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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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0. 하늘은 늘 변한다. 구름은 늘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어 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것은 마음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그릴 때면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여러 가지 하늘이 있듯이, 여러 가지 인간이 있다. (...) 낮은 하늘, 높은 하늘 / 넓은 하늘, 좁은 하늘 / 파란 하늘, 시커먼 하늘 / 맑은 하늘, 뿌연 하늘. 어느 하늘도 하늘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머리 위에 있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나. 쥰세이는 여러 가지 하늘이 있듯이, 인간도 여러 가지 성격의 인간이 있음을 털어놓으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우리에게 구하고 있다.


204. 나는 아직도 8년 전의 과거를 질질 끌며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미래에서 희망을 보려 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복원사는 직업상 과거를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동물인 것이다. 

206.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쥰세이의 조금은 남다른 성격에 따르면 쥰세이의 사랑은 틀린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깨달음과 자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그의 독백은 끝내 메미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일방적인 선고. 이로 인한 메미의 절규와 상실은 쥰세이에게. 그리고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소설 자체로서도 매우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167. 나는 나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절대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 동정받고 싶지 않아. 여자에게 동정만큼 잔혹한 건 없단 말이야. (...) 나는 아오이가 없는 공간을 메워 주려고 쥰세이를 사랑한 게 아냐. 쥰세이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난 이렇게 살 수 없어. 더 이상 모욕당하기 싫단 말이야.   


2.


쥰세이의 미술 복원사로서의 천성과 재능. 그리고 그의 손에 의하여 작품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황홀함(186~187)은 사물을 넘어서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완벽한 복원이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바뀐다. 이 희망은 불가능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하는 열정과도 같았다. 과거로의 복원으로 미래를 이어가기를 희망하는 쥰세이의 열정은 할아버지(130. 네게 그림을 권하는 것은, 네가 미래를 똑바로 쳐다보기를 바라서란다.), 인수(223.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몇 번이라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다카시(155. 이제 흘러간 과거일 뿐이야.)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심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쥰세이는 그들의 충고에 이렇게 답했다. (131. 미안해 (...) 그렇지만 난 결국 복원사로 살아갈 것 같아. 과거를 미래로 이어 주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 나 같은 사람도 중요하니까. 223.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3.
쥰세이와 아오이는 8년의 시간을 건너서 결국,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게 되었다. 커다란 아픔을 맞이하기 전에 스쳐가며 했던 기억을 두 사람이 모두 기억했다는 사실은 쥰세이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과거의 연속이 아니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마치 밀란 쿤데라가 '향수'에서 이야기했던 괴리감을 상기시키는 이 문장들.


244. 아오이는 아오이가 아니었다. 245. 1초라도 빨리, 현재를 과거로 물들이고 싶었다. (...) 고작 사흘로, 우리는 8년의 공백을 복원시킬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그림을 바라보면서도 제각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따름이다. 어느 쪽에도 그림을 복원시킬 만한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움만 간직한 냉정한 동창회와도 같았다,

246. 우리는 8년이란 시간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에게 전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그 8년을 납득시키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 눈앞에 있는 아오이가 8년 전의 아오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 데 고작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249. 열정이 냉정에 떠밀려 가는 것 같았다.

252. 결국 냉정이 이겼다.

 

결국 냉정이 이겼다. 이것으로 쥰세이는 항복을 선언한 것일까? 아오이를 만난 후, 시간의 차이가 빚어내는 두 사람 사이의 이질감과 괴리감. 그리고 허무함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쥰세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낯선 감정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백년'으로의 도전이라고 이름 붙인. 쥰세이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행동을 예고한다. 이것은 직업병으로서의 복원과정을 의미하는 행동이다.

그의 오기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머니의 부재가 낳은. 과거의 그리움을 갈구하는 태생적인 성향과 이 성향이 이끌어온 복원사로서의 직업적인 재능으로 형성되었다. 그렇게 쥰세이는 그를 떠나려는 아오이를 향해 다시 다가간다. 나의 광장을 향하여. 

 

178. 나의 광장. (...)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살아가던 내게 있어 그녀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광장처럼 시원스런 존재. (...)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었다. (...) 대학 생활에서 겨우 마음을 쉴 수 있는 광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것이 사랑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온 힘을 기울여 그녀를 사랑하고, 그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가 사랑이 도를 넘어 버렸다. 서둘지 말라고, 늘 냉정한 그 사람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이제 Rosso를 읽을 차례다 아오이의 내면은 어떤 하늘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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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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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포문학으로서 대한민국 교육정책비판


조정래 작가의 장편 <풀꽃도 꽃이다>는 르포문학으로 분류해도 될 정도다. 수년에 걸친 시간, 각기 다른 교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과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인한 끔찍하고 엽기적인 비극의 반작용. 이 비극의 충돌은 <풀꽃도 꽃이다>의 세계 속에 아주 흔한 일상으로 독자들에게 공개된다. 서로 왕래하면서 관계하고, 견제하면서 질투하는 몇몇의 가정의 고민이제 더는 특별하지 않은 - 그래서 더욱 위험한 - 교실 내부의 갈등상태로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경쟁과 주입식 위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부정적 밀도를 더욱 높였다.


