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1.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에서 두 작품을 만났다. <소설 속의 연암 박지원>이라는 작품과<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이라는 작품이다전자가 연암 박지원의 글을 현대의 언어와 운율로 편역한 글이라면후자는 연암의 글을 편역한 주영숙 작가가 연암 박지원의 전기(傳記)를 다룬 작품이다.

 

2. <소설 속의 연암 박지원>은 애초부터 박지원의 <연암집>에 수록된 여러 종류의 글 가운데서 양반전허생전호질 같은 연암의 소설만을 연대기 순으로 뽑아냈다광문자전에서 시작하여 열녀함양박씨전으로 마무리하는 연암의 풍자와 해학이 담긴 글들은 편자가 의도하는 최소한의 목적인 즐거움을 달성시켜준다더 나아가 양반 신분의 비천한 상황을 드러내는 18세기 조선 사회의 모습 또한 읽을 수 있다.

 

열전(列傳)의 형식으로 구성된 각 소설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가 떠올랐다프랑스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거대한 인간희극이라는 작품에서 발자크가 만들어낸 인물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것처럼연암의 열전에서도 같은 성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쪽저쪽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물론 엄청난 비약일 수도 있다그저 연암의 사회풍자와 인물의 연속적인 등장에서 발자크가 떠올랐을 뿐이다.

 

3. 정조는 당시에 통용되던 고문(옛 성현의 언행을 다룬 글처럼, 심오한 진리를 담은 격식과 권위가 있는 문장)의 파괴가 경박해 보이면서도 황당무계한 허구성을 담은 소설류의 짧고 자질구레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연암의 <열하일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정조는 온 나라에 문체반정(문체를 바른 곳으로 회복하라)의 조치를 취한다

 

정조는 연암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긴 글을 고문의 형식으로 써서 바치기를 명하나,연암은 그 명령에 이방익 표류기라는 또 다른 폐사소품체의 글을 지어 바쳤다고 하니 강심장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정조는 참으로 이상한 왕이다그의 글이 천박해 보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방익 표류기의 소재거리를 냅다 던져주지를 않나비문을 지을 때 왕의 명이라는 말을 속이고 연암에게 글을 받아오라고 하니 말이다정조도 그새 연암의 문장에 중독되어버렸단 말인가?


어쨌든 겉과 속이 다른 왕이 일으킨 문체반정의 기운이 조선 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퍼져 나감에 따라 연암의 <열하일기>는 오랜 세월 필사본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32년에서야 연암문집이 간행되었다고 전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열하일기>와 <연암집>을 읽어봐야겠다.

 

4. <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에서 가슴으로 다가온 부분은 연암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다.세기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그의 글이 우울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었다니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대체 무엇이 그를 우울하게 했을까권력의 달콤함에 유혹당하지 않으면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처연하게 살아온 그에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까혹시문드러져 내리는 조선에서 고작 세태를 비웃는 글을 쓰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좌절감이 그를 우울하게 만든 것일까?바로 앞에 읽은 시골무사 이성계의 대처방법과는 사뭇 다른 연암 박지원의 대처방법에 눈길이 쏠렸다.

 

5. 아직은 연암에 대해서 확실하게 뭐라고 평하기엔 너무나도 이른 것 같다이번에 읽은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은 연암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도 연암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책은 엄연히 글쓰기에 관한 책이니 논외로 두자.

 

마장전 


귀에 소곤거리는 말은 필시 진실이 아니가. 남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함도 깊은 사귐이 아니요, 그 속정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사람 또한 훌륭한 벗이 아니다. -34p-


사람을 사귀는 데에는 상대를 이해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고, 즐겁기로는 서로 공감하기보다 더한 게 없다. -37p-


민옹전


가난뱅이가 모두 신선이라오. 부자들은 늘 세상에 애착을 가지지만 가난뱅이는 늘 세상에 싫증을 느끼거든. 세상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고? -66p-

 

김신선전 


세상에서 못내 명예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히 겉모습에만 치중하게 되고, 그 모습에 의탁해서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102p-


허생전


대체로 남에게 뭔가를 빌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포부를 과장하여 신용을 얻으려 하는 법이다. 그러다보면 얼굴빛은 점점 더 비굴해지고, 말은 중언부언을 면치 못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봐라! 저 손님은 옷과 신이 비록 남루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말은 간결하고 눈빛은 오만하며 얼굴엔 부끄러운 빛이 조금도 없질 않더냐? 일체 물질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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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2012-07-27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소개를 너무 알뜰하게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으로 읽는 연암박지원 2권이 9월초에는 발간될 것 같은데요,
연암박지원의 화려한 문체를 읽으면 언제나 가슴이 쿵쿵 뛰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