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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1. 추리 소설은 대개 강력범죄를 다룬다. 범죄. 그 내면에는 타인의 존재를 계획적으로 지우기 위한 어두운 동기로 가득 차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잠복>에 포함된 단편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존재를 지워내려는 인물의 속내를 들춰내는 모양새를 지녔다.
그들 대부분은 <괴담>에서 지연과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야망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자를 제거하면 풀리지 않았던 복잡한 매듭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단편집 <잠복>과 <괴담>의 차이점은 악을 행한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외부의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 것이다.
<변신이야기>를 보면, 도덕적으로 불순한 죄를 저지른 자가 인간의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동물의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장면이 꾸준히 드러난다. (그러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므로) 고대 사회는 이러한 섬뜩한 경고를 통해서 재발 방지에 노력을 기울였고, 미력하나마 사회를 바로 잡으려 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잠복>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당신이 저지른 범죄는 당신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불거져서 결국에는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은 <변신이야기>와 같은. 경고의 방식이고, 그만큼 사회가 혼탁하다는 증거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아무래도 <변신이야기>가 미신이라면, <잠복>은 사실인 정도? (과거에는 미제 사건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가끔 방송에 출연하는 경찰의 말로는 요즘에는 검거율이 100%에 가깝다고 하니 믿어보자.)
2. 단편집 작품 중에서는 <잠복>이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다른 사례에 속한다. 잠복 경찰의 시선. 기이한 장면을 몰래 감시하며 느끼는 관음적인 쾌감.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녀의 단 하나뿐인 해방 통로를 틀어막는 것은 아닌지 고뇌하며. 한편으론 그 관계를 안타까워하는 타자의 시선이 그려진다. 다른 단편과는 달리 아주 특이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얼굴>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책을 내려놓고 난 후에도 <얼굴>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일기 형식의 서술에 스며든 내면의 고백. 피의자와 피해자, 서로 다른 두 관점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사건, 그리고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 앉아 있음에도 니힐리스트라고 수차례 칭송받았던 그 남자의 얼굴이 타인의 기억 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는 묘한 반전이 불러일으키는 허무함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깨우침의 순간은 섬광 같았고 몹시도 놀라웠다.
한편,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고 생각한다. 고대 형법 책에 실려 있던 단어. 비록 이 낱말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인간이기에 <카르네아데스의 널>의 일화는 모습을 달리하여 꾸준히 반복되었고, 이러한 딜레마를 현대적인 사례로서 재구성해놓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금권에 초연해야 할 학문의 영역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린.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고 방관한 시대의 지식인을 비꼬는 세이초의 날카로운 시선이 아주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