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위대한 이들은 어떻게 배를 타고 유람하는가
멜라니 사들레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1. 팩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독창적인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들어낸 팩션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하비에르 레오나르도 보르헤스와 터키 출신의 하칸이라는 두 명의 역사학자인데,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금껏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새로운 유물과 단서를 발견한다. 그 단서를 추적하여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진실에 접근하려고 했던 사람은 보르헤스와 하칸이 처음은 아니었다. 루사르 첼릭이라는 인물이 이미 보르헤스와 하칸의 의문을 앞서서 찾아나섰지만, 당신들의 조상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국가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저지당한다. 보르헤스와 하칸은 루사르 첼릭이 찾아낸 유산까지 캐내는데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진실에 접근한다.


16. 이스탄불에서 직접 보내온 필사본 속에서 아즈텍의 대지의 여신인 코아틀리쿠에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 아즈텍 여신이 어떤 이유로, 언제나 북적이던 오스만 궁정에서 할 일이 상당히 많았을 터키 화가의 정신을 사로잡았을까?


그 사건이란 제국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 1520년 아즈텍 문명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신항로 개척에 열을 올리던 유럽 열강들에 의하여. 특히. 에스파냐의 코르테스의 침입으로 인하여 멸망했다고 알려져있다. <세상은...>의 작가인 멜라니 사들레르는 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피지배인들의 실낱같은 저항을 상상한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멸망했을리가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43. 샤 쿨리의 그림대로 믿어보자면 쿠아우테모크는 코르테스의 손에 죽지 않았고, 아마도 아즈텍의 신과 여신들을 배에 싣고 동쪽으로 달아났으리라.


2. 오이디푸스


소설의 결말에서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연상된다. 작가가 허구로 첨가한 이야기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학살한 원주민의 후예가 살아 남았다는 사실. 마니카텍스라는 이 자가 아즈텍에 건너가서 1520년이 되기 전에 그들을 멸망시킨 위협적인 종족의 존재를 알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즈텍의 마지막 후손 역할을 마니카텍스가 대신 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아즈텍을 침입한 유럽인은 콜럼버스가 아닌 코르테스였지만, 마니카텍스의 예언대로 총기로 무장한 정체모를 종족이 아즈텍의 대륙에 침입했다. 그런데 이 때, 아즈텍의 왕 목테수마는 코르테스를 신으로 알고 상전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코르테스 패거리가 손쉽게 아즈텍을 장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마니카텍스로부터 경고를 전해들은 쿠이틀라우악이라는 아즈텍의 2인자는 조카이자 아즈텍의 후계자인 쿠아우테모크를 바다로 빼돌림으로써 아즈텍 인류의 멸종을 막아낸다.


쿠아우테모크는 코르테스가 아니었다면 목테수마를 이어 아즈텍의 왕이 될 인물이었지만, 코르테스의 침입으로 인하여 낯선 땅인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흘러들어간다. 예언에 따르면 쿠아우테모크는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자였지만, 터키(오스만 제국)에서 그의 기반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쿠아우테모크는 오스만 제국의 왕위 쟁탈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제인 셀림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쿠아우테모크는 셀림의 죽은 아들과 나이가 같은 우연까지 겹쳐서 셀림의 후계자가 되는데, 그가 바로 술레이만 1세가 된다.


3. 권선징악


술레이만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알려져 있다. 술레이만과 동시대를 살았던 아즈텍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코르테스의 에스파냐. 그곳의 왕 카를 5세는 술레이만의 의지를 이어받은 오스만 제국의 군사들에 의하여 여러번 참패한다. 술레이만의 의지는 168의 문장에 잘 나타나있다.


168. 에스파냐 군주국을 벌해야만 했다. 술탄 자신을 위해, 쿠이틀라우악을 위해, 말살당해 더는 목소리도 국기도 갖지 못하는 그의 백성을 위해.


멜라니 사들레르 작가제국주의자의 복수를 아즈텍의 후예가 하게 된다는 허구의 결말을 창조해서 16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러한 비판의식을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대신한 소설이 바로 <세상의 위대한 이들은 어떻게 배를 타고 유람하는가>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78. 권력은 일관성 없는 이야기로 광인을 만들어낸다. (...) 체제의 응집력은 균열과 틈에 맞서 맹렬히 싸우고, 그 응집력을 해치고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


181. 이 세상의 위대한 인물들이 배를 타고 자기 얘기를 할 때는 모든 것이 표류한다. 결국 남는 건 물결 뿐이다. 그리고 해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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