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아있는 그리스 비극 중에 오이디푸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6편이다.
대략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오이디푸스 왕> Oidipous Tyrannos - 소포클레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Oidipous epi Koloni - 소포클레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Hepta epi Thebas - 아이스퀼로스
<포이니케 여인들> Phoinissai - 에우리피데스
<안티고네> Antigone - 소포클레스
<탄원하는 여인들> Hiketides - 에우리피데스
그렇다면 왠지 낯익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1. 테바이 오이디푸스 가문 가계도
랍다코스 메노이케우스(스파르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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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스~이오카스테 크레온~에우뤼디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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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이오카스테 하이몬 메노이케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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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오클레스 폴뤼네이케스 안티고네 이스메네
2. 오이디푸스 가문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 소포클레스>
테바이 왕 라이오스는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 부인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이런 신탁을 받는 이유로 라이오스가 펠로폰네소스 지방에 머물 때 펠롭스의 아들 크뤼십포스를 사랑하게 된,
즉 동성연애를 하게 된 벌이라는 견해가 있다.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5권 5장-5])
그래서 아들 오이디푸스를 낳자마자 두 다리를 묶어(못으로 꿰었다고도 한다.) 키타이론 산에 버리도록 명령한다.
아이를 불쌍히 여긴 가신은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그 아이를 넘기고 결국 아이는 코린토스에서 왕손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는 두려운 나머지
부모가 살고 있는 코린토스에서 멀리 떨어진 테바이로 떠난다.
<목자에 의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오이디푸스, Antoine-Denis Chaudet, 1801, 루브르>
테바이로 가던 중에 한 무리의 전차를 만난다. 마부는 그를 무시하고 전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그를 때리기까지 한다.
울컥하는 마음에 지팡이를 휘둘러 그들을 죽이고 만다.
한편 테바이에서는 여인의 얼굴과 사자몸에 날개가 달린 스핑크스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내고
풀지 못한 사람들을 계속 잡아먹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때마침 나타나 수수께끼를 푼다.
"목소리는 하나인데, 처음에는 발이 네 개, 그 다음에는 두 개, 마지막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
"두 자매가 있는데 서로 번갈아 낳아주는 것은 무엇이냐?"
"낮과 밤"
스핑크스는 절망하여 절벽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고,
사람들은 비어있는 왕위에 오이디푸스를 앉히고 왕비와 결혼시킨다.
오이디푸스는 왕비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 딸 둘을 얻어서 평온한 세월을 보낸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05, 루브르>
그러던 어느 날 테바이 전역에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가고 곡식은 이삭을 맺지 못하고
동물들을 새끼를 낳지 못한다.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묻자 이 나라를 오염시킨 범죄 때문이며
그 범죄를 없애야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전 왕 라이오스가 살해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부른다. 테이레시아스는 참혹한 과거를 알리기 싫어 입다물고 있지만
오이디푸스의 거듭된 위협에 결국 범인은 바로 당신, 오이디푸스라고 지목한다.
믿을 수 없는 얘기에 놀란 오이디푸스는 오히려 테이레시아스와 그와 함께 있던 크레온을 역모로 몬다.
그 때 마침 코린토스로부터 도착한 사자가 오이디푸스의 부친 폴뤼보스 왕의 죽음을 알린다.
또한 오이디푸스는 사실 폴뤼보스 왕의 친아들이 아니며 그를 발견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사자 자신이라고 말한다.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마지막으로 사자에게 아이를 넘겨준 가신을 찾는다.
가신은 라이오스 왕이 죽던 날, 혼자 살아남아 변방에서 목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불려온 가신은 아이를 넘겨준 사자를 보고 놀라면서 라이오스를 죽인 사람이 바로 눈 앞에 있는 오이디푸스라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내 이오카스테와 결혼해서
자신의 형제/자매이자, 자식들을 낳았던 것이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밧줄에 목을 매어 죽고 오이디푸스는 절규하며 자신의 두 눈을 찌른다.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는 두 눈이 먼 채로 딸 안티고네와 함께 테바이에서 추방된다.
정처없이 헤메다 아테나이 근처 콜로노스의 복수의 여신들의 신전에 도착한 그들에게
막내딸 이스메네는 그간의 테바이 소식을 알린다.
오이디푸스가 추방된 뒤 왕위를 이어 받은 장남 폴뤼네이케스는
아우 에테오클레스에 밀려 쫓겨난다. (나머지 얘기에서는 이 둘의 관계가 반대다.)
아르고스에서 세력을 결집한 폴뤼네이케스는
테바이를 침략할 준비를 마친다.
복수심에 불타는 형제에게 신탁이 내린다.
"오이디푸스를 얻는 사람이 전쟁에서 이기리라."
에테오클레스의 명령을 받은 오이디푸스의 외삼촌 크레온이 테바이로 오이디푸스를 데려가기 위해
안티고네를 납치하자 오이디푸스는 아테나이 왕 테세우스에게 그를 지켜줄 것을 탄원한다.
테세우스는 안티고네를 무사히 구출하고 크레온의 세력을 무사히 막아낸다.
