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너 주말에 시간 있니?'
아주 예전, 토요일 아침에 뒹굴거리고 있는데 여행쪽 일을 하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만나서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자는 얘기인 줄 알고 '어, 시간 있는데'라는 답을 했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오사카행 공짜 표가 하나 있는데 주말에 너 다녀올래?' 하는거였다. 
그 주말밖에 쓸 수가 없다며 토요일 오후에 떠나서 월요일 아침에 다시 오는 비행기표라고 했다. 
'악! 갈래!!'라는 대답을 하는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미친듯이 짐을 싼 후 여권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뭐? 지금 일본을 가? 너 미쳤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물론 오사카에서 뭘 구경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주말 내내 배터지게 먹고 오겠다는거.
돈주고도 갈 판인데 공짜표라니,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오사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톰보리로 향했다.
우선 줄서서 먹는 원조 다코야키집에 가서 6개짜리를 시키고 그 중 3 개를 볼이 터지게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뜨거워서 입천장이 다 까지는 듯 했지만 역시 그 맛은 최고였다.
나머지 세 개는 한참 뒤에서 기다리던 커플에게 넘겼다.  
위장은 보통인데 비해 먹을건 너무 많았으니까.

다시 조금 걸음을 걷다보니 킨류 라면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코야키를 먹은지 3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무조건 라면을 시켰다.  
오사카까지 와서 킨류 라면을 안먹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맛이 그대로이려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스프를 한 스푼 듬뿍 떠서 입으로 후루루룩...아...이게 천국인가..  
물론 라면은 1/3 가량밖에 먹지 못했다. 
저 아까운걸...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다음 행선지인 마츠야로 향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규동 체인 마츠야. 그 중에서도 나는 규동보다 마츠야 카레의 광팬이다.
카레 라이스를 시키고 후쿠진즈케 오오메니~ (후쿠진즈케 많이 주세요~)를 외친 후 한 수저 가득..
일본에서 살 때 진짜 과장 안하고 100번 이상 먹어준 마츠야의 카레. 그 덕분에 약 10kg가 몸 여기저기 붙었었지.
요시노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지만 마츠야만은 완소 또 완소다. 

그 다음 더듬더듬 찾아간 곳은 패스트푸드계의 최강자 모스 버거.
고민고민하다가 새우 버거를 시켰다. 아삭아식 씹히는 신선한 양상추에 뽀드득 씹히는 새우살...
이미 배는 터질듯했지만 나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천천히 버거를 뱃속에 넣었다. 

대략 나의 2박 3일 오사카 여행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먹고 먹고 또 먹고 배를 꺼뜨리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먹보 여행.
이 책을 읽다보니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코베에 건축 견학을 갔다가 정작 유명한 밥집에서 식사를 하느라고 주목적과 부목적이 뒤바뀐 에피소드.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먹보는 너무나 절절히 공감하며 어머나 어머나 나랑 똑같애!!를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마리 여사의 코베 여행처럼 매끼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럭셔리 버전이든 저렴한 서민 버전이든 못말리는 먹보들은 모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음식에 대한 에세이 꼭지들을 모아놓은 책이지만 의외로 각 에피들 사이의 일관성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책 전체에 관통하는 테마는 오직 '먹는 것'뿐이라고나 할까.
어떤 장이 식재료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인가 하면, 어떤 장은 본인의 재미있는 경험을 그린 소품이다.  
하지만 형태가 어떻든, 마냥 즐거웠다.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먹는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아하는 법이다. 
부작용이 있다면 할바라는 듣도보도 못한 과자를 찾아 미친듯이 인터넷 검색을 하게된다는 점.

맛있는 것이 떠오르면 일을 하고 있어도, 잠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아도 오직 그것만 머릿속에 왔다갔다하는 사람.
맜있는 식당이 있다면 십리를 멀다 않고 만사 제치고 달려가는 먹보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즐거운 독서였다.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마리 여사가 극찬하는 '베어먹기 시리즈(丸かじりシリーズ)' 중 한 권을 사알짝 주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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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10-2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봤네요. 안그래도 제 컴퓨터 배경화면은 언제나 모스버거인데. 아, 배고파...

Kitty 2009-10-25 22:55   좋아요 0 | URL
애고 이를 어째요 ^^;;;;
그나저나 배경화면이 모스버거시라니 어떻게 참으십니까;;; 우왕 전 먹보라 그런건 고문이라구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