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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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만과 편견>의 거의 모든 인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그들에게 닥친 몇차례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인물은 단연 베넷 부인이다.


519. 오, 예쁜 내 새끼, 리지야! 엄청난 부자에 신분은 또 얼마나 높아지겠니! 용돈이다, 보석이다, 마차다 얼마든지 갖겠지! 거기다 대면 제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니고말고, 어미는 정말 기쁘다, 정말로 행복해, 그렇게 매력적인 남자가! 그렇게 잘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오, 귀여운 리지! 전에 내가 그 사람 그렇게 싫어한 것 제발 미안하다고 좀 전해 다오. 그런 것쯤 아무얼지도 않게 넘길 거야, 그 사람, 리지, 리지! 런던에 집까지 있고! 멋있는 것은 모조리 갖췄잖아! 딸 셋이 결혼이라니! 1년에 만 파운드! 오, 하나님! 이러다 나 어떻게 되겠다. 정신이 나가겠어.


예외적으로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딱 두 사람에게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빙리와 제인 같은 경우는 초반의 인품이 자연스럽게 둘을 인연으로 이끈 경우라 제외.)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연인관계를 넘어 혼인관계로 맺어진다. 이들의 애착 형성과 발전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의 세밀한 묘사(거의 대부분이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하는 3인칭 서술자의 묘사방식)를에 주목하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2.


<오만과 편견>에서의  남, 녀 주인공은 펨벌리의 귀족 다아시와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다. 


다아시라는 인물은 높은 신분과 재력이 넘치고 인물까지 출중한 완벽한 조건의 미혼 남성이다.


9.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다아시는 소설 맨 첫문장의 감탄을 불러온 빙리보다도 요즘 말로 훨씬 더 우수한 스펙을 가진 남성이다.


그를 보는 타인의 눈동자는 모르긴 몰라도 무수하게 반짝였음에 틀림없다. 덕분에 다아시는 태어난 이후 스물여덟해 동안 자신감에 도취되었다. 또한 자신의 배경만 좇아 인정받기 위해 달려드는 여성에게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타인에게는 오만함으로 비춰지는 인물로 자신을 가렸을 것이다. 


이러한 다아시의 자신감을 오만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본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은 혼인관계가 당사자 간의 애정보다는 재력과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의 오래된 세태에 불만이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풍족하지 않은 집안환경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부여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의 조건1 대부분을 혼자의 힘으로 성취한 인물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그녀를 파악하건대, 사회적인 조건에 연연하여 그것을 채우기에 급급하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성취를 넘어 인식의 확장까지 이루어낸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판단된다.


캐서린 영부인과의 대화 중에서 발견한 이 문장이 그녀의 매력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 같아서 가져와본다.


490. “전 단지, 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영부인이건 혹은 저하고는 관계없는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하지 않고, 제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동할 작정일 뿐입니다.” (중략) “이 일에서는 의무니 명예니 감사니 하는 것이 제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어요.” 


<오만과 편견>의 긍정적인 효과(엘리자베스의 영리함과 당돌함, 제인의 현명함과 온화함)는 소설 내의 인물528. 키티는 주로 두 언니들과 시간을 보낸 것이 실질적으로 큰 득이 되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것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있다 보니, 그녀는 크게 개선되었다. 531.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보고, 그녀는 여자도 남편에게 무람하게 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의 변화를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200년의 시간을 지난 지금의 전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3.


아울러 엘리자베스의 주위에 머무르는 전지적 화자에 의해 선명하게 소개되지 않은 다아시의 기사도 정신 또한 훌륭한 남성상에 대한 모범사례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거의 최고 수준의 판타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덧붙여. 다아시의 행위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 이루어진 순수한 그 무엇이다. 누구나 흉내낼 수 없는...


다만, 한가지 아쉬움은 이러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맺어지는 단계. 그들의 확고한 믿음을 야기한 모든 의도(다아시가 왜 그녀의 일에 발벗고 나섰는가)가 확실하게 설득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다아시가 자신을 형성한 지난 모든 것을 마치 고해성사하듯이 반성하는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아시가 타인과 엮이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뒀다고만 생각했지. 누군가를 그리 심하게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문단은 다아시가 짊어져야 할 것 보다 훨씬 큰 자책과 자기비하를 감내하려고 하고 있다고 느꼈다.


505. 평생토록 저는 원칙에서는 아닐지라도 현실에서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어요어린 시절에 옳은 것이 무엇이라는 가르침은 받았지만제 성격을 고치라는 가르침은 못 받았어요훌륭한 원칙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오만과 자만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실행했지요불행하게도 외아들이었던 까닭에, 부모님들이 버르장머리를 그르치셨던 것이지요그분들은 참 좋으신 분들이셨지만제가 이기적이고 거만하도록 내버려두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가르치기까지 하셨습니다제 자신은 가문 혈족 외에는 아랑곳하지 않도록세상 사람들은 죄다 천하게 생각하도록적어도 그들의 생각과 가치가 제 것에 비해서 비천하다고 생각하길 원하도록 말입니다여덟 살 때부터 스물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사랑하는 그대 엘리자베스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그랬을 것입니다당신에게 진 빚을 어찌 다 말할까요당신은 저에게처음에는 정말이지 가혹했지만 다시없이 유익한 교훈을 주셨습니다당신으로 하여저는 겸손해졌습니다제가 당신께 청혼하러 갔을 때 전 승낙받을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를 기쁘게 해줄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임했지요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자임하기에는 제가 얼마나 모자라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만약에 다아시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다면 <레이디 L>처럼 온전한 인간적인 매력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의 공백을 인간이 소유한 매력으로 덧칠해야 이 고해성사의 내용이 설득 된다.  



   


  1. 58. 진정으로 교양 있는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음악, 노래, 그림, 춤, 그리고 몇 가지 외국어를 완벽하게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외에도 걸음걸이의 맵시,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태도와 표현에 품위랄까, 그런 게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교양을 반밖에 못 갖춘 거죠. 거기에다 또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 지성을 계발함으로써 더 실속 있는 내면을 갖춰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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