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 무사 슈코쿠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하무로 린의 <저녁매미 일기>는 죽음이 결코 만족스러운 마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어떤 가치를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인가? 라는 성찰을 갖게끔 만들어주는 소설이었다.

 

마치 진리를 탐구하고자 애썼던 긍지. 당신의 나약함을 보여달라는 자들의 횡포에 맞서 죽음이라는 신념으로 저항한 소크라테스의 삶처럼 말이다. 교훈적인 부분에서 '어떤 신념'을 말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편인데, <저녁매미 일기>는 그러했던 작품이라서 특히 만족스럽게 읽은 소설이었다. 

 

2. <저녁매미 일기>는 비밀이 있는 작품이었다. 한쪽은 그 비밀을 묻어버리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비밀을 공개하려고 한다. 그런 갈등을 표출하는 과정은 다분히 수수께끼를 맞춰가는 과정(주군의 족보를 기록하는 임무. 사실에 접근하는 역사가의 임무. 그것을 탐색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미스테리가 어디 있으랴?)이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의 일본 문학은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날로그적 기록물이라는 것을 주제로 다루는 공통점이 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듣자하니 헌책방과 그곳의 책에 관한 소설이고, 곧 읽게 될 <배를 엮다>는 사전 「대도해」편찬의 에피소드를 다룬 소설이고, <저녁매미 일기>는 족보를 편찬하는 과정을 다루는 소설이니 말이다.

 

전통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의 정신과도 맞는듯하고, 스마트와 인터넷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태에 대한 성찰이라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3. <저녁매미 일기>는 신념에 관한 통찰이 담긴 문학, 족보 편찬 과정에 숨겨진 수수께기를 풀어나가는 문학이 전부가 아니다. 아직은 조금은 철이 덜 든 무사(선한 인물이긴 하지만...). 3인칭 시점이긴 하지만 소설 화자의 시점과 가장 근접한 주인공 쇼자부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쇼자부로와 가오루. 슈코쿠와 쇼긴니. 그리고 슈코쿠와 오리에의 애틋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애정 문학이기도 하고, 이쿠타로와 겐키치 간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다룬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아. 이쿠타로와 겐키치 간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 속에서는 에도 시대라는 신분제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꽃피기 시작하는 민주주의라는 인권의 씨앗을 발견한 듯한 생각도 떠올랐다. 이쿠타로가 겐키치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도 신분제 사회라면 상상도 못할 큰 사건이었다. 

 

아무튼 엄청나게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30.

“어찌하여 저녁매미입니까?”
쇼자부로가 의아해하자, 슈코쿠는 빙긋 웃었다.
“여름이 오면 이 부근에서 저녁매미가 많이 웁니다. 특히 가을기운이 완연해지면 여름이 끝나는 것을 슬퍼하는 울음소리로 들리지요. 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몸으로 ‘하루살이’의 뜻(일본에서는 ‘저녁매미’를 ‘하루살이’를 뜻하는 ‘히구라시’라고 함)을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53. "시대가 바뀌면 원리도 바뀔지 모르는 일. 바로 그러하기에 이처럼 과거의 사적을 기록해두어야 하는 것이야.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후세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말이지."

 

135. "의심은 의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생겨나는 법. 변명한들 마음을 바꾸지는 못하네. 마음은 마음으로만 바꿀 수 있는 것이야."

 

305. 사람은 마음이 정하는 곳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이 향하는 곳에 뜻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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