<풀꽃도 꽃이다>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 가운데 대표적으로 <허수아비 춤>처럼 가상의 현실과 우스꽝스러운 재벌의 겉모습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지 않고, 실명을 드러내고 그가 행했던 정책들을 놓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풀꽃은 꽃이다>에서는 작가의 강한 정치적 입장이 표출되어 잘못된 교육정책과 노동정책 을 입안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풍자를 배제하고, 최대한 사실을 써내려감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23. 하나의 가녀린 촛불이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나면 어떤 힘으로 변하는지 그 시위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 펼쳐진 드넓은 불꽃의 바다였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율동하며 그 무수한 불꽃들이 흔들릴 때, 그 출렁임은 그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한 불꽃의 파도였다. 그런데 장엄함을 넘어 숙연하도록 아름다운 그 불꽃의 파도가 콧날 시큰하고, 가슴 뭉클하도록 감동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그 불꽃의 바다는 밤마다 넓어지고 있었는데, 그 촛불 촛불들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어둠과 함께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밤새껏 경건하도록 아름다운 출렁임을 연출하고는 동이 터오는 여명과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계층의 시민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우고 질서 정연하게 흩어져가는 그런 평화적 시위는 이 나라 현대사에서 처음 목격하는 일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풍경을 기록한 조정래 작가의 문장이다. 김선우 작가의 <캔들 플라워> 이후 두 번째로 마주하는 촛불시위 풍경이었다. 이 시위 속에서 적극적인 청소년의 참여를 본 조정래 작가는 가녀린 시민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한 것 같다. 아무튼, 지금도 광우병의 논쟁은 완전하게 끝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저품질 소고기의 수입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굴욕적인 비칠 수 있는 FTA 협상이었고, 이 협상의 주체는 이명박 정부였다. 이 협상에 더불어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교육정책. 일제고사의 부활, 영어몰입교육,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설립 등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36. 일제고사와 궁합을 잘 맞춰 탄생한 것이 '무한 경쟁'이었다. 인생은 유한할 뿐인데 무한 경쟁이라니... (...)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사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기업 출신답게 그런 경영 논리를 국가의 교육 경영에 도입하면서 '무한 경쟁'이라는 새 말을 신교육의 목표로 내건 것이었다.


2. 요지부동한 기존 사회의 속성, 부모들의 욕망, 아이들의 아우성


2권 72. 기존 사회는 언제나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기존 가치를 절대 신봉하는 동시에 그 어떤 도전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 배타주의를 고수했다. 따라서 자기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흠집 내거나 흔들려고 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그 선봉장인 매스컴이 나서서 가차 없이 총칼을 휘둘러댔다. 그 일제 공격의 목적은 기존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새로 터진 사건을 무조건 은폐하고 묵살하여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2권 73. 기존 사회가 그렇게 횡포를 일삼으면서도 절대 권력 위에 건재할 수 있는 것은 (...) 이 세상 사람들 절대 다수가 자기도 기존 사회의 특권층에 들고자 하는 욕망과 환상에 사로잡혀 살인적인 경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출세주의, 물신주의, 이기주의에 중독되어 있는 그 속물 집단들은 바른 것도, 그른 것도, 독도, 악도, 구분하지 못하는 집단 망각증과 집단 불감증에 단단히 병들어 있었다.

2권 73. 그런 끔찍한 시(이순영 - 학원 가기 싫은 날)가 나타났으면 매스컴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꽃다워야 할 소녀의 마음에서 왜 이런 시가 나왔나.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 (...) 그런데 매스컴은 그 어린 소녀를 무자비하게 '패륜아', '사이코패스'로 모는 언론 살인을 감행했고, 공부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내 자식만 안 그러면 돼' 하는 이기주의로 그 소녀를 암매장하는 데 가담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이러한 경쟁과 문화 사대주의가 바탕이 된 정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움직임과 세계경제위기가 찾아오기 전. 폭증하는 부의 흐름 속에 '권력과 부와 세계화' 를 미래의 중점적인 가치로 판단한 기존 사회의 어른들. 지금보다 더 올라가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구가 손바닥 마주치듯 함께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이 유지되고,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41. 서울대학교! 아아, 내 아들이 서울대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런 '가문의 영광'을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일가친척들 앞에서..., 친구 동창들 앞에서 그보다 더 폼 나고, 광나는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아들아. 등수를 조금만 더 올려. 그럼 서울대학교는 네 것이야. 네가 서울대 학생이 되는 거라구. 어땨, 기막히지? 그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딨니. 하자, 함께 하자. 아 엄마가 뒤를 팍팍 밀어줄께. 힘내! 조금만 더 힘내! 엄마는 황홀경에 취해 아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2권 91. 부모들은 출세와 편안한 삶을 위한 무한 경쟁을 향해 질주할 생각뿐이었다. 그 거침없는 질주가 바로 무작정 학원 보내기였다. '남들보다 먼저 하면 이길 수 있다!' 부모들의 이 기대와 믿음을 확실하게 실행해 주는 것이 학원에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선행 학습'이었다. 그것은 '남들보다 먼저 해서 꼭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딱 받아 '남들보다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은 더 있을 수 없었다. (...) 서울의 경우 100퍼센트이니 선행 교육은 '선행'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완행 교육'이 되고 말았다.


<풀꽃은 꽃이다>에서 굉장한 교육열을 보이는 주체는 학부모 전체가 아니라 어머니로 국한되어 서술된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126. 일방적 자식 사랑이 과잉인 욕망 덩어리의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이 돈만 벌어오는 존재로 그려지고, 엄마와 자식 간의 갈등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는 존재감이 없는 못난 아버지로 그려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부분은 소설의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한 장치로 의도적으로 축소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갈등까지 그린다고 생각하면 어머니의 경우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의 문제를 엄마 혼자의 의지만으로 결정하고, 아빠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일리가 없다.


134. 엄마맘이란 자식이라는 게 한발 건너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인 거예요. 그런 소중한 자식이 자칫 잘못되어 담에 사회에 나가 좋은 직장도 못 얻고 가난에 찌들며 평생 고생고생하고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가슴이 떨리고, 몸 달고,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공부를 닦달하게 되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171. 3년이야, 3년 SKY에 딱 붙여 남들이 다 부러워 죽는 최고 자식을 만들어야지. 그럼, 하나밖에 없으니 반드시 최고를 만들어야 해. 재력 있겠다. 빵빵하게 뒷받침할 테니까 안 될 리가 없지.


