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논어>에서 설명하는 ‘군자’ , ‘인’ , ‘예악’ , ‘중용’ , ‘효’. ‘의로움’ 등은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들이라 뭐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따름이다. 좋은 개념임에는 분명하다. 가히 언어의 판타지다. 나로서는 도달하지 못할 이상향이랄까. 돈키호테의 거침없음이 하나의 이상향이었다면, <논어>의 군자 또한 이상향의 그것이었다.


공자. 그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떤 문지기가 그를 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스로 넓고 깊게 설정해놓은 높은 이상. 즉, ‘군자의 길’을 위해, 그가 칭송한 7인의 성인(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유하혜, 소련)에 근접하기 위해, 그는 생전에 충분히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건만, ‘군자의 길’을 위한 거추장스러운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느라 정치가로서 만개할 꿈을 접게 되었다.


현실과 타협하려는 많은 유혹을 전국 각지에서 같은 길을 모색하고자 몰려든 제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형성된 긍정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훗날 유명해진 많은 제자가 자신을 낮추며 스승을 해와 달처럼 떠받들게 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노력을 함께했기에 수천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를 성인의 자리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6.20


‘이 유명한 말이 <논어>에 속한 말이었다니’ 하는 생각을 불러오는 명언들은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 말을 쓸 때, <논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허세를 떨어볼 생각에 갑자기 설렌다.


“날마다 내가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며, 달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5


즐기는 사람을 가장 최고로 치는 그였을지라도,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4.14”며 오히려 근심하여 독려하기도 했다.


또한, 정당성이 결여된 곳에서는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도 했다.(“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10.10) ,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15.40) 정당한 곳을 찾기 위한 기다림. 기다림 동안 자기를 향상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노력의 미흡함에 밖을 향해 하소연하기보다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반성하는 것이 군자의 정신이며, 또다시 정진해야만 군자라고 했다.


이 <논어>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공자들의 제자들에게도 역시 버거웠던 것 같다.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군자가 되기는 어려워 보이나, 소인이 되기는 쉬워 보인다. 따라서 소인을 경계하면서 군자가 되려는 수신(修身)의 정신을 칠 할로 본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 중 누가 소인인지 구별할 눈을 삼 할로 잡아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칠 대 삼이면 중용에 어긋난 걸까? 어쨌든 간에 주위에 교언영색(“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경우”) 하는 자를 제일 주의해서 살펴야 하겠다. 끝으로 비루하게는 살고 싶지 않다.


“비루한 자는 관직을 얻기 전에는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그것을 잃을까 근심한다. 만약 그것을 잃을까 근심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못 하는 것이 없다. 17.15”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서 써내려 간 글임을 알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푸쿠’라는 단어다. 저주를 뜻하는 이 단어는 가까운 과거에서 먼 과거로 거꾸로 침투하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이야기 전부를 소설의 배경으로 버무린다. 즉, 독자의 감정샘을 자극하는 삼대에 걸친 암울한 이야기 모두가 ‘푸쿠'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운동과 준비운동을 마친 하나의 세계관으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푸쿠’라는 배경적 의미는 국민으로 하여금 제한된 자유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모든 것으로서, ‘독재’ 와 ‘가난’ 과 ‘인종차별’이 한데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도미니카 트루히요의 독재정치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푸쿠=저주=배경=사탕수수=독재=얼굴없는 남자 < 몽구스(상징적인 의미로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라는 요상한 등식이 성립한다.


