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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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포문학으로서 대한민국 교육정책비판


조정래 작가의 장편 <풀꽃도 꽃이다>는 르포문학으로 분류해도 될 정도다. 수년에 걸친 시간, 각기 다른 교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과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인한 끔찍하고 엽기적인 비극의 반작용. 이 비극의 충돌은 <풀꽃도 꽃이다>의 세계 속에 아주 흔한 일상으로 독자들에게 공개된다. 서로 왕래하면서 관계하고, 견제하면서 질투하는 몇몇의 가정의 고민이제 더는 특별하지 않은 - 그래서 더욱 위험한 - 교실 내부의 갈등상태로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경쟁과 주입식 위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부정적 밀도를 더욱 높였다.


<풀꽃도 꽃이다>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 가운데 대표적으로 <허수아비 춤>처럼 가상의 현실과 우스꽝스러운 재벌의 겉모습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지 않고, 실명을 드러내고 그가 행했던 정책들을 놓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풀꽃은 꽃이다>에서는 작가의 강한 정치적 입장이 표출되어 잘못된 교육정책과 노동정책 을 입안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풍자를 배제하고, 최대한 사실을 써내려감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23. 하나의 가녀린 촛불이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나면 어떤 힘으로 변하는지 그 시위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 펼쳐진 드넓은 불꽃의 바다였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율동하며 그 무수한 불꽃들이 흔들릴 때, 그 출렁임은 그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한 불꽃의 파도였다. 그런데 장엄함을 넘어 숙연하도록 아름다운 그 불꽃의 파도가 콧날 시큰하고, 가슴 뭉클하도록 감동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그 불꽃의 바다는 밤마다 넓어지고 있었는데, 그 촛불 촛불들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어둠과 함께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밤새껏 경건하도록 아름다운 출렁임을 연출하고는 동이 터오는 여명과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계층의 시민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우고 질서 정연하게 흩어져가는 그런 평화적 시위는 이 나라 현대사에서 처음 목격하는 일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풍경을 기록한 조정래 작가의 문장이다. 김선우 작가의 <캔들 플라워> 이후 두 번째로 마주하는 촛불시위 풍경이었다. 이 시위 속에서 적극적인 청소년의 참여를 본 조정래 작가는 가녀린 시민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한 것 같다. 아무튼, 지금도 광우병의 논쟁은 완전하게 끝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저품질 소고기의 수입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굴욕적인 비칠 수 있는 FTA 협상이었고, 이 협상의 주체는 이명박 정부였다. 이 협상에 더불어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교육정책. 일제고사의 부활, 영어몰입교육,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설립 등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36. 일제고사와 궁합을 잘 맞춰 탄생한 것이 '무한 경쟁'이었다. 인생은 유한할 뿐인데 무한 경쟁이라니... (...)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사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기업 출신답게 그런 경영 논리를 국가의 교육 경영에 도입하면서 '무한 경쟁'이라는 새 말을 신교육의 목표로 내건 것이었다.


2. 요지부동한 기존 사회의 속성, 부모들의 욕망, 아이들의 아우성


2권 72. 기존 사회는 언제나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기존 가치를 절대 신봉하는 동시에 그 어떤 도전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 배타주의를 고수했다. 따라서 자기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흠집 내거나 흔들려고 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그 선봉장인 매스컴이 나서서 가차 없이 총칼을 휘둘러댔다. 그 일제 공격의 목적은 기존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새로 터진 사건을 무조건 은폐하고 묵살하여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2권 73. 기존 사회가 그렇게 횡포를 일삼으면서도 절대 권력 위에 건재할 수 있는 것은 (...) 이 세상 사람들 절대 다수가 자기도 기존 사회의 특권층에 들고자 하는 욕망과 환상에 사로잡혀 살인적인 경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출세주의, 물신주의, 이기주의에 중독되어 있는 그 속물 집단들은 바른 것도, 그른 것도, 독도, 악도, 구분하지 못하는 집단 망각증과 집단 불감증에 단단히 병들어 있었다.

