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1. 동행


29. 세상은 한 통의 거대한 세탁기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젖은 면직물 더미처럼 엉켰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닳아간다.


구병모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 <한 스푼의 시간>에는 사람 같지만, 엄연히 사람과는 다른 존재가 등장한다. 그것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명정의 아들이 변두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명정에게 유품으로 남긴 것이다. 다름아닌 사람 모양을 한 로봇이었다. 명정은 이 로보트에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노년의 남성와 인간 형상의 로봇 간의 동행을 기록한 소설. <한 스푼의 시간>은 세탁소라는 장소로부터 시작된다.


2. 배움과 성장. 사람다움


103. 사람의 말은 가끔 맥락 없이 튀기 때문에 은결은 주인의 모든 말에 반응해야 할 필요는 없음을 안다. 그러나 맥락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닿는 모든 곳이 맥락이 되기도 한다.


108. 무슨 수로 인간은 그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말 한마디를 골라 건넬까. 눈앞의 사람이 아픈지 슬픈지 분하거나 억울한지 또 달리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마이크로 단위의 시간동안 확정하고 가장 그런듯한 조치를 취할까. 어쩌면 사람이 그 때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확률의 문제일 뿐 실은 그들이 내놓는 모든 결론과 행위 또한 매 순간 몇 제타바이트에 이르는 오해를 동반하는 게 아닐까.


얇은 분량임에도, <한 스푼의 시간>에서 읽을 수 있는 깨달음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은결이 주변 이웃들의 말과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하여 학습하는 과정에 녹아있는 여리고 순수한 서사와 은결이 사람의 감정들을 이해하며 점점 더 사람과 닮아가는 모습.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존재의 곁에 남기를 소망하며 저지르는 은결의 결심에 담겨 있는 성장소설로서의 면모는 소설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인간을 닮아가는 은결의 내적성장을 그리는 이야기 이외에. <한 스푼의 시간>에는 잠시 시점을 세탁소의 이웃들인 시호나 준교나 세주의 삶으로 옮겨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구병모 작가는 이들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한다. 위로에 덧붙여 이러한 팍팍한 인생살이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쩔 수 없음. 그리고 이러한 인생의 한없이 짧음에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한다.  


157. 아무리 약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과 팽창과 수축을 거쳐 변형된 사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184.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3. 삶의 아포리즘


구명모 작가의 문장을 일부러 떼어내 읽으면 아포리즘처럼 진한 울림이 있다. 많은 사유를 거친 후 탄생한 날카로운 문장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아포리즘에 담긴 진지함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는 것도 <한 스푼의 시간>을 읽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 스푼의 소설>은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는 소설은 아니었다.


50. 가족이란 신선한 공기가 들락거리는 건강한 폐 같은 거라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엇박자 내지는 폐기종에 불과한 것을


51.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112. 그 무너짐은 정말 저 무너짐과 같은가. 무너진다는 건 결국 그 현상을 대하는 사람의 슬픔이나 분노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141. 늘어나는 경험과 지식의 질량은 그에게 필요치않은 무거운 털외투처럼 나날이 몸을 감싼다. 그러나 그 외투를 벗고 가벼워져야 한다는 판단만은 들지 않는다.    


173. 사람이란 때로는 상대방을 행해. 자신조차 그 독법을 알지 못하는 행간을 읽어내달라는 부당한 호소를 거리낌 없이 하는 존재 아닌가.


208.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구전을 통해 허황되게 부풀려지는 것들,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249.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이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4. 약점


위에 쓴 글과 옮겨적은 문장들은 <한 스푼의 시간>의 강점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깊이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약점도 분명히 있다. 일단, 소설 자체가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의미 중심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러고보면 제일 처음 읽었던 그녀의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도 이야기가 남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한 컷. 어떤 가게의 시나몬 쿠키의 인상이 남고, 이 소설도 마찬가지로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아 풀어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또한, 장문을 즐겨 용하는 구명보 작가의 스타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을 이해하더라도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은 굉장히 거슬렸다. 실제로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아래의 두 문장이 그렇다. 