<오스카 와오>의 할아버지 아벨라르, 어머니 벨리시아, 누나 롤라 그리고 오스카까지. 도미니카라는 낯선 땅에 뿌리내린 그들은 마치 특유의 허약한 그곳의 지반과 몰아치는 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그들이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 벽돌을 쌓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누추해 보이는 그곳은 지반의 좁은 틈을 비집고 달려드는 사탕수수의 거친 숨소리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도미니카의 모든 사람)은 이 무너짐을 이 땅에 태초부터 존재하는 ‘푸쿠’ 탓으로 애써 돌리고 있기 때문에 3대째 이어지고 있는 무너짐의 반복을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하는 순간 독재자의 명령에 따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쿠’의 저항에 맞선 이가 있었다. 비주류적 삶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 (그는 평생 여자 친구 한번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는, SF만화와 장르소설에 흠뻑 취한, 1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못생긴 흑인 소년? 청년? 이었다. 그는 여자들이 상대해주지 않는 모태 솔로의 남자였다. 그는 겉모습 때문에 남들이 하찮게 여길지는 몰라도 장르 문학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매일 소설을 쓰는 남자였다.)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가치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희소 가치를 소중히 하는 남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오스카의 비주류적인 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의 인생에서 찾아온 손꼽을 만큼의 실연 이후에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하게 된 여자를 나이가 꽤 많은 창녀로 설정한다. 게다가 아주 성질이 고약한 경찰관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창녀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알아주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남들이 보기엔 하잘것없어 보이는 창녀와의 사랑을 위해서 죽을 고비를 한 차례 넘기고도, 또 다시 ‘푸쿠’에 접근한다. 그의 놀라운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푸쿠’에 맞서는 댓가로 평생 소원이었던 키스와 섹스를 하게 된다. 생의 마지막 키스와 섹스.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는 이 행위는 성스러운 행위이며 ‘푸쿠’가 내포하는 독재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오스카의 행동을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가치라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면 그 노력에 대하여 박수를 보내줘야 마땅하다고 말이다. 오스카 와오의 노력은 도미니카에 태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푸쿠'에 대적하는 노력이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아무리 열심히 내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 버린다. 누군가 나한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246p-


나는 영원한 총각이야. 나와 함께 있기 위해 일본을 버리고 뉴욕으로 돌아온 롤라에게 보낸 편지에 오스카는 그렇게 썼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롤라의 답장이었다. 오스카가 다시 답장을 썼다, 주먹으로 눈을 비비며. 나에겐 있어. -312p-


이제 철들 때가 되었다는 첫번째 신호였다. 따끈따끈한 최신 꼴통 제품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때, 옛것이 새것보다 더 좋을 때, 그건 바로 철들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315p-


(그 오랜 기다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건 이본이었다. 뭐라고 부르지? 글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38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통령의 결단 - 위기의 시대,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닉 래곤, 함규진 / 미래의창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1. 정권심판론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외치고 있는 그들에게 반대가 아닌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라는 의구심(어제 100분 토론을 보니 여야의 10대 공약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듣고 또 놀람)에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10대 공약에 담긴 복지의 결단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공약들이 새누리당(쇄신론이라며 들고 나온 여당의 정책)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야권연대가 유권자에게 호감을 살만한 면이 딱히 없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새누리당이 공약을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신뢰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정권심판론의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려면 지금보다 더 파격적인 공약과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현실적인 것이 언제나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을 좌우한다네. 그리고 정부의 정책결정이란 대체로 현실적인 상황에 기우는 경향이 있지. -42p-

 

법률 문구에 쓸데없이 집착하느라 조국의 파멸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법 자체를 파멸시키는 일이다. 즉 수단 때문에 목적을 희생시키는 일이다. 살루스 포풀리(인민의 복지라는 뜻의 라틴어. 인민의 복지를 최상의 법률로 하라는 뜻)야말로 법조문에 앞선다. -44p-

 

2. 닉 래곤의 <대통령의 결단>은 실용적인 노선이 강하게 드러나는 책이라 얼핏 이박명 정부의 실용정책을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박명 정권의 실용정책의 범위가 너무나 한정적이고 독점적이라 <대통령의 결단>의 정책이 미치는 파급력에 비교해보면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닉 래곤은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책을 통해 “진정한 실용주의는 이런 것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대통령의 결단>의 정책들은 투기해놓은 땅값 올려서 배 두드리며 살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방과 국민을 위한 생각에서 시작되는 정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의 결단>의 정책들은 한마디로 ‘무리수’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극한의 위기 상황의 결단. 또는 처음부터 대통령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밀고 나간 정책은 오늘날의 미국 사회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역사 속에서 미국인 외 다른 나라의 국민에게 수많은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철저히 미국인 적인 시작에서 미국인을 향해서 미국인이 잘 살게끔 하려고 했던 정책과 결단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보면서 반미적 색깔을 드러내는 것보다 결단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생각된다.

