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0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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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향연은 에로스(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등 많은 이들이 에로스에 대해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에로스를 아름다운 것들로 치장하고만 있을 뿐 진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좋은 것)이 늘 자신에게 있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는 필멸의 인간이 에로스를 통해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결여된 것이기 때문에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의 측면에서는 자식을 낳아 불사의 존재가 되고, 영혼의 측면에서는 덕(절제, 용기, 정의)을 낳아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를 깊이 알아가면 몸의 아름다움에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거쳐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앎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아름다움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는 삶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이라 말한다.

향연은 멋진 구절로 가득 차 있지만 인상적인 세 부분만 적어보겠다.

1. 
아가톤
“이리 제 옆에 앉으시지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과 접촉함으로 해서 문전에서 선생님께 떠오른 그 지혜를 저도 누릴 수 있게 말입니다. 선생님은 분명 그걸 발견해서 갖고 계십니다. 발견하기도 전에 그만두시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소크라테스
“참 좋을 것이네, 아가톤. 지혜가 우리가 서로 접촉할 때 우리 가운데 더 가득한 자에게서 더 빈 자에게로 흐르게 되는 그런 거라면 말일세. 마치 잔 속의 물이 털실을 타고 더 가득한 잔에서부터 더 빈 잔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네. 지혜도 이런 거라면 난 자네 옆에 앉는 걸 아주 귀중히 여기겠네. 나 자신이 자네에게서 나오는 많은 아름다운 지혜로 채워질 것으로 믿으니 말일세. 내 지혜는 보잘것없고 꿈처럼 의심스런 것이지만 자네 지혜는 빛이 나며 많은 늘품을 갖고 있거든. 바로 그 지혜가 젊은 자네에게서 그토록 맹렬하게 빛을 발하여 밝게 빛나게 되었지. 엊그제 3만이 넘는 희랍 사람들이 증인이 된 가운데 말일세.”

- 플라톤, 향연, 강철웅역, 175c7-175e5

2. 
무지한 자들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게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가 다루기 어려운 건 바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거든요. 즉 아름답고 훌륭한 자도 분별 있는 자도 아니면서 자신을 만족스럽게 여긴다는 것 말입니다. 자기가 뭔가를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것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 플라톤, 향연, 강철웅역, 204a3-204a8

3.
알키비아데스
“선생님은 제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저를 사랑하는 이가 될 만한 분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제게 말하는 걸 주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은 입장입니다. 선생님이 제 재산이 필요하든 아니면 제 친구들이 필요하든 다른 어떤 것에 있어서도 그렇듯이 이것에 있어서도 선생님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제가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제게 아무것도 없으며, 이 일에 있어서 저를 도와 줄 사람으로 선생님보다 더 권위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바로 이런 사나이에게 살갑게 대할 때 많은 분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살갑게 대하지 않을 때 분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수치스러워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친애하는 알키비아데스, 자네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자가 아닌 것 같네. 자네가 나에 관해 말하는 것들이 진실이라면, 그리고 내 안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 그걸 통해 자네가 더 나은 자가 될 수 있다면 말이네. 그렇다면 자네는 내게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러니까 자네 자신에게 있는 미모와는 아주 월등히 차이가 나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거라 할 수 있네. 그러니까 자네가 바로 그걸 보고서 나와 흥정하여 아름다움을 아름다움과 맞바꾸려 하고 있다면 나보다 더 이득을 보려는 생각인 건데, 그것도 이만저만한 차이가 아니라 그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을 내놓고 대신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얻겠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참으로 ‘청동을 황금과’ 맞바꾸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이네. 하지만, 복받은 자여, 내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자인데 자네가 그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닐지 더 잘 살펴보게. 단언컨대 마음의 시각은 눈의 시각이 정점에서 내리막으로 접어드려 할 때 날카롭게 보기 시작한다네. 그런데 자넨 아직 이런 것들에서 한참 떨어져 있네.”

- 플라톤, 향연, 강철웅역, 218c7-219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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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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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미국 민주당의 연이은 패배가 보수진영의 프레임 설정에 진보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레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보수진영의 프레임의 배경과 진보진영의 대응책에 대해 조언한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투표한다. 보수진영은 바로 이 ‘가치’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그 후 3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자신들의 가치를 포함하는 언어와 ‘프레임’을 개발하고 퍼뜨렸다.

