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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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인시공>의 페이지 어느 곳에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 그리고 사람이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책과 책을 읽는 사람.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안심하고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있는 어두운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이 그것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물리적인 골방이 신비한 아우라가 쏟아지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렇지만 <책인시공>이라는 제목은 너무 딱딱하다. 나는 애초에 사자성어의 무거움을 믿고, 이 책을 통해 독서가의 내공이 담긴 무엇을 얻고자 했으나. 다시 말해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같은 책처럼. '작가로부터' 책에 관한 이야기를 배우고 싶었으나 <책인시공>은 책의 서두에서 밝힌 바대로 '독서예찬'에 그치는 책이라 다소 아쉬운 감이 들었다. 

 

2. 그럼에도 작가가 펼쳐놓는 예찬론을 읽으면서 마구마구 상상을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렇지 않을걸? 해봤자 상상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 찬 서재에 앉아서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촉감을 음미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을 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잠시. 자본적으로 풍족하여 영화같이 아름다운 순간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마치 만들어진 것 같은 환경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책이 있고, 그것을 읽고 느끼고 깨닫고 이렇게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3. 책을 너무 신성시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도 있다. 신성시한다는 것의 의미는 보통 우리들이 책을 깨끗하게 읽는 그런 의미의 신성시가 아니라 책에 적힌 언어들이 현재 어떠한 것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설사 정말 우월하더라도 겸손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책인시공>에서는 책처럼 글자로 이루어진 읽을거리인 신문이나 잡지도 책의 존재감 앞에서는 위력을 잃고,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창작물은 언급되지도 않을 만큼 저자의 책 사랑은 대단하다. <책인시공>에서 인정하는 책의 범주는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고 사유하게 이끄는 것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양서의 의미에 가깝다. 

 

4. 책을 사랑하고, 책 주위에 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작가의 내면에는 책, 책이 있는 도서관, 서점, 서재. 그곳에서 양서를 읽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미소만이 떠돌고 있을 따름이다. 

 

77. 좋은 책일수록 그 속에는 인생의 경험과 지적 탐구의 결과가 녹아들어 있다. 책은 가장 깊은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책은 표지 뒷면에 붙어 있는 가격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귀한 물건이다. 


81. 정보와 지식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정보가 체계를 갖추지 않은 구체적 사실의 집적이라면, 지식은 세상과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이론적 틀 속에서 사유와 실험을 통해 논리적으로 구성된 앎을 말한다. 


136. 모든 사람이 각각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듯이, 모든 서재는 그 서재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232. 도서관은 사유의 냉장고다. 상하지 않게 잘 보관되어 있는 다양한 사유의 재료들을 꺼내 생각을 요리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요리에 필요한 불은 머리에서 나온다.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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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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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안고 공부를 한다. 살기 위해, 부유함을 누리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성과를 내기 위해, 진리를 찾기 위해, 신분 제도를 부수기 위해,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국가에 이바지하기 위해. 

 

나도 공부를 한다.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2. <공부하는 인간>은 각기 다른 동양과 서양의 학습 방식(자신을 감추고 받아들임에 익숙한 동양의 공부. 자신을 드러내어 토론하는 것에 익숙한 서양의 공부)과 그렇게 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인의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3국과 인도로 분류되는 동양적 공부를 하는 나라의 학생들. 그리고 유대인(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있지만, 유대인은 전 세계에 분포한 민족이기에 국가의 개념보다는 민족의 개념으로 보는 게 이해하기 더 수월하다.), 아프리카계 유대인, 프랑스, 영국, 미국으로 분류되는 서양적 공부를 하는 나라의 학생들을 소개한다.

 

이 두 가지 공부법이 가진 차이는 간략히 말해서 집단 중심이냐 개인 중심이냐, 정보의 암송과 암기냐 토론과 논쟁이냐의 차이고, 얻고자 하는 지식이 나의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이미 나의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보거나 아니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3. <공부하는 인간>은 두 가지의 방식 중에서 뚜렷하게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호하게 확언을 하지는 않지만, 현재 선진국에서 학습 능률을 올리기 위해 어떤 수업을 하는지 설명하는 마지막 장을 읽다 보면 암기와 암송보다는 토론식의 공부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공부하는 인간>이 내린 결론일 것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미국의 MIT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도입한 방식. 개인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적극적인 토론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답함으로써 사고력의 확장을 꾀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말이다.

 

4. 그런 결론에 비추어봤을 때, 한국의 토론 문화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것 같다. 대부분 같은 학교, 같은 수업을 받는 집단끼리 토론을 하는데 그치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영향을 받아서 시작한다. 공부의 목적도 대부분은 토익과 영어 회화가 아니면 대기업 취업 스터디 모임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토론 문화를 만든 주원인인 입시 위주의 교육 기관과 스펙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도무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한국 사회 구조상 리더형의 인재보다는 팔로어형 인재. 즉, 창의력(개성)이 있는 예측 불가능의 인재보다는 예측 가능(조직에 순응)하며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인재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동양 문화의 특성인 개인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에 어울리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5.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다 보니 우리 문화가 가진 장점보다는 단점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더욱 동기부여를 하여 성과를 얻어내는 동양 문화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이것은 바람직한 방향일 수도 있으나. 영 탐탁지 않다. 

