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1. 성재는 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있나?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의는 체제비판자에게서 시작되어 많은 소설과 에세이로 우리에게 널리 퍼져있다. 이와 같은 시대 흐름에 발맞춘 김혜나의 <정크>는 제로섬의 낭떠러지에서 그를 밀어내려는 폭풍에 맞서는. 아니. 맞설 의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쓰레기"라는 자조적인 뜻을 가진 <정크>. 정크소설로 규정된 이 소설의 특징은 청년 실업이라는 문제에서 사회적 소수자이자 약자인 동성애자들의 문제로 확장되고 긴밀하게 결합하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소설이 가지는 파괴력(주인공이 겪어야 하는 내면의 고통)은 더욱 극대화된다. 잉여와 동성애자가 결합한 현실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서사력은 실재감을 부여하고, 현실의 장미 가시에 찔려서 고통받는 내면의 자의식은 소설화되어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문장으로 옮겨진다. 적절하게 균형이 잘 잡혀있는 소설이었다.

 

2. 소설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베르테르 효과'를 안겨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참 나쁜 소설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로테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베르테르가 끝내 목숨을 거두었고, 많은 청춘이 그에 동조하여 같이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정크>도 참 나쁜 소설이다.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많은 청춘에게 극도의 자괴감을 넌지시 건네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에 읽게 되어 또 한 번 나쁜 소설이다.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은 내면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한다. <정크>를 읽다 보면 성재의 극단적인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3. 하지만 이 소설이. 김혜나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베르테르 효과'가 아니라 카타르시스라고 여겨진다. 무한의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이 느껴지는 어둠을 빛보다 더 좋아했던 성재는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이 진행되면서 성재는 이대로는 죽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대로 목숨을 끊어버리면 성재의 삶. 현실에 대응해나갔던 모든 몸부림(그것이 성공한 자들의 저항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한 존재가 만들어낸 내면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나는 버려졌어. 그래 쓰레기야.라는 자괴감으로 목숨을 버리는 순간 그 사실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기정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이어가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자. 즉, 동성애자와 청년 알바생으로 점철된 부정적인 실존을 극복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개인적인 삶의 추구와 그것의 노력을 온전히 보상받고 싶은 의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낭떠러지에 놓인 인간 존재의 내면이었던 것이다.  

 

4. 누구보다 훨씬 깊이 고립되었고 소외되었던 한 남자가 정제한 그 생에의 의지를 온전히 건네받는 것이 <정크>를 읽는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맨 - 제2회 골든 엘러펀트 상 대상 수상작
이시카와 도모타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화가의 휘황한 불빛은 썩어가는 음식이고 그 빛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파리 떼다.

 

1. 시작부터 아주 파격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문장이다. 번역가 분께서 한국어 판 번역본은 1장과 2장의 차례를 바꿨다고 했는데, 왠지 이 문장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기승전결의 기 부분을 다루는 차례라서 바꿔도 별 무리없이 읽히기도 했었다.

 

이 강렬한 첫 문장에서 냉소와 염세주의를 상징하는 회색인종. 그레이맨이 왜 태어나야 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솔직히 말하면 에필로그까지 읽어야 온전하고 거대한 진실의 매듭이 풀리지만. 이 한 문장으로도 뒤에 이어질 잔혹한 서사를 유추할 수 있다.

 

2.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벌어질대로 벌어진 양극화 문제는 돈과 권력의 집중을 낳고, 집중된 곳의 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레이맨>은 그것을 경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레이맨>은 재분배를 외친다. 돈? 아니 권력의 재분배를 외친다. 

 

어린 여성의 목숨까지 돈으로 사고파는 세계, VIP 고객의 눈 밖에 나서 직장상사에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영업맨의 일상. 특출난 재주를 가진 친구를 시기하여 그 능력을 잃게 만들어만 직성이 풀리는 또래집단 등. 돈과 권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홀대당해야했던 많은 사람의 고통으로 가득한 곳. 그곳은 2013년 일본이자 대한민국이요. 전 세계적인 현실이다. 