164페이지의 문장 같은 경우는 독해하는 데 너무 어려웠다. 시호의 아르바이트에 얽힌 난처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빠가 옛날에 겪었던 부조리한 기억을 연상하는 부분인데, 처음에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않았다.


164. 그때 문득 옛날에 우리 아빠가 결국 치료비 보조는 언감생심에 사람의 살이 익어가는 현장을 지켜본 손님들한테 오히려 돈 백만 원 물어줬던 일이 떠올랐어.  


201. 사지 멀쩡하여 일할 수 있는 누구나 마음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그대로 넘어져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저 의지박약의 일종으로 치부했으며, 자신이 홀몸으로 딸을 억척같이 키워낸 과업을 수시로 내세우는 한편, 과거의 자신과 달리 지금의 딸은 직무태만에 모성 부족이며 등 따시고 배가 불러서 우울증 따위가 드나드는 것이니, 우울증이란 그저 병원과 의사가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낸 허상의 질병이름으로서 거기 놀아나는 딸이 한심하다는 말로 더 큰 갈등의 요인을 만들곤 했다.


201페이지의 장문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는 '사지 멀쩡하여 / 일할 수 있는 누구나 / 마음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이렇게 끊어 읽어야 할 것 같은 문장인데 이걸 처음 읽을 때는 '사지 멀쩡하여 / 일할 수 있는 / 누구나 마음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같은 방식처럼. 제일 앞 부분을 주어로 판단해서 읽게 된다. 그런데 이 문장을 그렇게 읽었다가는 처음부터 의미가 꼬여버리니 아예 해석이 되지 않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다듬을 때. 조금만 더 신경써줬으면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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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위대한 이들은 어떻게 배를 타고 유람하는가
멜라니 사들레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1. 팩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독창적인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들어낸 팩션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하비에르 레오나르도 보르헤스와 터키 출신의 하칸이라는 두 명의 역사학자인데,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금껏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새로운 유물과 단서를 발견한다. 그 단서를 추적하여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진실에 접근하려고 했던 사람은 보르헤스와 하칸이 처음은 아니었다. 루사르 첼릭이라는 인물이 이미 보르헤스와 하칸의 의문을 앞서서 찾아나섰지만, 당신들의 조상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국가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저지당한다. 보르헤스와 하칸은 루사르 첼릭이 찾아낸 유산까지 캐내는데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진실에 접근한다.


16. 이스탄불에서 직접 보내온 필사본 속에서 아즈텍의 대지의 여신인 코아틀리쿠에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 아즈텍 여신이 어떤 이유로, 언제나 북적이던 오스만 궁정에서 할 일이 상당히 많았을 터키 화가의 정신을 사로잡았을까?


그 사건이란 제국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 1520년 아즈텍 문명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신항로 개척에 열을 올리던 유럽 열강들에 의하여. 특히. 에스파냐의 코르테스의 침입으로 인하여 멸망했다고 알려져있다. <세상은...>의 작가인 멜라니 사들레르는 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피지배인들의 실낱같은 저항을 상상한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멸망했을리가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43. 샤 쿨리의 그림대로 믿어보자면 쿠아우테모크는 코르테스의 손에 죽지 않았고, 아마도 아즈텍의 신과 여신들을 배에 싣고 동쪽으로 달아났으리라.


2. 오이디푸스


소설의 결말에서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연상된다. 작가가 허구로 첨가한 이야기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학살한 원주민의 후예가 살아 남았다는 사실. 마니카텍스라는 이 자가 아즈텍에 건너가서 1520년이 되기 전에 그들을 멸망시킨 위협적인 종족의 존재를 알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즈텍의 마지막 후손 역할을 마니카텍스가 대신 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아즈텍을 침입한 유럽인은 콜럼버스가 아닌 코르테스였지만, 마니카텍스의 예언대로 총기로 무장한 정체모를 종족이 아즈텍의 대륙에 침입했다. 그런데 이 때, 아즈텍의 왕 목테수마는 코르테스를 신으로 알고 상전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코르테스 패거리가 손쉽게 아즈텍을 장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마니카텍스로부터 경고를 전해들은 쿠이틀라우악이라는 아즈텍의 2인자는 조카이자 아즈텍의 후계자인 쿠아우테모크를 바다로 빼돌림으로써 아즈텍 인류의 멸종을 막아낸다.


