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황금광 시대
표명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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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항에서의 기다림그리고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들을 물리적으로 연관지어 단단하게 내보였던 초반부의 신선한 비유들은 소설의 끝 무렵,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다고도 할 수 있는 도박판 내의 치열한 대결을 바라보는 데 집중한 나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마치 태풍이 지나가면서 약해져가는 그 모습처럼….

 

초반에 꾸준히 언급되었던 존재에 관한 생각들. 채무에 저당 잡힌 인생정현이라는 이름으로 더는 대한민국에 남아있을 수 없게 되어버린그 부채감과 함께 사라져버린 남성의 존재그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낯선 무엇마지막으로 떠나온 마닐라에서도 여전히 정현이 살아왔던 것과 똑같은 위기가 찾아오고 그때마다 익숙한 것을 선택한다.

 

2.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그런데 기회라는 것은 선택의 그 시점에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이라고 생각한다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결정적인 그때를 돌이켜보는 어떤 미래의 시점에서 우리는 그때 그 선택이 제겐 기회였습니다.” 혹은 그때 그 기회를 잡았어야 했습니다.” 정도로 반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회라는 녀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현의 선택은 정현 자신에게 기회로 갈 수 있는 가장 친숙한 선택이었다조금만 더 조금만 더마치 도박에서 본전을 생각나게 하는 유혹처럼정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만 더이번에는 다를 거야."를 외쳤던 것 같다그렇지만 정현의 인생에서 결과는 안타까움으로 반복된다.

 

이것이 단지 정현이 가진 운의 문제일까아니면 다른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3.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을 정도로 도박판에 들어서면 엄청난 집중력과 평정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자타공인 프로겜블러 미스터 손손흥수라는 인물과 정현을 비교해보니정현의 심리 서술에 유난히도 자주 부착되어있던 부채감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아마도 정현은 선택의 기로에서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진정 자신이 택해야 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에 의한어머니에 의한그리고 K에 의한…. 정현의 선택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손흥수가 정현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깨뜨려버린 100만 달러의 승부를 지켜보자. 500만 달러까지 땄다가 한판 승부에 올인하여 패배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어떤 누구에게도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그는 초연하다.그저 500만 달러를 잃었을 뿐. 500만 달러를 따는 건 목표가 아니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이 말에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면 정현이 지금껏 존재가 사라져버렸다고 느낀 그 감정들은 무엇인가를 따기 위해 살았기 때문에 찾아온 허무함이 아니었을까미스터 손의 말처럼 따는 것에 연연하여 인생을 살지 않는다면 어떤 기회와 선택과 그 책임에서 부채감을 느낄 필요 없이 초연할 수 있지 않을까?

 

4. <황금광 시대>라는 제목처럼 더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오래전에 버려져 폐쇄된 강원도 탄광촌에 세워진 강원랜드처럼 21세기형 노다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국가의 정책이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현실화된 시점에서우리는 어떤 눈으로 도박을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정현이 마련한 방식들술을 자제하고하이 배팅을 하지 않으며각국 카지노를 여행하듯이 놀이문화로 즐기는 방식으로서 카지노를 바라보는 것빠지는 것 차체를 예방하는 것보다는 아예 도박에 들어가는 돈은 따기 위한 돈이 아님눈먼 돈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도박중독을 막는 나은 더 방법이 아닐까?

 

5. 결론은 기회를 택하고 난 후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부채감에 사로잡힐 수도, 그 반대로 철면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황금광시대>는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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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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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쟁의 슬픔>에는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슬픔이라는 추상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혹했던 끼엔의 불규칙하면서도 선명한 기억 기억을 담기 위한 집념의 저술은 종이 안의 아무렇게나 써내려간 삐뚤빼뚤한 글씨처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글씨가 남긴 잉크 자국은 굵게 남아있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펜을 들기만하면 끼엔의 머리에서부터 손가락 끝에 연결된 펜대로 전쟁터에서의 아픈 기억들이 저절로 전달되었고 그래서 그는 써내려갔다홀로 남겨진 끼엔의 기억 안에서만 숨을 쉬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끼엔은 한 방울이라도 놓칠세라 미친 듯이 써내려갔다.

 

