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 인 헤븐
가와이 간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천국의 악마


14. 돈을 따서 돌아간 날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잃게 된다. 이것을 이해하고 돈을 잃어도 '즐겁게 놀았으니 그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도박이다. 

37. 한 놈을 죽이면 범죄자이지만 100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고 하잖아. 도박도 마찬가지야. 한 놈을 벗겨먹으면 원망을 듣지만 100만 명을 벗겨 먹으면 존경을 받지. 수가 행위를 신성하게 만들어.


도박의 신. 천재 마슈. 그는 살아 있는 존재지만, 세상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마슈는 살아남기 위하여 부패한 사회의 틈으로 숨었다. 믿음을 잃은 마슈는 인간을 위해서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박으로 부와 권력을 잡은 천재는 인간이 꿈꾸는 욕망의 대부분을 이해했지만, '인간은 왜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라는 의문을 풀 수 없었다. 마슈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지 '기요스'라는 이름의 카지노 특구 지역을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카지노월드에서 걷히는 수입은 초고령의 일본 사회에 닥친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므로 국가주의 체제의 정부로서는 매우 환영할만한 경제활동이었다.


504. 너희 세계에 만연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시스템, 아니, 착취하려고 하는 집합의식이나 집합자아를 '신'이라 부른다면, 그 '신'의 의지를 따르고 그 의지를 실현하려고 움직이는 모든 존재가 '천사'인 것이다. 그것은 정부나 지자체일 수도 있고, 기업이나 단체나 조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모든 개인일 수도 있다. (...) 그리고 '천사'는 계속 태어날 수 있다. 나를 체포하거나 죽여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너희에게 악의가 있고 그 악의의 집합체인 '신'이 존재하는 이상. '천사'는 얼마든지 무수하게 태어난다. 원래 '천사'는 영겁으로 끝없이 계속 태어나는 것이다.


<데블 인 헤븐>. 천국 안의 악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2023년. 도쿄 만을 메워서 세운 카지노 월드는 겉으로 보기에 분명 쾌락과 환희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천국이었다. 그는 기요스의 설계자로서 '천사'로 불리길 바랬고,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는 실제로 '천사'로 불렸다. 그를 악마로 보는 사람들은 소설세계의 밖에서 존재하는 사람들과 소설세계 안의 디스토피아에 맞서는 소수의 인물로 제한되었다.


2. 빅브라더 마슈


<데블 인 헤븐>에서는 인간을 도박으로 인도하는 작업은 절대적인 감시와 통제 속에서 진행 중이었다. 마슈와 국가가 공조하여 벌이는잘못된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스와 고스케, 진자이의 추적 과정을 가와이 간지 작가는<데블 인 헤븐>을 통하여 차곡차곡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각 인물은 'OOO 자'로 정의된다. 개개인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행위 속의 목적 자아로 불린다. 이들이 마슈의 정체를 밝히고, 그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유는 당연하다. 어떤 인간이라도 국가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인간의 자유를 강제하거나 그들의 목숨을 마음대로 거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501. 안전을 우선하며 행동한다면 생물은 멸종되고 만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모든 생물에게는 리스크에 매혹되고 리스크를 원하고 리스크를 반기는 본능이 숨어 있다. 바로 이것이 노인들을 여기로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며 알아낸 진실이다.


501. 그래서 너희 인간들은 도박에 끌리는 거다. 살아 있는 이상, 도박의 유혹에 절대로 저항할 수 없다. 생각할 것도 없다. 주식 시장도, 환율도, 신용 거래도, 보험 제도도 다 경제 활동이라는 허울을 쓴 도박이다. 너희 인간 사회 자체가 리스크를 좋아하는 본능 위에 아슬아슬하게 성립해 있다는 말이다.


503. 너희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있다. 너희가 모이면 그 악의가 모여서 농축되고 증폭된다. 그리고 너희가 거대한 집단, 가령 국가 같은 집단을 이루면 악의의 집합은 독립하여 하나의 의사가 되고, 그 의사는 집단 전체를 지배한다. (...) 너희 인간은 말하자면 벌이나 개미, 흰개미 같은 초개체인거다. 그 벌레들은 공통 의사에 제어되어 마치 설계도라도 있는 것처럼 정교한 둥지를 만들어내지. 너희도 그런 벌레처럼 공통 의사에 제어되어 사회를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이스트헤븐타워는 결국 거대한 개미무덤 같은 것이다.


마슈의 입을 빌어서 흘러나오는 이 문장들에서 작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하여 마슈가 인간을. 다시 말해서, 권력자가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위에 서술된 문장 가운데 리스크를 반기는 본능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다음과 같은 가르침.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과 같은 말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쓴 <다윗과 골리앗>의 폭격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챕터를 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로버트 그린의 책이나 마키아벨리의 책, 그리고 심지어 니체의 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솔직히 마슈가 제기하는 인간 본능의 그림자와 그 본능에 충실하게 설계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막연하게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부는 저항하고 있지만, 그 저항은 미미한 상태일 뿐, 우리 사회는 마슈가 말하는 대로 경제 활동이라는 허울을 쓴 도박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는 언제든지 마슈의 지배같은 비극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었다. 가와이 간지 작가는 그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3. 인간 마슈


마슈가 저지른 짓은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왜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것과 별개로. 자신이야말로 심도 깊은 눈으로 사회를 고찰할 수 있는 유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천사'. 즉, 데블 인 헤븐을 자처했을 것이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구를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마슈도 역시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작가가 설정한 이 한계 덕분에 스와와 진자이가 '야곱의 계단'을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마슈의 동기를 어린 시절의 궁핍과 연결지어 근본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를 배신한 인간을 자신의 발 밑에 두고 지배하려는 복수심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학대에 의하여 생존을 위협당했던 히틀러가 전체주의자가 되어 분노를 표출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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