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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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우리는 시몽의 저돌적인 사랑고백과 그것을 받아준 폴의 불꽃같은 한달가량의 시간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폴과 로제의 오년간의 부대낌. 64. 기쁨과 회의와 온정과 고통으로 뒤범벅된 그 오년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근데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우리가 읽어낼 수 없는 폴과 로제의 오년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점이었다. 


139.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옸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한 것과 같은 의미로서, 폴이 로제에게 길들여지기에 오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139페이지의 방식이 폴이 로제와 세상에 길들여져 머무르는 방식이다. 이것과 180도로 달랐던 시몽과의 한달가량의 연애는 비록 그녀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하긴했지만, 행복보다는 갑작스러웠고, 불편했다는 감정이 더 크게 그녀를 괴롭혔다.


131.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다. 드레스는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았고, 시몽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었으며, 그녀의 삶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다.


2.


그녀는 확신없는 미래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함으로써 시몽을 밀어낸다. 그것의 의미는 도전이 아닌 체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어쩌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 앞의 진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104. 언젠가 자신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잘못으로부터 미리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과거의 어리석은 사건들과 그 자신의 비겁함과 두려움과 갑작스러운 관태감과 냐약함에 맞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섰다. 그녀를 행복하개 해 주고 그 자신도 행복해지리라.

 

132.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 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폴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시몽의 당돌함.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폴의 거북함과 불편함이 주는 두려움만 한층 더 가중시켰을 뿐이었다.


138. 시몽은 그 자신이 그녀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오히려 손해라는 것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연극적인 동작을 동원해 의존적인 태도를 취했다. 시몽은 그녀에게 보호라도 청하는 것처럼 그녀의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고, 이른 아침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 했으며, 모든 것에 대해 충고를 구했다. 폴은 그런 태도가 감동적이었지만, 왠지 비상식적인 것을 대할 때처럼 거북하고 불편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변심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앞서 읽은 은희경의 그것처럼 말이다. 과연 시몽은 처음에 다짐했던 마음을 12년이 지난 뒤에도 유지할 수 있을까? 폴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35. 나하고 살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 왜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그럼 12년 전에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했던 거예요? 물론 그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 당신이 나하고 결혼한다고 해요. 그러면 12년 뒤에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기힉 오면 당신은 또 이번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겠죠. <은희경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3.


35.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그래. 이렇게는 하루도 더 못 살겠어. 내년이면 나도 사십인데 지금 못바꾸면 평생 이렇게 살고 말거야.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구, 알아?  <은희경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사강이 폴의 나이를 하필 서른아홉으로 설정한 것에 주목해볼만하다. 은희경의 소설에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나이가 서른 아홉이었다. 반면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어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나이로 서른아홉을 정의한다.


폴이 시간이라는 것의 진정한 정체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음을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찾을 수 있었다.


9. 그녀가 이렇게 거울 앞에 앉은 것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으나, 정작 깨달은 것은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공격해 시나브로 죽여 온 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4.


이런 복잡한 폴의 내면 속 인과관계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담아내고 있다. 이로 인하여 시몽의 연애사에 스크래치가 하나 더 생길텐데. 과연 시몽은 폴이 그를 거절한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


139.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그녀의 끔찍한 쾌감은 어떤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올까? "어째서 당신은 나보다 로제를 더 좋아하는 거지? 그 무심한 사내의 무엇이 내가 당신에게 매일 바치는 이 열렬한 사랑보다 낫다는거지?"


일말의 죄책감을 품은 채 뇌리속에 떠도는 폴의 상상. 그것과 같은 형태로서 시몽이 그녀의 선택을 비난하고 다그치게될까? 이후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폴의 마음은 닫혀버렸으니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두 문장은 완벽한 확인사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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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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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도덕한 사랑이면 부도덕한 사랑이지.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일까?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의 첫 단편의 제목인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부도덕함의 타협점이 아닐까 싶었다. 명백하게 부도덕한 것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그녀의 대답이다. 그 대답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가족애' 였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한 가정의 가장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 아버지의 외도 덕분에 이혼의 위기를 맞은 어머니의 딸기이도 했다.  


47. 나에게는 고독이 오랜 친근이었다, 외롭지 않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술도 있었다.

