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1.


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생이 무한한 것이 아님을 <자기 앞의 생>을 읽고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에밀 아자르 소설의 제목대로라 생은 나와 함께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자기 앞에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가버리는 것의 정체가 바로 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모의 선언은 의미심장하다.


116.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2.


어린 화자 모모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어린 모모와 나이 많은 여자 로자다. 이 두 사람은 누가봐도 완벽한 남이다. 인종도 유태인과 아랍인이라는 점에서 다르고, 나이 차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궁핍한 생의 인연으로 만나서 엄마와 아들같은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자기 앞의 생>은 사랑에 관한 소설인데. 이 사랑은 가족애를 의미한다. 이것이 두 사람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끔 한다.  


모모가 잠시 감탄했던 거꾸로 가는 세계에 대한 동경은 영화의 필름을 뒤로 돌렸을 때 나타났었다. 그것은 비현실이었다. 114.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걸음걸이의 속도와 상관없이 생은 끊임없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했다.  


253.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257.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306.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위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게 없으니까.


생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하는 순간마다 로자. 그리고 모모. 두 사람은 격렬히 저항한다. 특히, 모모가 로자를 떠나보내기 전에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를 통해 떠오르는 해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불행한 결말에 직면했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모모의 행동에서 무한한 사랑. 더 나아가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인간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로 흘러. 앞으로 다가올 모모의 생에 충만한 안녕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307.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중략)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중략) 사랑해야 한다.


라는 소설의 지막 문장은 휴머니즘을 완성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3.


<레이디 L>에서 엉덩이로 빌어먹었던 젊은 날의 아네트는 아르망을 사랑했지만, 아르망이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를 배신한다. 아르망을 배신한 대가로 풍족한 생과 더불어 그녀의 후손은 번영을 누렸지만 소설이 기록되고 있는 순간까지 아무도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사랑은 커녕 그녀로 하여금 소외감을 들게 하였다.  12. 세월은 참으로 야만스러웠다! 시간은 아무것도 존중해주지 않았다. 라는 냉소처럼 말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 엉덩이로 빌어먹었던 젊은 날의 로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함으로써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그러는 동안 로자는 모모라는 특별한 아이를 만나게된다. 다른 아이보다 그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는다.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로자는 아마 모모의 친어머니와 친밀한 관계였던 것 같다.)


모모는 자신을 향한 로자의 넘치는 애정을 알아차리고, 생이 그녀를 떠나간 이후에도 그녀를 지켜주는 마지막 존재가 되어준다. 비록, 그녀는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않았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순수한 어린 영혼과 숭고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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