217. 무조건 돈 좋아하고, 권력 좋아하고, 잇속 좋아하는 거지 뭐야!

222. 엄마 말은 결국 뭐야. 내 의사는 싹 무시해 버리고, 돈이 최고다, 권력이 최고다, 출세가 최고다, 그것만 있으면 인생 행복이고, 인생 성공이다. 그거 아냐?


자식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에게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이러한 생각으로 인하여 소설 속의 예슬이는 하루하루 학원 생활의 답답함에 고통으로 신음한다. 게다가 예슬이와 비슷한 환경의 유지원과 한동유. 최윤섭. 원명준과 원누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작금의 피로한 일과를 보내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대치동을 비롯한 전국의 유명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일제히 토해내듯 쏟아지는 이유였다.


2권 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193. 엄마는 양심도 없어? 날 몇 살 때부터 과외시켰는지 잊어버렸느냐구.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과외, 국어 산수 과외, 유치원 들어가서는 그런 과외에다가 피아노 과외, 수영 과외,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과외 계속하면서 성악 과외로 바꾸고, 기타 괴외로 바꾸고, 심지어 여자애한테 태권도까지 과외 시켰잖아.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영수 과외 뺑뺑이를 돌리고 있잖아. 내 인생은 비참한 괴외 인생이야, 과외 인생. 엄마 뜻대로 몰아붙인 과외 인생이라고 근데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애완견처럼 목줄을 묶어 꼼짝달싹 못하게 끌고 다니겠다고? 난 그건 죽어도 못해. 차라리 학교를 때려치우고 말지.


위에서 열거한 한예슬, 유지원, 한동유, 최윤섭, 원명준, 원누리는 자기가 원하는 꿈을 찾았고, 강력하게 의지를 관철시켜서 부모로부터 해방되는 학생으로 분류된다. 그들이 부모의 어긋난 욕망에서 해방되는 순간에는 강교민, 이소정, 임기범, 이재균으로 대표되는 참선생의 도움이 있었다. 희망이 없는 듯한 한국의 교육계에 훌륭한 선생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교육 민주화'의 줄임말'이라는  강교민' 같은 선생님들은 자세히 찾아보면 존재한다. 다만, 여전히 일제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 경쟁과 주입식 교육 현실을 떠받치는 세력들이 너무나도 견고해서 그들의 선량함이 우리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2권 330. 일제 잔재를 다른 분야도 아닌 교육계에서 해방 70년 세월이 흐르도록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고, 교육적 자해 행위입니다. (...)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함께 성적표에 석차를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것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고 있는 일제 잔재입니다. 달달 외우게 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는 일제 잔재입니다. 학생 지도로 체벌을 가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두발 길이를 제한하고 단속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교복을 꼭 입히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학제가 6-3-3-4인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봄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부활되었다가 많은 폐해만 남기고 사라진 일제고사도 일제의 잔재였습니다.


2권 329 '탈선 예방' 그 명분은 아주 교육적인 것 같지만, 그 의미를 꿰뚫어 보면 그것처럼 비교육적인 것도 없습니다. '탈선 예방'이라는 말은 학생 전체를 '잠재 범행자'로 전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교육이란 상호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며, 학생에게도 엄연히 인권과 인격이 있다고 인식시키면서 학생들을 '잠재 범행자'로 취급하는 것은 얼마나 논리 모순이며, 인권 침해입니까.


3. 무한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의 세계. 그 안에서조차 빈번한 권력싸움


사교육의 노예가 된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 그리고 이러한 성적 경쟁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나온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교실 내로 끌고 들어온다. 약간의 탐색과 잠깐의 세력싸움을 통하여 약자가 된 가난하고 힘없는 학생들은 이들의 노리개가 되어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성적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빈도로 들려오는 것은 학교폭력의 잔인한 희생자가 된 학생들의 고통의 흔적들이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언론을 통해 교실 내부의 잔인한 일과를 알게 된다.  


<풀꽃도 꽃이다>에서도 어김없이 이야기는 폭로된다. 자기 의지를 내비쳐서 오히려 친구들에게 시샘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게 된 예슬이의 경우는 자기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김태호와 박동욱에게 가난 때문에 시달림을 당하는 배동기의 경우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힘을 길러 통쾌하게 복수를 함으로써 스스로 그 구렁텅이를 벗어난다. 배동기는 분명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지만, 기존 사회의 벽이 공고했던 덕분에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점은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323.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런 고통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한테 하루 종일 시달리고, 또 창고 짐 나르는 알바로 밤이면 몸이 흐물거리는 것처럼 피곤한데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어떤 날에는 아래가 발가 벗겨져 음모를 다 뽑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발가벗겨져 찍힌 사진이 동영상으로 올려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팔다리를 묶인 채 전신에 볼펜으로 문신이 그려지기도 했고, 셔들을 거부해 거꾸로 매달려 두들겨 맞다가 죽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악몽은 그냥 허황되게 꾸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한두 번씩 당했던 일들이었다.


전남호와 한태식에게 당하고 있는 서주상은 한예슬과 배동기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느껴졌다. 엄마 아빠 소원인 의대 입학의 꿈 하나를 위해서 전남호와 한태식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는 서주상. 그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유지원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났다, 그렇게 그는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교육문제보다 훨씬 더 답답했다.  