 

38. 마음속에 집착이 있을 때 사람은 혼령 같다. 무엇을 봐도 보이지 않고, 먹는지 뱉는지도 느끼지 못한다. 고독을 겪어본 사람만이 집착의 끔찍함을 아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로서는 이 관계가 부도덕한 것을 알지만, 외로우니까. 술로 외롭지 않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야하니까 당신의 향기에 취해 다가오는 한 남자를 허락한다. 이 남자가 싱글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불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부도덕한 사랑은 당신 자신이 나고 자란 가족의 파괴라는 문제와 정확히 겹친다. 


34.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나'는 그의 여자이기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다. 그런데도 아내가 있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여 그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어머니의 연적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결국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부도덕함이 명백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성큼 다가오게 된다. 


이 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그 남자와의 관계가 예상보다 순순히 정리되어서 다행이었다.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그 남자의 말이 이 순간의 욕망을 채우고자 그녀를 억지로 설득시키고자 내뱉는 변명처럼 들렸다는 사실은 내가 보기에는 작가에 의하여 의도된 서사였다.


35.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그래. 이렇게는 하루도 더 못 살겠어. 내년이면 나도 사십인데 지금 못바꾸면 평생 이렇게 살고 말거야.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구, 알아? (중략)

 

나하고 살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 왜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그럼 12년 전에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했던 거예요? 물론 그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 당신이 나하고 결혼한다고 해요. 그러면 12년 뒤에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기힉 오면 당신은 또 이번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겠죠.

 

40. 집사람을 의존하고 살면서 마누라는 지켜워하는군요. 그 두가지는 똑같은 역할의 양면일 뿐이에요. 당신 아내와 내가 다른 게 뭐가 있죠?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은 배려로 듣고 아내가 하는 말은 잔소리라고 짜증을 내죠. 자신이 낡은 달력 같은 존잭 되기 싫다고 말예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새로운 관계는 없어요.

 

덕분에 그에 대한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될 수 없어졌다. 그 이전에 독자로 하여금 그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말끔히 제거해버렸다. 결론은? 남자와 함께 살아갈 치명적인 매력이 없다고 할까? 덕분에 '나'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곧, 가족의 문제에서 어머니의 편을 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만약에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남자가 <인 마이 라이프>의 남자였으면 '나'는 결정을 내리기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연적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든 여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 마이 라이프>의 이 남자는 슬픔의 왕국에 찾아온 불청객이었지만, 얼마지 않아 슬픔의 왕이 되었다. 슬픔을 갖고 있는 여인들에게 그의 모습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를 차지하기만하면 슬픔에서 해방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270. 남자는 계속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남자의 눈에서 던져진 빛이 여자의 눈 속으로 깃들일 때마다 생기가 넘쳐나고 눈빛니 타올라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게 빛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 완자의 입맞춤처럼 남자의 눈빛은 여자의 몸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생을 일깨우는 것 같았다.

 

271. 혜린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의 나라의 법정에서는 새로운 판결문이 나왔다. 여자가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더러운 죄악이며 오직 '인 마이 라이프'의 남자를 사랑하는 것만이 순결한 일이라고, 사랑이 없으면서 함께 사는 부부야말로 상대를 기만하고 삶의 아름다운 섭리를 거스르는 부도덕한 관계라고.


3.


<멍>은 대학의 교수로 있는 이진찬이 '멍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한현정의 원고를 열어보는데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동기들 사이에서 막연히 부채의식으로 기억되곤 했던 현정의 남편. 영규의 고단한 생의 기록이 담겨 있다. 현정은 영규의 생을 사회 부조리의 한단면으로 세상에 내놓기를 원했다.


그 기록은 애절했다. 겉으로 보기에 영규의 생은 나태한 인간 자체였다. 그러나 현정의 원고에 담긴 영규의 일기를 통하여 그의 멍이 자신의 나태함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를 가로막는 타자의 벽에 의하여. 즉, 온전히 삶의 무게에 의하여 생긴 것임을 알게된다. 영규의 멍은 그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새기기 위한 결과로 매일 생겼다가 사라지고, 살아있는 내내 생성과 소멸은 반복된다. 딸에게 애정어린 일기를 남기기도 했던 그는 죽음으로 인하여 멍을 새기는 행위를 그만둔다.


