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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평점 :
B.C.392년 공연된 작품으로 53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연출했다.
B.C.404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함으로써 28년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났다. 스파르타인들의 후견 아래 30인의 참주 정치가 실시되자 아테네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B.C.403년 민주파들이 과두파들과의 정쟁에서 승리하고 스파르타의 중재 아래 다시금 민주정이 부활되었다. B.C.399년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독배를 받고 사망하였다. 그리스의 패권다툼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아 이번에는 B.C.395년 코린토스, 테베, 아테네, 아르고스, 페르시아를 한 편으로 하는 동맹이 스파르타와 일전을 벌여 승리하였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프락사고라(Praxagora, '공공집회에서 활동하는 여자'라는 뜻)는 더이상 남자들에게 정치를 맡겨둘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이 직접 나서야한다고 생각한다. 남편들이 잠든 사이에 남편의 외투와 라코니케풍 구두, 가짜수염을 가지고 모인 여인들은 남자들로 변장한다. 남자들이 참석하기도 전에 민회에 참가해 다수결을 통해 아테네는 남자들 대신 여자들이 다스리는 것으로 결정한다.
법안의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재산을 모아 공동의 소유로 하며, 모든 처자들도 공동의 소유로 하며, 모든 이들이 공동으로 식사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젊고 잘생긴 남녀가 서로 교접하기 위해서는 곁에 있던 늙고 못생긴 남녀와 먼저 교접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개인의 재산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이상 사기꾼이나 도둑놈도 없을 것이고 재판이 필요없으므로 투표기계는 식권추첨을 위해, 재판장은 식당으로 사용된다. 자유민은 더이상 노동할 필요가 없으며 노동은 노예들만 한다. 노예들은 노예들끼리만 교접이 허용된다.
새로운 법안에 혼란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아테네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시에 바치자 한 부자는 재산이 아까워 불평해댄다. 하지만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국법을 어기는 것이니 전전긍긍이다. 한 쪽에선 잘생긴 젊은이가 사랑하는 젊은 여인을 찾아와 구애중이다. 남자가 여인의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노파가 나타나 새로운 법령을 들이대며 자신과 먼저 관계를 가져야 된다고 말한다. 그 노파를 간신히 피하자 더 늙은 다른 노파가 나타나 그를 잡아가려는데, 그보다 더 늙고 흉측한 노파가 나타나 자신의 우선권을 말한다. 서로 옥식각신하던 가운데 젊은이는 한 노파에게 끌려간다. 프락사고라의 남편 블레퓌로스는 아내가 새로운 아테네의 장군이 된 보람도 없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동식사장으로 향한다. 공동식사장 앞에서는 만찬이 차려져 있다고 번듯하게 홍보하지만 막상 먹을만한 것은 죽밖에 없다.
작품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국가>에서 정치가들은 탐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하고, 같이 살고, 함께 먹는다. 물론 처자도 공유한다. 이러한 공동문화는 당시 스파르타의 생활양식이라고 한다.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인들이 패배의 원인을 자신들의 사치와 탐욕으로 생각했고, 대안으로 스파르타의 공동 생활양식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이 작품이 연대상 앞서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플라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