이러한 장면들이 베트남 전쟁의 참전 용사였던 저자 바오 닌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왔음을 이해하면서부터 이 서사가 보여주는 잔혹한 묘사들은 훨씬 더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2. 그래서 이 책을 마주한 나는 혼란스러웠고소설 속에서 끼엔이 쓴 글 뭉치를 읽어나가는 소설 속의 ’ (액자소설 같은 형식. ‘가 쓴 글이 아니라 끼엔이라는 작가가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다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고남아있는 사람들이 그의 글을 묶어낸 형식또한 혼란스러웠을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움(불규칙하지만 선명한 흔적이 남긴 전쟁의 묘사)이 바로<전쟁의 슬픔>이 전쟁을 소개하는 방식이다전쟁 그 이후세상에 스며들지 못하고 겉으로 표류하는 존재들의 슬픔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3. <전쟁의 슬픔>의 8장으로 구성된 복잡한 실타래 가운데 7장까지 읽어야만 조각난 퍼즐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끼엔이 느꼈을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그 감정은 분노였고아픔이었다그리고 마침내 슬픔이 되었다. 슬픔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에게 닥쳐온 바로 내일의 현실이 전쟁이었고 이 녀석은 처음부터 끼엔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낳은 자그마한 위력은 프엉에게 너무나 쉽게 접근해서 그녀를 망가뜨렸던 것이다그것을 바라만 봐야했던 끼엔은 끼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분노했었고아파했지만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오 닌은 이런 슬픔들을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이미 프엉에게 덕지덕지 붙어버린 간접적인 은유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더는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겨버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오해가 더해져 그들 사이를 더욱 안타깝게 바라보게 한다이처럼 전쟁이라는 놈은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했을 소중한 추억을 비극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4. 266. 정의가 승리했고인간애가 승리했다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손실된 것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상처는 아물고고통은 누그러든다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전 세계의 역사 속에는 무수한 전쟁 영웅이 있다그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다수다종전 후그들이 이뤄낸 업적만을 기린다하지만 <전쟁의 슬픔>의 시각은 이들이 바라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전쟁의 슬픔>에서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희생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동료를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밝은 영역으로 끌어낸다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은 곳으로 끌어낸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성질이다. 이것 한번 보라시고전쟁은 바로 슬픔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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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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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리 소설은 대개 강력범죄를 다룬다범죄그 내면에는 타인의 존재를 계획적으로 지우기 위한 어두운 동기로 가득 차있다마쓰모토 세이초의 <잠복>에 포함된 단편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존재를 지워내려는 인물의 속내를 들춰내는 모양새를 지녔다.

 

그들 대부분은 <괴담>에서 지연과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야망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자를 제거하면 풀리지 않았던 복잡한 매듭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하지만 단편집 <잠복>과 <괴담>의 차이점은 악을 행한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외부의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 것이다.

 

<변신이야기>를 보면, 도덕적으로 불순한 죄를 저지른 자가 인간의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동물의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장면이 꾸준히 드러난다. (그러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므로) 고대 사회는 이러한 섬뜩한 경고를 통해서 재발 방지에 노력을 기울였고, 미력하나마 사회를 바로 잡으려 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잠복>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당신이 저지른 범죄는 당신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불거져서 결국에는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은 <변신이야기>와 같은. 경고의 방식이고, 그만큼 사회가 혼탁하다는 증거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아무래도 <변신이야기>가 미신이라면, <잠복>은 사실인 정도? (과거에는 미제 사건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가끔 방송에 출연하는 경찰의 말로는 요즘에는 검거율이 100%에 가깝다고 하니 믿어보자.) 

 

2. 단편집 작품 중에서는 <잠복>이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다른 사례에 속한다. 잠복 경찰의 시선기이한 장면을 몰래 감시하며 느끼는 관음적인 쾌감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녀의 단 하나뿐인 해방 통로를 틀어막는 것은 아닌지 고뇌하며한편으론 그 관계를 안타까워하는 타자의 시선이 그려진다다른 단편과는 달리 아주 특이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얼굴>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책을 내려놓고 난 후에도 <얼굴>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일기 형식의 서술에 스며든 내면의 고백. 피의자와 피해자, 서로 다른 두 관점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사건, 그리고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 앉아 있음에도 니힐리스트라고 수차례 칭송받았던 그 남자의 얼굴이 타인의 기억 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는 묘한 반전이 불러일으키는 허무함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깨우침의 순간은 섬광 같았고 몹시도 놀라웠다.

 

한편,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고 생각한다고대 형법 책에 실려 있던 단어. 비록 이 낱말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인간이기에 <카르네아데스의 널>의 일화는 모습을 달리하여 꾸준히 반복되었고, 이러한 딜레마를 현대적인 사례로서 재구성해놓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금권에 초연해야 할 학문의 영역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린.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고 방관한 시대의 지식인을 비꼬는 세이초의 날카로운 시선이 아주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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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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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문화는 스파이더맨, 배트맨, 슈퍼맨과 같은 미국의 영웅주의와 다르게스페셜리스트를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렇다모든 부분에서 특별하지 않아서오히려 볼품이 없음에 가까운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 단 한 부분을 특화시켜서 성과를 얻어내는 그런 이야기들을 여러 번 접한다.

 

그런 의미에서 절박함으로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지만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다케타니 료지가 던진 <최후의 일구>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한 인간의 포기하지 않았던 일생그 값진 노력으로 얻어낸 스페셜이었고자신을 이류라 칭했던 스페셜리스트의 일구에 담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주는 놀라운 카타르시스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그 순간이 바로티핑포인트였다.

