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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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드라마 시사회 때, 한 배우가 4회까지만 시청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던 말처럼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 200페이지 정도는 읽어봐야 참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가 '오호라' 싶었던 구간이 200페이지 즈음이라서 정확하게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인내심은 가지고 접근해야 할 해럴드의 순례기다.

 

초반에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해럴드 프라이라는 일흔이 넘은 노인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한편의 그럴듯한 성장 소설을 만들기 위해 주인공을 너무 초라하게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걸 감당할 능력에 관한 의문부호만 잔뜩 안겨준 채.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도착한 편지에 얽힌 정확한 설명도 없이 시작하자마자 냅다 저질러버려서 당황스러웠다. 

 

2. 또 다른 이유는 이 소설은 '걷는 행위'가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걷는 발자국을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자기반성을 통한 내면의 성장과 갈등 국면에 서 있었던 관계의 회복이 점층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속도가 2배 빨라지면 2배 행복해질 것이라고 광고하는 통신회사 카피라이터는 과연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느림의 미학'이 돋보인다.

 

3. 소설 외적인 부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의 제목에 순례가 들어간다는 것과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연상된다. 분명히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안타깝게도 문제의 그 소설을 읽어보질 않아서 뭐라고 덧붙일 말은 없다.  

 

4. 다만 내가 읽어본 소설 가운데서 이 책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주인공 해럴드 프라이의 시선이 아닌 타자가 바라보는 해럴드 프라이의 모습은 왠지 돈키호테 같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르반테스가 애초에 의도하려 했던 기사도의 풍자가 아닌 낭만처럼 그의 순례 또한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 해럴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점은 돈키호테가 봤으면 아마도 많이 부러워했을 듯하다. 하지만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그 믿음이 볼테르의 <캉디드, 낙관주의>에서 봤었던 비판적인 관점에서의 그릇된 낙관주의로 옮겨간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5. 결론적으로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엎지른 물을 다시 채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보통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록 물을 주워담지는 못할지언정 다시 채울 수는 있다. 따라서 물을 다시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물이 엎질러졌다고 후회만 하고 있으면 아마도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늦은 나이였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해럴드 프라이의 순례는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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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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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좋지 않은 독서 버릇을 하나 발견했다. 그 버릇이 무엇이냐면. 나라는 사람은 도무지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지 열매를 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탐색하고 캐내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한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같은 책처럼 소소한 재미. 그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도 그랬다. (나중에 글로 남길 수 없는 느낌이나 감성 같은 무형의 것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할 것 인가라는 고민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2. 하루키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대체로 에세이라는 장르가 가진 장점은 낯선 관점을 엿보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야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관점에서 하루키 특유의 유머 감각을 접하면 그 순간 쓰는 나의 글도 평소 때보다 조금 더 유머러스해지고, 센스가 넘치는 착각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자뻑일까? 아닐까? 둘째 단락은 좀 그런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쓴 것 같지만 안 웃기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3. 수염이 올라와서 저녁 무렵에도 면도를 한다라….  전현무 아나운서 같은 사람처럼 수염이 엄청나게 빨리 자라는 사람은 비단 저녁 무렵뿐 아니라 수시로 면도를 해야겠지만, 얼굴에 수염이 적은 편인 나로서는 아침에 한 번 면도하면 그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얼굴에 신경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 

 

이것은 귀차니즘을 분신인 양 껴안고 살아가는 나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얼굴에 신경을 쓰는 횟수가 줄어드니 그만큼 외모에 더 무관심해질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저녁에 면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10. "인간이란 본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계기로, '자, 오늘부터 달라지자!' 하고 굳게 결심하지만, 그 어떤 것이 없어져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마치 형상기억합금처럼, 혹은 뒷걸음질쳐서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는 거북이처럼 어물어물 원래 스타일로 돌아가버린다. 결심 따위는 어차피 인생의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딱히 달라지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희한하게 사람은 달라진다."

 

4. 10페이지의 말에는 절반 정도 동의한다. 확실히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긴 하다. 귀차니즘이 쉬이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지로라도 어떤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을 가장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몸부림을 에너지 낭비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있다. 고수의 깨달음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수행이 부족한 듯 싶다. 