보수진영의 가치는 ‘엄격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엄격한 아버지’는 험한 세상에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혹독하게 훈육한다. 도덕적 행위에 상을 주고, 비도덕적 행위에 벌을 준다. 험한 세상에 홀로 맞설 만큼 강한 것은 좋은 것, 즉 선한 것이 되고, 맞서지 못할 만큼 나약한 것은 나쁜 것, 즉 악한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정부의 개입, 개인의 노력에 의해 축적한 부를 갉아먹는 세금, 노력하지 않는 가난한 자, 즉 나쁘고 악한 자에게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말은 세금은 나쁜 것이므로 적을 수록 좋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나쁜 세금이라는 악당으로부터 구제해주는 보수진영은 영웅이 된다.

보수진영의 프레임 공격에 진보진영의 대응책은 쟁점 수준, 정책 수립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의 프레임을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진보진영의 가치를 포함하는 언어와 새로운 ‘프레임’으로 대체하여 공격하는 것이 절실하다. 진보진영의 가치는 ‘자상한 부모’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자상한 부모’는 세상을 희망적으로 본다. 자식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유해한 위협에서 자식들을 ‘보호’한다. 사회의 모든 어려움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해결할 수 있으며, 자식들이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협력할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잘사는 것보다 모두가 번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개인과 기업은 제한해야 한다. 개인들이 납부하는 세금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자다. 개인이 할 수 없는 공공재를 만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해 다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 예를 들어, ‘세금구제’라는 말은 세금의 효용을 생각할 때 말이 안된다. ‘더 나은 미래’라는 프레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또한 생명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낙태금지’라는 프레임은 현실의 복잡함을 말해주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 프레임으로 대응하고,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강화하는 ‘동성결혼반대’라는 프레임은 결혼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 재구성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보수진영이 이미 구축한 인프라와 막대한 물량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이 시간을 단축하고 자원을 절약해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도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는 쉬운 반면, 실제로 언어를 다루고 길들이는 것은 진지한 사고와 많은 연습을 요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듯이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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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 전예원세계문학선 310 셰익스피어 전집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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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4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셰익스피어의 나이는 28~30세였다. 우리나라는 정명가도를 내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영국국교회를 세운 찰스 8세의 딸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33~1603)는 긴 재위기간동안 식민지 쟁탈전에서 에스파냐에 뒤졌던 잉글랜드를 그 싸움에서 선두권으로 올려놓았다. 1592년말에는 흑사병이 만연해 런던의 극장들은 폐쇄되었으며, 1593년에는 셰익스피어와 친했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선술집에서의 다투던 중 칼에 찔려죽었다. 1594년 셰익스피어는 <궁내대신 소속극단>의 주주겸 단원이 되어 매년 2편씩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했으며 이 때부터 그의 걸작들이 속속 등장한다.

술취한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깨뜨린 술잔값을 내지 못해 윈코트 주점의 메리언 하케트에게 쫓겨난다. 사냥을 다녀오다 쓰려진 그를 발견한 영주는 재미삼아 그를 15년간 깨어나지 못한 영주로 만들기로 한다. 슬라이가 깨어나자 하인들이 갖은 수발을 다하고 아름다운 아내까지 곁에 있자 현실로 믿고만다. 그는 행복에 심취한 채 유랑극단이 펼치는 연극을 즐긴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갑부 밥티스타 미놀라에겐 말괄량이 첫째딸 캐서리너(일명 케이트)와 상냥한 성격의 둘째딸 비앙카가 있다. 비앙카는 나이든 그레미오와 젊은 호텐쇼의 청혼을 받는다. 밥티스타는 첫째딸 케이트가 먼저 결혼해야만 그녀를 그들에게 시집보낼 것이라 못박는다. 마침 이 광경을 숨어서 보던 피사에서 온 루첸티오는 비앙카에 반한 나머지 하인 트라니오와 계략을 꾸민다.

루첸티오가 가정교사로 변장해 비앙카에게 접근하는 동안 하인 트라니오가 대신 주인 루첸티오 행세를 하며 비앙카에 청혼하기로 한다. 베로나의 신사로 부자 마누라를 얻기 위해 파도바에 온 페트루치오는 친구 호텐쇼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다. 호텐쇼가 음악선생으로 변장해 비앙카의 마음을 사로잡을 동안 페트루치오는 첫째 케이트에게 청혼하기로 한다.

