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인간에게서 신은 떠나간지 오래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인간. 의지할 곳 없는 인간. 인간을 대표하는 작중화자는 흰 것이라는 결벽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 그녀는 흰 것의 속성에서 신을 발견하고, 신의 절대성을 흰 것에 투영한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흰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순수한 것은 완전하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흰 것에 발자국을 찍는 일이다.


2.


한강의 소설 <흰>은 수상과 단상. 그리고 질서라는 방식에 의존한 소품형태의 소설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에 더 가깝다.


같이 읽고 있는 <글쓰기 동서대전>에 따르면, '수상'이란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을 의미하고, '단상'은 문득 스쳐가는 단편적인 생각을 뜻하며. '질서'란 떠오르는 생각이나 스쳐 지나가는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써 내려가는 글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소품'은 글의 길이나 분량에 구속받지 않고, 장르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소재나 주제에 상관없이 느낌이 있는 대로 혹은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가는 산문의 일종이다.


이 책에는 마음을 적시는 구절이 한가득이라 어떤 부분을 인용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서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이 문장을 가장 먼저 옮겨오고 싶어서 기록해본다. 당신에게 흰 것을 주고 싶다는 바람은 완벽함을, 부활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단순한 의미의 소망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소망.


40.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3. 어둠이 있기에 더욱 빛날 수 있는


118.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종종 캄캄하고 깊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찾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흰>은 명백하게 흰 것들을 말하고자 한다. 표제로 삼은 단어들은 모두 흰 것의 특성을 지닌 단어들이며, 표제 속의 문장에서 그들의 흰 성질은 아름답고, 강렬하고,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흰 것은 작중 화자의 기억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냐면. 검은 것들과 공존하고 있는 이미지 속의 흰 것으로 존재한다. 흰과 검의 대비 속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흰. 그렇게 작중화자의 흰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진다. 본문 중간중간에 배치된 차미혜 작가의 사진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34.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69. 달이 유난히 커다랗게 떠오른 밤, 커튼으로 창들을 가리지 않으면 아파트 구석구석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그녀는 서성거린다. 생각에 잠긴 거대한 흰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빛, 거대한 캄캄한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어둠 속을.


126.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4. 소멸되어가는 흰 것.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다.


오로지 작중화자의 수상과 단상으로 부터 기록된 문장이라서 이 책의 서사가 완벽한 형태로 구축되어 있진 않다. 그렇지만 35페이지 '빛이 있는 쪽'에서 <흰>에 숨겨진 서사의 도화선을 읽을 수 있다. "이 도시의 유태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실화"를 따라감으로써 작중화자는 자기가 태어나기 몇 전에 조산으로 사망한. 그녀가 삶으로 빛나기 전에 죽음으로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언니와 오빠의 기억을 꺼내온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낀다.


117.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언니라는 존재. 작중화자의 언니는 위에서 언급한 유태인 남자처럼 작중화자의 삶 속에 존재함으로써 화자 대신에 어둠으로부터 흰 세상을 바라보는 상반된 장면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살아있는 내가 아닌 이미 죽어서 떠도는 그녀의 의식이 바라보는 흰 것은 위의 사진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흰 것이 아니다. 소멸되어가는 찰나의 흰 것. 언젠가는 사라질 흰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흰 것의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했다.


58.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 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감나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59. 삶은 누구에게고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5. 질문들


63.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67. 어느날 그녀는 굵은 소금 한 줌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희끗한 그늘이 진 굴곡진 입자들이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71. 레이스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렵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74. 왜 흰 새가 다른 색의 새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왜 특별히 아름답게, 기품 있게, 때로 거의 신성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81. 그때 왜 우리는 하필 백목련을 골랐을까. 흰 꽃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죽음과? 인도유럽어에서 텅 빔과 흰 빛, 검은과 불꽃이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그녀는 읽었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 그것이 삼월에 짧게 꽃피는 백목련 두 그루인 걸까?


81페이지의 문장이 위의 궁금증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그리고 소설 <흰>의 흰 것과 어두운 것들을 설명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흰 빛은 텅 비어있고, 검은 것은 불꽃과 닮았다고 한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이라고 했다. 사실 좀 어렵고, 긴가민가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작가는 흰 것이 내포하는 상반된 의미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흰 것은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완벽하게 순수한 공간일수도. 이미 소멸되어 사라져버린 텅 빈 공간이기도 하다. 앞의 흰 것은 삶을 의미하고, 뒤의 흰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작중화자는 앞의 흰 것으로 삶의 속성을 보며. 작중화자의 언니는 뒤의 흰 것으로 죽음의 속성을 본다. 앞에서 몇 번 이야기했던 박경리 선생님의 삶의 문학, 죽음의 문학 이것을 한꺼번에 포용하여 <흰>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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