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미국 민주당의 연이은 패배가 보수진영의 프레임 설정에 진보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레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보수진영의 프레임의 배경과 진보진영의 대응책에 대해 조언한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투표한다. 보수진영은 바로 이 ‘가치’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그 후 3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자신들의 가치를 포함하는 언어와 ‘프레임’을 개발하고 퍼뜨렸다.
보수진영의 가치는 ‘엄격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엄격한 아버지’는 험한 세상에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혹독하게 훈육한다. 도덕적 행위에 상을 주고, 비도덕적 행위에 벌을 준다. 험한 세상에 홀로 맞설 만큼 강한 것은 좋은 것, 즉 선한 것이 되고, 맞서지 못할 만큼 나약한 것은 나쁜 것, 즉 악한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정부의 개입, 개인의 노력에 의해 축적한 부를 갉아먹는 세금, 노력하지 않는 가난한 자, 즉 나쁘고 악한 자에게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말은 세금은 나쁜 것이므로 적을 수록 좋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나쁜 세금이라는 악당으로부터 구제해주는 보수진영은 영웅이 된다.
보수진영의 프레임 공격에 진보진영의 대응책은 쟁점 수준, 정책 수립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의 프레임을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진보진영의 가치를 포함하는 언어와 새로운 ‘프레임’으로 대체하여 공격하는 것이 절실하다. 진보진영의 가치는 ‘자상한 부모’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자상한 부모’는 세상을 희망적으로 본다. 자식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유해한 위협에서 자식들을 ‘보호’한다. 사회의 모든 어려움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해결할 수 있으며, 자식들이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협력할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잘사는 것보다 모두가 번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개인과 기업은 제한해야 한다. 개인들이 납부하는 세금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자다. 개인이 할 수 없는 공공재를 만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해 다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 예를 들어, ‘세금구제’라는 말은 세금의 효용을 생각할 때 말이 안된다. ‘더 나은 미래’라는 프레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또한 생명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낙태금지’라는 프레임은 현실의 복잡함을 말해주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 프레임으로 대응하고,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강화하는 ‘동성결혼반대’라는 프레임은 결혼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 재구성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보수진영이 이미 구축한 인프라와 막대한 물량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이 시간을 단축하고 자원을 절약해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도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는 쉬운 반면, 실제로 언어를 다루고 길들이는 것은 진지한 사고와 많은 연습을 요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듯이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