밥티스타의 집에 페트루치오와 음악선생으로 변장한 호텐쇼, 그리고 그레미오와 가정교사로 변장한 루첸티오,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가 도착한다. 페트루치오가 현란한 언변과 남자다운 기개로 성난 파도같은 케이트를 잠재우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제 둘째딸이 남았다. 루첸티오가 호텐쇼와의 경쟁에서 비앙카의 마음을 사로잡고 하인 트라니오의 기지로 그녀와 결혼한다. 호텐쇼는 친구 페트루치오의 언변을 배운 후 다른 미망인과 결혼한다.

페트루치오가 아내 케이트를 길들이는 방법은 맞불작전이다.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결혼식장에 나타나 숨쉴 틈도 없이 몰아부쳐 결혼식을 치르고 피로연도 마치지 않은 채 그녀를 집으로 데려간다. 페트루치오는 온갖 트집을 잡으며 하인들에게 화를 내는데, 그 옆에서 케이트는 미안해서 안절부절이다. 사실은 음식핑계를 대며 그녀를 굶주리게 하고, 잠자리 핑계를 대며 잠들지 못하게 해 그녀를 길들이겠다는 심사다. 이 방법이 절묘하게 먹힌다. 세 커플이 한 자리에 모이는 연회가 열린고, 세 남자는 누가 제일 순종적인지 내기를 한다. 비앙카가 우승후보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의외로 케이트의 우승이다.

복잡한 플롯이지만 의외로 명쾌한 이 작품의 진미는 페트루치오와 케이트의 말싸움 장면이다.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나쁜남자의 전형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막 1장을 수놓고 있는 말의 향연은 다른 작품에서는 평생동안 몇 번 마주치기도 힘든 순간이지만, 셰익스피어에게서는 자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리 큰 소리쳐도 코끼리 귀에 개미소리죠.
나의 귀로 말할 것 같으면 왕년에 사자의 포효소리를 들었고,
바람이 뒤끓는 바다가 땀에 젖은 성난 멧돼지처럼 광풍에 거품을 흩날리는 소릴 들은 바 있소.
대평원에서는 대지를 뒤흔드는 대포소리도 하늘을 진동하는 천둥소리도 들은 이 시람이오.
난장판 싸움터에서 요란한 북소리, 군마의 울부짖는 소리, 우렁찬 나팔소리를 들은 이 사람이오.
내가 여자의 혓바다에 끄덕이나 할 것 같소?
그런 것은 시골 농가의 화롯불에서 바짝바짝 튕기는 군밤소리만도 못합니다.
쯧! 쯧! 애들이나 도깨비 얘길 무서워하죠.

- 1막 2장 (케이트가 사납다는 호텐쇼의 말에 페트루치오의 대꾸)

와만 봐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놀테다.
악담을 한다구, 그러면 나는 나이팅게일의 노래처럼 아름답다고 해주지.
오만상을 찌푸린다면 그럼 나는 마치 아침이슬에 젖은 장미처럼 싱그럽다고 할 거다.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면 그럼 가슴을 울리는 웅변이라고 칭찬하리라.
당장 나가라고 하면 한 주일 동안 있어 달라고 재촉 받은 듯 고맙다고 해야지.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면 난 결혼예고른 언제하며 식은 언제 올리는가 날짜를 물을 거구.

- 2막 1장 (케이트를 만나기 전의 페트루치오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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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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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88년 공연된 작품으로 57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연출했다. 현존하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크레뮐로스는 나쁜 사람만 부자가 되고 착한 사람은 가난하게 사는 현실을 개탄하며 하인 카리온과 함께 델포이 신전을 찾는다. 아폴론 신은 그에게 신전을 나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후하게 대접하라고 한다. 처음에 만난 이는 허름한 차림의 장님이다. 카리온이 주인을 구박하는 가운데 크레뮐로스는 그의 정체를 묻는다. 그는 자신이 '부(富)의 신'이며, 제우스가 인간들을 미워해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 채 부자로 만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크레뮐로스는 그의 시력을 찾아주면 정직한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찾아가기로 한다.

무섭게 생긴 쪼그랑 할멈의 모습을 한 '가난의 신'이 그들의 앞을 막는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된다면 더이상 아무도 일하지 않아 세상이 지금보다 살기 힘들어질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크레뮐로스와 그의 친구 블렙시데모스를 설득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도착하고 '부의 신'은 치료를 받는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눈에 약물을 바르고 그의 딸들이 머리를 헝겊으로 감싼다. 큰 뱀 두마리가 나와 그의 눈을 핥자 '부의 신'은 눈을 뜬다.

