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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평점 :
곽복록 서강대 명예교수님이 번역하신 <변신>에서는 변신 이외에 다른 소설이 하나 더 담겨있었는데, 카프카의 고독 3부작 중 하나인 <심판>이었다. 헌법에 대한 책을 몇 권읽은 것이 고작인 나로서는 카프카가 이야기하는 소송에 관련된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수월치 않았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심판>에서 이야기하는 카프카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심판>에서도 <변신>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결정지을만한 사건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등장한다. 책의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은행 부장의 직위까지 올라있는 요제프 K.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두 명의 감시원에 의해 자신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조무지 통하지 않았던 감시원들 다음에 등장하는 주임도 그에게 같은 사실을 인지시켜준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본의 아니게 감시당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심리가 벌어지던 날. K는 작심하고 자신을 거칠게 다루었던 감시원들과 아무런 이유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심리하고 있는 재판부의 사람들을 격렬한 어조로 비판한다.
“이 사건 때문에 저는 불쾌했고 다소 화도 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또다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170쪽)
“확실히 이 재판소의 모든 현상의 배후, 제 경우를 예로 들어 말씀드린다면 체포 및 오늘의 심리의 배후에는 하나의 커다란 조직이 숨어있습니다.” (172쪽)
K의 심리장에서의 발언은 그를 찾아왔었던 감시원들을 무서운 처벌을 받도록 만들고, 자신 또한 상부의 인물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만다. K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상처를 받는 이들은 힘없는 말단 조직원이었고, 자기 자신이었다.
K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시골에 살고 있던 그의 숙부에게까지 전해지고, 사실을 알기 무섭게 숙부는 그를 데리고 자신의 친구인 훌트 변호사를 찾아간다. K는 그곳에서 레니라는 변호사의 하녀를 알게 되고, 그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훌트 변호사와 재판소의 고위 인물에게 또 한 번의 안 좋은 기억을 남기게 된다.
어찌되었건 간에 훌트 변호사는 K의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지만, K는 훌트의 지지부진한 작업속도에 불만을 느끼고, 점차 자신의 일을 등한시 하면서까지 소송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로 인해 회사 내의 경쟁자였던 지점장 대리에게 허점을 보이기 시작한다.
K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진술서를 작성하고 무죄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변호사를 찾아가지만 훌트는 법조계 세계의 진실에 대한 어두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카프카는 개인이 아무리 몸부림 쳐봤자 부질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개인적 연고이고, 변호의 가치는 그 대부분이 이 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변호사들이 정보를 캐내거나 몰래 찾아가 서류를 뒤져서 고객을 유치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고육지계에 불과하며 진실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정정당당한 인간관계가 차차 뚜렷하게 재판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279쪽)
내게는 높은 지위에 있는 지극히 훌륭한 재판소 직원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여러 가지 정세에 대해 지극히 호의적으로, 또는 적어도 금방 풀 수 있는 수수께끼의 형태로 이야기해 줍니다. (280쪽)
즉, 홀트 변호사는 K에게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빽의 힘이 중요하며, 자신의 고위층에 연결된 인간관계가 바로 그 해답일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해준다.
훌트는 이렇게 말만 번지르르 하게 늘어놓고 여전히 그의 사건의 처리에는 미온적인 반응을 계속 유지했고, 그 덕분에 K는 소송에 대한 압박감으로 점점 더 일에 대한 집중을 잃어갔으며, 그러던 그때 자신의 고객 중 한명이 화가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제공한다.
재판관들의 지정 화가 일을 업으로 삼고 있던 티토렐리는 K가 아무리 무죄라고 해도 한번 결정된 사실은 캔버스에 그려진 모든 재판관을 줄지어 놓고 앞에서 변호하는 것이 실제의 재판을 받는 것보다 나을 정도로 절대 번복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K는 무죄였으나 이미 유죄라고 체포되었으므로 아무리 재판을 거쳐도 결국 그는 유죄라는 것이었다. 이런 그에게 티토렐리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 가지의 방책을 알려준다. 그것은 실질적 무죄, 형식적 무죄, 소송의 진행 방해. 이렇게 세 가지의 방식이었다.
티토렐리는 자신이 이제껏 살면서 실질적 무죄로 벗어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일러두면서 다시 K에게 완전 무죄는 없음을 인식시킨다. 결국 K에게 가능한 방법은 형식적 무죄와 소송의 진행 방해 이렇게 두 가지였는데, 이 두 가지 방법은 K가 생각하기에도 충격적이었고, 나 역시 그러하였다.
형식적 무죄는 일시적인 무죄의 방식으로 하부 조직의 재판관들을 설득하여 무죄를 얻어내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통하면 티토렐리가 근무하는 재판소의 재판관들로 하여금 무죄를 받아낼 수는 있으나, 그 위의 재판소가 다시 소송을 제기하면 혐의는 다시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즉, 이 방법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 방법인 소송의 진행 방해. 티토렐리에 따르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말 그대로 유죄인 상태에서 소송의 진행과정을 답보상태에 계속 머무르게 하여, 죄를 보유하고 있으나 처벌이 없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사건의 관련 재판장과 같은 인물들에게 호의적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성공하게 되면 정기적으로 심문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출석할 필요 없이 알아서 처리될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공짜란 없던가? 이야기를 마친 후 티토렐리는 갑자기 자신의 그림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K에게 이야기한다. 과연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 그렇다. 자신이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니 대가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절대적인 결백을 증명할 수도 없었으며, 모든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뇌물과 같은 것이라는 카프카의 날선 비판을 담은 이야기에 구토가 밀려왔다. 결국 K는 화가가 이야기한 두 가지 방법을 모두 다 거부하고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서 싸움을 해나갔었던 것 같다.
그는 또한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보이던 변호사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그곳에서 만난 상인 블로크의 진술도 그에게 변호사와의 결별을 위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블로크는 5년간 훌트와 소송을 준비했지만 현재까지 해결될 기미가 없었으며, 그 이외에 7명의 다른 변호사들을 고용하여 일을 진행시키느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결국, 카프카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를 고용해 봤자 돈만 받아먹고 시간을 낭비할 것이며, 재판관을 구워삶아 형식적 무죄나 소송의 진행 방해를 해봤자 원래부터 무죄였던 K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의 음모로 인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미완성으로 인해 도중에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면이 약간은 있었으나 마지막에 가서 K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죄명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카프카의 실존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그 시대의 실제라고 생각하니 <변화>에서 느꼈던 분노보다 훨씬 더 강렬한 분노가 찾아왔다.
대체 누가 무고한 그를 고발한 것인가? 누가 상부에 로비를 벌여 그를 타락으로 이끌었는가? <심판>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보았다. 책의 미완의 단장에 의하면 이야기 내내 유능한 것처럼 보였고 자기 실력만 가지고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던 K도 역시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하스테라라는 검사와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지점장 눈에 띄게 되었고 그가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능력에 관계없는 인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가 가장 피해를 입었을까? 바로 지점장 대리라는 생각이 바로 정답으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동안 은행에서 일을 하면서 구축해 놓은 인맥도 있었을 것이며, 돈을 관리하고 대출해주는 입장이었으므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을 인물을 포섭하기에도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왜 K는 끝까지 검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다.
변신과 심판 이 두 가지의 소설을 통해 사르트르보다 더 매운 실존문학의 맛을 본 것 같다. 다소 직설적이고, 근거가 없는 사건의 발생이 일어났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깊숙이 파고들어 따져볼 수 있다면 사회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머리에 쓴 책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음을 이 책은 증명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