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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ㅣ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1. 시작부터 시각적 대비를 목적으로 쓴 문장들이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차갑고 순결한 바람. 순교자와 광신도. 언덕, 절벽 그리고 내리막. 이러한 고의적인 대비를 통해 소설의 분위기는 오싹해지고 이야기 속 밝은 풍경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를 기억하게끔 유도한다.
효과를 유도하려는 의도는 좋은데 사용 빈도가 약간 과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야기의 초반부에 이러한 대비를 남발했던 나머지 내 눈과 생각이 미치는 곳은 대비의 농도 차를 가늠해보는 영역에 한정되었던 것 같다. 다른 말로 이야기에 몰입도가 떨어졌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 대비는 낯섦의 영역에서 익숙함의 영역으로 이동했기에 더 이상의 불만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2. <괴담>이 브라운관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재료로 가져왔다고 해석해도 될는지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범람하는오디션 프로그램과 주목받는 스포츠 스타. 그리고 아이돌이 연상되었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출연하는 아이돌의 친구나 친인척들의 도전기와 그 속에 내포된 부러움 섞인 열망.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 우승자의 언니가 충분히 느꼈을 법한 열등감이 연상되었다.<괴담>은 그러한 열등감을 풀어놓는다. 소설 전체에 흐르는 빛과 그림자처럼 우열의 법칙이 이 공간에 짙게 형성된다.
이걸 살리에르 증후군으로 불러도 좋고, 세콘나 돈나. 서브 남주로 표현해도 좋다. 타의로 설정해놓은 환경 속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되기를 열망하는 자들의 반란이라고 할까? 이 반란은 일인자가 되기만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부추기고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시스템 때문에 생겨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기억에서 그 존재를 아예 지워버리는 <괴담>의 방식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잔인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괴이한 이야기'<괴담>과 동음이의어인 '괴이한 연못'<괴담>은 내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상대에게 불온한 일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과거 나치 독일과 마오쩌둥의 중국에서는 이웃 간에 갈등이 생기면 유대인이라고. 체제에 반하는 자라며 비밀리에 고발했던 것처럼…….
3. <괴담>이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의 대립으로 반복시키는 일대일의 대립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사람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듯해서 껄끄럽게 느껴졌다.
인간의 탐욕과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을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방식은 헤르만 코흐의 <디너>에서 접했던 부분이지만, <괴담>이 흥미로웠던 것은<괴담>에는 선이라고 불릴 존재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열등감과 열등감의 충돌. 이기심과 이기심의 충돌만이 존재했다.
서인주를 기억에서 들춰내 생각해봤을 때도 그녀가 먼저 지연을 불러냈다는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인주를 선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차마 악을 실행하지 못했던 존재 정도로 불러야 할까……. 그나마 양심을 지킨……. 그것을 선으로까지 포장하는 것에는 반대다.
4.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즉, 형제, 자매, 친구 간의 갈등이 점점 커져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을 형성하는 결말은 인정하긴 싫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던 결말인 것 같다. 자연계의 여러 원소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그것을 혼자 소유하려들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만든 탐욕의 트라이앵글은 자연계의 공유결합과 같은 효과로 바라볼 여지를 마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