 

3. 권력의 양극화 때문에 법이 법으로서 구실을 하지 못했던 지난했던 역사는 사실 알고 보면 법이 생겨난 이래로 쭉 계속되어온 현실이다. (먼 과거의 이야기를 설명할 적절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까운 과거 카프카의 <소송>에서도, 그리고 최근의 영화와 소설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이재익의 <41>에서도 이 현실은 두드러지게 공개된다.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의 인맥·혼맥 사회가 법이라는 물건을 어떤 방식으로 가지고 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영화다. 그들에게 법이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한 보호막이 아니라 타인을 쳐내고 일인자로 올라서기 위해 이용하는 치명적인 도구였다. 누구도 그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은 그레이맨에게 <범죄와의 전쟁> 검사 양반의 마지막을 잠시나마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정말 다행스러웠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한국 소설 <41>에서 이재익 작가는 이런 법의 부조리한 판결에 견디지 못한 판사가 사적 복수를 통하여 죄를 지은 이들에게 그에 마땅한 벌을 받게 하도록 결말을 만들어내는데, <그레이맨> 또한 특촬물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그레이맨이라는 비밀스러운 인물의 사적 복수가 2013년의 썩은 일본을 침몰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제시된다. 

 

4. <그레이맨>에서 가장 훌륭했던 점은 복수를 위한 복수를 지양했다는 것이다. 그레이맨의 치밀한 계획(?). 그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와 노력은 이 사건의 외부에 있는 많은 일본인의 눈을 깨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게끔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지 1 - 도원(桃園)편 매일경제신문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1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이동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1. 내가 기존에 읽었던 <삼국지>는 많은 판본 중에서도 민음사의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였다. 삼국지는 게임, 드라마, 영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불후의 고전 중 하나지만. 그래도 책을 집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문열의 삼국지를 가장 많이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가장 먼저 이문열 <삼국지>와 비교가 된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적이 오래되긴 했지만, 여전히 의식 속에 새겨져 있는 느낌으로 판단하건대. 요시카와 에이지라는 일본의 유명 작가가 쓴 <삼국지>는 이문열 평역에 비하여 훨씬 더 이야기 그 자체에 중심을 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삼국지에서는 작가의 평론적인 개입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권을 예로 들면, 이문열 평역에서는 귀가 큰 귀한 사람. 유비 현덕이 중랑장 노식의 문하에서 배움을 얻기 전인지 후인지 시기는 모르겠으나. 어떤 노인과 함께 강물을 건너는 환상적인 서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단순 이야기의 전개가 아니라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해서 꽤 오래 기억에 남아있던 부분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사상이나 됨됨이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 장각,장량, 장보가 일으킨 황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유비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 십상시의 시대, 동탁의 만행, 여포의 배신, 조조의 습격 등. 이야기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부연할 이야기가 필요한 경우에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2. 이와 같은 차이점이 있는가 하면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와 이문열의 삼국지는 처음부터 유비의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은 같았다. 왜 이 작품이 유비를 기준으로 하였나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 이유는 유비라는 인물이 요시카와 에이지와 이문열이 살았던 시대나 그가 생각하는 사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서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된다. 

 

유비가 가진 이러한 관점은 <삶으로부터의 혁명>에 따르면 근대적 인간에 가깝다고 한다. 근대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한 존재가 이뤄야 할 삶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민족의 발전이라는 목표와 함께해야 한다. 

 

뭐 그쯤으로 해석하면 될 듯한데, 이것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에 유행했던 이데올로기고 여전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유행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유비의 인물됨(무너진 한 왕조를 바로잡는다는 민족의식)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이문열의 삼국지를 불티나게 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1993년 처음 시행된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어떤 이가 만점을 받은 비결 중의 하나로 삼국지를 강력하게 추천해서 그때부터 책이 불티나게 팔렸을 수도 있고... 

 

3. 어쨌든 유비가 개인보다는 국가(조직)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면서도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잔학행위를 고스란히 답습했던 것과는 달리, 유비의 매력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을 감탄케 했던 이유로는. 출신 성분의 우월함 외에. 공자의 사상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의·예·지를 강조한 군자의 개념을 유념하면서 사람을 대하고, 삶과 조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근대적 인간관을 말하기에 유비가 적절한 모델인 것은 사실이지만 유비라는 인간이 지닌 온전한 매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공자의 사상까지 읽어내야한다는 그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망은 나의 힘 - 카프카의 위험한 고백 86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가시라기 히로키 엮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1. 한창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접한 적이 있다. 이 단어는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힘에는 개인적인 편차가 있다. 그리고 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인간형이다.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이 '회복탄력성'을 기준으로 카프카라는 인간을 평가했을 때, 카프카는 이 능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력성의 평균치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거나 잊거나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데. 카프카는 그 사건에 벗어나지 않고, 아니.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벗어나기는커녕 그 상황에서 하나의 관점을 탄생시켜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소설을 창작했다. 실패자로 규정 지은 원인이었던 지독한 냉소와 허무로 새로운 모델을 창조해냈다. 카프카의 시선이 닿은 덕분에 부조리는 세계인에게 찬란하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인간은 일반적인 정의가 요구하는 인간에 설 수 없게 된다는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발전했다.

