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파리대왕에 대한 생각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잭과 랠프에 관한 고정된 견해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불만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므로 잭의 행위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은 말릴 필요는 없다. 그것을 비판한다는 것은 육식을 하는 우리 모두가 비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의 본질을 식량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삼은 점. 살아있는 것의 목숨을 취하는 쾌감에 젖어 자신들의 동료를 무참히 살해한 점. 그리고 그것을 감추고 부정하기 위해서 가면을 뒤집어쓴 점. 그렇게 점점 자신들이 동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에 대해서는 큰 유감을 표하지만, 잭과 랠프의 다툼이 권력 투쟁의 장으로 확대하게 된 원인. 즉, 랠프가 잭에게 보인 빈틈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는 방향으로 써봤다. 

 

잭과 랠프. 이 두 사람의 싸움의 진행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랠프에게는 민주주의와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을 지키려는 선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리고 잭에게는 권위주의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라는 상대적으로 악한 이미지로 포장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둘을 대립시키고, 악이 선을 집어삼키는 구도로 만든 뒤. 사라져가는 랠프의 사상에 동정을 표한다.

 

2. 그런데 나는 이 모든 대립의 출발점은 잭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랠프의 금발이 상징하는 외형적인 매력과 우연히 손에 들어온 소라(이것은 인물에 대한 어떠한 능력도 평가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상징물에 그친다.)를 통해서 대장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는. 즉각적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불합리했던 선출 과정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랠프라는 인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선'의 모습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존경심을 표할만한 인물도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을 통틀어 그('새끼돼지'. 필터링 때문에 그렇지 아마 그의 별명은 돼지새끼였을 것이다.)의 본명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장면에서 너무나 또렷이 알 수 있다. 새끼돼지는 이곳에서 남들에게 그렇게 불리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랠프는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자기와 친한 사람을 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처럼 친밀도를 형성하기 위해 새끼돼지를 놀림감으로 삼는다.  

 

3. 어쨌든 랠프는 다수의 지지를 얻고 대장으로 선출된다. 능력에 대한 아무런 검증과 판단을 거치지 않고 즉석에서 이뤄진 찬반투표로서 말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파리대왕>의 선거는 민주주의 방식의 투표 결과가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만약, 랠프에게 무인도에서 아이들을 이끌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군사력을 한 명에게 일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아쉽게 생각된다.

 

민주주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소라를 들고 있으면 누구나 발언권을 얻을 수 있게 정한 평등권 부여는 훌륭한 판단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동등한 투표권이 있을 뿐. 투표로 정해지거나 혹은 앞으로 사회를 구성하게 될 모든 권력이 평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권력의 배당 정도를 우리는 자신의 표로서 설정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랠프는 대장이라는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나이 많은 어린이들을 모조리 그 사냥 부대에 배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그들은 무인도에 오기 전에 그런 체계로 생활해 왔다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대장은 랠프였으므로 체계를 바꿨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군사력을 이등분하는 것이다. 

 

군사력의 한 부분은 자신이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잭에게 주더라도 다른 한쪽은. 그와 대립을 할 수 있는 인물(가령, 로저같이 잭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물)에게 권력을 쥐여줘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툼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기능을 따로 만들어 두는 것 또한 옳다. 그것의 적임자는 새끼돼지일 테지만, 새끼돼지가 목소리를 높이는 데 필요했던 권위는 랠프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이미 써버렸다. 

 

4. 랠프의 빈틈은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표면적으로도 봉홧불을 피워 올리는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해 계속 옆자리에 앉아있는 새끼돼지에게 의존하고, 랠프 자신 역시. 자신이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임을 느끼는 내면의 혼잣말을 하는 등. 랠프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그것을 극복(?)아니. 임기응변식으로 넘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5. 결국, 두 번째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작가가 애초에 기획했던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에 대하여 그것을 잭의 잔혹함에서 모두 찾아내고자 하는 불합리함을 거부하고 잭뿐만 아니라 랠프가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정치력의 한계.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권력 추구.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드높이는 부조리한 선택에도 책임이 있음으로써 잭에 대한 약간의 변호를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보는 방식을 택했다. 

 

6. 권력욕이라는 것이 인간 본성의 결함에 속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함의 측면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 본성에서 기인한 욕구라고 순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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