마지않는 만다라케에 가면 깨끗한 중고 만화책을 100-200엔이면 살 수 있어 정말 점심값을 아껴가며 열심히도 사서 읽었다. 여기서도 난 도서관에 출근부를 찍었는데, 도서관에 가면 주로 AERA나 일본판 뉴스위크 등의 시사 잡지를 빌려서 읽었다. 잡지를 사기는 왠지 아까워서리...-_-;; (그러면서 마가렛같은 만화 잡지는 가끔 샀다 -_-;;;)
그러나 이 동네로 이사오면서부터는 이상하게도 거의 책을 못 읽게되고 말았다. 학교다닐 때야 워낙 바빴고 과제나 스터디등으로 따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2년동안 읽을 책이라고는 방학 때 머리 식힘용으로 구입했던 chick lit 몇 권 정도였다. (아..정기구독했던 Economist는 매주 꼬박꼬박 읽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과 같다. 이코노미스트의 양이 좀 많은가. 게다가 그 깨알같은 글씨라니 ㅠ_ㅠ) 회사를 다니게 된 이후에도 독서량은 늘지 않았다. 분명히 시간에 여유가 생기고 퇴근하면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영 책의 진도들이 나가질 않는 것이다. 최근에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외출을 자제하고 서재질을 시작하면서 독서량이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예전에 비하면 택도 없이 모자라다. 왜 그럴까? 하고 궁금해하던차...
아하! 바로 교통수단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주로 전철을 이용하다보니 (학교나 회사까지 약 1시간 정도 전철 탑승;) 모든 독서를 전철에서 해치웠던 것이다. 원래도 책을 늦게 읽는 편은 아니지만 전철에서는 다른 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너무나 집중이 잘 되어 회사 가는 길에 한권을 후딱 다 읽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전철에서 멍하니 서있는 걸 제일 싫어해서 정말 열심히도 책을 들고다니며 읽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책을 한두권씩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번갈아 읽었다. 한번은 전철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고 만화책을 열심히 읽는데 한국 관광객 커플이 나를 보며 일본사람인줄 알았는지 '역시 일본 사람들은 전철에서 당당하게 만화책을 읽네..' 하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물론 못 알아듣는 척 했다 -_-;;)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난 독서를 위해 딱히 시간을 내는 일은 별로 없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별로 없기도 했고, 집에 들어와도 컴퓨터나 TV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잠들기 전에 반드시 책을 잡는 것이 습관이긴 하지만 난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기 때문에 한 두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든 경우가 대다수여서 역시 대부분의 독서를 전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동네에 오니 도무지 전철을 탈 기회가 없어 당연히 나의 독서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운전하는 동안 책을 읽을 수는 없고, 운전이라고 해봤자 회사까지 10분이 채 안걸리니 출근시간이 door-to-door로 딱 10분이다 -_-;;; 10분이니 차가 막히고 뭐고 할 것도 없고 가는 동안 신호등도 딱 3개;; 편해서 좋긴 하지만 출근 시간의 기분좋은 독서는 물건너간 셈이다. 그나마 이 동네에서 책을 제대로 찬찬히 읽는 경우는 비행기 기내정도인데 비행기는 매일 밥먹듯이 타는 것이 아니니 독서량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딘가 매일 전철로 출근하는 직장을 잡기 전까지는 독서량이 크게 늘어날 듯 하지 않으니 걱정이라면 걱정이랄까.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