 

2. <절망은 나의 힘>에는 그런 관점을 보유한 카프카의 잠언과 그 글을 해설하는 가시라기 히로키의 글이 양쪽에 실려있는 짧은 책이었다. 아주 간략하게 엮은 책이라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는 편할 것이다.

 

이 책의 편자 가시라기 히로키가 노린 점은 바로 이 짧음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잘못을 저질러서 세게 한대 맞던지 아니면 약하게 열대 맞던지 선택해야 할 때, 세게 한대 딱 맞고 매듭짓는 것처럼 이 책의 역활 또한 짧고 강한 몽둥이같은 절망의 문장에서 담금질을 살짝 하고 힘을 얻으라는 그런 이유로 탄생된 책이라는 것이다. 

 

3.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도, 

또다시 새로운 힘이 솟아오른다. 

그것이 바로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강렬한 문장은 새로운 힘이 솟아서 살아있는 증거라는 발언이 카프카가 의도했던 발언이 아니라

 

만일 그런 힘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다 끝난 거다.

 

의 다 끝난 거다.가 주는 결론이 카프카의 정수가 담신 지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가시라기 히로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카프카의 부정적인 힘이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에너지라는 것이 히로키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절망하는 카프카같은 사람도 있구나 나는 그정도는 아니니까 다행이다. 혹은 짧게 고통을 느끼고 정신차리자라는 의미가 아닌.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그 비판적인 관점에서 도대체 어떤 에너지를 얻어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쓸 수 있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고로 절망은 잠시 맛봤다가 언제든지 뱉어낼 수 있는 그런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1. 레이프 라슨의 <스피벳>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발칙한" 소설이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미국 작가가 자신의 여행기 시리즈를 발칙한이라는 수식어 붙여서 출간했었는데, 빌 브라이슨 특유의 자유분방한 관점에서 풍겨 나오는 표현들이 <스피벳>의 그것과 유사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시기도 빌브라이슨이 유행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스피벳>의 자유분방함은 텍스트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기묘한 크기의 장정.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 겉을 향해 움직이는 화살표의 도착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총 300여 개의 삽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이 삽화를 통하여 작가는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길 거리를 충분히 제공(어른들이 짓는 썩소도 이 삽화를 빌린다면 무리 없이 이해 가능. 썩소는 그야말로 가짜 웃음)하는 한편, 스피벳의 부연 설명을 실은 장치로 주인공이 느낀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심층적으로 재구성하는 기능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소설의 모든 일감을 삽화에 아웃소싱하지도 않았다. 레이프 라슨 작가의 표현력도 발칙하다고 느껴졌다. 다른 소설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그것(죽은 은유)과는 다른 포지션(문학적인 묘사와는 다르게 문학 이외의 학문에서 개념을 빌려 와서)에서 형성된 묘사는 대상을 낯설게 하면서도 동시에 눈에 확 들어왔다.

 

특히, 물리학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그리고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 찰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만들어진 세계 같은 개념을 인간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시켜 미국 사회의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맞섰다.  

 

2. <스피벳>의 인물과 줄거리에 대하여 살펴보자. 12살 천재 소년 T.S 스피벳의 비극과 상처와 극복을 위한 결심을 바탕으로 시작한 기차여행. 그 여행은 미국횡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된다.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신기한 풍경을 로드무비의 형태로 보여주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느낀 자아의 성장을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자아의 성장은 가방 안에 넣어 두었던 어머니의 책(책 속의 주인공 엠마 오스터빌)과 함께 한다. 이 책을 통해 스피벳 선조의 상황(왜 스피벳이 도해에 소질을 보이게 되었는가?)과 스피벳의 현재 상황을 교차시켜 스피벳의 여행기에 과거와 현재가 텍스트에서 만나는 평행이론적인 암시를 부여했다. 

 

작가는 이러한 평행이론적 구성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상황을 포착했다. 그것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풍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부조리를 공개하며 레이프 라슨 작가는 사회에 대하여 발칙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것은 바로 "공정한 기회와 자격의 부여"였다. 성, 인종, 나이라는 장벽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스피벳 가문 사람의 온전한 능력치을 인정하지 않고. 그 능력을 차별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대하여 작가는 불만감을 표시하는데, 그 대상은 기득권 싸움에 취해서 정부로부터 눈먼 돈이나 뜯어낼 궁리에 몰두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과학단체. 스미스소니언협회였다.

 

어찌 이것을 과학계 한 분야에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스피벳>은 공고하게 권력을 다지면서 뒤로는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는 불특정한 다수의 단체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그래서 "발칙한 소설"이라고 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