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1. 우정. 경쟁. 그리고 영혼의 성장


25. 그날 저녁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층계를 난간을 따라 한 계단 한계단씩 올라가기로 결정한 그 순간 릴라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일인칭 전지적 시점의 화자인 '엘레나 그레코 = 나' 와 릴라라고 불리는 라파엘라 체룰로 간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우정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두 소녀를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냄으로써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 한가지를 만들어낸다.

'나'가 관찰하는 인물인 릴라. 실질적인 주인공인 릴라는 선천적으로 영리한 아이었다. 영리한 만큼 이기적이고, 굉장히 자존심도 세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자주 일으킨다. 그와는 반대로 화자인 '나' 엘레나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인물의 개성과 인물간의 미묘한 관계를 잘 읽어내는 소녀로서,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의 호감을 사는데 능하고 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참을성이 강한 온화하면서도 다소 내성적인 성향의 소녀였다. 

4부작 소설의 제 1부인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의미하는 인물은 릴라다. 엘레나 페란테 작가는 릴라의 타고난 능력으로 엘레나를 이끌어주었던 일화들로 그녀의 유년기를 추억한다. 엘레나와 릴라는 이러한 성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없이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단짝 친구로 지낸다. 엘레나로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놀라운 릴라의 언어감각과 학습능력에 열등감을 느낄 때도 제법 많았지만. 그녀를 시샘하지 않고, 오히려 릴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운다. 릴라도 엘레나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항상 똑똑하고 멋진 친구로 남고 싶어서 엘레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다. 그렇게 사람 모두 성장한다.


29.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릴라와 나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2. 다른 방식의 '부'


나폴리 4부작의 제 1부 <나의 눈부신 친구>의 두 소녀는 서로 다른 방식의 삶선택하게 된다. 엘레나는 릴라와 자주 의견을 나누었던대로 '정신적인 '부'를 선택한다. 반면에, 릴라는 '물질적인 부'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날 밤 벌인 폭죽놀이 사건에서 '경계의 해체'라는 경험(114p)을 했기 때문이다. 그 날 그녀는 '부'에 의해서 난폭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다. '부'에 지배되어버린 오빠의 광기는 그 날 그녀가 본 가장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날 밤의 심리묘사.


114. 날씨가 아주 추웠는데도 갑자기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너무나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너무나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구역질이 나면서 그녀를 비롯한 모든 이를 감싸고 있던, 언제나 존재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인지하지 못 했던 철저히 물질적인 그 무엇인가가 사람과 사물의 테두리를 잘게 부수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릴라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폭발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연기가 자욱한 테라스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외침에서 나는 울림은 알 수 없는 세계의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구역질이 더 심해졌고 사투리가 뒤섞인 사람들의 말투가 어색하게 들렸다.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축축한 입에서 분비되는 타액으로 젖어드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릴라는 혐오감과 함께 자신도 그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음( '불품없는 존재들이구나')을 깨닫게 되면서, 항복을 선언하듯 자의반 타의반 물질적인 '부'를 선택한다.


릴라의 마지막 선택.

330. 부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변했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둘도 없는 신발 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 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햄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라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재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릴라는 그날밤을 시작으로 '부'를 얻기 위한 욕심 때문에 평점심과 의지력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번 목격하고, 무너짐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악'의 얼굴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의 속성을 깨달은 그녀는 '부'의 노예가 될 바에야 차라리 '부'를 다스려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릴적 두려워했던 돈 아킬레의 '부'(25p)를 부의 본모습으로 인정하고,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내면의 논리적인 정당화 과정을 거쳐 '부'를 선택한 결과. 릴라의 가문은 구두수선으로 푼돈을 버는 흙수저 가문이었지만, 부유한 스테파노과의 결혼을 결심함으로써 마침내 신분의 상승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421. 그 허영에 찬 모습이란! (...) 이들은 모두 귀족처럼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아니 모두가 알다시피,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야 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 허례허식을 차리는 데 쓴 돈은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릴라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 악마와 손을 잡아 '부'를 검어쥔 릴라는 자신이 타락했음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릴라는 416.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엘라나에게 전한다. 이 소설에서 '눈부신 친구'는 원래 릴라였지만, 이제 릴라는 자신의 내면을 키워가는 엘레나를 향하여 릴라의 '눈부신 친구'로. 뛰어난 사람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3.


난 너와 같은 무리를 한 번도 미워해본 적이 없노라.

부정을 일삼는 모든 정령 중에서도 / 너 같은 익살꾼은 내게 조금도 짐스럽지 않구나.

인간의 활동이란 쉽사리 느슨해지고 / 언제나 휴식하기를 좋아하니 내 기꺼이 그를 자극하여 /

악마의 역할을 해낼 동반자를 그에게 붙여주겠노라.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부자와 결혼하는 릴라를 보면서 왜 악마와 손을 잡았다고 비난할까?

그것은 이들이 일군 부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

197. 솔라리네 주점은 과거부터 고리대금을 하는 마피아 집단과 밀수꾼들의 소굴이었고 왕정복고주의자들의 자금모집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 돈 아킬레가 나치와 파시스트들의 스파이 노릇을 했고 스테파노는 그 애비가 검은색 가방에 모은 돈으로 식료품점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199. 저들의 돈은 다른 사람들의 굶주림 덕분에 생긴 거고 이 자동차는 대리석 가루가 섞인 빵과 암시장에서 썩은 고기를 팔아서 마련한 거래. 저 정육점은 화물기차를 털어서 훔친 구리로 마련한 거고 저 주점은 마피아와 밀수꾼과 고리대금업자의 소굴이야.

200. 어두운 죄악으로 골수까지 오염된 이들은 모두 그녀의 눈에 냉혹한 범죄자나 아니면 고작 빵 부스러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협조한 공범자들로 비춰졌다.


릴라는 이러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성의 제한적인 권리와 가부장제의 관습 때문에 사랑하지도. 아니 증오했던 솔라리 가문의 마르첼로와 결혼하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저질러 질 일이라면. 차악을 택하자 싶은 마음(1부에서는 스테파노에게 마음이 있었다)에 그녀는 스테파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정당하지 못한 힘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릴라가 꿈꾸었던 번째 부의 지도(수제화 명문 가의 꿈)를 완성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고 귀부인처럼 생활한다. 한편, 릴라의 변심과 불안정한 상태를 곁에서 지켜보며. 물질적인 '부' 보다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부'가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굳게 다짐하며 공부에 힘을 쏟는 엘레나는 릴라의 화려함을 구경하면서 잠시동안 아래와 같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429. 그녀는 그 찬란한 세계에 스스로 갇혀 그곳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취했다. 그녀가 취한 가장 좋은 것은 그녀 옆에 있는 청년과 이 결혼과 이 예식 그리고 오빠와 아버지를 위한 신발 놀이였다. 이 모든 것은 면학도로서 내가 걸어온 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완전히 홀로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4.


이제 고작 1부가 끝났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첫째, 60대의 릴라를 담은 프롤로그에서 그녀의 선택을 후회하는듯한 발언(17.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을 엘레나에게 했기 때문이며,

둘째, 소설 속의 엘레나와 소설을 쓴 엘레나의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면 엘리나의 선택이 옳고, 릴라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셋쩨, 소설의 흐름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닮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부의 끝에 다음과 같은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릴라의 순수한 꿈과 관련이 있다. 마르첼로가 그녀가 만든 신발을 신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선택한 '부'에 균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442.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2부가 출간 된 상태였다면 이어서 곧바로 읽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출간될 때까지 조금은 기다려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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