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 어느 드라마 시사회 때, 한 배우가 4회까지만 시청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던 말처럼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 200페이지 정도는 읽어봐야 참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가 '오호라' 싶었던 구간이 200페이지 즈음이라서 정확하게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인내심은 가지고 접근해야 할 해럴드의 순례기다.

 

초반에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해럴드 프라이라는 일흔이 넘은 노인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한편의 그럴듯한 성장 소설을 만들기 위해 주인공을 너무 초라하게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걸 감당할 능력에 관한 의문부호만 잔뜩 안겨준 채.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도착한 편지에 얽힌 정확한 설명도 없이 시작하자마자 냅다 저질러버려서 당황스러웠다. 

 

2. 또 다른 이유는 이 소설은 '걷는 행위'가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걷는 발자국을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자기반성을 통한 내면의 성장과 갈등 국면에 서 있었던 관계의 회복이 점층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속도가 2배 빨라지면 2배 행복해질 것이라고 광고하는 통신회사 카피라이터는 과연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느림의 미학'이 돋보인다.

 

3. 소설 외적인 부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의 제목에 순례가 들어간다는 것과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연상된다. 분명히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안타깝게도 문제의 그 소설을 읽어보질 않아서 뭐라고 덧붙일 말은 없다.  

 

4. 다만 내가 읽어본 소설 가운데서 이 책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주인공 해럴드 프라이의 시선이 아닌 타자가 바라보는 해럴드 프라이의 모습은 왠지 돈키호테 같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르반테스가 애초에 의도하려 했던 기사도의 풍자가 아닌 낭만처럼 그의 순례 또한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 해럴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점은 돈키호테가 봤으면 아마도 많이 부러워했을 듯하다. 하지만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그 믿음이 볼테르의 <캉디드, 낙관주의>에서 봤었던 비판적인 관점에서의 그릇된 낙관주의로 옮겨간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5. 결론적으로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엎지른 물을 다시 채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보통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록 물을 주워담지는 못할지언정 다시 채울 수는 있다. 따라서 물을 다시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물이 엎질러졌다고 후회만 하고 있으면 아마도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늦은 나이였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해럴드 프라이의 순례는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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