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맨 - 제2회 골든 엘러펀트 상 대상 수상작
이시카와 도모타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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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의 휘황한 불빛은 썩어가는 음식이고 그 빛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파리 떼다.

 

1. 시작부터 아주 파격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문장이다. 번역가 분께서 한국어 판 번역본은 1장과 2장의 차례를 바꿨다고 했는데, 왠지 이 문장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기승전결의 기 부분을 다루는 차례라서 바꿔도 별 무리없이 읽히기도 했었다.

 

이 강렬한 첫 문장에서 냉소와 염세주의를 상징하는 회색인종. 그레이맨이 왜 태어나야 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솔직히 말하면 에필로그까지 읽어야 온전하고 거대한 진실의 매듭이 풀리지만. 이 한 문장으로도 뒤에 이어질 잔혹한 서사를 유추할 수 있다.

 

2.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벌어질대로 벌어진 양극화 문제는 돈과 권력의 집중을 낳고, 집중된 곳의 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레이맨>은 그것을 경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레이맨>은 재분배를 외친다. 돈? 아니 권력의 재분배를 외친다. 

 

어린 여성의 목숨까지 돈으로 사고파는 세계, VIP 고객의 눈 밖에 나서 직장상사에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영업맨의 일상. 특출난 재주를 가진 친구를 시기하여 그 능력을 잃게 만들어만 직성이 풀리는 또래집단 등. 돈과 권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홀대당해야했던 많은 사람의 고통으로 가득한 곳. 그곳은 2013년 일본이자 대한민국이요. 전 세계적인 현실이다. 

 

3. 권력의 양극화 때문에 법이 법으로서 구실을 하지 못했던 지난했던 역사는 사실 알고 보면 법이 생겨난 이래로 쭉 계속되어온 현실이다. (먼 과거의 이야기를 설명할 적절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까운 과거 카프카의 <소송>에서도, 그리고 최근의 영화와 소설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이재익의 <41>에서도 이 현실은 두드러지게 공개된다.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의 인맥·혼맥 사회가 법이라는 물건을 어떤 방식으로 가지고 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영화다. 그들에게 법이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한 보호막이 아니라 타인을 쳐내고 일인자로 올라서기 위해 이용하는 치명적인 도구였다. 누구도 그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은 그레이맨에게 <범죄와의 전쟁> 검사 양반의 마지막을 잠시나마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정말 다행스러웠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한국 소설 <41>에서 이재익 작가는 이런 법의 부조리한 판결에 견디지 못한 판사가 사적 복수를 통하여 죄를 지은 이들에게 그에 마땅한 벌을 받게 하도록 결말을 만들어내는데, <그레이맨> 또한 특촬물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그레이맨이라는 비밀스러운 인물의 사적 복수가 2013년의 썩은 일본을 침몰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제시된다. 

 

4. <그레이맨>에서 가장 훌륭했던 점은 복수를 위한 복수를 지양했다는 것이다. 그레이맨의 치밀한 계획(?). 그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와 노력은 이 사건의 외부에 있는 많은 일본인의 눈을 깨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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