쿠아우테모크는 코르테스가 아니었다면 목테수마를 이어 아즈텍의 왕이 될 인물이었지만, 코르테스의 침입으로 인하여 낯선 땅인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흘러들어간다. 예언에 따르면 쿠아우테모크는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자였지만, 터키(오스만 제국)에서 그의 기반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쿠아우테모크는 오스만 제국의 왕위 쟁탈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제인 셀림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쿠아우테모크는 셀림의 죽은 아들과 나이가 같은 우연까지 겹쳐서 셀림의 후계자가 되는데, 그가 바로 술레이만 1세가 된다.


3. 권선징악


술레이만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알려져 있다. 술레이만과 동시대를 살았던 아즈텍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코르테스의 에스파냐. 그곳의 왕 카를 5세는 술레이만의 의지를 이어받은 오스만 제국의 군사들에 의하여 여러번 참패한다. 술레이만의 의지는 168의 문장에 잘 나타나있다.


168. 에스파냐 군주국을 벌해야만 했다. 술탄 자신을 위해, 쿠이틀라우악을 위해, 말살당해 더는 목소리도 국기도 갖지 못하는 그의 백성을 위해.


멜라니 사들레르 작가제국주의자의 복수를 아즈텍의 후예가 하게 된다는 허구의 결말을 창조해서 16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러한 비판의식을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대신한 소설이 바로 <세상의 위대한 이들은 어떻게 배를 타고 유람하는가>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78. 권력은 일관성 없는 이야기로 광인을 만들어낸다. (...) 체제의 응집력은 균열과 틈에 맞서 맹렬히 싸우고, 그 응집력을 해치고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


181. 이 세상의 위대한 인물들이 배를 타고 자기 얘기를 할 때는 모든 것이 표류한다. 결국 남는 건 물결 뿐이다. 그리고 해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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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 인 헤븐
가와이 간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천국의 악마


14. 돈을 따서 돌아간 날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잃게 된다. 이것을 이해하고 돈을 잃어도 '즐겁게 놀았으니 그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도박이다. 

37. 한 놈을 죽이면 범죄자이지만 100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고 하잖아. 도박도 마찬가지야. 한 놈을 벗겨먹으면 원망을 듣지만 100만 명을 벗겨 먹으면 존경을 받지. 수가 행위를 신성하게 만들어.


도박의 신. 천재 마슈. 그는 살아 있는 존재지만, 세상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마슈는 살아남기 위하여 부패한 사회의 틈으로 숨었다. 믿음을 잃은 마슈는 인간을 위해서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박으로 부와 권력을 잡은 천재는 인간이 꿈꾸는 욕망의 대부분을 이해했지만, '인간은 왜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라는 의문을 풀 수 없었다. 마슈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지 '기요스'라는 이름의 카지노 특구 지역을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카지노월드에서 걷히는 수입은 초고령의 일본 사회에 닥친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므로 국가주의 체제의 정부로서는 매우 환영할만한 경제활동이었다.


504. 너희 세계에 만연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시스템, 아니, 착취하려고 하는 집합의식이나 집합자아를 '신'이라 부른다면, 그 '신'의 의지를 따르고 그 의지를 실현하려고 움직이는 모든 존재가 '천사'인 것이다. 그것은 정부나 지자체일 수도 있고, 기업이나 단체나 조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모든 개인일 수도 있다. (...) 그리고 '천사'는 계속 태어날 수 있다. 나를 체포하거나 죽여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너희에게 악의가 있고 그 악의의 집합체인 '신'이 존재하는 이상. '천사'는 얼마든지 무수하게 태어난다. 원래 '천사'는 영겁으로 끝없이 계속 태어나는 것이다.


