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 기행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05년 5월
절판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 보티첼리도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평소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공감하고 있던 이 소심한 화가는 이교적 신화를 바탕으로 한 약간은 관능적인 여체를 그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적지 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예찬하는 그림을 그릴 때조차도 관능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자기가 그린 아름다운 천사의 얼굴에 떠도는 관능적 미소에 그는 몸서리 쳤다. 몇 달간의 고심 끝에 그는 앞으로 신을 찬미하는 그림 외에는 어떠한 그림도 그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후대인들은 그의 숭고한 결심 이후에 제작된 그림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37쪽

샤틀레, 그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그곳은 언제나 외로움에 찌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소외된 자들과 옷깃을 스치면서 잠시나마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곳은 삶의 방향을 상실한 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에.-155쪽

베니스인은 평생 바다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바다 한 가운데 묻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은 자들은 영원히 바다를 볼 수가 없다. 묘지에 누운 자들은 오직 드높은 성벽 위로 난 파란 하늘만 볼 수 있다.-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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