 

이즈음에서 서양의 시끌벅적한 토론 문화에는 비효율적이라는 것 이외에는 단점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암송과 암기를 통해 나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가진 선생님의 강의를 받아들일 경우에는 창의력과 사고력은 전혀 계발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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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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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 무사 슈코쿠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하무로 린의 <저녁매미 일기>는 죽음이 결코 만족스러운 마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어떤 가치를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인가? 라는 성찰을 갖게끔 만들어주는 소설이었다.

 

마치 진리를 탐구하고자 애썼던 긍지. 당신의 나약함을 보여달라는 자들의 횡포에 맞서 죽음이라는 신념으로 저항한 소크라테스의 삶처럼 말이다. 교훈적인 부분에서 '어떤 신념'을 말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편인데, <저녁매미 일기>는 그러했던 작품이라서 특히 만족스럽게 읽은 소설이었다. 

 

2. <저녁매미 일기>는 비밀이 있는 작품이었다. 한쪽은 그 비밀을 묻어버리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비밀을 공개하려고 한다. 그런 갈등을 표출하는 과정은 다분히 수수께끼를 맞춰가는 과정(주군의 족보를 기록하는 임무. 사실에 접근하는 역사가의 임무. 그것을 탐색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미스테리가 어디 있으랴?)이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의 일본 문학은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날로그적 기록물이라는 것을 주제로 다루는 공통점이 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듣자하니 헌책방과 그곳의 책에 관한 소설이고, 곧 읽게 될 <배를 엮다>는 사전 「대도해」편찬의 에피소드를 다룬 소설이고, <저녁매미 일기>는 족보를 편찬하는 과정을 다루는 소설이니 말이다.

 

전통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의 정신과도 맞는듯하고, 스마트와 인터넷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태에 대한 성찰이라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3. <저녁매미 일기>는 신념에 관한 통찰이 담긴 문학, 족보 편찬 과정에 숨겨진 수수께기를 풀어나가는 문학이 전부가 아니다. 아직은 조금은 철이 덜 든 무사(선한 인물이긴 하지만...). 3인칭 시점이긴 하지만 소설 화자의 시점과 가장 근접한 주인공 쇼자부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쇼자부로와 가오루. 슈코쿠와 쇼긴니. 그리고 슈코쿠와 오리에의 애틋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애정 문학이기도 하고, 이쿠타로와 겐키치 간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다룬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아. 이쿠타로와 겐키치 간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 속에서는 에도 시대라는 신분제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꽃피기 시작하는 민주주의라는 인권의 씨앗을 발견한 듯한 생각도 떠올랐다. 이쿠타로가 겐키치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도 신분제 사회라면 상상도 못할 큰 사건이었다. 

 

아무튼 엄청나게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30.

“어찌하여 저녁매미입니까?”
쇼자부로가 의아해하자, 슈코쿠는 빙긋 웃었다.
“여름이 오면 이 부근에서 저녁매미가 많이 웁니다. 특히 가을기운이 완연해지면 여름이 끝나는 것을 슬퍼하는 울음소리로 들리지요. 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몸으로 ‘하루살이’의 뜻(일본에서는 ‘저녁매미’를 ‘하루살이’를 뜻하는 ‘히구라시’라고 함)을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53. "시대가 바뀌면 원리도 바뀔지 모르는 일. 바로 그러하기에 이처럼 과거의 사적을 기록해두어야 하는 것이야.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후세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말이지."

 

135. "의심은 의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생겨나는 법. 변명한들 마음을 바꾸지는 못하네. 마음은 마음으로만 바꿀 수 있는 것이야."

 

305. 사람은 마음이 정하는 곳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이 향하는 곳에 뜻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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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 읽기
임동확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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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간만에 소화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 책을 만났다. 이러한 소요의 원인에는 프로야구 개막. 한화의 연패와 보이스코리아의 배틀 라운드에 감명받아 전편을 시청한 것도 큰 몫을 했지만. 시를 분석하는 '깊이에의 강요'에 어려움을 느낀 탓이 더 컸음을 고백한다. 

 

2.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은 시라는 문학은 시인을 존재케 하는 다소 강제적으로 부여된 세계관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복잡한 인식. 그러한 의식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얻고, 그 여운을 느끼는 장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에서 소개된 작품 중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외면과 내면에서 우러난 것을 그린 인상주의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한 폭의 그림이 아닌 상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담아낸 시로. 그리고 그것을 해독해 낸 <시인으로 태어났다>의 임동확 작가의 필력은 시를 읽고, 뭔가를 채워야만 하는 빈 공백에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나로 하여금. 깊이도 깊이거니와 어떻게 이렇게 읽고 사유할 수 있는지. 그저 존경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3. 기존에 읽은 김수영 시인의 시나 학창시절에 배웠던 저항 의지가 담긴 상징을 찾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들은 <서양미술사>의 개념을 빌어서 말하자면 신고전주의의 화풍에 유사한 시였다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에서 이야기하는 시는 인상주의라는 화풍에 어울리는 서정시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정시라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하찮은 것들에서 생에 대한 통찰을 길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모두 일상생활에서 그런 통찰을 길어낼 수 있으므로 모두 시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라고 정해진 것 같았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덮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어떤 한 점에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는 것처럼 의식을 집중하는 과정을 통하여 압력을 가하고, 그런 결과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모두 시인이라는 제목에 실린 격려와 이런 의식을 생각하면서 떠올랐던 내 기억 속의 한 장면은 

 

서리가 낀 추운 어느 겨울날. 