2권 73. 그런 끔찍한 시(이순영 - 학원 가기 싫은 날)가 나타났으면 매스컴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꽃다워야 할 소녀의 마음에서 왜 이런 시가 나왔나.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 (...) 그런데 매스컴은 그 어린 소녀를 무자비하게 '패륜아', '사이코패스'로 모는 언론 살인을 감행했고, 공부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내 자식만 안 그러면 돼' 하는 이기주의로 그 소녀를 암매장하는 데 가담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이러한 경쟁과 문화 사대주의가 바탕이 된 정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움직임과 세계경제위기가 찾아오기 전. 폭증하는 부의 흐름 속에 '권력과 부와 세계화' 를 미래의 중점적인 가치로 판단한 기존 사회의 어른들. 지금보다 더 올라가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구가 손바닥 마주치듯 함께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이 유지되고,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41. 서울대학교! 아아, 내 아들이 서울대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런 '가문의 영광'을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일가친척들 앞에서..., 친구 동창들 앞에서 그보다 더 폼 나고, 광나는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아들아. 등수를 조금만 더 올려. 그럼 서울대학교는 네 것이야. 네가 서울대 학생이 되는 거라구. 어땨, 기막히지? 그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딨니. 하자, 함께 하자. 아 엄마가 뒤를 팍팍 밀어줄께. 힘내! 조금만 더 힘내! 엄마는 황홀경에 취해 아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2권 91. 부모들은 출세와 편안한 삶을 위한 무한 경쟁을 향해 질주할 생각뿐이었다. 그 거침없는 질주가 바로 무작정 학원 보내기였다. '남들보다 먼저 하면 이길 수 있다!' 부모들의 이 기대와 믿음을 확실하게 실행해 주는 것이 학원에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선행 학습'이었다. 그것은 '남들보다 먼저 해서 꼭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딱 받아 '남들보다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은 더 있을 수 없었다. (...) 서울의 경우 100퍼센트이니 선행 교육은 '선행'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완행 교육'이 되고 말았다.


<풀꽃은 꽃이다>에서 굉장한 교육열을 보이는 주체는 학부모 전체가 아니라 어머니로 국한되어 서술된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126. 일방적 자식 사랑이 과잉인 욕망 덩어리의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이 돈만 벌어오는 존재로 그려지고, 엄마와 자식 간의 갈등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는 존재감이 없는 못난 아버지로 그려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부분은 소설의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한 장치로 의도적으로 축소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갈등까지 그린다고 생각하면 어머니의 경우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의 문제를 엄마 혼자의 의지만으로 결정하고, 아빠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일리가 없다.


134. 엄마맘이란 자식이라는 게 한발 건너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인 거예요. 그런 소중한 자식이 자칫 잘못되어 담에 사회에 나가 좋은 직장도 못 얻고 가난에 찌들며 평생 고생고생하고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가슴이 떨리고, 몸 달고,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공부를 닦달하게 되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171. 3년이야, 3년 SKY에 딱 붙여 남들이 다 부러워 죽는 최고 자식을 만들어야지. 그럼, 하나밖에 없으니 반드시 최고를 만들어야 해. 재력 있겠다. 빵빵하게 뒷받침할 테니까 안 될 리가 없지.


217. 무조건 돈 좋아하고, 권력 좋아하고, 잇속 좋아하는 거지 뭐야!

222. 엄마 말은 결국 뭐야. 내 의사는 싹 무시해 버리고, 돈이 최고다, 권력이 최고다, 출세가 최고다, 그것만 있으면 인생 행복이고, 인생 성공이다. 그거 아냐?


자식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에게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이러한 생각으로 인하여 소설 속의 예슬이는 하루하루 학원 생활의 답답함에 고통으로 신음한다. 게다가 예슬이와 비슷한 환경의 유지원과 한동유. 최윤섭. 원명준과 원누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작금의 피로한 일과를 보내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대치동을 비롯한 전국의 유명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일제히 토해내듯 쏟아지는 이유였다.


2권 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193. 엄마는 양심도 없어? 날 몇 살 때부터 과외시켰는지 잊어버렸느냐구.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과외, 국어 산수 과외, 유치원 들어가서는 그런 과외에다가 피아노 과외, 수영 과외,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과외 계속하면서 성악 과외로 바꾸고, 기타 괴외로 바꾸고, 심지어 여자애한테 태권도까지 과외 시켰잖아.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영수 과외 뺑뺑이를 돌리고 있잖아. 내 인생은 비참한 괴외 인생이야, 과외 인생. 엄마 뜻대로 몰아붙인 과외 인생이라고 근데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애완견처럼 목줄을 묶어 꼼짝달싹 못하게 끌고 다니겠다고? 난 그건 죽어도 못해. 차라리 학교를 때려치우고 말지.


