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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532. "정신이 이상하다는 건 상대적 개념일세. 우린 누구나 정신이 이상해. 문제는 사회가 바람직한 행동이라 정해놓은 규칙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기능을 가졌느냐는 거지. 행동 자체만으로 정신병의 징후가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네. 그 행동이 일어난 맥락을 살펴봐야 해."
1. 작년.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스노우 맨>에서의 해리 홀레는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레드브레스트에서의 해리 홀레는 조연같은 주연 같았다. 작가 요 네스뵈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한 인물. 특히 주인공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환영하는 바다.
2.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해리 홀레의 비중은 절대로 작지 않다. 하지만 요 네스뵈의 <레드브레스트>는 그 비중을 덮을 만한 압도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시간상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밀레니엄 즈음의 대략 60년간의 세월을 아우르고, 사상적으로는 극단적인 신나치즘 세력을 주제로 다루며, 노르웨이 자국의 영토에 국한하지 않고, 전쟁 동안 <레드브레스트> 속 인물이 거닐었던 전 유럽의 영토를 아우른다.
3. 극단주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고개는 내밀고 있는 현상이다. 유럽의 신나치즘. 일본의 극우파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일간 베스트와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것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경멸한다. 그 원인은 경제적인 불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나날이 빈곤해져 가는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대기업보다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할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 노동자에게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어쩌면 기득권이 이같은 새로운 구도를 생성하여 서로 싸워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상황이 사그라들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에서는 실제로 신나치즘 세력의 연쇄 테러사건이 벌어졌었고, 일본에서도 한 여중생이 재일한국인들에게 당신들 나라로 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망언을 일삼기도 했다. <레드브레스트>의 배경인 노르웨이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점들은 책의 내용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347. "저들은 아직도 제3 세계 원조나 국방예산 삭감, 여성 성직자의 출현. 동성 결혼, 새로운 이민자 등등 저 늙은이들이 싫어할 만한 모든 것에 여전히 분노하고 있지. 뼛속까지 파시스트니까.
4. 스릴러라는 장르 특성상 결정적인 반전이 있는 작품이라 괜히 끼적였다가 부스럼이 될 것 같아. 소설 주변만 계속 맴돌게 되는데, 줄거리를 비껴나간 곁가지. 그 안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이 했던 행동. 임진왜란 때 선조가 했던 행동과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에 직면한 노르웨이 왕실의 대처 방식이 마치 데칼코마니같이 똑같은 모습에서 기인하는 신선한 충격에. 역시 인간은 다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5. 그뿐인가. 전쟁이 끝난 후. 부득이하게 살 길을 모색하고자 (자의로 독일군에 가담한 사람들 보다 어쩔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노르웨이인) 독일군에 가담했던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쌓은 기회주의자들의 역사관은 어떠한가?
기회주의자. 그들은 그들의 흠을 감추기 위해서 실존했던 역사를 감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공이 될 만한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크게 부풀린다. 그래서 역사는 왜곡된다. 물론, 완벽하게 객관적인 역사관이란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오차를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너도나도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왜곡한다면 다른 것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그것을 바라보며 느낄 사람들의 분노 역시 극단적이 될 것이다.
276.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고정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오. 옳고 그름의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오. 역사가의 임무는 주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자료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살펴 그것을 제시하는 거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역사가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연구는 후세에 화석처럼 보일테지. 그들 시대의 통설의 잔재로."
6. 어떻게 보면 <레드브레스트>는 이러한 왜곡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