이제 테바이를 침략하기 전 장남 폴뤼네이케스가 오이디푸스를
방문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그가 추방당할 때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한
두 아들이 서로 싸우다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결국 누구도 오이디푸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전쟁은 벌어진다.
오이디푸스는 탄원을 들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테세우스에게
신의 비의를 알려주고 세상을 떠난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Johann Peter Krafft, 1809>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 아이스퀼로스>
<포이니케 여인들 - 에우리피데스>
<안티고네 - 소포클레스>
남겨진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다시 테바이로 돌아온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테바이가 아르고스와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우스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한다.
메노이케우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결국 테바이의 일곱 장수를 막아낸다.
하지만 일대일로 맞선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결국 서로 죽이고 만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죽자 왕위에 오른 크레온은
테바이를 위해 싸운 애국자 에테오클레스는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되
테바이를 침략한 배신자 폴뤼네이케스는 아무도 손대지 말고
개 떼와 새 떼에게 뜯어먹히도록 놔두라고 명한다.
하지만 오라비를 가엾게 여긴 안티고네는 폴뤼네이케스를 매장하려다 발각당해 체포된다.
크레온은 아들 하이몬과 안티고네를 결혼시키려던 마음을 바꿔 그녀를 동굴에 가두어 굶겨 죽일 것을 명한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신의 불문율을 따른 그녀를 죽이면 크레온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이라고 말하자
크레온은 두려워져 그녀를 살려주기로 결심한다.
크레온은 찾아간 동굴에서 목매어 죽은 안티고네를 안고 흐느끼는 하이몬을 발견한다.
하이몬은 분노에 휩싸여 크레온의 얼굴에 침을 뱉고 아버지에게 칼을 던지지만 빗나가자
망설임없이 자기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죽음을 택한다.
이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아내이자 하이몬의 어머니인 에우리뒤케도 칼로 가슴을 찔러 자결하고,
크레온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탄원하는 여인들 - 에우리피데스>
테바이를 공격한 아르고스의 일곱전사들이 전사하자 테바이인들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그들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아르고스 측 요구를 거절하는데, 이는 그리스인들의 신성한 관습에 위배된다.
이들 장수들의 어머니들이 원정을 주도했던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와 함께 아테나이 근처에 있는 엘레우시스에 있는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을 찾아가 마침 그 곳에서 기도하던 아테나이 왕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자식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탄원한다. 테바이인들의 전령이 나타나 이들을 넘겨달라고 위협하듯 요구하지만,
테세우스는 단호히 거절하고 무력으로 시신들을 찾아온다. 그리하여 장례식이 치러지자 일곱 장수 중 한 명인
카파네우스의 아내 에우아드네가 남편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뛰어들어 죽는다.
<뒷 얘기>
테바이를 공격한 아르고스의 일곱전사들의 아들들(Epigonoi)은 다시 테바이를 공격하여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오이디푸스의 손자이자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가 죽자
그 자손들은 엔켈레이스족(알바니아 근처)에게 피신하거나 아테나이로 떠났다고 한다.
[헤로도토스, 역사, 5권 61장]
오이디푸스의 또다른 아들인 폴뤼네이케스의 자손들은 라케다이몬(스파르테)에 살다가
테라스 때에 테라(산토리니섬)로 가서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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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뤼네이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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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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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사메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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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테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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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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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롤뤼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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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게우스
스파르테의 주요 씨족인 아이게이다이 가는 그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이 가문의 남자들에게 태어난 자식들은 늘 요절했다.
그래서 신탁의 조언에 따라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원혼들에게 사당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제명대로 살았는데 테라에 살던 아이게이다이 가의 후손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헤로도토스, 역사, 4권 147~1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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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직접 살펴보니 모르고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른 채 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신의 도움으로 처벌을 면하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손으로 두 눈을 찔러 묵묵히 죄값을 치른다.
물론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변명을 하기도 한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내가 살기 위한 정당방위였고,
어머니와 같이 결혼하게 된 것은 몰랐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정당방위와 모르고 저지른 범죄는 죄가 아니라는 논리를 앞세우나
사실 신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자만심과 호기심이 이미 죄라는 것을
불행을 겪고 난 오이디푸스는 알고 있다.
처음 테바이에 역병이 돌 때 오이디푸스는 경솔하게도 범인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말한다.
그 범인이 자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줌도 없다.
범인을 밝혀내려는 호기심과 스핑크스에게서 테바이를 구해냈듯이
이번에도 자기만이 범인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만이 가득하다.
이런 인간에게 신의 심판은 가혹하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 비극의 특징인 딜레마를 경험한다.
그리스 비극의 인물들은 자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나
그것이 결국 자신의 운명을 완결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오이디푸스는 생부로 알고 있던 양부 코린토스왕을 죽이지 않기 위해 떠나와야했지만
결국 진짜 생부 라이오스왕을 죽이고 만다.
왕으로서 테바이의 역병을 치료해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찾았던
범인의 정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인간은 빠져나갈 수 없는 신의 덫.
하지만 신은 불행이라는 고통으로 인간을 쓰러뜨리지만
성숙이라는 보상으로 다시 일으켜준다.
가혹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만족해야 한다. 신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