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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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쟁의 슬픔>에는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슬픔이라는 추상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혹했던 끼엔의 불규칙하면서도 선명한 기억 기억을 담기 위한 집념의 저술은 종이 안의 아무렇게나 써내려간 삐뚤빼뚤한 글씨처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글씨가 남긴 잉크 자국은 굵게 남아있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펜을 들기만하면 끼엔의 머리에서부터 손가락 끝에 연결된 펜대로 전쟁터에서의 아픈 기억들이 저절로 전달되었고 그래서 그는 써내려갔다홀로 남겨진 끼엔의 기억 안에서만 숨을 쉬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끼엔은 한 방울이라도 놓칠세라 미친 듯이 써내려갔다.

 

이러한 장면들이 베트남 전쟁의 참전 용사였던 저자 바오 닌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왔음을 이해하면서부터 이 서사가 보여주는 잔혹한 묘사들은 훨씬 더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2. 그래서 이 책을 마주한 나는 혼란스러웠고소설 속에서 끼엔이 쓴 글 뭉치를 읽어나가는 소설 속의 ’ (액자소설 같은 형식. ‘가 쓴 글이 아니라 끼엔이라는 작가가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다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고남아있는 사람들이 그의 글을 묶어낸 형식또한 혼란스러웠을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움(불규칙하지만 선명한 흔적이 남긴 전쟁의 묘사)이 바로<전쟁의 슬픔>이 전쟁을 소개하는 방식이다전쟁 그 이후세상에 스며들지 못하고 겉으로 표류하는 존재들의 슬픔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3. <전쟁의 슬픔>의 8장으로 구성된 복잡한 실타래 가운데 7장까지 읽어야만 조각난 퍼즐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끼엔이 느꼈을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그 감정은 분노였고아픔이었다그리고 마침내 슬픔이 되었다. 슬픔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에게 닥쳐온 바로 내일의 현실이 전쟁이었고 이 녀석은 처음부터 끼엔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낳은 자그마한 위력은 프엉에게 너무나 쉽게 접근해서 그녀를 망가뜨렸던 것이다그것을 바라만 봐야했던 끼엔은 끼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분노했었고아파했지만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오 닌은 이런 슬픔들을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이미 프엉에게 덕지덕지 붙어버린 간접적인 은유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더는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겨버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오해가 더해져 그들 사이를 더욱 안타깝게 바라보게 한다이처럼 전쟁이라는 놈은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했을 소중한 추억을 비극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4. 266. 정의가 승리했고인간애가 승리했다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손실된 것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상처는 아물고고통은 누그러든다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전 세계의 역사 속에는 무수한 전쟁 영웅이 있다그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다수다종전 후그들이 이뤄낸 업적만을 기린다하지만 <전쟁의 슬픔>의 시각은 이들이 바라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전쟁의 슬픔>에서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희생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동료를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밝은 영역으로 끌어낸다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은 곳으로 끌어낸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성질이다. 이것 한번 보라시고전쟁은 바로 슬픔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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