4. 문화사대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


사교육 시장의 핵심은 바로 외국어. 특히 영어교육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도 아이들의 입에서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국영수가 아니라 영수국으로 바뀌어버릴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 이 영어는 대학 입학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취업시장에서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격 중에 하나다. 영어나 중국어같은 외국어의 학습을 이토록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가 내수로는 자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라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그런 면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미국인 원어민 교사 스미스와 포먼의 냉소적인 대화의 내용은 문화사대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정래 작가의 고뇌와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것의 일부를 옮겨본다.


383.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인종차별은 특히 유별났다. 원장이 문자까지 넣어가며 새삼 강조한 백인, 푸른 눈, 금발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 중에서는 무조건 미국 사람들을 최고로 쳤고,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미국인의 조건이 바로 백인, 푸른 눈, 금발이었다. 그것은 할리우드에서 저 옛날 1950년대에 최고 미녀 배우를 가리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용케 알아내 남자한테까지 확대, 적용시키고 나선 것이었다.

384. 발음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적 편견이 심하게 작용(...)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그 발음은 거의가 중부 지역 영어(...)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것 무시하고 뉴욕과 LA 발음을 최고로 쳤다. 그것은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큰 도시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두 도시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했던 것이다.

384. 백인, 푸른 눈, 금발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편견은 바로 흑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편견으로 이어져 있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미국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흑인 차별에 비하면 미국의 차별은 아주 인간적인 편이었다. (...) 한국에서는 흑인을 차별하거나 멸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극심한 편견을 드러냈다. (...) 그들은 흑인을 미리미리 피했고, 분명 영어로 무엇을 물으며 도움을 청하는데도 그들은 슬슬 피해 가기 바빴다.

386. 한국인들의 그 근거 박약한 편견은 그들만의 두 가지 착각을 낳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착각은 자신들이 흑인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자기들을 백인 다음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착각은 자기들이 미국을 비롯해 서양 여러 나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서양 사람들도 자기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사실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에 대해서 미국 사람인 자신들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한국의 암기 교육의 효과였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만큼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였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100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387.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무관심은 저 아프리카의 가봉이나 잠비아 같은 나라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안쓰러운 것은 한국 사람들은 결코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식견 있는 지식인들까지도 그런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지 않고 한국적 착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한국에 5년 동안이나 있으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고, 수수께끼였다.

"치유 불가능한 열등감과 선망"

388. 외국인, 특히 미국인에 대한 범죄가 전혀 없는 나라, 기초 회화만 해도 고액 수입이 보장되는 나라.(...) 어디 가서 잡담식으로 영어 좀 지껄이고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단 말인가.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396. 하루 여덟 시간씩 근무하고 한 달에 받는 월급이 학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 20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 까지야. 그런데 우리 학원은 A급에 해당해 400에서 600 사이에서 경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해. 난 신체 조건이 A급이라 바로 450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최고의 보수를 받고 있어. 너도 아마 450부터 스타트하게 될 거야. (...)너와 나처럼 백인, 파란 눈, 금발!

2권 10. 그 사람들은 우리 서양 사람과 단독으로 마주 앉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공부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자꾸 서양 사람을 만나면서 거리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없애고, 떨지 않고 말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 (...) 한국 사람들은 교과서 중심으로 영어를 배워서 회화에 자신이 없으니까 무슨 말이든 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

2권 13. 인구는 별로 늘지 않는데 영어 사교육비는 왜 그렇게 폭증하는 걸까? 부모들의 경쟁의식 때문이야. 모두 다 하니까 우리 애도 시켜야지. 우리 애가 더 잘해야 하니까 더 비싼 학원엘 보내야지.

2권 14. 한국 사람들, 특히 어린 자식 둔 엄마들의 무한 경쟁의식은 굶주린 사자의 식욕 같아.

2권 16. 한국 사람들은 원어민처럼 발음을 잘하는 게 소원인데. 그러기 위해서 혀를 수술하는 거야. 유별난 한국 사람들 일부는 자기들이 혀가 짧아 R 발음과 L 발음을 정확히 구분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두 가지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혓바닥 아래 부분인 설소대를 잘라내는 수슬을 하는 거야. 혀를 길게 하기 위해서지. (...) 어린애들에게. (...)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네댓 살.

2권 17. 정말 한국은 서글픈 코미디의 나라구나.

2권 17. 그게 다 한국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무한 경쟁의 산물인데, 한국 사람들은 촘스키 교수가 말한 '생득언어' 차이 때문에 제 2언어의 습득에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또 다른 수술도 서슴지 않을 거야.

2권 18. 반기문. 한국 고등학생들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뽑혀 미 정부 초청을 받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야. 그리고 평생을 외교 관료로서 영어를 하고 산 사람이야. 그런데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유엔 무대에서 공개적인 공격을 받은 거야. 언어란 그런 거라구, 태생적으로 생득언어가 다르니까. 우리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국 사람들처럼 한국말을 잘할 수 있겠니?

2권 28. 미국이 진정으로 우방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나라는 따로 있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네 나라가 그들이었다. 그 네 나라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 증표가 그들의 국기에 잘 나타나 있었다.

2권 38. 자기들은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1등 세계인이 되겠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하는 일. (...) 어떻게 영어를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치는 거지? 그거 아주 간단해. 자기네 국어나 역사 시간을 줄여서 영어 시간을 늘리는 거야.

2권 40. 태아 영어 교실도 열리고 있어.(...) 태아가 배 속에서부터 영어를 들으면서 태어나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프로그램.