 

3. <대통령의 결단>을 읽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올해 대선을 준비하는 각 후보의 둘도 아닌 하나의 큰 결단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될 것은 틀림없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순기능적인 장점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나, 여러 가지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큰 결단을 마련해 두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 책 덕분에 후보자가 내세울 집중적인 한 가지의 공약에 주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대선과 함께 드러날 결단을 기다려본다.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서 써내려 간 글임을 알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제국 쇠망사 - 그림과 함께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엮음, 황건 옮김 / 까치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즘 책 읽는 속도가 붙었다는 생각에 <쿠오바디스>를 읽고 나서 로마에 관심이 생겨 구입한 <로마제국쇠망사>를 펼쳐 들었다. 이 책은 민음사에서 출간된 6권짜리 완역본이 아니라 데로 손더스라는 학자의 Edited and abridged. 즉, 수정과 요약을 거쳐서 한 권으로 정리된 책이다. 그리고 덧붙여 까치의 편집자가 로마 시대의 황제의 모습과 도시의 건축물에 관련된 그림들을 첨부해서 마무리 지은 책이 <그림과 함께 읽는 로마제국쇠망사>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기번이 말하기를” 같은 문장이 몇 군데 눈에 띄는 것으로 봤을 때, 이 책은 기번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손더스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즉, 기번의 책을 편역했다는 느낌이 풍기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삼국지의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의 편역처럼 말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배경지식이 차곡차곡 쌓인다. 우선, 로마제국쇠망사의 시작을 로마 공화정의 마무리. 즉,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사용하는 원수정의 시작으로 책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로마는 로마역사 거의 전부를 통틀어 가장 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광대한 영토 지배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도 지침을 마련한 상태였다.

 

여기서 기번이 알려준 사실은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공부했던 아우구스투스의 '존엄자'라는 단어와 뜻이 옥타비아누스의 존엄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독재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지위로서의 제왕의 위상을 기념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3. 풍요로움과 선정의 상징. 5현제 시대 이후에 등장한 네로를 능가하는 폭군. 콤모두스의 존재와 그의 사정을 알게 된 것과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분할정책. 이 분할정책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냉철한 판단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혼자서 독차지할 수 있었던 권력인데,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다른 1인의 동등한 황제와 2인의 부황제에게 영토를 나눠 다스리게 한 용기와 10년 지배 약속을 지킨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자진 퇴임)이 꽤 대단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 시기의 정치도 로마인들에게 덮어씌우는 과도한 세금 정책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모든 점에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그가 숨을 거두고 나서 이 체제는 과도한 지도자의 생성(6황제 난립)으로 인한 분산화로 막대한 군비가 지출되었다는 단점이 있었다.

 

4.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한 기독교의 옹립이 썩 대단한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독교라는 도구로서 제왕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작업으로 기독교를 반포했고,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번도 책에서 율리아누스를 가장 인정하고 있듯이 '배교자'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불리는 율리아누스의 업적이 훨씬 더 대단해 보인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인정함으로써 콘스탄티누스가 억지로 쌓아올린 신성한 지위를 파괴해버리고 다양성을 존중한 황제라는 점에서 말이다.

 

5. 쇠망사는 로마제국의 가장 강성했던 제1권력을 다루면서 흘러가고 있다. 제1권력이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시대의 황제를 뜻하는 의미지만, 이 책에서는 제왕의 권력을 다룬다는 의미를 초월하여 그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것은 그 세력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은데 쇠망사 초기에 왕권을 대신하여 제1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기독교를 들 수 있으며, 기독교의 이단논쟁에 왕권에까지 영향을 끼쳐 거대한 기득권의 싸움으로 번져나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기독교의 성격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데, <쿠오바디스>에 받은 인상적인 모습. 검소와 엄격한 생활을 강조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과 내세를 설파하던 순수한 의미로서의 설정과는 달리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아주 편협한 정신을 가진 이들로서, 유일신인 하나님 이외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모든 신을 악마라고 칭하는 것도 모자라 다신교를 믿는 자들을 이단으로 배척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말하는 내세라는 개념이 형이상학적인 신플라톤주의에서 따온 개념에 불과하며, 그들이 말하는 기적은 절대 자신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야기되었음을 설파하는 자들이 바로 로마의 기독교인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이단을 가리는 싸움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놓고 아리우스파, 아타나시우스파 간의 주도권 전쟁이 벌어졌고 왕후의 제사 기간을 놓고 대립했던 조선의 예송논쟁처럼 나중에는 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득권이 중요하므로 싸움을 벌여왔음을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6.책의 말미에는 로마의 멸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고트족라는 이름의 야만족이 등장하는데, 훈족 때문에 로마의 영토로 진입을 허락받게 된 이들은 로마인들이 그들의 방어를 야만족에게 위임하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용병같은 개념- 그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쇠락의 싹을 틔우고 이들로 인하여 서로마제국이 멸망을 초래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고트족의 지배자 알라리크는 이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여 그들의 지배권을 늘려나갔다.