 

5. 그 외.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에는 대체적으로 반려동물, 음식, 여행, 음악 같은 식도락과 풍류를 다룬 내용이 많다. 이 글을 음미하고 있으면, 하루키의 모던스러운 풍미가 느껴진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사랑>에서는 그러한 모더니즘이 맹목적으로 서양 것을 우월하게 보는 문화사대주의로 변질되었지만, 하루키의 모더니즘은 적절히 균형을 이룬다. 유럽의 문화라고 무턱대고 찬미하지 않는다. 깔건 제대로 깐다. 

 

9. 이탈리아란 나라는 제대로 갖춰입지 않으면 레스토랑에 가도 좋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오로지 차림새로 사람을 판단하는 나라로, 인격이고 능력이고 그런 건 일상에서 거의 소용없다. 


54. 이탈리아인 드라이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뭔가 불만이 있으면 이내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동시에 손도 마구 휘두른다. 운전하면서 그러는 통에 옆에서 보고 있으면 꽤 공포스럽다. 서툰 운전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것도 이탈리아 운전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그 외 공감 가는 문장들...


39. 귀로 들리는 음성적인 말의 모든 관계성과 의미가 커다란 형광등 아래처럼 구석구석까지 명확해져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뭔가 싱겁지 않을까, 인생에는 어느 정도 터무니없는 수수께끼가 필요하다. 


44."점프하는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움은 착지를 하려는 순간부터 시작되죠."

 

기세 좋게 점프만 하는 것이라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누구든 할 것이다. 그러나 착지를 잘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75. 인생은 남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멋대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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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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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정신이 이상하다는 건 상대적 개념일세. 우린 누구나 정신이 이상해. 문제는 사회가 바람직한 행동이라 정해놓은 규칙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기능을 가졌느냐는 거지. 행동 자체만으로 정신병의 징후가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네. 그 행동이 일어난 맥락을 살펴봐야 해."


1. 작년.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스노우 맨>1에서의 해리 홀레는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레드브레스트에서의 해리 홀레는 조연같은 주연 같았다. 작가 요 네스뵈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한 인물. 특히 주인공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환영하는 바다. 

 

2.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해리 홀레의 비중은 절대로 작지 않다. 하지만 요 네스뵈의 <레드브레스트>는 그 비중을 덮을 만한 압도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시간상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밀레니엄 즈음의 대략 60년간의 세월을 아우르고, 사상적으로는 극단적인 신나치즘 세력을 주제로 다루며, 노르웨이 자국의 영토에 국한하지 않고, 전쟁 동안 <레드브레스트> 속 인물이 거닐었던 전 유럽의 영토를 아우른다. 

 

3. 극단주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고개는 내밀고 있는 현상이다. 유럽의 신나치즘. 일본의 극우파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일간 베스트와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것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경멸한다. 그 원인은 경제적인 불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나날이 빈곤해져 가는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대기업보다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할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 노동자에게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어쩌면 기득권이 이같은 새로운 구도를 생성하여 서로 싸워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상황이 사그라들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에서는 실제로 신나치즘 세력의 연쇄 테러사건이 벌어졌었고, 일본에서도 한 여중생이 재일한국인들에게 당신들 나라로 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망언을 일삼기도 했다. <레드브레스트>의 배경인 노르웨이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점들은 책의 내용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347. "저들은 아직도 제3 세계 원조나 국방예산 삭감, 여성 성직자의 출현. 동성 결혼, 새로운 이민자 등등 저 늙은이들이 싫어할 만한 모든 것에 여전히 분노하고 있지. 뼛속까지 파시스트니까.

 

4. 스릴러라는 장르 특성상 결정적인 반전이 있는 작품이라 괜히 끼적였다가 부스럼이 될 것 같아. 소설 주변만 계속 맴돌게 되는데, 줄거리를 비껴나간 곁가지. 그 안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이 했던 행동. 임진왜란 때 선조가 했던 행동과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에 직면한 노르웨이 왕실의 대처 방식이 마치 데칼코마니같이 똑같은 모습에서 기인하는 신선한 충격에. 역시 인간은 다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5. 그뿐인가. 전쟁이 끝난 후. 부득이하게 살 길을 모색하고자 (자의로 독일군에 가담한 사람들 보다 어쩔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노르웨이인) 독일군에 가담했던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쌓은 기회주의자들의 역사관은 어떠한가? 

