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 읽기
임동확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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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간만에 소화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 책을 만났다. 이러한 소요의 원인에는 프로야구 개막. 한화의 연패와 보이스코리아의 배틀 라운드에 감명받아 전편을 시청한 것도 큰 몫을 했지만. 시를 분석하는 '깊이에의 강요'에 어려움을 느낀 탓이 더 컸음을 고백한다. 

 

2.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은 시라는 문학은 시인을 존재케 하는 다소 강제적으로 부여된 세계관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복잡한 인식. 그러한 의식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얻고, 그 여운을 느끼는 장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에서 소개된 작품 중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외면과 내면에서 우러난 것을 그린 인상주의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한 폭의 그림이 아닌 상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담아낸 시로. 그리고 그것을 해독해 낸 <시인으로 태어났다>의 임동확 작가의 필력은 시를 읽고, 뭔가를 채워야만 하는 빈 공백에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나로 하여금. 깊이도 깊이거니와 어떻게 이렇게 읽고 사유할 수 있는지. 그저 존경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3. 기존에 읽은 김수영 시인의 시나 학창시절에 배웠던 저항 의지가 담긴 상징을 찾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들은 <서양미술사>의 개념을 빌어서 말하자면 신고전주의의 화풍에 유사한 시였다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에서 이야기하는 시는 인상주의라는 화풍에 어울리는 서정시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정시라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하찮은 것들에서 생에 대한 통찰을 길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모두 일상생활에서 그런 통찰을 길어낼 수 있으므로 모두 시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라고 정해진 것 같았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덮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어떤 한 점에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는 것처럼 의식을 집중하는 과정을 통하여 압력을 가하고, 그런 결과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모두 시인이라는 제목에 실린 격려와 이런 의식을 생각하면서 떠올랐던 내 기억 속의 한 장면은 

 

서리가 낀 추운 어느 겨울날. 

출근길로 향하는 수많은 차 속의 한 존재로 머물러 있던. 

다른 방향을 생각할 것도 없이 정해져 있는 의식. 

 

한없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태어나는 궁금증은 오로지 파란 신호뿐.

그것을 애인 기다리듯 애타게 기다리며 맹목적으로 앞 차의 간격에만 

집중했던 그 의식. 

 

그것에서 존재의 구속과 구역질을 느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처럼 책을 읽으면서 내용의 해석을 탐구하는 깊이도 깊이었지만. 그런 깊음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을 되새김질해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4. 또 하나의 되새김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관이 바뀌었구나라고 느낀 생각이다. 예전에는 모든 인문학 서적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문학에서 쓰이는 악기의 이름을 맞히기 위한 도구의 성격으로 읽었는데, 최근에는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이름도 '마구읽기'로 바꾼 것처럼, 모든 책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독자가 되기로 했구나. 그랬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5. 되새김은 끝나지 않는다. 

시가 가리키는 물체는 그것이 온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의 있음과 없음이 동일한 무언가일 수도 있는. 그렇게 본다면 시는 정말 해석하기 나름의 문학으로 다가온다. 적어놓고 보니 깊이에의 강요스러운 단락이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6. 또 한 가지의 단상은 이 책이 나의 다리를 찢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춤을 출 때나 신체적 활동을 할 때. 다리를 찢는 행위를 통해 유연성을 기르고, 그것으로서 능력치를 올리는 바탕으로 진입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이 책은 내면의 다리를 찢는 책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이 이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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