91. 그의 맨살은 따뜻하다. 그는 이 맨살 속에 멍이 아른아른한 누르스름으로 남아 있을 때쯤이면 늘 새로운 멍을 만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새로운 멍을 만들지 않은 덕분인지 그의 몸은 아주 깨끗하다. 멍이 없다! 내 손이 멍을 찾아서 그의 몸 이곳저곳을 다급하게 헤맨다. 그의 가슴, 그의 배, 그의 팔과 다리, 아아, 그의 하얗고 투명안 몸속!

내 손은 갑자기 멈춘다.

멍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동기들은 죽어버린 영규를 한심한 자식이라며 안타까워 하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 마음대로 짊어지고 있었던 부채를 갚기로 한다. 냉정하다.


93. 죽은 자들에게는 산 자의 호의를 거절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산 자들이 자신의 삶을 새로 짜맞추더라도 거기에 대해 소명할 권리가 없다는 게 죽은 자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하긴 죽은 자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이게 끝은 아니다. 멍의 날카로운 일면은 영규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정의 원고를 읽은 진찬의 아내. 그녀의 손등에도 푸른 멍자국이 있다는 것이다.    


4.


개인적으로 제일 소름돋았던 작품은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였다. 이 단편소설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한 여인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는 그를 상실했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


105. 죽음이란 삶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바뀐 것일 뿐 사라진 건 아니야. 죽은 너를 사랑하는 일이 조금 외롭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 너를 잊는 일이야. 너를 잊게 되면 사랑을 잃는 거니까. 한 사람의 생에서 사랑이란 단 한번뿐번인 거잖아. 

 

103. 내일이 와도 네가 내 곁에 없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일이라는 말을 희망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거꾸로 오늘 다음에 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도 살아 있을 테고, 그리고 또 지나온 시절이 좋았던 건 결코 아니지만, 내가 이미 다 아는 일들이 닥쳐올 테니 적어도 두렵지는 않을 거 아냐.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이유모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자친구. 상실의 아픔에도 결코 그를 놓지 않은 그녀가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에 대한 서사. 그리고 자살한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한 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이 연인에게 찾아온 비극에 대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설명하는데 충실했다. 오래전에 떠난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지만, 독자인 나는 그것을 통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인과관계를 캐낼 수 있었다.


119. 엄마가 사랑한 건 안경을 쓴 그 남자였어. 아버지에게 청혼을 받던 날 엄마는 그 남자의 옹색한 자취방으로 찾아갔대. 청혼받은 사실을 털어놓고 자기의 마음은 당신에게 있을 뿐이라고 고백했어. 그러나 남자는 아무런 약속도 해줄 수 없다고 했나봐. 엄마는 상처를 갇고 아버지와 결혼했던 거야. (중략) 남자에게 자시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복수심과 그 남자를 가까이에서 보고싶다는 그리움. 그리고 죄의식과 질투.


이런 인과관계를 알게 된 이후. 그녀의 부탁은 너무나 슬프게 들린다.


129. 부탁이 있어. 네가 그 사진 속에 없다는 걸 증명해줘. 너는 다른 곳에 있어야만 해. 그래야 우리의 죄로부터 결백해질 거 아냐. 어서 도망쳐. 너를 속박하는 시계와 사진,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로부터.


5.


<여름은 길지 않다>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단편이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유부녀의 일탈을 그린듯 싶었다. 세기말 코드도 있는 것 같았다. 남성이라는 대상을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원룸주인과 혁희와 오래로 분리시켜 등장시킨다. 성적인 코드로서 포썸을 위한 듯한 묘사로 읽히기도 했다.


223. 몇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높은 곳에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언제나 탁자 아래에 있다. 낮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넓어지려면 먼저 낮춰야 하는 게 보편성의 이치다, 라고 생각한다.


6.


<서정시대>라는 단편은 132.의 문장을 증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솔직히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원형탈모는 남들도 그녀의 성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다.


132. 과민함과 자의식, 자의식과 긴장, 긴장과 소심함과 진지함. 정작 머리카락이 유난히 많이 빠지는 데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머릿속은 언제나 수많은 분석으로 터질 듯이 복잡하지만 실제로 인생에 효용이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164. 너, 어제 보니까 땜통이 더 커졌더라. 근데 사람들은 네가 일부러 드러내놓고 다니는 줄 알아. 널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여자로고 하더라니까. 네 소설 주인공같이 시건방지고 독하다고 말이야.