<데블 인 헤븐>. 천국 안의 악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2023년. 도쿄 만을 메워서 세운 카지노 월드는 겉으로 보기에 분명 쾌락과 환희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천국이었다. 그는 기요스의 설계자로서 '천사'로 불리길 바랬고,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는 실제로 '천사'로 불렸다. 그를 악마로 보는 사람들은 소설세계의 밖에서 존재하는 사람들과 소설세계 안의 디스토피아에 맞서는 소수의 인물로 제한되었다.


2. 빅브라더 마슈


<데블 인 헤븐>에서는 인간을 도박으로 인도하는 작업은 절대적인 감시와 통제 속에서 진행 중이었다. 마슈와 국가가 공조하여 벌이는잘못된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스와 고스케, 진자이의 추적 과정을 가와이 간지 작가는<데블 인 헤븐>을 통하여 차곡차곡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각 인물은 'OOO 자'로 정의된다. 개개인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행위 속의 목적 자아로 불린다. 이들이 마슈의 정체를 밝히고, 그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유는 당연하다. 어떤 인간이라도 국가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인간의 자유를 강제하거나 그들의 목숨을 마음대로 거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501. 안전을 우선하며 행동한다면 생물은 멸종되고 만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모든 생물에게는 리스크에 매혹되고 리스크를 원하고 리스크를 반기는 본능이 숨어 있다. 바로 이것이 노인들을 여기로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며 알아낸 진실이다.


501. 그래서 너희 인간들은 도박에 끌리는 거다. 살아 있는 이상, 도박의 유혹에 절대로 저항할 수 없다. 생각할 것도 없다. 주식 시장도, 환율도, 신용 거래도, 보험 제도도 다 경제 활동이라는 허울을 쓴 도박이다. 너희 인간 사회 자체가 리스크를 좋아하는 본능 위에 아슬아슬하게 성립해 있다는 말이다.


503. 너희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있다. 너희가 모이면 그 악의가 모여서 농축되고 증폭된다. 그리고 너희가 거대한 집단, 가령 국가 같은 집단을 이루면 악의의 집합은 독립하여 하나의 의사가 되고, 그 의사는 집단 전체를 지배한다. (...) 너희 인간은 말하자면 벌이나 개미, 흰개미 같은 초개체인거다. 그 벌레들은 공통 의사에 제어되어 마치 설계도라도 있는 것처럼 정교한 둥지를 만들어내지. 너희도 그런 벌레처럼 공통 의사에 제어되어 사회를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이스트헤븐타워는 결국 거대한 개미무덤 같은 것이다.


마슈의 입을 빌어서 흘러나오는 이 문장들에서 작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하여 마슈가 인간을. 다시 말해서, 권력자가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위에 서술된 문장 가운데 리스크를 반기는 본능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다음과 같은 가르침.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과 같은 말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쓴 <다윗과 골리앗>의 폭격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챕터를 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로버트 그린의 책이나 마키아벨리의 책, 그리고 심지어 니체의 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솔직히 마슈가 제기하는 인간 본능의 그림자와 그 본능에 충실하게 설계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막연하게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부는 저항하고 있지만, 그 저항은 미미한 상태일 뿐, 우리 사회는 마슈가 말하는 대로 경제 활동이라는 허울을 쓴 도박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는 언제든지 마슈의 지배같은 비극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었다. 가와이 간지 작가는 그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3. 인간 마슈


마슈가 저지른 짓은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왜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것과 별개로. 자신이야말로 심도 깊은 눈으로 사회를 고찰할 수 있는 유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천사'. 즉, 데블 인 헤븐을 자처했을 것이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구를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마슈도 역시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작가가 설정한 이 한계 덕분에 스와와 진자이가 '야곱의 계단'을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마슈의 동기를 어린 시절의 궁핍과 연결지어 근본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를 배신한 인간을 자신의 발 밑에 두고 지배하려는 복수심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학대에 의하여 생존을 위협당했던 히틀러가 전체주의자가 되어 분노를 표출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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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차르 -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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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틴 평전