 

기회주의자. 그들은 그들의 흠을 감추기 위해서 실존했던 역사를 감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공이 될 만한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크게 부풀린다. 그래서 역사는 왜곡된다. 물론, 완벽하게 객관적인 역사관이란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오차를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너도나도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왜곡한다면 다른 것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그것을 바라보며 느낄 사람들의 분노 역시 극단적이 될 것이다. 

 

276.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고정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오. 옳고 그름의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오. 역사가의 임무는 주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자료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살펴 그것을 제시하는 거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역사가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연구는 후세에 화석처럼 보일테지. 그들 시대의 통설의 잔재로."

 

6. 어떻게 보면 <레드브레스트>는 이러한 왜곡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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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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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세의 침략이 거세었고,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심했던 조선 말,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이 도화선이 되어 그동안 쌓였던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시작된 동학농민운동(1894년)은 그들의 이루려 했던 이상1과는 달리 한반도에 청나라와 일본의 주도권 싸움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싸움에서 이긴 일본은 동학의 2차 봉기 때, 3만 명의 병사를 제노사이드 함으로써 동학의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한다. 

 

2. 소설 <겨울잠, 봄꿈>은 그 이후의 시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비참했지만, 굳건했던 마지막 삶을 다룬다. 끊임없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전봉준은 끝내 자신의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그의 희생은 숭고하며, 소크라테스나 예수 같은 성인의 죽음과도 비견되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일본의 유혹을 앞에 두고 '와신상담'을 한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치욕적이지만 목숨을 유지한 채,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신문물을 배워왔다면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식민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상징적인 인물로서 이토 히로부미가 바라는 대로 충실한 개가 되었을까? 아니면 조국의 자주독립에 힘을 보탠 독립운동가가 되었을까? 녹두장군이라면 당연히 후자의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봉준. 그는 전자의 미래가 자기에게 닥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3. 전봉준, 그는 배신당했다. 배신당할 줄 알고도 당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를 배신한 것이 김경천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봉준이 아닌. 배신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을까? 전봉준의 의도대로 그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을까? 명예와 관련짓지 말고, 누구로부터 배신과 고발로서 챙길 수 있었던 천 냥을 돈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을까? 토사구팽. 그들의 마지막을 보면서 이 말이 참 적절하게 와 닿는다. 

 

김경천은 그래도 자기 몫의 삼 할 정도는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학운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덮어주고, 게다가 사례비로 100냥을 얹어서 주겠다는 김경천의 약속만 믿고, 전봉준의 다리를 직접 부러뜨린 하층민들. 가마꾼의 운명은 어떠했던가? 일을 꾸민 자는 김경천인데, 김경천이 받아야 했을 고통은 힘없는 그들이 대신 받는다. 정말 불합리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불합리함이 조선 사회를 규정하는 정의의 하나다. 그래서 전봉준은 조선은 더러운 나라라는 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물론, 전봉준은 조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은 놓지 않았다.) 

 

4. 일본의 회유는 집요했다. 그들은 전봉준을 붙잡고, 그를 서울로 이송하면서, 일부러 뼈저린 패배를 겪은 그 공간들을 거슬러서 올라간다. 그곳에는 목숨을 잃은 농민들의 시체가 수습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었고, 지난날. 동학운동의 올곧은 뜻에 동조하여 관청의 곳간을 내어준 조선의 관리들은 동학이 패배한 현재. 동학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그 이유는 물론 자신이 살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을 본 전봉준의 머릿속은 어떠했을까? 그 잔혹한 풍경을 눈앞에 들이밀며 조선을 욕하고, 투항을 권하며, 문물을 배워와서 조선을 직접 바꿔보라고 유혹하는 이토의 입술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생기는 갈등은 어떠했고, 전봉준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 감정의 오르내림을 <겨울잠, 봄꿈>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듯하다. 