7.


<지구 반대쪽>은 환상적 리얼리즘을 가미한 소설이다. 어린 시절 일가족이 모두 살해당한 기억을 간직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가 돌아와서 그의 머리통을 떼내 보자기에 싸고 매듭을 조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는 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벌을 내린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통 덕분에 그는 어딘가 불안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했던 남자가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로 떠난다. 그 여행기간 동안 그를 찾아온 기이한 꿈을 통해 남자가 오랜시간 품어왔던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론은 분명하지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의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189. 그 여자는 어쩐지 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종일 가야 말 한마디 없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 여자가 욕설을 퍼부으면 전에 없이 언뜻 웃음 같은 것을 띤다. 그의 몸을 안을 때도 그랬다. 체온이 느껴진다. 전에 그와 잘 때는 마치 그는 없고 그의 성기와만 접촉하는 기분이었다. 그 자신은 성기를 떼내 그 여자에게 주어버리고는 아랫도리가 어둠처럼 텅 비고 푹 꺼진 채로 혼자 돌아누워 자는 것만 같았다. 늘 그는 이곳에 없는 것 같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온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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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0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하는데!^^

단예 2016-08-06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천천히 은희경작가 작품 전작중입니다. 근데 함께 읽는 책이 많아서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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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생이 무한한 것이 아님을 <자기 앞의 생>을 읽고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에밀 아자르 소설의 제목대로라 생은 나와 함께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자기 앞에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가버리는 것의 정체가 바로 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모의 선언은 의미심장하다.


116.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2.


어린 화자 모모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어린 모모와 나이 많은 여자 로자다. 이 두 사람은 누가봐도 완벽한 남이다. 인종도 유태인과 아랍인이라는 점에서 다르고, 나이 차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궁핍한 생의 인연으로 만나서 엄마와 아들같은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자기 앞의 생>은 사랑에 관한 소설인데. 이 사랑은 가족애를 의미한다. 이것이 두 사람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끔 한다.  


모모가 잠시 감탄했던 거꾸로 가는 세계에 대한 동경은 영화의 필름을 뒤로 돌렸을 때 나타났었다. 그것은 비현실이었다. 114.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걸음걸이의 속도와 상관없이 생은 끊임없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했다.  


253.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257.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306.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위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게 없으니까.


생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하는 순간마다 로자. 그리고 모모. 두 사람은 격렬히 저항한다. 특히, 모모가 로자를 떠나보내기 전에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를 통해 떠오르는 해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불행한 결말에 직면했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모모의 행동에서 무한한 사랑. 더 나아가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인간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로 흘러. 앞으로 다가올 모모의 생에 충만한 안녕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307.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중략)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중략) 사랑해야 한다.


라는 소설의 지막 문장은 휴머니즘을 완성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3.


<레이디 L>에서 엉덩이로 빌어먹었던 젊은 날의 아네트는 아르망을 사랑했지만, 아르망이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를 배신한다. 아르망을 배신한 대가로 풍족한 생과 더불어 그녀의 후손은 번영을 누렸지만 소설이 기록되고 있는 순간까지 아무도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사랑은 커녕 그녀로 하여금 소외감을 들게 하였다.  12. 세월은 참으로 야만스러웠다! 시간은 아무것도 존중해주지 않았다. 라는 냉소처럼 말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 엉덩이로 빌어먹었던 젊은 날의 로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함으로써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그러는 동안 로자는 모모라는 특별한 아이를 만나게된다. 다른 아이보다 그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는다.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로자는 아마 모모의 친어머니와 친밀한 관계였던 것 같다.)


모모는 자신을 향한 로자의 넘치는 애정을 알아차리고, 생이 그녀를 떠나간 이후에도 그녀를 지켜주는 마지막 존재가 되어준다. 비록, 그녀는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않았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순수한 어린 영혼과 숭고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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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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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만과 편견>의 거의 모든 인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그들에게 닥친 몇차례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인물은 단연 베넷 부인이다.