2권 42. 너,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배웠지? 또,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경작한다는 말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우린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벌써 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그 많은 아파트들의 이름이 거의가 다 영어고, 그 많은 상점들의 간판도 날마다 영어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브랜드도 거의 다 영어고, 심지어 텔리비전 프로그램 이름이나 한글 신문들의 지면 타이틀까지도 영어투성이야. 이런 식으로 한 20년쯤 가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네 글 천대하고 우리 영어 떠받드는 문화식민지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5. 참교육과 해법


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374. 고졸자 중에서 SKY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1.5퍼센트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7,8배의 수가 같은 목표를 향해 사교육에다 서슴없이 거액을 쏟아붓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는 자녀의 장래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을 억압하고, 무작정 자신들의 욕망을 자녀들에게 투사하여 사교육시장에 거액의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안타까운 현실과 무한경쟁이 낳은 시대적인 비극을 바라보며,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의 활성화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대안학교와 혁신주의로의 맹목적인 쏠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녀의 소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녀가 원하는 진로를 계발할 수 있도록 알맞게 지원하는 것을 사교육 시장의 범람과 낭비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물론, 단순하게 돈과 시간의 낭비 때문에 사교육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사교육 시장에서 배운 지식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글을 잘 못쓰고, 말을 잘 못하고, 협동 능력이 떨어지고, 공감능력과 인성이 나빠진다는 점이었다.


144.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2권 281. 세 자식이 대안학교를 다니고, 각자 자기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이나 불만족은 그들 자신이 따질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인생을 자기들이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자기들의 노력으로 개척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부모로서 잘 해가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 모든 부모는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족쇄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저의 아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애들에게 '너희들도 아빠처럼 교수가 되라'고 강압하면서 공부를 닦달하고, 사교육으로 내몰고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2권 381. 하버드대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하나같이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를 않았던 이유. 수업 시간에는 꼬박꼬박 나오는데 그 외에는 운동도 하지 않고, 동료들과 담소도 하지 않고, 봉사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그들은 교재들을 외우느라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책을 다 외울 수는 없는 일이고, 그건 지극히 어리석은 공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첫째 전체를 읽어 내용을 파악하고, 둘째 그 저자는 왜 그렇게 썼는가를 분석해보고, 셋째, 나는 어떻게 쓸 수 있는가를 구상해 보는 것으로 바른 독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은 무조건 외우려고드니 공부 효과는 떨어지고, 동료들과 담소를 안 하니 회화 실력은 늘지 않고, 책에 대한 평가나 독후감 같은 것을 쓰지 않으니 석 박사 논문 쓰기가 어려워져 70퍼센트 이상 학위 취득에 실패하는 것이었다. (...) 한국은 일본식 암기 교육으로 일본과 똑같이 선진국들의 기술을 모방해가며 급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이 그렇듯 한국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돌파구는 서양식의 토론 교육을 통해 창읡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식 수업과 자기주도 방식의 학습 과정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단점(381)을 해결할 훌륭한 수업방식이라는 점을 여러 번씩 강조한다. 조정래 작가는 우리의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그들의 선택을 조금 더 많이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유망한 직업이 훗날에도 유망한 직업이 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고, 지금 천대받는 직업이 나중에 천대받는 직업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간에 열정이 있다면,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녀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 아니겠느냐 묻는다. 이렇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권력'과 '부자'에 취한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서 예로 들었던, 하찮고 천하다고 생각했던 대장장이 일도 남들에게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일 년에 1억을 저축할 수 있다고 누가 생각했겠느냐 이말이다.

결과적으로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정래 작가는 건립 후  지속되어온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큰 실망을 했다는 점이고, 동시에 지금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럽의 제도를 본딴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의 새로운 학제가 제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일테다. 아, 이 소설에서는 빠졌지만, 부모의 능력이 된다면, 홈스쿨링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권 365. 인생이란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세상에서 최고라고 치는 것만 최고가 아니야. 그것 아닌 차선에서도 마음에 드는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좀 여유를 갖고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 선생님이 별다른 힘은 없지만 끝까지 네 편이 돼줄게. 함께 의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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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8-1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도 단예님 글을 읽을수 있어 좋네요. ^^

단예 2016-08-10 09:03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 같이 쓰는데 자동으로 올라가더라구요.
 
-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인간에게서 신은 떠나간지 오래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인간. 의지할 곳 없는 인간. 인간을 대표하는 작중화자는 흰 것이라는 결벽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 그녀는 흰 것의 속성에서 신을 발견하고, 신의 절대성을 흰 것에 투영한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흰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순수한 것은 완전하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흰 것에 발자국을 찍는 일이다.


2.


한강의 소설 <흰>은 수상과 단상. 그리고 질서라는 방식에 의존한 소품형태의 소설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에 더 가깝다.


같이 읽고 있는 <글쓰기 동서대전>에 따르면, '수상'이란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을 의미하고, '단상'은 문득 스쳐가는 단편적인 생각을 뜻하며. '질서'란 떠오르는 생각이나 스쳐 지나가는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써 내려가는 글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소품'은 글의 길이나 분량에 구속받지 않고, 장르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소재나 주제에 상관없이 느낌이 있는 대로 혹은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가는 산문의 일종이다.


이 책에는 마음을 적시는 구절이 한가득이라 어떤 부분을 인용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서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이 문장을 가장 먼저 옮겨오고 싶어서 기록해본다. 당신에게 흰 것을 주고 싶다는 바람은 완벽함을, 부활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단순한 의미의 소망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소망.


