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그리스 비극을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나가 지금까지 읽은 것들만 요약한다.

현재 남아있는 그리스 비극 33편 중에 자그마치 8편이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아이스퀼로스 -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유일한 3부작)
소포클레스 -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 -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우리에게 낯익은 오이디푸스 비극 이야기에 비해
낯선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자.

<아가멤논 가문의 계보>

탄탈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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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롭스~힙포다메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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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레우스~아에로페                                                              튀에스테스~펠로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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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클뤼타이메스트라                       메넬라오스~헬레네          아이기스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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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크뤼소테미스)


탄탈로스는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펠롭스의 고기를 신들에게 대접하다가 발각되어
타르타로스에 떨어져 영원한 허기와 갈증으로 고통받는다.

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되찾은 펠롭스는 전차 경주에서 엘리스 지방의 피사왕 오이노마아오스를 이기고
그의 딸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게 되지만, 그러기 위해 매수했던 그의 마부 뮈르틸로스를 배신하고 바닷물에 던져 죽인다.
뮈르틸로스는 죽으면서 펠롭스 가문에 저주를 내린다.

저주는 먼저 펠롭스의 두 아들들에게서 실현되는데 아트레우스가 뮈케네의 왕이 되었을 때
그의 동생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 에우로페를 유혹하다 발각되어 추방된다.
나중에 아트레우스는 서로 화해하자며 튀에스테스를 불러놓고는 그의 두 아들(아이기스토스의 형제)을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하여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나중에 내막을 알게 된 튀에스테스는 질겁을 하고 달아나며 아트레우스 가문을 저주한다.


<Le Sacrifice d’Iphigénie, Carle Vanloo>
* 아울리스항에서 순풍을 기원하며 제단에 바쳐지는 이피게네이아.
  아르테미스 여신과 사슴도 보인다.

저주는 멈추지 않고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들에게도 실현된다.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자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은 그리스군 총사령관을 맡아 트로이아 정벌에 나선다.
하지만 아울리스 항에서 역풍이 불어 배가 나아가지 못하자
아가멤논의 그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그제서야 순풍이 불어 선단은 트로이아로 나아간다.


<Clytemnestra hesitates before killing the sleeping Agamemnon, Pierre-Narcisse GUÉRIN>
*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남편 아가멤논을 죽이기 전에 망설이자, 정부 아이기스토스가 부추기고 있다.
  욕실에서 그물로 덮어쒸워 도끼로 죽였다는 이야기와는 다른 구도다.

한 편 추방당한 튀에스테스는 모르고 자신의 친딸 펠로피아와 교합하여 아이기스토스를 낳는다.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이 원정 가고 없는 사이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유혹하여 교합하고,
아가멤논이 트로이아를 함락하고 귀향하던 날 그녀의 손을 빌어 아가멤논을 죽인다.
(아이기스토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딸 이피게네이아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이다.)

이 둘은 그 뒤 7년 동안 뮈케네를 통치했으나
8년째 되던 해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친구 퓔라데스와 함께 돌아와
아버지를 존경하던 누이 엘렉트라의 도움으로 (엘렉트라 컴플렉스)
아이기스토스와 모친인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Orestes Pursued by the Furies, Bourguerea>
*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죽인 후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
  칼에 찔린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모습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오레스테스의 모습이 생생하다.

<결론 1. 아이스퀼로스 - 자비로운 여신들>
아폴론의 신탁을 받고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폴론은 아테나이로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하고,
재판은 인간 배심원들은 유죄와 무죄의 투표가 동수를 이룬 가운데
아테나 여신의 캐스팅 보트에 의해 오레스테스는 무죄 방면된다. (남자를 죽인 것이 더 가혹한 일이라는 판단)
엘렉트라도 오레스테스의 친구 퓔라데스와 결혼한다.

<결론 2. 에우리피데스 - 오레스테스>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아르고스 시민들에게 사형될 것이 확실하다.
그 때 마침 삼촌 메넬라오스와 숙모 헬레네를 태운 함대가 아르고스에 들린다.
삼촌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지만 메넬라오스는 몸을 사리고 어김없이 사형판결이 내려진다.
이들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를 인질로 잡아 메넬라오스가 개입해 구해주지 않으면
헤르미오네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이 때 갑자기 아폴론이 나타나 모든 사태를 수습한다.(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헬레네는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오레스테스는 아테나이에서 재판을 받고 무죄 방면된 뒤
헤르메오네와 결혼하고 아르고스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론 3. 에우리피데스 -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오레스테스에게 아폴론 신이 나타나 죄를 씻고 가문을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신상을 찾아간 타우로이족의 나라에는 제물로 바쳐져 죽은줄만 알았던
누이 이피게네이아가 살아있다. 제물로 바쳐지던 마지막 순간 아르테미스 여신이 사슴을 대신 넣어주고 구출하여
자신의 여사제로 삼은 것이다. 그들은 여신상을 가지고 아르고스로 무사히 돌아오고, 오레스테스는 죄를 씻고
이피게네이아는 아르테미스의 영원한 여사제가 된다.

이상이 대략적인 아가멤논, 클뤼타이메스트라, 이피게네이아, 오레스테스, 엘렉트라에 얽힌 이야기이다.
요즘 드라마영화에서도 다루기 힘든 소재들이 총망라된 근친살해에 대한 종합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딸을 바치는 아버지,
딸의 복수를 위해서 남편을 죽이는 아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어머니를 죽이는 아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저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끊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련과 대가가 필요하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P.S 영화 '엘렉트라(1962)'는 그리스에서 제작되었다.
      그리스 비극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가 원작이다.
      '엘렉트라'역을 맡은 이렌느 파파스의 열연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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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da 2009-08-24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비서님이신가요? 명작읽기요. 역시 세상은 좁고 인터넷 바다도 마찬가지구나
책 살라구 들어와서 쌩스투 누르니까 낯익은 아이디가 떠서요.
근데
아니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