뉴욕타임스 기자. 스티븐 리 마이어스라는 미국인이 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평전이다. 이 평전은 푸틴의 이력을 시대순으로 짚어나가는 형식의 책이다. 나는 푸틴이라는 사람을 모른다. 그저, 오래전 그가 흘린 눈물. 차가운 권력자의 눈물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푸틴이라는 사람을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가 되려는 야망을 보이지 않았던 충실한 일꾼. 위협적이지 않아서 대통령이 된 푸틴이 어떻게 해서 오만한 권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2. 러시아의 다크 나이트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고담시티의 평화를 위해서 기꺼이 악당이 되기로 한다. 현재 러시아에도 과거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악당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봐주길 원한다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배트맨처럼 선한 악당인지. 배트맨과 달리 오만한 악당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지만 푸틴이라는 인물은 조커처럼 이유 없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테러의 목적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집권 즈음에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간혹 벌어지던 자살폭탄테러 사건에 대한 의혹은 의혹으로 남겨두려한다.


3. 푸틴의 정치관


<뉴 차르>에서 묘사한 푸틴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푸틴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우선하지 않는다. 국민보다는 국가를 위한 정치를 한다. 국가가 잘되면 국민도 따라서 잘 된다는 주의다. 국가주의라고 부르면 되겠다.


둘째, 푸틴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는 주체는 오직 푸틴 자신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좋은 민주주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나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566페이지 실려있는 적나라한 팩트폭행은 간지럽다.


566. 아마추어들이 노골적인 무더기 투표행위와 유권자들을 버스에 태워 투표소를 옮겨 다니며 투표하는 장면 등을 휴대폰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렸다. 모스크바 제2501 투표소에서 늙수그레한 관리 책임자가 투표용지 한 다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기 손으로 찍어대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했다.


셋째, 이렇게 해도 문제이고, 저렇게 해도 문제라면 내가 생각하는 러시아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겠다. 결과가 좋다면 부패한 인물과 관계를 맺고 거래하는 등. 구린내 나는 과정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중국도 꽌시가 골칫거리고, 우리나라도 비선실세가 권력을 장악하곤 하는데, 러시아의 푸틴 역시 '블라트'라는 비공식적인 연줄과 일을 도모하는 것을 선호한다.


626. 부패는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마치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부패를 이용해 사람을 협박하기도 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연루되지 않았다고 해도 처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부패를 무기로 누구든지 협박하고 길들일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푸틴이 러시아의 경제 발전을 부르짖으며 벌인 사업은 대부분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의 개발이다. 푸틴은 이것으로부터 생긴 이익을 미끼로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신흥재벌을 유혹하여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러시아의 경제는 자원개발로 인한 낙수효과를 통해 성장하는데, 혹자는 이것을 '포템킨 미라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째, 그는 텔레비전을 통한 이미지 정치를 선호한다. 푸틴은 공개적으로는 국민들을 향해서 개인숭배를 배격한다고 강조한 적도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푸틴은 아이스하키와 유도를 즐기는 건강하고 강인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노출하는 것도 모자라 러시아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는 감추고,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는 선전용 방송을 내보내기를 즐긴다.  


4. 80%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이 평전은 미국인이 썼기 때문에 푸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중심을 잘 잡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푸틴이 계획하는 러시아의 미래를 잘 짚어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뉴 차르>라는 제목과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푸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8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로 푸틴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642.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손에 맡겨 놓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입니다. 러시아처럼 큰 나라에서 국민이 이렇게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674. 그가 느끼는 불안감, 열정, 허약함, 열등감이 그대로 국가정책이 되었다, 그가 피해망상에 빠지면 국가 전체가 적을 두려워하고 스파이를 겁내야 한다.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면 모든 각료가 함께 밤을 새워야 한다. 그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 모두가 금주를 해야 하고, 그가 술에 취하면 모두 함께 취해야 한다. (...) 그가 미국을 좋아하지 않으면 전 국민이 미국을 싫어해야 한다.