40.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3. 어둠이 있기에 더욱 빛날 수 있는


118.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종종 캄캄하고 깊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찾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흰>은 명백하게 흰 것들을 말하고자 한다. 표제로 삼은 단어들은 모두 흰 것의 특성을 지닌 단어들이며, 표제 속의 문장에서 그들의 흰 성질은 아름답고, 강렬하고,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흰 것은 작중 화자의 기억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냐면. 검은 것들과 공존하고 있는 이미지 속의 흰 것으로 존재한다. 흰과 검의 대비 속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흰. 그렇게 작중화자의 흰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진다. 본문 중간중간에 배치된 차미혜 작가의 사진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34.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69. 달이 유난히 커다랗게 떠오른 밤, 커튼으로 창들을 가리지 않으면 아파트 구석구석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그녀는 서성거린다. 생각에 잠긴 거대한 흰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빛, 거대한 캄캄한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어둠 속을.


126.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4. 소멸되어가는 흰 것.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다.


오로지 작중화자의 수상과 단상으로 부터 기록된 문장이라서 이 책의 서사가 완벽한 형태로 구축되어 있진 않다. 그렇지만 35페이지 '빛이 있는 쪽'에서 <흰>에 숨겨진 서사의 도화선을 읽을 수 있다. "이 도시의 유태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실화"를 따라감으로써 작중화자는 자기가 태어나기 몇 전에 조산으로 사망한. 그녀가 삶으로 빛나기 전에 죽음으로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언니와 오빠의 기억을 꺼내온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낀다.


117.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언니라는 존재. 작중화자의 언니는 위에서 언급한 유태인 남자처럼 작중화자의 삶 속에 존재함으로써 화자 대신에 어둠으로부터 흰 세상을 바라보는 상반된 장면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살아있는 내가 아닌 이미 죽어서 떠도는 그녀의 의식이 바라보는 흰 것은 위의 사진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흰 것이 아니다. 소멸되어가는 찰나의 흰 것. 언젠가는 사라질 흰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흰 것의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했다.


58.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 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감나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59. 삶은 누구에게고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5. 질문들


63.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67. 어느날 그녀는 굵은 소금 한 줌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희끗한 그늘이 진 굴곡진 입자들이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71. 레이스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렵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74. 왜 흰 새가 다른 색의 새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왜 특별히 아름답게, 기품 있게, 때로 거의 신성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81. 그때 왜 우리는 하필 백목련을 골랐을까. 흰 꽃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죽음과? 인도유럽어에서 텅 빔과 흰 빛, 검은과 불꽃이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그녀는 읽었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 그것이 삼월에 짧게 꽃피는 백목련 두 그루인 걸까?


81페이지의 문장이 위의 궁금증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그리고 소설 <흰>의 흰 것과 어두운 것들을 설명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흰 빛은 텅 비어있고, 검은 것은 불꽃과 닮았다고 한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이라고 했다. 사실 좀 어렵고, 긴가민가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작가는 흰 것이 내포하는 상반된 의미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흰 것은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완벽하게 순수한 공간일수도. 이미 소멸되어 사라져버린 텅 빈 공간이기도 하다. 앞의 흰 것은 삶을 의미하고, 뒤의 흰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작중화자는 앞의 흰 것으로 삶의 속성을 보며. 작중화자의 언니는 뒤의 흰 것으로 죽음의 속성을 본다. 앞에서 몇 번 이야기했던 박경리 선생님의 삶의 문학, 죽음의 문학 이것을 한꺼번에 포용하여 <흰>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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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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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우정. 경쟁. 그리고 영혼의 성장


25. 그날 저녁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층계를 난간을 따라 한 계단 한계단씩 올라가기로 결정한 그 순간 릴라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일인칭 전지적 시점의 화자인 '엘레나 그레코 = 나' 와 릴라라고 불리는 라파엘라 체룰로 간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우정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두 소녀를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냄으로써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 한가지를 만들어낸다.

'나'가 관찰하는 인물인 릴라. 실질적인 주인공인 릴라는 선천적으로 영리한 아이었다. 영리한 만큼 이기적이고, 굉장히 자존심도 세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자주 일으킨다. 그와는 반대로 화자인 '나' 엘레나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인물의 개성과 인물간의 미묘한 관계를 잘 읽어내는 소녀로서,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의 호감을 사는데 능하고 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참을성이 강한 온화하면서도 다소 내성적인 성향의 소녀였다. 

4부작 소설의 제 1부인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의미하는 인물은 릴라다. 엘레나 페란테 작가는 릴라의 타고난 능력으로 엘레나를 이끌어주었던 일화들로 그녀의 유년기를 추억한다. 엘레나와 릴라는 이러한 성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없이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단짝 친구로 지낸다. 엘레나로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놀라운 릴라의 언어감각과 학습능력에 열등감을 느낄 때도 제법 많았지만. 그녀를 시샘하지 않고, 오히려 릴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운다. 릴라도 엘레나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항상 똑똑하고 멋진 친구로 남고 싶어서 엘레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다. 그렇게 사람 모두 성장한다.


29.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릴라와 나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2. 다른 방식의 '부'


나폴리 4부작의 제 1부 <나의 눈부신 친구>의 두 소녀는 서로 다른 방식의 삶선택하게 된다. 엘레나는 릴라와 자주 의견을 나누었던대로 '정신적인 '부'를 선택한다. 반면에, 릴라는 '물질적인 부'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날 밤 벌인 폭죽놀이 사건에서 '경계의 해체'라는 경험(114p)을 했기 때문이다. 그 날 그녀는 '부'에 의해서 난폭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다. '부'에 지배되어버린 오빠의 광기는 그 날 그녀가 본 가장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날 밤의 심리묘사.


114. 날씨가 아주 추웠는데도 갑자기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너무나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너무나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구역질이 나면서 그녀를 비롯한 모든 이를 감싸고 있던, 언제나 존재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인지하지 못 했던 철저히 물질적인 그 무엇인가가 사람과 사물의 테두리를 잘게 부수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릴라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폭발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연기가 자욱한 테라스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외침에서 나는 울림은 알 수 없는 세계의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구역질이 더 심해졌고 사투리가 뒤섞인 사람들의 말투가 어색하게 들렸다.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축축한 입에서 분비되는 타액으로 젖어드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릴라는 혐오감과 함께 자신도 그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음( '불품없는 존재들이구나')을 깨닫게 되면서, 항복을 선언하듯 자의반 타의반 물질적인 '부'를 선택한다.