 

2. 그야말로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의 고백록이었다. 만약, 다케타니가 앞서 읽은 <괴담>의 이들처럼 나약함을 겉으로 풍겨내면서 열등감과 시기심을 폭발시켰다면 다케타니는 다케치의 손을 잡아 이끌고 뒷문 으슥한 곳에 자리한 연못에 가서 사진을 찍자고 했을 것이다자신이 남아있기만을 간절하게 원하면서…….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자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재능을 가진 동료를 인정했다그리고 나를 위해 내가 가야 할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 질투와 시기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괴담>과는 사뭇 다른 길을 선택한 용기있는 생각과 행동은 말은 쉽지만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큰 인물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그렇게 그는 자신의 위치에 위축되지 않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3.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대부업이 문제우리나라에도 이미 일본계 대부업체가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어린아이들이 이들의 로고송을 흥얼거려 도마에 오르기도 했었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 산와머니가 6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산와머니 말고도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볼 때마다 등장하는 대출광고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요즘은 중국에 진출했다면서 생뚱맞게 한국에서 무이자 행사를 한다고 떠들어대던데 참 어이없는 논리다중국에 진출했으면 중국 대출금리 행사나 할 것이지 대체 왜???

 

일본도 프로야구 중계에 대부광고가 판을 치는지 모르겠으나 프로야구와 대출광고 그리고 승부조작은 최근 대한민국 스포츠계를 강타한 큰 사건의 축을 이루고 있다그리고 이것을 담아낸 <최후의 일구>는 지금 한국의 상황에 잘 어울리는 야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4. <최후의 일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처럼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시리즈로 구성된 책 중의 한 권이다가가형사와 미타라이를 비교해야 함에 마땅하나 <최후의 일구>만 가지고는 미타라이의 인물 됨됨이를 알아낼 만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도 느낀 점은 있다.

 

가가형사처럼 미타라이도 선한 사람이고똑똑한 사람이라는 정도다만 가가형사는 행동과 분위기에서부터 선함을 겉으로 풍겨내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고미타라이는 좀 더 내성적인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처럼 비밀스럽다고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부족한 결론이나 가가형사가 감성적인 인물이라면 미타라이는 이성적인 인물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이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소 회의론적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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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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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부터 시각적 대비를 목적으로 쓴 문장들이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차갑고 순결한 바람순교자와 광신도언덕절벽 그리고 내리막이러한 고의적인 대비를 통해 소설의 분위기는 오싹해지고 이야기 속 밝은 풍경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를 기억하게끔 유도한다.

 

효과를 유도하려는 의도는 좋은데 사용 빈도가 약간 과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이야기의 초반부에 이러한 대비를 남발했던 나머지 내 눈과 생각이 미치는 곳은 대비의 농도 차를 가늠해보는 영역에 한정되었던 것 같다다른 말로 이야기에 몰입도가 떨어졌다는 소리다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 대비는 낯섦의 영역에서 익숙함의 영역으로 이동했기에 더 이상의 불만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2. <괴담>이 브라운관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재료로 가져왔다고 해석해도 될는지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범람하는오디션 프로그램과 주목받는 스포츠 스타그리고 아이돌이 연상되었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출연하는 아이돌의 친구나 친인척들의 도전기와 그 속에 내포된 부러움 섞인 열망그리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 우승자의 언니가 충분히 느꼈을 법한 열등감이 연상되었다.<괴담>은 그러한 열등감을 풀어놓는다소설 전체에 흐르는 빛과 그림자처럼 우열의 법칙이 이 공간에 짙게 형성된다.

 

이걸 살리에르 증후군으로 불러도 좋고세콘나 돈나서브 남주로 표현해도 좋다타의로 설정해놓은 환경 속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되기를 열망하는 자들의 반란이라고 할까이 반란은 일인자가 되기만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부추기고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시스템 때문에 생겨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기억에서 그 존재를 아예 지워버리는 <괴담>의 방식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잔인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괴이한 이야기'<괴담>과 동음이의어인 '괴이한 연못'<괴담>은 내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상대에게 불온한 일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과거 나치 독일과 마오쩌둥의 중국에서는 이웃 간에 갈등이 생기면 유대인이라고체제에 반하는 자라며 비밀리에 고발했던 것처럼…….

 

3. <괴담>이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의 대립으로 반복시키는 일대일의 대립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사람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듯해서 껄끄럽게 느껴졌다.

 

인간의 탐욕과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을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방식은 헤르만 코흐의 <디너>에서 접했던 부분이지만, <괴담>이 흥미로웠던 것은<괴담>에는 선이라고 불릴 존재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이 소설은 열등감과 열등감의 충돌이기심과 이기심의 충돌만이 존재했다.

 

서인주를 기억에서 들춰내 생각해봤을 때도 그녀가 먼저 지연을 불러냈다는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인주를 선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차마 악을 실행하지 못했던 존재 정도로 불러야 할까……그나마 양심을 지킨……. 그것을 선으로까지 포장하는 것에는 반대다.

 

4.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즉, 형제자매친구 간의 갈등이 점점 커져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을 형성하는 결말은 인정하긴 싫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던 결말인 것 같다자연계의 여러 원소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그것을 혼자 소유하려들지 않는 것처럼그들이 만든 탐욕의 트라이앵글은 자연계의 공유결합과 같은 효과로 바라볼 여지를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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