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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 전예원세계문학선 310 ㅣ 셰익스피어 전집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1년 6월
평점 :
1592~1594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셰익스피어의 나이는 28~30세였다. 우리나라는 정명가도를 내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영국국교회를 세운 찰스 8세의 딸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33~1603)는 긴 재위기간동안 식민지 쟁탈전에서 에스파냐에 뒤졌던 잉글랜드를 그 싸움에서 선두권으로 올려놓았다. 1592년말에는 흑사병이 만연해 런던의 극장들은 폐쇄되었으며, 1593년에는 셰익스피어와 친했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선술집에서의 다투던 중 칼에 찔려죽었다. 1594년 셰익스피어는 <궁내대신 소속극단>의 주주겸 단원이 되어 매년 2편씩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했으며 이 때부터 그의 걸작들이 속속 등장한다.
술취한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깨뜨린 술잔값을 내지 못해 윈코트 주점의 메리언 하케트에게 쫓겨난다. 사냥을 다녀오다 쓰려진 그를 발견한 영주는 재미삼아 그를 15년간 깨어나지 못한 영주로 만들기로 한다. 슬라이가 깨어나자 하인들이 갖은 수발을 다하고 아름다운 아내까지 곁에 있자 현실로 믿고만다. 그는 행복에 심취한 채 유랑극단이 펼치는 연극을 즐긴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갑부 밥티스타 미놀라에겐 말괄량이 첫째딸 캐서리너(일명 케이트)와 상냥한 성격의 둘째딸 비앙카가 있다. 비앙카는 나이든 그레미오와 젊은 호텐쇼의 청혼을 받는다. 밥티스타는 첫째딸 케이트가 먼저 결혼해야만 그녀를 그들에게 시집보낼 것이라 못박는다. 마침 이 광경을 숨어서 보던 피사에서 온 루첸티오는 비앙카에 반한 나머지 하인 트라니오와 계략을 꾸민다.
루첸티오가 가정교사로 변장해 비앙카에게 접근하는 동안 하인 트라니오가 대신 주인 루첸티오 행세를 하며 비앙카에 청혼하기로 한다. 베로나의 신사로 부자 마누라를 얻기 위해 파도바에 온 페트루치오는 친구 호텐쇼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다. 호텐쇼가 음악선생으로 변장해 비앙카의 마음을 사로잡을 동안 페트루치오는 첫째 케이트에게 청혼하기로 한다.
밥티스타의 집에 페트루치오와 음악선생으로 변장한 호텐쇼, 그리고 그레미오와 가정교사로 변장한 루첸티오,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가 도착한다. 페트루치오가 현란한 언변과 남자다운 기개로 성난 파도같은 케이트를 잠재우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제 둘째딸이 남았다. 루첸티오가 호텐쇼와의 경쟁에서 비앙카의 마음을 사로잡고 하인 트라니오의 기지로 그녀와 결혼한다. 호텐쇼는 친구 페트루치오의 언변을 배운 후 다른 미망인과 결혼한다.
페트루치오가 아내 케이트를 길들이는 방법은 맞불작전이다.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결혼식장에 나타나 숨쉴 틈도 없이 몰아부쳐 결혼식을 치르고 피로연도 마치지 않은 채 그녀를 집으로 데려간다. 페트루치오는 온갖 트집을 잡으며 하인들에게 화를 내는데, 그 옆에서 케이트는 미안해서 안절부절이다. 사실은 음식핑계를 대며 그녀를 굶주리게 하고, 잠자리 핑계를 대며 잠들지 못하게 해 그녀를 길들이겠다는 심사다. 이 방법이 절묘하게 먹힌다. 세 커플이 한 자리에 모이는 연회가 열린고, 세 남자는 누가 제일 순종적인지 내기를 한다. 비앙카가 우승후보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의외로 케이트의 우승이다.
복잡한 플롯이지만 의외로 명쾌한 이 작품의 진미는 페트루치오와 케이트의 말싸움 장면이다.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나쁜남자의 전형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막 1장을 수놓고 있는 말의 향연은 다른 작품에서는 평생동안 몇 번 마주치기도 힘든 순간이지만, 셰익스피어에게서는 자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리 큰 소리쳐도 코끼리 귀에 개미소리죠.
나의 귀로 말할 것 같으면 왕년에 사자의 포효소리를 들었고,
바람이 뒤끓는 바다가 땀에 젖은 성난 멧돼지처럼 광풍에 거품을 흩날리는 소릴 들은 바 있소.
대평원에서는 대지를 뒤흔드는 대포소리도 하늘을 진동하는 천둥소리도 들은 이 시람이오.
난장판 싸움터에서 요란한 북소리, 군마의 울부짖는 소리, 우렁찬 나팔소리를 들은 이 사람이오.
내가 여자의 혓바다에 끄덕이나 할 것 같소?
그런 것은 시골 농가의 화롯불에서 바짝바짝 튕기는 군밤소리만도 못합니다.
쯧! 쯧! 애들이나 도깨비 얘길 무서워하죠.
- 1막 2장 (케이트가 사납다는 호텐쇼의 말에 페트루치오의 대꾸)
와만 봐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놀테다.
악담을 한다구, 그러면 나는 나이팅게일의 노래처럼 아름답다고 해주지.
오만상을 찌푸린다면 그럼 나는 마치 아침이슬에 젖은 장미처럼 싱그럽다고 할 거다.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면 그럼 가슴을 울리는 웅변이라고 칭찬하리라.
당장 나가라고 하면 한 주일 동안 있어 달라고 재촉 받은 듯 고맙다고 해야지.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면 난 결혼예고른 언제하며 식은 언제 올리는가 날짜를 물을 거구.
- 2막 1장 (케이트를 만나기 전의 페트루치오의 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