릴라의 마지막 선택.

330. 부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변했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둘도 없는 신발 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 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햄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라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재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릴라는 그날밤을 시작으로 '부'를 얻기 위한 욕심 때문에 평점심과 의지력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번 목격하고, 무너짐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악'의 얼굴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의 속성을 깨달은 그녀는 '부'의 노예가 될 바에야 차라리 '부'를 다스려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릴적 두려워했던 돈 아킬레의 '부'(25p)를 부의 본모습으로 인정하고,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내면의 논리적인 정당화 과정을 거쳐 '부'를 선택한 결과. 릴라의 가문은 구두수선으로 푼돈을 버는 흙수저 가문이었지만, 부유한 스테파노과의 결혼을 결심함으로써 마침내 신분의 상승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421. 그 허영에 찬 모습이란! (...) 이들은 모두 귀족처럼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아니 모두가 알다시피,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야 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 허례허식을 차리는 데 쓴 돈은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릴라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 악마와 손을 잡아 '부'를 검어쥔 릴라는 자신이 타락했음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릴라는 416.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엘라나에게 전한다. 이 소설에서 '눈부신 친구'는 원래 릴라였지만, 이제 릴라는 자신의 내면을 키워가는 엘레나를 향하여 릴라의 '눈부신 친구'로. 뛰어난 사람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3.


난 너와 같은 무리를 한 번도 미워해본 적이 없노라.

부정을 일삼는 모든 정령 중에서도 / 너 같은 익살꾼은 내게 조금도 짐스럽지 않구나.

인간의 활동이란 쉽사리 느슨해지고 / 언제나 휴식하기를 좋아하니 내 기꺼이 그를 자극하여 /

악마의 역할을 해낼 동반자를 그에게 붙여주겠노라.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부자와 결혼하는 릴라를 보면서 왜 악마와 손을 잡았다고 비난할까?

그것은 이들이 일군 부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

197. 솔라리네 주점은 과거부터 고리대금을 하는 마피아 집단과 밀수꾼들의 소굴이었고 왕정복고주의자들의 자금모집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 돈 아킬레가 나치와 파시스트들의 스파이 노릇을 했고 스테파노는 그 애비가 검은색 가방에 모은 돈으로 식료품점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199. 저들의 돈은 다른 사람들의 굶주림 덕분에 생긴 거고 이 자동차는 대리석 가루가 섞인 빵과 암시장에서 썩은 고기를 팔아서 마련한 거래. 저 정육점은 화물기차를 털어서 훔친 구리로 마련한 거고 저 주점은 마피아와 밀수꾼과 고리대금업자의 소굴이야.

200. 어두운 죄악으로 골수까지 오염된 이들은 모두 그녀의 눈에 냉혹한 범죄자나 아니면 고작 빵 부스러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협조한 공범자들로 비춰졌다.


릴라는 이러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성의 제한적인 권리와 가부장제의 관습 때문에 사랑하지도. 아니 증오했던 솔라리 가문의 마르첼로와 결혼하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저질러 질 일이라면. 차악을 택하자 싶은 마음(1부에서는 스테파노에게 마음이 있었다)에 그녀는 스테파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정당하지 못한 힘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릴라가 꿈꾸었던 번째 부의 지도(수제화 명문 가의 꿈)를 완성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고 귀부인처럼 생활한다. 한편, 릴라의 변심과 불안정한 상태를 곁에서 지켜보며. 물질적인 '부' 보다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부'가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굳게 다짐하며 공부에 힘을 쏟는 엘레나는 릴라의 화려함을 구경하면서 잠시동안 아래와 같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429. 그녀는 그 찬란한 세계에 스스로 갇혀 그곳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취했다. 그녀가 취한 가장 좋은 것은 그녀 옆에 있는 청년과 이 결혼과 이 예식 그리고 오빠와 아버지를 위한 신발 놀이였다. 이 모든 것은 면학도로서 내가 걸어온 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완전히 홀로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4.


이제 고작 1부가 끝났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첫째, 60대의 릴라를 담은 프롤로그에서 그녀의 선택을 후회하는듯한 발언(17.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을 엘레나에게 했기 때문이며,

둘째, 소설 속의 엘레나와 소설을 쓴 엘레나의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면 엘리나의 선택이 옳고, 릴라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셋쩨, 소설의 흐름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닮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부의 끝에 다음과 같은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릴라의 순수한 꿈과 관련이 있다. 마르첼로가 그녀가 만든 신발을 신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선택한 '부'에 균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442.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2부가 출간 된 상태였다면 이어서 곧바로 읽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출간될 때까지 조금은 기다려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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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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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진은 왜 살인마가 되어야 했나?


작가의 말.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의 첫 문단을 보면 정유정 작가는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라는 데이비드 버스라는 진화심리학자의 주장을 소개한다. 이 주장은 <종의 기원>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모든 유전자의 작동 원인은 그것이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그 행위가 각 개체의 유전자 보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과도 맞물리는 이 주제는 누군가에 의하여 생존을 위협받던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각성시켜 살인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한유진이라는 사이코패스의 첫 살인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악마가 깨어난 다음부터는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왜냐하면, 한유진이 살기 위해서는 한유진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아는 - 정체를 안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한다는 뜻이므로- 주변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본능이 시키는대로 한유진은 살인하는 것에 매우 충실하게 반응했다. <종의 기원>은 유진이 저지르는 몇 건의 살인 기록과 살인 전과 후의 심리변화와 한유진의 주변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29. 책상 너머 테라스 유리문 안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염소 뿔처럼 곤두선 머리칼, 껍질이 홀랑 벗겨진 것처럼 시뻘건 얼굴, 흰자위만 불안하게 번득거리는 눈. 시각적 충격으로 정신이 다 아뜩해왔다. 저 시뻘건 짐승이 나라고...?