출근길로 향하는 수많은 차 속의 한 존재로 머물러 있던. 

다른 방향을 생각할 것도 없이 정해져 있는 의식. 

 

한없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태어나는 궁금증은 오로지 파란 신호뿐.

그것을 애인 기다리듯 애타게 기다리며 맹목적으로 앞 차의 간격에만 

집중했던 그 의식. 

 

그것에서 존재의 구속과 구역질을 느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처럼 책을 읽으면서 내용의 해석을 탐구하는 깊이도 깊이었지만. 그런 깊음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을 되새김질해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4. 또 하나의 되새김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관이 바뀌었구나라고 느낀 생각이다. 예전에는 모든 인문학 서적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문학에서 쓰이는 악기의 이름을 맞히기 위한 도구의 성격으로 읽었는데, 최근에는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이름도 '마구읽기'로 바꾼 것처럼, 모든 책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독자가 되기로 했구나. 그랬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5. 되새김은 끝나지 않는다. 

시가 가리키는 물체는 그것이 온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의 있음과 없음이 동일한 무언가일 수도 있는. 그렇게 본다면 시는 정말 해석하기 나름의 문학으로 다가온다. 적어놓고 보니 깊이에의 강요스러운 단락이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6. 또 한 가지의 단상은 이 책이 나의 다리를 찢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춤을 출 때나 신체적 활동을 할 때. 다리를 찢는 행위를 통해 유연성을 기르고, 그것으로서 능력치를 올리는 바탕으로 진입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이 책은 내면의 다리를 찢는 책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이 이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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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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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봤던 것인가? 에 관한 인식론을 기준으로 예술을 설명하는 책이다. '예술작품' 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인식' 이라는 원인을 탐색하는 거꾸로의 성향이 강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작품이 유명세를 얻은 시대적 상황에서 그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모든 이의 공감이 아닌. 그 세계에 관심이 있는 나라와 예술인들에게만 한정되는 국지적 공감일 수 있다는 사실만 고려하면서 읽어낸다면 말이다.

 

국지적 공감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이냐면. 이것은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현대의 예술에 관하여 말하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293페이지에서 작가가 말하는 대로.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현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고 현대인이 될 가능성도 없다. 현대를 물들이고 있는 새로운 사유 양식과 과학 그리고 세계관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세계라는 그들만의 리그에 한하여 쌓인 현재까지의 누적된 경험과 그 누적이 만들어낸 결과물에서 빚어지는 낯설음이라는 것이 대중적인 기준에서 내려지는 결론(누적된 경험과 낯설음)일 테고 그 누적과 낯설음은 대중과 그들(현대 예술가) 사이에 엄청난 편차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예술에 대한 '현재'와 실제 삶에서의 '현재'라는 간극이 이러할진대. 과거에도 역시 예술에서 드러나는 최신(?) 경향과 실제의 살았던 사람들의 관념에서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확실함이 아니라 많은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바로크라는 패러다임이 시작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 바로크가 훨씬 지난 상태에서 바로크라는 패러다임을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결국, 단절이 아닌 연속성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 <서양 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에 따르면 시대를 풍미한 예술 작품의 중심점은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지고, 구심점에서 원심점으로. 선명함에서 모호함으로 이어지는 혼돈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진행상황인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의식의 흐름을 나열하는 기법인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풍이 여전히 가장 마음에 드는 화풍이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작품이 아름답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고전주의도, 로마네스크도, 고딕 양식도, 르네상스 양식도, 마니에리즘, 바로크, 로코코 양식도,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도 각자 나름대로 부각하고자 했던 고유한 관점이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바라보면 모든 작품이 훌륭한 작품들이다. 문학 작품에서도 이러한 장르들을 접할 수 있는데, 낭만주의나 사실주의 작품을 읽으면서 다른 주의를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 인상주의 이후의 작품들이 가장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호를 보고 그것을 해석해내는 것은 결국,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생각이 확고하고, 인간 가운데서도 실제로 그것을 경험한 유일한 인간의 인식과 관념에 의지한다는 것이 내가 가진 현재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포착한 인상주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른 작품에서 느낀 그저 훌륭하고 아름답다는 감정을 초월한. 무언가 신기한 감정과 나라면 그것을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했을까라는 상상력이 생겨나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마음껏 그 상상을 펼쳐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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