 

5. 결국, 전봉준이 그렇게 원했던 종로 네거리에서의 죽음(복수와 환기. 숭고함의 절정)은 찾아오지 않는다. 일본이 전봉준을 회유하고 있다는 첩보를 들은 조선의 관리는 예고치 않은 날짜에 허둥지둥 전봉준의 목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순간. 그의 목을 베는 망나니의 마음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생활하기 위해 받을 '돈' 생각이 간절했다. 그 돈만 있으면 막내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살 수 있고, 먹을 음식을 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전봉준의 목을 베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이 마지막 배려인 것을 알기 때문에 재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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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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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대왕에 대한 생각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잭과 랠프에 관한 고정된 견해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불만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므로 잭의 행위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은 말릴 필요는 없다. 그것을 비판한다는 것은 육식을 하는 우리 모두가 비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의 본질을 식량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삼은 점. 살아있는 것의 목숨을 취하는 쾌감에 젖어 자신들의 동료를 무참히 살해한 점. 그리고 그것을 감추고 부정하기 위해서 가면을 뒤집어쓴 점. 그렇게 점점 자신들이 동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에 대해서는 큰 유감을 표하지만, 잭과 랠프의 다툼이 권력 투쟁의 장으로 확대하게 된 원인. 즉, 랠프가 잭에게 보인 빈틈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는 방향으로 써봤다. 

 

잭과 랠프. 이 두 사람의 싸움의 진행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랠프에게는 민주주의와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을 지키려는 선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리고 잭에게는 권위주의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라는 상대적으로 악한 이미지로 포장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둘을 대립시키고, 악이 선을 집어삼키는 구도로 만든 뒤. 사라져가는 랠프의 사상에 동정을 표한다.

 

2. 그런데 나는 이 모든 대립의 출발점은 잭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랠프의 금발이 상징하는 외형적인 매력과 우연히 손에 들어온 소라(이것은 인물에 대한 어떠한 능력도 평가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상징물에 그친다.)를 통해서 대장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는. 즉각적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불합리했던 선출 과정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랠프라는 인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선'의 모습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존경심을 표할만한 인물도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을 통틀어 그('새끼돼지'. 필터링 때문에 그렇지 아마 그의 별명은 돼지새끼였을 것이다.)의 본명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장면에서 너무나 또렷이 알 수 있다. 새끼돼지는 이곳에서 남들에게 그렇게 불리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랠프는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자기와 친한 사람을 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처럼 친밀도를 형성하기 위해 새끼돼지를 놀림감으로 삼는다.  

 

3. 어쨌든 랠프는 다수의 지지를 얻고 대장으로 선출된다. 능력에 대한 아무런 검증과 판단을 거치지 않고 즉석에서 이뤄진 찬반투표로서 말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파리대왕>의 선거는 민주주의 방식의 투표 결과가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만약, 랠프에게 무인도에서 아이들을 이끌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군사력을 한 명에게 일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아쉽게 생각된다.

 

민주주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소라를 들고 있으면 누구나 발언권을 얻을 수 있게 정한 평등권 부여는 훌륭한 판단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동등한 투표권이 있을 뿐. 투표로 정해지거나 혹은 앞으로 사회를 구성하게 될 모든 권력이 평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권력의 배당 정도를 우리는 자신의 표로서 설정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랠프는 대장이라는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나이 많은 어린이들을 모조리 그 사냥 부대에 배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그들은 무인도에 오기 전에 그런 체계로 생활해 왔다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대장은 랠프였으므로 체계를 바꿨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군사력을 이등분하는 것이다. 

 

군사력의 한 부분은 자신이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잭에게 주더라도 다른 한쪽은. 그와 대립을 할 수 있는 인물(가령, 로저같이 잭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물)에게 권력을 쥐여줘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툼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기능을 따로 만들어 두는 것 또한 옳다. 그것의 적임자는 새끼돼지일 테지만, 새끼돼지가 목소리를 높이는 데 필요했던 권위는 랠프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이미 써버렸다. 

 

4. 랠프의 빈틈은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표면적으로도 봉홧불을 피워 올리는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해 계속 옆자리에 앉아있는 새끼돼지에게 의존하고, 랠프 자신 역시. 자신이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임을 느끼는 내면의 혼잣말을 하는 등. 랠프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그것을 극복(?)아니. 임기응변식으로 넘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5. 결국, 두 번째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작가가 애초에 기획했던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에 대하여 그것을 잭의 잔혹함에서 모두 찾아내고자 하는 불합리함을 거부하고 잭뿐만 아니라 랠프가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정치력의 한계.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권력 추구.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드높이는 부조리한 선택에도 책임이 있음으로써 잭에 대한 약간의 변호를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보는 방식을 택했다. 

 

6. 권력욕이라는 것이 인간 본성의 결함에 속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함의 측면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 본성에서 기인한 욕구라고 순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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