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김수현 / 샘터사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수필을 손에 잡는 때는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할 일이 많을 때, 이것저것 신경쓰일 때가 대부분이다. 가슴을 부여잡는 러브스토리를 읽기도 뭣하고, 현학적인 인문서적도 내키지 않을 때 되도록이면 '부드러워' 보이는 수필을 잡는다. 이 책을 고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세월이라는 제목 아래 아버지, 파리 다방, 부부, 추억의 네 장으로 나뉘어서 각각에 여러개의 수필이 들어있는 이 책. 겉표지에는 저자 김수현씨의 예쁘장한 사진이 실려있고 첫장을 넘기면 피천득씨의 추천글이 보인다.

특히 피천득씨 추천글대로 이 책은 저자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것이 묘하게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물론 우리 아빠는 고향이 이북도 아니고, 부모형제와 떨어져 혈혈단신으로 살아오신 분도 아니며, 우리집은 저자의 집만큼 (저자는 아버지를 '대발이네 아버지'와 비슷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엄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엄하시던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옷을 사라고 선뜻 거금의 용돈을 주셨다는 대목에서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어렸을 때 우리 아빠도 술만 드시면 전화를 해서 졸린 눈을 비비는 나와 동생에게 '얘들아 뭐 먹고 싶니? 통닭 사가지고 갈까? 아니면 과자 사가지고 갈까?' 를 물어보시곤 했다. 평소에 과자를 전혀 입에 안대시는 아빠가 슈퍼에서 이것저것 집어오시는 과자가 우리들의 취향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서 우리는 '에이~ 아빠 이거 맛 없단말야~' 를 외치곤 했던 것이다. 왠지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읽으면서 우리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고나 할까...그래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전화를 하면 보통 엄마와 수다를 떨곤 하지만 마침 주말이니 아빠도 바꿔달래야지. 음..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아빠가 좋아하시는 젓갈 셋트라도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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