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기생뎐을 덮으며 나는 왠일인지 얼마전에 개봉된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소설은 이전부터 꽤 꾸준히 팔렸던 스테디셀러였다. 서양사람에게 게이샤는 어떻게 비춰질까? 그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기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나 있을까? (신기생뎐 얘기에 왜 뜬금없이 게이샤 얘기냐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으나 결코 이 둘을 비교하자는 뜻은 아니다. 단지 연상작용이었을 뿐..)

 

게이샤는 한자로 芸者, 즉 예술을 하는 자라고 표기한다. 역사적으로 게이샤의 지위가 어땠으며, 그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지도 못하며 논란의 여지도 많을테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지만, 현재 게이샤의 위치는 그다지 낮지 않다는 것이 적어도 내가 받은 느낌이다. 교토에 가보면 알 수 있듯이 게이샤는 당당히 예술인 취급을 받고 있으며, 교토에서 유명한 다실 을 운영하는 은퇴한 게이샤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서 고상함과 당당함, 자부심이 줄줄줄 흘러넘쳤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기생의 위치는 어떨까? 내가 무식한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기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생. 이라는 말에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황진이 정도였고 그 이상의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았어. 그렇다면 기생도 한번 정확히 찾아보자! 라는 생각에 한자 사전을 뒤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기생은 妓生이라고 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妓 - 기생 기 뜻풀이 1)기생 2)갈보 3)창녀. 

 

깜짝 놀랐다. 저 입에 담기도 거북한 말들. 난 이제까지 기생의 한자를 막연히 技生로 생각하고 있었고, 기생이라는 말에서 게이샤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리라. 마치 이름을 표기하는 한자가 서로의 운명을 예견하는듯 하여 섬뜩해졌다면 오버일까. 왜 게이샤는 예술인으로 대접받고 기생은 존재조차 잊혀져가고 있는가...

 

서론이 길었지만, 이 신기생뎐은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소설이었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어떤 자료 조사를 하는지 이제까지는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역사소설등을 읽다가 '이런걸 쓰려면 자료 수집 꽤나 했겠다..' 정도로 막연히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소설은 자신이 소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재가 자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들 기생과 기방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고도 생생한 묘사를 해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고, 그 뒤에 숨은 노력이 존경스럽다. 

 

이 소설은 분명 현대소설이건만, 중간중간 조선시대를 그린 역사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정말 특이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멈춘 곳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변화 또한 고스란히 반영해내는 불가사의한 곳이 바로 부용각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크게 부엌어멈이자 부용각의 주인인 타박네, 뛰어난 소리기생 오마담, 오마담의 기둥서방 김사장, 부용각의 차세대 대표기생 미스 민, 부용각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박기사로 이루어져 있다. 각 인물에 대해 한 장씩이 할애되며 각각의 인생역정과 부용각에 둥지를 틀기까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특별히 어떤 굵직한 사건이 일어나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찬찬히 훑어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한다.

 

가끔은 친구와 책을 바꾸어 읽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내 취향과는 달라 결코 잡지 않았을 듯한 책을 읽게되니 말이다. 그렇게 우연히 잡게 된 책이 이런 책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렇게 나는 올해의 첫 한국 소설을 만났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tty 2006-01-2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옆에서 찌릅니다. 콕콕콕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