다음날 아침, 크레뮐로스의 집은 전과는 다르게 삐까뻔쩍, 휘황찬란하다. 하룻밤 사이에 사악한 사람들은 가난뱅이가 되었지만, 정직한 사람들은 부자가 된 것이다. 그의 집에 연이어 방문자들이 찾아온다. 정직하게 살았지만 가난했던 이는 부자가 되어 '부의 신'에게 감사드리러 오고, 남을 팔아 살았던 밀고자는 가난뱅이가 되어 '부의 신'에게 따지러 온다. 그녀의 돈때문에 곁에 있었던 젊은 애인을 잃게 된 노파, 자신에게 아무도 제물을 바치지 않자 굶주리게 된 헤르메스, 마찬가지로 제우스 신전에 제물이 줄어들어 배가 고픈 제우스의 사제들도 찾아온다. 크레뮐로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테나 여신의 보물 창고에 '부의 신'을 모시자고 제안하고, 방문객들이 행렬을 이뤄 뒤따른다.

이 작품은 미완성이다. 곳곳에 코로스의 대사가 빠져있고, 이치에 맞지않는 내용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파의 돈때문에 그녀를 속이고 곁에 있었던 젊은이는 부정직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자 제우스와 헤르메스 등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정직한 사람들은 기존에 제사를 지냈지만 자신들 대신에 사악한 사람들만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정직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더이상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어졌고, 사악한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돈이 없어졌다. 그래서 신들은 굶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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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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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92년 공연된 작품으로 53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연출했다.

B.C.404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함으로써 28년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났다. 스파르타인들의 후견 아래 30인의 참주 정치가 실시되자 아테네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B.C.403년 민주파들이 과두파들과의 정쟁에서 승리하고 스파르타의 중재 아래 다시금 민주정이 부활되었다. B.C.399년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독배를 받고 사망하였다. 그리스의 패권다툼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아 이번에는 B.C.395년 코린토스, 테베, 아테네, 아르고스, 페르시아를 한 편으로 하는 동맹이 스파르타와 일전을 벌여 승리하였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프락사고라(Praxagora, '공공집회에서 활동하는 여자'라는 뜻)는 더이상 남자들에게 정치를 맡겨둘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이 직접 나서야한다고 생각한다. 남편들이 잠든 사이에 남편의 외투와 라코니케풍 구두, 가짜수염을 가지고 모인 여인들은 남자들로 변장한다.  남자들이 참석하기도 전에 민회에 참가해 다수결을 통해 아테네는 남자들 대신 여자들이 다스리는 것으로 결정한다.

법안의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재산을 모아 공동의 소유로 하며, 모든 처자들도 공동의 소유로 하며, 모든 이들이 공동으로 식사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젊고 잘생긴 남녀가 서로 교접하기 위해서는 곁에 있던 늙고 못생긴 남녀와 먼저 교접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개인의 재산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이상 사기꾼이나 도둑놈도 없을 것이고 재판이 필요없으므로 투표기계는 식권추첨을 위해, 재판장은 식당으로 사용된다. 자유민은 더이상 노동할 필요가 없으며 노동은 노예들만 한다. 노예들은 노예들끼리만 교접이 허용된다.

새로운 법안에 혼란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아테네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시에 바치자 한 부자는 재산이 아까워 불평해댄다. 하지만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국법을 어기는 것이니 전전긍긍이다. 한 쪽에선 잘생긴 젊은이가 사랑하는 젊은 여인을 찾아와 구애중이다. 남자가 여인의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노파가 나타나 새로운 법령을 들이대며 자신과 먼저 관계를 가져야 된다고 말한다. 그 노파를 간신히 피하자 더 늙은 다른 노파가 나타나 그를 잡아가려는데, 그보다 더 늙고 흉측한 노파가 나타나 자신의 우선권을 말한다. 서로 옥식각신하던 가운데 젊은이는 한 노파에게 끌려간다. 프락사고라의 남편 블레퓌로스는 아내가 새로운 아테네의 장군이 된 보람도 없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동식사장으로 향한다. 공동식사장 앞에서는 만찬이 차려져 있다고 번듯하게 홍보하지만 막상 먹을만한 것은 죽밖에 없다.

작품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국가>에서 정치가들은 탐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하고, 같이 살고, 함께 먹는다. 물론 처자도 공유한다. 이러한 공동문화는 당시 스파르타의 생활양식이라고 한다.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인들이 패배의 원인을 자신들의 사치와 탐욕으로 생각했고, 대안으로 스파르타의 공동 생활양식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이 작품이 연대상 앞서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플라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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