519. 오, 예쁜 내 새끼, 리지야! 엄청난 부자에 신분은 또 얼마나 높아지겠니! 용돈이다, 보석이다, 마차다 얼마든지 갖겠지! 거기다 대면 제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니고말고, 어미는 정말 기쁘다, 정말로 행복해, 그렇게 매력적인 남자가! 그렇게 잘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오, 귀여운 리지! 전에 내가 그 사람 그렇게 싫어한 것 제발 미안하다고 좀 전해 다오. 그런 것쯤 아무얼지도 않게 넘길 거야, 그 사람, 리지, 리지! 런던에 집까지 있고! 멋있는 것은 모조리 갖췄잖아! 딸 셋이 결혼이라니! 1년에 만 파운드! 오, 하나님! 이러다 나 어떻게 되겠다. 정신이 나가겠어.


예외적으로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딱 두 사람에게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빙리와 제인 같은 경우는 초반의 인품이 자연스럽게 둘을 인연으로 이끈 경우라 제외.)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연인관계를 넘어 혼인관계로 맺어진다. 이들의 애착 형성과 발전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의 세밀한 묘사(거의 대부분이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하는 3인칭 서술자의 묘사방식)를에 주목하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2.


<오만과 편견>에서의  남, 녀 주인공은 펨벌리의 귀족 다아시와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다. 


다아시라는 인물은 높은 신분과 재력이 넘치고 인물까지 출중한 완벽한 조건의 미혼 남성이다.


9.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다아시는 소설 맨 첫문장의 감탄을 불러온 빙리보다도 요즘 말로 훨씬 더 우수한 스펙을 가진 남성이다.


그를 보는 타인의 눈동자는 모르긴 몰라도 무수하게 반짝였음에 틀림없다. 덕분에 다아시는 태어난 이후 스물여덟해 동안 자신감에 도취되었다. 또한 자신의 배경만 좇아 인정받기 위해 달려드는 여성에게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타인에게는 오만함으로 비춰지는 인물로 자신을 가렸을 것이다. 


이러한 다아시의 자신감을 오만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본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은 혼인관계가 당사자 간의 애정보다는 재력과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의 오래된 세태에 불만이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풍족하지 않은 집안환경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부여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의 조건1 대부분을 혼자의 힘으로 성취한 인물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그녀를 파악하건대, 사회적인 조건에 연연하여 그것을 채우기에 급급하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성취를 넘어 인식의 확장까지 이루어낸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판단된다.


캐서린 영부인과의 대화 중에서 발견한 이 문장이 그녀의 매력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 같아서 가져와본다.


490. “전 단지, 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영부인이건 혹은 저하고는 관계없는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하지 않고, 제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동할 작정일 뿐입니다.” (중략) “이 일에서는 의무니 명예니 감사니 하는 것이 제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어요.” 


<오만과 편견>의 긍정적인 효과(엘리자베스의 영리함과 당돌함, 제인의 현명함과 온화함)는 소설 내의 인물528. 키티는 주로 두 언니들과 시간을 보낸 것이 실질적으로 큰 득이 되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것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있다 보니, 그녀는 크게 개선되었다. 531.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보고, 그녀는 여자도 남편에게 무람하게 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의 변화를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200년의 시간을 지난 지금의 전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3.


아울러 엘리자베스의 주위에 머무르는 전지적 화자에 의해 선명하게 소개되지 않은 다아시의 기사도 정신 또한 훌륭한 남성상에 대한 모범사례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거의 최고 수준의 판타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덧붙여. 다아시의 행위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 이루어진 순수한 그 무엇이다. 누구나 흉내낼 수 없는...


다만, 한가지 아쉬움은 이러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맺어지는 단계. 그들의 확고한 믿음을 야기한 모든 의도(다아시가 왜 그녀의 일에 발벗고 나섰는가)가 확실하게 설득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다아시가 자신을 형성한 지난 모든 것을 마치 고해성사하듯이 반성하는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아시가 타인과 엮이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뒀다고만 생각했지. 누군가를 그리 심하게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문단은 다아시가 짊어져야 할 것 보다 훨씬 큰 자책과 자기비하를 감내하려고 하고 있다고 느꼈다.