5.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유라시아연합


634. 크렘린 복귀 선언 이후 푸틴은 2011년 첫 정책발표를 통해 소련연방붕괴 이후 표류해 온 연방공화국들을 다시 묶어 유라시아경제연합이라는 이름의 광범위한 경제협력체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푸틴은 이미 유럽연합과 나토에 편입된 발트해 3국은 제외하고, 이 경제 블록을 유럽연합의 대항마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시킬 생각이었다. 유라시아와 흑해에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스텝지대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636. 푸틴이 유라시아연합에 가장 끌어들이고 싶은 나라는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진 나라이다. 우크라이나인들 다수는 인종적으로 러시아인들이고,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인 재앙에 의해 조국을 떠나 그곳으로 간 사람들이라고 푸틴은 생각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천연가스와 원유의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압박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미국과 관계를 끊으라고 협박하고, 150억 달러라는 당근책을 제시한다. 푸틴은 야누코비치로 하여금 러시아의 손을 잡도록 유도한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 러시아와 손을 잡은 선택은 우크라니아 내에서 탄핵 역풍을 일으켜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다. 


푸틴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트림반도에 군사를 투입한다. 그렇게 그는 크림반도를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복속시켰다. 그 이후 푸틴은 크림반도에 군사를 투입한 이유로 크림반도 내의 자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크림반도 분쟁은 이렇게 생겨났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내에 속한 프로축구팀을 자국 리그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최근에는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의 총선을 진행하여 관리를 선출하고 있다.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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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 상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 압도적인 스케일


설익은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의 진지함은 독자를 압도할만큼 강렬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일본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파1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일본 사회파 소설을 왜 좋아하는지 <방해자>를 읽으면서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2004년 발표한 이 소설은 하이텍스 혼조 지사에서 발생한 화재가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다. 사건을 감추려는 사람과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이 있다. 이 등장인물들의 내적갈등은 읽는 내내 즐거움과 무거움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방해자라는 소설은 단순히 화재사건의 진범을 찾가내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층위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면을 모조리 다루고 있다. 그래서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의심하는 이웃들의 소문과 뒷담화,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는 언론의 과잉취재,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사원의 열악한 처우문제, 노동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헌납금을 요구하는 어그러진 노동쟁의, 자본을 등에 업고 누군가의 정신을 더럽히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기업가의 권력남용,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는 꿈이 없는 사회와 미성년자 강력 범죄, 그리고 내부자들. 야쿠자와 기업 간의 비리, 경찰과 야쿠자 간의 비리, 기업 내부의 횡령과 배임, 경찰 내부의 비리와 권력싸움.


방해자는 이 모든 사회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2. 누군가는 누군가의 방해자


<방해자>의 주요 인물은 비행청소년 유스케, 가정주부 겸 파트타임 캐셔 교코, 그리고 혼조서 경보부 구노 이렇게 세 명이다. 이 소설은 세명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교코와 구노가 소설의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면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교코와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구노는 하이텍스 혼조 지사의 화재사건 때문에 엮인다.


소설을 살펴보면 오쿠다 히데오 작가아주 세밀하게 유스케와 주변인물, 교코와 주변인물, 구노와 주변인물. 이러한 관련 인물들을 연관짓는다. 작가는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줄거리를 이어나간다. 그의 방송작가 경력을 뒷받침하듯 드라마식 구성이다. 게다가 <방해자>라는 소설의 제목답게. 모든 인물은 선한 의도에서건 악한 의도에서건 관계없이 어떤 사람의 방해자 역할을 맡는다. 먹이사슬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다는 말이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이러한 풍경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다.


3. 교코의 관점


교코의 남편이 저지른 범죄는 명백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는 비밀독서단에서 소개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남편>의 경우와는 다르다. 죄를 의심받는 상황에서 교코의 남편 시게노리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2차 범행을 저지른다. 교코 역시 남편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방화를 저지른다. 교코가 남편이 범죄자가 되었다는 상황에 직면해서 한 행동은 그것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죄를 감춰야 한다. 그 따위 것이 아니다. 교코는 경제적인 안정을 유지해야 했고,아이의 미래를 지켜야 했다.