위에서 열거한 한예슬, 유지원, 한동유, 최윤섭, 원명준, 원누리는 자기가 원하는 꿈을 찾았고, 강력하게 의지를 관철시켜서 부모로부터 해방되는 학생으로 분류된다. 그들이 부모의 어긋난 욕망에서 해방되는 순간에는 강교민, 이소정, 임기범, 이재균으로 대표되는 참선생의 도움이 있었다. 희망이 없는 듯한 한국의 교육계에 훌륭한 선생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교육 민주화'의 줄임말'이라는  강교민' 같은 선생님들은 자세히 찾아보면 존재한다. 다만, 여전히 일제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 경쟁과 주입식 교육 현실을 떠받치는 세력들이 너무나도 견고해서 그들의 선량함이 우리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2권 330. 일제 잔재를 다른 분야도 아닌 교육계에서 해방 70년 세월이 흐르도록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고, 교육적 자해 행위입니다. (...)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함께 성적표에 석차를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것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고 있는 일제 잔재입니다. 달달 외우게 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는 일제 잔재입니다. 학생 지도로 체벌을 가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두발 길이를 제한하고 단속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교복을 꼭 입히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학제가 6-3-3-4인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봄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부활되었다가 많은 폐해만 남기고 사라진 일제고사도 일제의 잔재였습니다.


2권 329 '탈선 예방' 그 명분은 아주 교육적인 것 같지만, 그 의미를 꿰뚫어 보면 그것처럼 비교육적인 것도 없습니다. '탈선 예방'이라는 말은 학생 전체를 '잠재 범행자'로 전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교육이란 상호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며, 학생에게도 엄연히 인권과 인격이 있다고 인식시키면서 학생들을 '잠재 범행자'로 취급하는 것은 얼마나 논리 모순이며, 인권 침해입니까.


3. 무한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의 세계. 그 안에서조차 빈번한 권력싸움


사교육의 노예가 된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 그리고 이러한 성적 경쟁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나온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교실 내로 끌고 들어온다. 약간의 탐색과 잠깐의 세력싸움을 통하여 약자가 된 가난하고 힘없는 학생들은 이들의 노리개가 되어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성적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빈도로 들려오는 것은 학교폭력의 잔인한 희생자가 된 학생들의 고통의 흔적들이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언론을 통해 교실 내부의 잔인한 일과를 알게 된다.  


<풀꽃도 꽃이다>에서도 어김없이 이야기는 폭로된다. 자기 의지를 내비쳐서 오히려 친구들에게 시샘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게 된 예슬이의 경우는 자기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김태호와 박동욱에게 가난 때문에 시달림을 당하는 배동기의 경우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힘을 길러 통쾌하게 복수를 함으로써 스스로 그 구렁텅이를 벗어난다. 배동기는 분명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지만, 기존 사회의 벽이 공고했던 덕분에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점은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323.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런 고통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한테 하루 종일 시달리고, 또 창고 짐 나르는 알바로 밤이면 몸이 흐물거리는 것처럼 피곤한데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어떤 날에는 아래가 발가 벗겨져 음모를 다 뽑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발가벗겨져 찍힌 사진이 동영상으로 올려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팔다리를 묶인 채 전신에 볼펜으로 문신이 그려지기도 했고, 셔들을 거부해 거꾸로 매달려 두들겨 맞다가 죽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악몽은 그냥 허황되게 꾸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한두 번씩 당했던 일들이었다.


전남호와 한태식에게 당하고 있는 서주상은 한예슬과 배동기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느껴졌다. 엄마 아빠 소원인 의대 입학의 꿈 하나를 위해서 전남호와 한태식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는 서주상. 그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유지원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났다, 그렇게 그는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교육문제보다 훨씬 더 답답했다.  


4. 문화사대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


사교육 시장의 핵심은 바로 외국어. 특히 영어교육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도 아이들의 입에서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국영수가 아니라 영수국으로 바뀌어버릴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 이 영어는 대학 입학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취업시장에서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격 중에 하나다. 영어나 중국어같은 외국어의 학습을 이토록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가 내수로는 자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라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그런 면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미국인 원어민 교사 스미스와 포먼의 냉소적인 대화의 내용은 문화사대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정래 작가의 고뇌와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것의 일부를 옮겨본다.


383.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인종차별은 특히 유별났다. 원장이 문자까지 넣어가며 새삼 강조한 백인, 푸른 눈, 금발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 중에서는 무조건 미국 사람들을 최고로 쳤고,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미국인의 조건이 바로 백인, 푸른 눈, 금발이었다. 그것은 할리우드에서 저 옛날 1950년대에 최고 미녀 배우를 가리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용케 알아내 남자한테까지 확대, 적용시키고 나선 것이었다.

