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자 - 상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 압도적인 스케일


설익은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의 진지함은 독자를 압도할만큼 강렬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일본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파1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일본 사회파 소설을 왜 좋아하는지 <방해자>를 읽으면서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2004년 발표한 이 소설은 하이텍스 혼조 지사에서 발생한 화재가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다. 사건을 감추려는 사람과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이 있다. 이 등장인물들의 내적갈등은 읽는 내내 즐거움과 무거움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방해자라는 소설은 단순히 화재사건의 진범을 찾가내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층위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면을 모조리 다루고 있다. 그래서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의심하는 이웃들의 소문과 뒷담화,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는 언론의 과잉취재,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사원의 열악한 처우문제, 노동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헌납금을 요구하는 어그러진 노동쟁의, 자본을 등에 업고 누군가의 정신을 더럽히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기업가의 권력남용,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는 꿈이 없는 사회와 미성년자 강력 범죄, 그리고 내부자들. 야쿠자와 기업 간의 비리, 경찰과 야쿠자 간의 비리, 기업 내부의 횡령과 배임, 경찰 내부의 비리와 권력싸움.


방해자는 이 모든 사회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2. 누군가는 누군가의 방해자


<방해자>의 주요 인물은 비행청소년 유스케, 가정주부 겸 파트타임 캐셔 교코, 그리고 혼조서 경보부 구노 이렇게 세 명이다. 이 소설은 세명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교코와 구노가 소설의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면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교코와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구노는 하이텍스 혼조 지사의 화재사건 때문에 엮인다.


소설을 살펴보면 오쿠다 히데오 작가아주 세밀하게 유스케와 주변인물, 교코와 주변인물, 구노와 주변인물. 이러한 관련 인물들을 연관짓는다. 작가는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줄거리를 이어나간다. 그의 방송작가 경력을 뒷받침하듯 드라마식 구성이다. 게다가 <방해자>라는 소설의 제목답게. 모든 인물은 선한 의도에서건 악한 의도에서건 관계없이 어떤 사람의 방해자 역할을 맡는다. 먹이사슬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다는 말이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이러한 풍경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다.


3. 교코의 관점


교코의 남편이 저지른 범죄는 명백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는 비밀독서단에서 소개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남편>의 경우와는 다르다. 죄를 의심받는 상황에서 교코의 남편 시게노리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2차 범행을 저지른다. 교코 역시 남편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방화를 저지른다. 교코가 남편이 범죄자가 되었다는 상황에 직면해서 한 행동은 그것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죄를 감춰야 한다. 그 따위 것이 아니다. 교코는 경제적인 안정을 유지해야 했고,아이의 미래를 지켜야 했다.


354. 늘 관객 편에 있었다. 감상만 말하면 되었다. 미칠 듯한 사랑도, 빵 하나를 열 명이 나눠 먹어야만 하는 치열한 싸움도,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았다. 지금 그것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368. 자신은 줄곧 조수석에 앉는 인생을 걸어왔다. 운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끌려다니는 입장에 만족했었다. 앞으로는 본인이 직접 모든 핸들을 잡아야만 한다. 가오리와 겐타를 지킬 사람은 어머니인 자신밖에 없으니까.


<방해자> 속에서 교코는 위의 독백처럼 미래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왔음을 자책한다. 남편의 도벽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결과. 회삿돈을 횡령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방화를 저지르는 최악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남편이 범죄자라는 사실. 그리고 범죄자 가족이라는 연대의식.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노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는 처참했다. 교코에게 닥친 현실을 잊기 위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해봤자 경찰의 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아이들의 미래가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굴레에 갇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교코의 심리묘사를 읽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저지른 잘못을 혼자 뒤집어 쓰려하고 있었다. 교코는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고통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까지 잘 해왔다. 잘못이 있다면 남편을 너무 믿었다는 것?


이 가족의 실질적인 문제는 남편인 시게노리의 도벽에 있다. 교코가 남편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새로운 알리바이를 조작하러 나선 장면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그녀의 단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방법이 옳지 않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 이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의 곁에 남아서 조언을 건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418. 역을 찾자.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한 표현이겠지만 되도록 나만의 인생을 살자. 아내도 아닌. 어머니도 아닌 나만의 인생을. 그래, 그렇게 살자. 그리고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너무 정색하고 말하는 게 아닌, 나만의 비극에 도취되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런 결론. 이같은 깨달음은 올바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갑작스러운 결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뒤에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듯 싶은데 중간에서 뚝 끊어진 감이 있다.


4. 구노의 관점


구노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방해자>의 인간들은 대부분 사악하기 그지 없지만 구노만큼은 악당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성격은 내부자들에게는 눈엣가시 = 방해자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구노에게 방해자였다. 구노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커다란 고통이 찾아온 시기는 7년 전이었다. 구노는 덤프트럭 사고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 아내의 옆자리에는 장모가 타고 있었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구노는 장모를 친어머니 삼아 7년의 시간을 견뎌오고 있었다.


<방해자>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모든 상황들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굉장히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옮겨적듯이 말이다. 이건 구노의 시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소설 전체가 그렇다. 결말로 치닫는 하권에 이르러서야 등장인물의 내면묘사에 상당부분 공을 들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사실적인 문장을 나열한다.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구노의 지극한 효성과 그로 인한 사려깊은 행동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방해자의 중요한 비밀에 관해서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가겠다. 나는 이 비밀을 깨닫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계는 7년 전에 멈춰있었던 것이구나. 그리고 그의 행복 또한 7년 전 그 날에 멈춰있던 것이구나.


구노는 화재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의자 수사를 하면서 남편의 부인이라는 여자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친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피의자의 부인과 형사의 관계. 굉장히 어색하면서도 껄끄러운 관계다. 구노가 보기에는 남편이 벌인 자작극 때문에 가정의 행복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 여자였다. 다른 부서는 방화범을 유쾌범으로 특정하고, 야쿠자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수사하는데 반해서 이 형사는 진실에 접근하고 있었다. 문제는 구노 형사는 7년 전에 가족을 잃은 남자이며, 가족을 잃은 동시에 행복 또한 잃어버린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남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교코의 모습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모습. 행복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모습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애처로웠을 것이다. 게다가 구노의 부인 사나에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교코와 같은 나이이기도 했다. 피부도 새하얀 교코를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사나에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불륜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행복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눈에 자신처럼 행복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의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구노로서는 교코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이었으므로. 사나에와 닮은 여인의 불행을 사나에의 불행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그는 불안한 그녀를 쫓아간다.


5. 옮기지 못한 많은 이야기


<방해자>에는 여전히 언급조차 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해관계에 얽힌 이야기.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가 누군가의 방해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야기. 어쩌면 방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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