354. 늘 관객 편에 있었다. 감상만 말하면 되었다. 미칠 듯한 사랑도, 빵 하나를 열 명이 나눠 먹어야만 하는 치열한 싸움도,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았다. 지금 그것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368. 자신은 줄곧 조수석에 앉는 인생을 걸어왔다. 운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끌려다니는 입장에 만족했었다. 앞으로는 본인이 직접 모든 핸들을 잡아야만 한다. 가오리와 겐타를 지킬 사람은 어머니인 자신밖에 없으니까.


<방해자> 속에서 교코는 위의 독백처럼 미래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왔음을 자책한다. 남편의 도벽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결과. 회삿돈을 횡령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방화를 저지르는 최악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남편이 범죄자라는 사실. 그리고 범죄자 가족이라는 연대의식.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노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는 처참했다. 교코에게 닥친 현실을 잊기 위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해봤자 경찰의 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아이들의 미래가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굴레에 갇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교코의 심리묘사를 읽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저지른 잘못을 혼자 뒤집어 쓰려하고 있었다. 교코는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고통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까지 잘 해왔다. 잘못이 있다면 남편을 너무 믿었다는 것?


이 가족의 실질적인 문제는 남편인 시게노리의 도벽에 있다. 교코가 남편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새로운 알리바이를 조작하러 나선 장면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그녀의 단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방법이 옳지 않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 이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의 곁에 남아서 조언을 건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418. 역을 찾자.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한 표현이겠지만 되도록 나만의 인생을 살자. 아내도 아닌. 어머니도 아닌 나만의 인생을. 그래, 그렇게 살자. 그리고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너무 정색하고 말하는 게 아닌, 나만의 비극에 도취되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런 결론. 이같은 깨달음은 올바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갑작스러운 결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뒤에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듯 싶은데 중간에서 뚝 끊어진 감이 있다.


4. 구노의 관점


구노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방해자>의 인간들은 대부분 사악하기 그지 없지만 구노만큼은 악당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성격은 내부자들에게는 눈엣가시 = 방해자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구노에게 방해자였다. 구노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커다란 고통이 찾아온 시기는 7년 전이었다. 구노는 덤프트럭 사고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 아내의 옆자리에는 장모가 타고 있었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구노는 장모를 친어머니 삼아 7년의 시간을 견뎌오고 있었다.


<방해자>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모든 상황들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굉장히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옮겨적듯이 말이다. 이건 구노의 시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소설 전체가 그렇다. 결말로 치닫는 하권에 이르러서야 등장인물의 내면묘사에 상당부분 공을 들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사실적인 문장을 나열한다.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구노의 지극한 효성과 그로 인한 사려깊은 행동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방해자의 중요한 비밀에 관해서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가겠다. 나는 이 비밀을 깨닫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계는 7년 전에 멈춰있었던 것이구나. 그리고 그의 행복 또한 7년 전 그 날에 멈춰있던 것이구나.


구노는 화재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의자 수사를 하면서 남편의 부인이라는 여자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친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피의자의 부인과 형사의 관계. 굉장히 어색하면서도 껄끄러운 관계다. 구노가 보기에는 남편이 벌인 자작극 때문에 가정의 행복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 여자였다. 다른 부서는 방화범을 유쾌범으로 특정하고, 야쿠자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수사하는데 반해서 이 형사는 진실에 접근하고 있었다. 문제는 구노 형사는 7년 전에 가족을 잃은 남자이며, 가족을 잃은 동시에 행복 또한 잃어버린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남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교코의 모습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모습. 행복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모습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애처로웠을 것이다. 게다가 구노의 부인 사나에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교코와 같은 나이이기도 했다. 피부도 새하얀 교코를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사나에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불륜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행복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눈에 자신처럼 행복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의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구노로서는 교코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이었으므로. 사나에와 닮은 여인의 불행을 사나에의 불행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그는 불안한 그녀를 쫓아간다.


5. 옮기지 못한 많은 이야기


<방해자>에는 여전히 언급조차 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해관계에 얽힌 이야기.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가 누군가의 방해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야기. 어쩌면 방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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