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 55 | 56 | 5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남명집 한길그레이트북스 52
조식 지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옮김 / 한길사 / 200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좌우명(座右銘)

언행(言行)을 신의 있게 하고 삼가하며, 庸信庸謹
사악(邪惡)함을 막고 정성(精誠)을 보존하라. 閑邪存誠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岳立淵沖
움 돋는 봄날처럼 빛나고 빛나리라. 燁燁春榮

금인명(金人銘)

굳세고도 -의(義)이다. 장중하니, -인(仁)이다. 剛而重
그 덕을 아무도 당할 수 없도다. 德莫戡
이미 말이 없거늘,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已無言
게다가 세 번이나 봉하였도다. 緘復三
-말로 신(神)을 감격(感格)시키지 않고, 행동이 지극히 공경스럽다.
이상은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極其誠敬
태묘(太廟) 앞에 있으면서, 在太廟
참사(參祀)하는 사람들을 엄숙하게 한다. 肅鬼參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덕을 말했다. 나타나지 않을 수 없기에 또한 친림(親臨)하는 것이다.
이상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조심함을 말한 것이다. 謹獨

남명은 그가 죽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내 평생 한가지 장점이 있었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구차하게 복종하지 않았던 정신이다. 사후에 나를 처사라고 불러라. 그것이 내 평생의 뜻이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명망있는 학자로도, 관직으로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처사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이다. 남명에게 처사는 부조리한 현실에 야합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꿋꿋하게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많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한 번 말을 하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던질 수 있었던 기개를 보여주었던 남명이었다.

이 갈증나는 세상에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남명 같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완용 평전 -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윤덕한 지음 / 중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이완용이 우리가 알고 있던 악랄한 매국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무엇을 알리고자 했던 것일까? 저자는 을사조약과 한일합방만 해도 이완용 등 을사5적의 탓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한말은 이완용 못지않은 매국노로 득실거리는 매국노 천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을사조약 당시 법부대신이던 이하영만 하더라도 일본군이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는 반민족적 책동을 한 매국노이고, 합방 당시 궁내부대신이던 민병석, 친일개화파였던 윤웅렬 등도 합방의 공로로 작위를 받은 매국노였다.

“과연 이완용과 이하영 민병석 윤웅렬의 매국 행위가 얼마나 차이가 있다고 한쪽은 묘까지 파헤쳐지고 그 자손은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다른 쪽의 자손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가로 떵떵거리며 윤웅렬의 조카 윤치소의 아들(윤보선)은 대통령으로, 민병석의 아들 민복기는 대법원장으로, 이하영의 손자 이종찬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이름을 날리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이완용은 만고의 매국노다. (그러나) 망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민비나 대원군이 저지른 죄과는 이완용의 그것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이다. 우리는 이완용에 대한 단죄와 함께 이들 망국배와 매국노들에 대해서도 공정한 역사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않고 모든 책임을 이완용 한사람에게만 묻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역사의 이지메이며 그를 속죄양으로 삼은 대다수 매국노들의 비열한 책임전가다.”

흔히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말들을 하지만, 사실 역사도 끝난 바둑처럼 복기를 하면서 검토해볼 수 있는 대상이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세력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전세계적으로 러시아-프랑스-독일의 동맹과 일본-영국-미국의 동맹이 대립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러일 전쟁에서도 영국과 미국은 전쟁비용의 대부분을 제공하면서 일본을 지원하였고 일본은 그 때문에 군사강국 러시아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후유증으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짜르는 축출 당하고 제헌의회가 소집되기에 이른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대국들의 묵인 아래 합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혁명의 와중에서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져버렸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청나라도 1900년 의화단의 반란을 계기로 대륙 전체가 혁명기에 돌입하게 되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국제 정세 아래에서 신흥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막는데 도움을 줄만한 세력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의 왕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다툼에 외세를 이리저리 동원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완용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과 내선일체 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포장했지만, 그 당시 그의 행동을 떳떳하게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왕실에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반양장) - 동시대인총서 4:강만길 비평집
강만길 지음 / 삼인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강만길 교수님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다시 생각해본다. 현실의 문제는 감정적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으며 긴 호흡을 갖고 진지하고 이성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급한 결론은 쉽게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다. 견고하고 견고하여 어떤 세파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하여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대등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일은 차별을 유발한다. 그러한 차별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통일한국의 역사에 대한 준비로서 남한의 민족운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북한의 민족운동에 대한 평가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편협한 민족주의의 극복을 위해 끊임없이 진보적이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민족주의란 인권의 신장, 만민 평등, 정치적•사상적 자유의 확대를 포함하는, 다시 말해 진보주의와 함께 가는 민족주의여야 할 것이다.

강만길 교수님이 제기하신 많은 부분들은 다만 21세기의 서론을 쓰기 위한 방법론일 뿐이다. 서론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으며, 어떻게 쓰여지는 지에 따라 본론도, 결론도 쓰여질 것이다. 그렇기에 21세기의 서론을 어떻게 쓸것인가라는 고민은 앞으로의 시대에 대한 희망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주목한다. 남북정상회담이 꿈이었지만 이루어졌듯이 우리 민족의 통일도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권이 준비가 안된 정권이라며 욕을 하며 돌을 던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나는 21세기를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혼란한 세상에 해답은 자기에게 있다. 그것은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에 의해서만 찾아질 수 있는 해답이다. 그 해답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겠지만,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작가 김훈은 새로운 이순신을 창조해냈다. 아니 기존의 이순신 상이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 표현된 이순신의 모습이 진실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삶은 힘들다. 그러나 그곳에는 분명히 해답이 있다. 그 해답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자기와의 대화를 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니체가 말한 것같이 모든 일들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존재는 한없이 무거워진다. 이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한없이 반복된다면 우리의 행동에 자유는 없어진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 존재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어떠한 행동에도, 결정에도 해답은 없다.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존재는 참을 수 없을만큼 가벼워진다. 어떠한 행동에서도 진지함은 사라진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듯이, 무거운 것은 부정적인 것이고, 가벼운 것은 긍정적인 것일까? 존재란 태어나면서부터 맺어지는 관계에 의해서 무거워진다. 무거움이란 어쩌면 존재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존재의 숙명에서 벗어나 가벼움을 획득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관계가 없어진 존재의 무한한 가벼움을 참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결국 또다른 무거움을 찾아간다. 그들이 그렇게도 증오했던 존재의 무거움이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도 갈망했던 인간관계였던 것이다.

실존주의(극단적 개인주의)가 행복의 해답은 아니다. 자신을 깨달아 가는 것, 그래서 존재의 무거움을 버리려고 애쓰는것, 어느 자리에서나 가벼움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것. 사랑은 존재의 무거움을 만들어내는 인간관계 속에서 오아시스와 같다. 사랑과 함께 존재의 무거움은 참을만한 것으로 바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국 존재의 무거움을 향한 그리움의 저항에 다름 아니다.

단순한 질문만이 심각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이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가? 당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 55 | 56 | 5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