384. 발음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적 편견이 심하게 작용(...)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그 발음은 거의가 중부 지역 영어(...)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것 무시하고 뉴욕과 LA 발음을 최고로 쳤다. 그것은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큰 도시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두 도시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했던 것이다.

384. 백인, 푸른 눈, 금발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편견은 바로 흑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편견으로 이어져 있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미국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흑인 차별에 비하면 미국의 차별은 아주 인간적인 편이었다. (...) 한국에서는 흑인을 차별하거나 멸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극심한 편견을 드러냈다. (...) 그들은 흑인을 미리미리 피했고, 분명 영어로 무엇을 물으며 도움을 청하는데도 그들은 슬슬 피해 가기 바빴다.

386. 한국인들의 그 근거 박약한 편견은 그들만의 두 가지 착각을 낳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착각은 자신들이 흑인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자기들을 백인 다음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착각은 자기들이 미국을 비롯해 서양 여러 나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서양 사람들도 자기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사실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에 대해서 미국 사람인 자신들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한국의 암기 교육의 효과였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만큼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였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100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387.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무관심은 저 아프리카의 가봉이나 잠비아 같은 나라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안쓰러운 것은 한국 사람들은 결코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식견 있는 지식인들까지도 그런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지 않고 한국적 착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한국에 5년 동안이나 있으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고, 수수께끼였다.

"치유 불가능한 열등감과 선망"

388. 외국인, 특히 미국인에 대한 범죄가 전혀 없는 나라, 기초 회화만 해도 고액 수입이 보장되는 나라.(...) 어디 가서 잡담식으로 영어 좀 지껄이고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단 말인가.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396. 하루 여덟 시간씩 근무하고 한 달에 받는 월급이 학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 20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 까지야. 그런데 우리 학원은 A급에 해당해 400에서 600 사이에서 경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해. 난 신체 조건이 A급이라 바로 450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최고의 보수를 받고 있어. 너도 아마 450부터 스타트하게 될 거야. (...)너와 나처럼 백인, 파란 눈, 금발!

2권 10. 그 사람들은 우리 서양 사람과 단독으로 마주 앉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공부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자꾸 서양 사람을 만나면서 거리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없애고, 떨지 않고 말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 (...) 한국 사람들은 교과서 중심으로 영어를 배워서 회화에 자신이 없으니까 무슨 말이든 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

2권 13. 인구는 별로 늘지 않는데 영어 사교육비는 왜 그렇게 폭증하는 걸까? 부모들의 경쟁의식 때문이야. 모두 다 하니까 우리 애도 시켜야지. 우리 애가 더 잘해야 하니까 더 비싼 학원엘 보내야지.

2권 14. 한국 사람들, 특히 어린 자식 둔 엄마들의 무한 경쟁의식은 굶주린 사자의 식욕 같아.

2권 16. 한국 사람들은 원어민처럼 발음을 잘하는 게 소원인데. 그러기 위해서 혀를 수술하는 거야. 유별난 한국 사람들 일부는 자기들이 혀가 짧아 R 발음과 L 발음을 정확히 구분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두 가지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혓바닥 아래 부분인 설소대를 잘라내는 수슬을 하는 거야. 혀를 길게 하기 위해서지. (...) 어린애들에게. (...)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네댓 살.

2권 17. 정말 한국은 서글픈 코미디의 나라구나.

2권 17. 그게 다 한국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무한 경쟁의 산물인데, 한국 사람들은 촘스키 교수가 말한 '생득언어' 차이 때문에 제 2언어의 습득에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또 다른 수술도 서슴지 않을 거야.

2권 18. 반기문. 한국 고등학생들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뽑혀 미 정부 초청을 받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야. 그리고 평생을 외교 관료로서 영어를 하고 산 사람이야. 그런데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유엔 무대에서 공개적인 공격을 받은 거야. 언어란 그런 거라구, 태생적으로 생득언어가 다르니까. 우리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국 사람들처럼 한국말을 잘할 수 있겠니?

2권 28. 미국이 진정으로 우방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나라는 따로 있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네 나라가 그들이었다. 그 네 나라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 증표가 그들의 국기에 잘 나타나 있었다.

2권 38. 자기들은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1등 세계인이 되겠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하는 일. (...) 어떻게 영어를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치는 거지? 그거 아주 간단해. 자기네 국어나 역사 시간을 줄여서 영어 시간을 늘리는 거야.