 

7.이 책은 서로마 멸망의 시기 까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었다. 그 이후 동로마의 멸망까지의 이야기는 편집자 손더스의 판단(새로운 다른 원전이 발견됨, 서로마 제국의 종결로 대부분 궁금증의 충족이 가능할 듯, 기번도 여기서 끝내는 것을 고려함)으로서 축약해서 전달하는데,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마지막 저항을 그리고 있는 전투는 다른 책으로 따로 읽어 보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것 같았다.

 

8. 막 쓰다 보니 생각보다 꽤 길어졌는데 그냥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간직하고 싶어서 생각나는 대로 한번 써봤다. 결론은 이 책은 무엇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는 것을 썼다기보다는 그냥 역사적 흐름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흐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부분은 로마가 대국으로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지만, 멸망하는 날까지 그 좋음을 같은 성격으로서 유지하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을 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 또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완역본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머릿속 거친 로마 황야에 잘 닦여진 철로가 놓이고, 제1권력의 이름을 가진 기차역이 들어섰다. 그 사이에서 두뇌 기차는 이리저리 횡단한다. 나중에 만날 문학 속에 숨겨진 승객을 태우러 달려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는 머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입니다. 발자크처럼 손으로 쉴 새 없이 집필하는 것. 과잉으로 소설 세계에 빠지는 것만이 뛰어난 소설가가 되는 길입니다. -252p-


김탁환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뒤적뒤적 끼적끼적>이라는 그의 독서록을 구입하면서 부터였다. 여러 방향으로의 글쓰기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은 격식 없는 자유로운 감상을 먼저 해보라고 말해주었다. 이 책 덕분에 토마스 만과 폴 오스터를 읽게 되었고, 독서록에 있는 책을 만날 기회가 읽을 때마다, 그의 해석을 곁에 두고 느낀 점을 토론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이다.


이 검은 액체가 전하의 혀끝에 닿는 순간을 상상하며 내 모든 감각을 깨우고 또 깨웠다. 사랑보다도 더 짙은…… 어떤 '지극함'을 배우고 익히는 나날이었다. -131p-


영화 <가비>가 개봉했고,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이 동하여 <가비>의 원작소설 <노서아 가비>의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악마처럼 검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이것은 커피를 묘사하는 문장이지만, 소설 <노서아 가비>를 묘사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커피 같은 소설이다. 책 속 황제가 즐겨 마시는 음료가 노서아 커피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구입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런 스릴있는 싸움이 전개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반과 따냐의 전투. 영화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의 격한 부부싸움이 <범죄의 재구성>과 같은 상상을 뛰어넘는 트릭과 잘 어우러져 겉으로 보이기에는 아주 달콤한 캬라멜 마끼야또 같지만, 속에 감춰져 있는 어둠은 칠흑 같은 아메리카노 같은 맛이 느껴진다.


종이와 현실은 다르다.

종이 위에서는 단숨에 천하를 품고 수천 명의 적군을 한꺼번에 몰살시키지만, 현실은 한 움큼의 돈도 얻기 어렵고 단 한 명의 적을 죽이려다가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기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건 더더욱 어렵다. 피를 나눈 형제나 살을 섞은 배우자까지 의심하는 것이 바로 사기꾼이라는 족속이다. -46~47p-


사기꾼은 진실해선 아니 되고 정직해선 아니 되고 일이 끝난 후 같은 곳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삶의 원칙을 바꾸면 큰 낭패를 보는 법이다. -192p-


이 책은 두 명의 사기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사기꾼의 탐욕을 얼마나 적절하게 표현해내는지가 관건인데, <노서아 가비>는 속도감 있는 전개에도 충분히 잘 그려낸다. 오히려 속도가 붙어서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 옛날 봉이 김선달이 평양 대동강 물을 팔았던 것처럼, 이반과 따냐는 러시아의 숲을 팔아치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기꾼 애인이다. 따냐는 사기꾼이면서도 조선인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따냐와 멀리 떨어진 이반은 그의 탐욕을 근육처럼 불려서 조선을 압박한다. 조선을 팔아치우려는 음모를 꾸미는 이반과 사랑했기 때문에 약속을 잊지 않고 러시아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따냐의 갈등과 흐름은 인과응보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나를 버리고 조선으로 들어갔듯이 나도 그를 한 번쯤은 보란 듯이 버리고 싶었다. 다만 그 기회와 실익이 문제였다. -193p-


궁금한 것은 정말 그녀는 봉투 속에 든 이익을 위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황제를 위해서 그랬을까? 아마도 아버지를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어찌 됐건 그녀는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둔 훌륭한 사기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기는 아기고 사기는 사기”라는 그녀의 마지막 대답이 왠지 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