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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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세의 침략이 거세었고,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심했던 조선 말,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이 도화선이 되어 그동안 쌓였던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시작된 동학농민운동(1894년)은 그들의 이루려 했던 이상1과는 달리 한반도에 청나라와 일본의 주도권 싸움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싸움에서 이긴 일본은 동학의 2차 봉기 때, 3만 명의 병사를 제노사이드 함으로써 동학의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한다. 

 

2. 소설 <겨울잠, 봄꿈>은 그 이후의 시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비참했지만, 굳건했던 마지막 삶을 다룬다. 끊임없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전봉준은 끝내 자신의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그의 희생은 숭고하며, 소크라테스나 예수 같은 성인의 죽음과도 비견되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일본의 유혹을 앞에 두고 '와신상담'을 한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치욕적이지만 목숨을 유지한 채,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신문물을 배워왔다면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식민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상징적인 인물로서 이토 히로부미가 바라는 대로 충실한 개가 되었을까? 아니면 조국의 자주독립에 힘을 보탠 독립운동가가 되었을까? 녹두장군이라면 당연히 후자의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봉준. 그는 전자의 미래가 자기에게 닥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3. 전봉준, 그는 배신당했다. 배신당할 줄 알고도 당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를 배신한 것이 김경천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봉준이 아닌. 배신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을까? 전봉준의 의도대로 그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을까? 명예와 관련짓지 말고, 누구로부터 배신과 고발로서 챙길 수 있었던 천 냥을 돈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을까? 토사구팽. 그들의 마지막을 보면서 이 말이 참 적절하게 와 닿는다. 

 

김경천은 그래도 자기 몫의 삼 할 정도는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학운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덮어주고, 게다가 사례비로 100냥을 얹어서 주겠다는 김경천의 약속만 믿고, 전봉준의 다리를 직접 부러뜨린 하층민들. 가마꾼의 운명은 어떠했던가? 일을 꾸민 자는 김경천인데, 김경천이 받아야 했을 고통은 힘없는 그들이 대신 받는다. 정말 불합리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불합리함이 조선 사회를 규정하는 정의의 하나다. 그래서 전봉준은 조선은 더러운 나라라는 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물론, 전봉준은 조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은 놓지 않았다.) 

 

4. 일본의 회유는 집요했다. 그들은 전봉준을 붙잡고, 그를 서울로 이송하면서, 일부러 뼈저린 패배를 겪은 그 공간들을 거슬러서 올라간다. 그곳에는 목숨을 잃은 농민들의 시체가 수습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었고, 지난날. 동학운동의 올곧은 뜻에 동조하여 관청의 곳간을 내어준 조선의 관리들은 동학이 패배한 현재. 동학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그 이유는 물론 자신이 살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을 본 전봉준의 머릿속은 어떠했을까? 그 잔혹한 풍경을 눈앞에 들이밀며 조선을 욕하고, 투항을 권하며, 문물을 배워와서 조선을 직접 바꿔보라고 유혹하는 이토의 입술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생기는 갈등은 어떠했고, 전봉준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 감정의 오르내림을 <겨울잠, 봄꿈>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듯하다. 

 

5. 결국, 전봉준이 그렇게 원했던 종로 네거리에서의 죽음(복수와 환기. 숭고함의 절정)은 찾아오지 않는다. 일본이 전봉준을 회유하고 있다는 첩보를 들은 조선의 관리는 예고치 않은 날짜에 허둥지둥 전봉준의 목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순간. 그의 목을 베는 망나니의 마음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생활하기 위해 받을 '돈' 생각이 간절했다. 그 돈만 있으면 막내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살 수 있고, 먹을 음식을 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전봉준의 목을 베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이 마지막 배려인 것을 알기 때문에 재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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