505. 평생토록 저는 원칙에서는 아닐지라도 현실에서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어요어린 시절에 옳은 것이 무엇이라는 가르침은 받았지만제 성격을 고치라는 가르침은 못 받았어요훌륭한 원칙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오만과 자만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실행했지요불행하게도 외아들이었던 까닭에, 부모님들이 버르장머리를 그르치셨던 것이지요그분들은 참 좋으신 분들이셨지만제가 이기적이고 거만하도록 내버려두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가르치기까지 하셨습니다제 자신은 가문 혈족 외에는 아랑곳하지 않도록세상 사람들은 죄다 천하게 생각하도록적어도 그들의 생각과 가치가 제 것에 비해서 비천하다고 생각하길 원하도록 말입니다여덟 살 때부터 스물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사랑하는 그대 엘리자베스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그랬을 것입니다당신에게 진 빚을 어찌 다 말할까요당신은 저에게처음에는 정말이지 가혹했지만 다시없이 유익한 교훈을 주셨습니다당신으로 하여저는 겸손해졌습니다제가 당신께 청혼하러 갔을 때 전 승낙받을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를 기쁘게 해줄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임했지요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자임하기에는 제가 얼마나 모자라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만약에 다아시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다면 <레이디 L>처럼 온전한 인간적인 매력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의 공백을 인간이 소유한 매력으로 덧칠해야 이 고해성사의 내용이 설득 된다.  



   


  1. 58. 진정으로 교양 있는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음악, 노래, 그림, 춤, 그리고 몇 가지 외국어를 완벽하게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외에도 걸음걸이의 맵시,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태도와 표현에 품위랄까, 그런 게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교양을 반밖에 못 갖춘 거죠. 거기에다 또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 지성을 계발함으로써 더 실속 있는 내면을 갖춰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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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 -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
배철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1. 한국의 클레멘트 코스 : 마아트 프로그램


재작년에 클레멘트 코스의 창시자 얼 쇼리스가 쓴 <인문학은 자유다>를 읽었다. 그 때 나는 그 책에 대해서 지역만 다를 뿐 내용은 한결같은 450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읽은 기분이다. 속은 느낌이다. 이 책은 좀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빈곤층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클레멘트 코스가 어떻게 뿌리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클레멘트 코스에서 했던 강연 내용들이었다.


인문학 강의의 대상이 빈곤층이 아니라 재소자라는 점이 다르지만.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라는 점은 같다.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제공하기 위해 구성한 한국의 클레멘트 코스인 '마아트 프로그램'. 그리고 마아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진들의 강의를 엮은 <낮은 인문학>. 이 책은 강의 내용의 온전한 전달력에 온 힘을 기울인 구성이 돋보였다. 그 이전에 강의자들의 고민의 흔적에 마음이 움직였다.


6. 수용자들의 삶에 긍정적이며 혁신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새로운 지식 전달이나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며, 삶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고취시키도록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2.


1강의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라는 강의에서는 개개인의 존재이유와 소명에 대한 질문을 적절하게 던져주었으며, 2강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다에서는 행복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과 생각 다스리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3강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서 개인의 소명의식에 대한 질문은 '행복하거나 건강한 삶'이 아닌 '명예로운 삶'이라는 측면으로 강화된다.


4강의 기억, 미래를 만드는 '과거'에 담긴 독일과 히틀러와 빌리 브란트. 그리고 귄터 그라스의 이야기를 통하여 과거를 제대로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를 지녀야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5강의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다루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 뿌리박힌 제국주의 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편견과 오해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소개한 7강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서는 바로 앞서 읽었던 책에서 느낀 이것.


어쨌든, 낙관적 진보주의로서의 진화. 이 깨달음을 막는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다윈과 도킨스의 이론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일 테다. 이것의 의미는 적자생존과 이기적 유전자라는 관점. 즉, 강한 것이 선택받고. 선택받는 것이 강하다는 점을 유일한 정상과학으로 인정함으로써 경제력의 기준을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아 타인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를 통하여 다양성 속에서 커나갈 수 있을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기적 선택이라는 과정을 등에 업고 거의 유일한 상태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큰 기대치를 충족하도록 요구받는데. 이 기대치는 대중문화에 의하여 학습되고, 인문학의 부재와 맞물려 더욱 강화된다.


이것은 소유에 의거한 삶의 양식이 극대화되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기본적으로 요구받게 되는 현실로 짧게 줄여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8장의 신화 속에 담긴 삶과 죽음의 단계에서 소개하는 죽음의 다양한 성찰도 유용한 챕터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분리, 전이, 통합을 거치는 통과의례로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걸로 생각된다. 훌륭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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