81. 수천 개의 감각들이 느릿느릿 나를 통과해갔다. 머리를 얼리는 한기, 내장을 뒤틀며 맹렬하게 번지는 불의 열기, 신경절 마디마디에서 폭발하는 발화의 전율, 규칙적으로 뛰는 내 심장 소리. 왼쪽에서 출발한 칼날은 삽시에 오른쪽 귀밑에 이르렀다. 벌어진 턱 밑에선 뜨거운 피가 왈칵왈칵 솟구치며 내 얼굴과 계단참 벽과 바닥을 뒤덮어버렸다. 나는 눈을 감고 어머니의 머리채와 손을 집어던지듯 밀쳐냈다. 어머니는 쿵,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몸이 계단을 타고 미끄러지는 소리가 텅,텅,텅 울렸다. 이어 고요해졌다.


한유진이라는 껍데기 속의 들어있는 악마 (= 유전자). 인류라는 전체의 개념이 아닌 한유진 속의 악마라는 단일 개체로 봤을 때, 자신의 생존은 악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정석주를 뛰어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붉은 소파>의 청년. 완벽한 냄새를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향수>의 그르누이의 목적과 비교했을 때, 가장 순수하고, 또 가장 잔인한 목적이었다.


삶의 의지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비극. 한유진의 "나는 왜 살인 기계가 되어야 했나?"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일기장. 이 두 텍스트의 얽힘은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는 <종의 기원>의 가장 일반적인 읽기방식이다.


2. 어머니의 일기장


259. 유진은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였다. 먹이사슬로 치자면 포식자.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300. 포식자는 보통 사람과 세상을 읽는 법이 다르다고, 혜원이 말했다. 두려움도 없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고, 남과 공감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남의 감정은 귀신처럼 읽고 이용하는 종족이라고 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했다.


유진이 유치원을 다닐 때 그린 잔인한 그림으로부터 이모가 유진의 공격성을 읽은 것(255. 유진 또래의 남자애들에게는 모든 여자가 다 엄마의 화신이고, 아이가 엄마 목을 잘라서 우산대에 꽂았을 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예기치 않은 사고로 형과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고 난 이후에 유진은 이모인 혜원에 의하여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로 분류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으로 말미암아 유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을 복용한다. 어머니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감시하고 그의 일과를 통제한다. 그가 좋아하던 수영선수라는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인 유진 대신에 애정을 쏟을 존재로 해진을 그들의 가족으로 새롭게 받아들인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을 사이코패스로 만들어버린 진단 하나로 인하여 유진의 자유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결정해버린다. 그리고 훗날. 진단 결과로 상상했던 모든 우려스러운 일들이 모조리 현실이 되어 이들 앞에 나타났다.  


300. 혜원은 '그날 일'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고 했다. 유진이가 포식자로서 처음으로 '해치운 짓'이었다. 놔두면 언제든 반복될 행위라고 했다.


'그날 일'은 정말 유진이가 사이코패스라서 포식자의 본능이 나타난 것 때문일까? 나는 지원-혜원 자매를 외탁한 유민-유진 형제 사이의 강한 경쟁심때문에 우발적으로 '그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다. 형제 간의 서바이벌은 단순히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수준의 놀이였. 이 위험에도 아랑곳않고 서바이벌을 즐기는 형제의 강한 승부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찾은 어머니의 일기 중 일부 내용은 이 위험한 장난을 일으킨 강한 경쟁심의 우발성이 형제에게서만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와 이모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255. 돌이켜보면, 우린 어린 시절부터 자매라기보다는 경쟁자에 가까웠다. 연년생인 탓에 옷도 함께 입어야 하고, 책도 함께 봐야 했다. 혜원은 전교 1등을 도맡아놓고 하면서도 내가 글짓기대회에 나가 상 하나 타오는 걸 견디지 못했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밥 먹듯 들으면서 가끔씩 내 몫으로 오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참아내지 못했다. 내가 아끼는 세계문학전집에 제 이름을 큼직하게 써넣기도 하고, 내가 받은 상장에 중간 이름만 바꿔 제 상장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내 독후감을 훔쳐다가 제가 쓴 것처럼 제출해버리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된 후에도 우리 사이에는 늘 껄끄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데면데면한 것과는 다른, 기싸움에 가까운 대립이었다. 남편이 가끔 '처제가 나를 우습게 본다'라고 불평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자. 혜원은 어떠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울 수 없는 이모가 자상한 남편과 어려움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언니의 가정을 우발적으로 질투해서 조카를 사이코패스라고 진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언니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망쳤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혜원이 갖지 못한 것을 언니도 갖지 못하게 한 것이기에 255페이지의 혜원의 성격으로서는 가능한 행동일 수 있겠다. 상상해보았다.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두번째 명제에 따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유진에게 부여된 악의 근원이 사이코패스라는 선천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와 친척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악으로부터 유전적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종의 기원>은 조종하는 Vs 억압된 악 이라는 새로운 대결 구도로도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 383.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아나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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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8-24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단예님이 한 추측이 반전이라는..이 책은 너무 반전이 없어서-

단예 2016-08-24 07:38   좋아요 0 | URL
반전은 없지용. 그래서 하나 짜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