2권 40. 태아 영어 교실도 열리고 있어.(...) 태아가 배 속에서부터 영어를 들으면서 태어나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프로그램.

2권 42. 너,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배웠지? 또,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경작한다는 말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우린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벌써 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그 많은 아파트들의 이름이 거의가 다 영어고, 그 많은 상점들의 간판도 날마다 영어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브랜드도 거의 다 영어고, 심지어 텔리비전 프로그램 이름이나 한글 신문들의 지면 타이틀까지도 영어투성이야. 이런 식으로 한 20년쯤 가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네 글 천대하고 우리 영어 떠받드는 문화식민지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5. 참교육과 해법


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374. 고졸자 중에서 SKY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1.5퍼센트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7,8배의 수가 같은 목표를 향해 사교육에다 서슴없이 거액을 쏟아붓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는 자녀의 장래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을 억압하고, 무작정 자신들의 욕망을 자녀들에게 투사하여 사교육시장에 거액의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안타까운 현실과 무한경쟁이 낳은 시대적인 비극을 바라보며,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의 활성화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대안학교와 혁신주의로의 맹목적인 쏠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녀의 소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녀가 원하는 진로를 계발할 수 있도록 알맞게 지원하는 것을 사교육 시장의 범람과 낭비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물론, 단순하게 돈과 시간의 낭비 때문에 사교육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사교육 시장에서 배운 지식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글을 잘 못쓰고, 말을 잘 못하고, 협동 능력이 떨어지고, 공감능력과 인성이 나빠진다는 점이었다.


144.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2권 281. 세 자식이 대안학교를 다니고, 각자 자기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이나 불만족은 그들 자신이 따질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인생을 자기들이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자기들의 노력으로 개척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부모로서 잘 해가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 모든 부모는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족쇄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저의 아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애들에게 '너희들도 아빠처럼 교수가 되라'고 강압하면서 공부를 닦달하고, 사교육으로 내몰고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2권 381. 하버드대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하나같이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를 않았던 이유. 수업 시간에는 꼬박꼬박 나오는데 그 외에는 운동도 하지 않고, 동료들과 담소도 하지 않고, 봉사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그들은 교재들을 외우느라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책을 다 외울 수는 없는 일이고, 그건 지극히 어리석은 공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첫째 전체를 읽어 내용을 파악하고, 둘째 그 저자는 왜 그렇게 썼는가를 분석해보고, 셋째, 나는 어떻게 쓸 수 있는가를 구상해 보는 것으로 바른 독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은 무조건 외우려고드니 공부 효과는 떨어지고, 동료들과 담소를 안 하니 회화 실력은 늘지 않고, 책에 대한 평가나 독후감 같은 것을 쓰지 않으니 석 박사 논문 쓰기가 어려워져 70퍼센트 이상 학위 취득에 실패하는 것이었다. (...) 한국은 일본식 암기 교육으로 일본과 똑같이 선진국들의 기술을 모방해가며 급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이 그렇듯 한국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돌파구는 서양식의 토론 교육을 통해 창읡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식 수업과 자기주도 방식의 학습 과정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단점(381)을 해결할 훌륭한 수업방식이라는 점을 여러 번씩 강조한다. 조정래 작가는 우리의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그들의 선택을 조금 더 많이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유망한 직업이 훗날에도 유망한 직업이 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고, 지금 천대받는 직업이 나중에 천대받는 직업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간에 열정이 있다면,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녀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 아니겠느냐 묻는다. 이렇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권력'과 '부자'에 취한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서 예로 들었던, 하찮고 천하다고 생각했던 대장장이 일도 남들에게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일 년에 1억을 저축할 수 있다고 누가 생각했겠느냐 이말이다.

결과적으로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정래 작가는 건립 후  지속되어온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큰 실망을 했다는 점이고, 동시에 지금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럽의 제도를 본딴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의 새로운 학제가 제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일테다. 아, 이 소설에서는 빠졌지만, 부모의 능력이 된다면, 홈스쿨링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권 365. 인생이란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세상에서 최고라고 치는 것만 최고가 아니야. 그것 아닌 차선에서도 마음에 드는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좀 여유를 갖고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 선생님이 별다른 힘은 없지만 끝까지 네 편이 돼줄게. 함께 의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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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8-1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도 단예님 글을 읽을수 있어 좋네요. ^^

단예 2016-08-10 09:03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 같이 쓰는데 자동으로 올라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