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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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05년 공연된 작품으로 40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연출했다.

B.C.406년 아테네는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스파르타에 승리했지만 더이상의 여력은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알려진 대로 B.C.404년 펠레폰네소스 함대에 포위된 아테네인 스스로 아테네의 방벽을 허물고 모든 전선을 인도한 후 스파르타의 동맹국이 되면서 끝난다.

디오뉘소스는 창조적인 시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아이스퀼로스(B.C.525~456), 소포클레스(B.C.497~406), 에우리피데스(485~406), 3명의 위대한 시인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디오뉘소스는 헤라클레스로 분장해 하인 크산티아스와 함께 저승으로 내려가 시인을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저승의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를 잡는 과업을 수행했던 진짜 헤라클레스를 방문해 조언을 얻는다. 저승으로 내려간 그들은 디오뉘소스만 카론의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노를 젓는 디오뉘소스의 구호 소리에 맞쳐 강에 사는 개구리들도 화음을 맞춘다. 그곳을 지나니 엘레시우스 비의를 펼치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한바탕 춤추고 노래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플루톤의 문에 도착한 그들은 소포클레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싸우는 모습을 본다. 아이스퀼로스는 시작 기술에 있어 최고로 인정받아 플루톤 오른쪽에 있는 옥좌에 앉아있었다. 소포클레스가 죽은 후 내려왔으나 그는 아이스퀼로스를 존경해 옥좌를 양보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자기가 최고라며 옥좌를 요구한다. 만약 아이스퀼로스가 진다면 소포클레스는 기꺼이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우선은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중 누가 최고인지 겨루고 디오뉘소스가 심판관으로 승부를 지켜본다.

에우리피데스가 먼저 공격한다. 아이스퀼로스가 무언의 배우에게 베일을 쒸워 무대에 앉혀둠으로써 관객들이 기대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었으며,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노란 말수탉이나 염소수사슴 같이 관객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허풍스럽고 혐오스러운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은 비극에서 필요없이 산만한 표현을 줄이고 우리에게 유용한 일상사를 무대에 올려 새로운 비극을 개척했다고 말한다.

이제 아이스퀼로스 차례다. 자신은 시민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잖은 영웅들을 묘사했지만, 에우리피데스는 뚜쟁이들(<힙폴뤼토스>의 유모), 신전에서 아이를 낳는 여인들(<아우게>의 여사제), 오라비와 살을 섞는 여인(<아이올리스>의 카나케), 자식을 죽이는 여인(<메데이아>의 메데이아) 등 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악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고 비난한다.

에우리피데스는 화를 내며 아이스퀼로스의 프롤로고스에서 드러나는 동어반복을 지적한다. 아이스퀼로스도 에우리페스의 프롤로고스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지적하고, 간단한 문장의 덧붙임만으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이에 질세라 에우리피데스도 아이스퀼로스의 코로스들이 부르는 서정시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망쳐버린다.

어떤 방법으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에 처하자 두 시인이 말하는 시행의 무게를 저울에 재기로 한다.

에우리피데스 "차라리 아르고호가 날아가지 않았더라면."
아이스퀼로스 "스페르케이오스 강이여, 그리고 가축 떼가 풀을 뜯는 나라여."

자신의 말을 강물에 적신 아이스퀼로스가 승리한다.

에우리피데스 "페이토의 유일한 신전은 말이로다."
아이스퀼로스 "신들 가운데 죽음만이 선물을 좋아하지 않노라."

가장 무거운 재앙인 죽음을 사용한 아이스퀼로스가 승리한다.

에우리피데스 "그는 오른손에 무거운 무쇠를 댄 몽둥이를 집어 들었노라."
아이스퀼로스 "전차 위에는 전차가, 시신 위에는 시신이 쌓였노라."

볼 것도 없이 아이스퀼로스의 승리다.

아테네를 위험에 빠뜨렸던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평가와 위험에 빠진 도시에 대한 대책에 대한 시험 끝에 디오뉘소스는 아이스퀼로스를 지상으로 데려간다. 에우리피데스가 승복하지 않는 가운데, 빈 옥좌는 소포클레스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비극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 두 시인의 작품에서 따온 인용문들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더 남았지만 둘 다 아테네 패전 후 스파르타의 지배기에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리스 희극의 절정을 말해주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2500년 전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300개에 가까운 주석에 인용문들의 완벽한 출전을 밝혀놓으신 천병희 교수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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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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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시스트라테에 이어 B.C.411년 공연된 작품으로 34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연출했다.

B.C.415년 시칠리아 원정에 나선 아테네는 지도부의 무능함 때문에 B.C.413년 시라쿠사군에 참패한다. 아테네 제국의 참패 소식에 힘입어 이오니아 지방의 식민지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페르시아 제국은 스파르타군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리스 제국의 몰락을 꾀하고 있었다. 아테네 본토에서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B.C.412년 쿠데타를 통해 과두정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과두정은 다음해 붕괴되었다. 과두정만 붕괴된 것이 아니라 아테네 제국도 붕괴하고 있었다.

테스모포리아 축제(Thesmophoria)는 곡식과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 테스모포로스(Demeter thesmophros : 입법자 데메테르)를 기리는 축제로 지금의 10월경 아테나이에서 사흘간 계속되었다. 기혼여성들만 참가할 수 있으며 사흘 중 가운데인 두 번째 날에는 모두 단식을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날도 두 번째 날이다.

축제에 모인 여인들은 비극에서 여인들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B.C.485?~405?)를 처벌하려 한다. 74살의 노인 에우리피데스는 처벌받는게 두려워 인척과 함께 후배 비극작가인 아가톤(B.C.445?~399?)을 찾아간다. 빼어난 미남인 그가 여장을 하고 축제에 참가해 에우리피데스를 처벌하지 않도록 여인들을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아가톤은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를 인용하며 단칼에 거절한다.

"너는 햇빛을 보고 좋아하면서 이 아비는 안 그럴거라 여기느냐?" - 193행

그래서 인척이 대신 나선다. 수염을 깎고 음모를 거슬리고 드레스와 브래지어까지 착용하고 여인들 소굴로 찾아간다. 여인들은 한창 에우리피데스를 성토중이다. 전장에서 방패를 버리고 달아났던 겁쟁이 클레이뉘모스의 아내 미카가 열변을 통한다.

"그자가 우리를 화냥년, 남자에 환장한 것들,
  모주망태, 배신자, 수다쟁이, 건전하지 못한 것들,
  남자들의 큰 재앙이라 부르며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은 곳이 있던가요?" - 391~394행

남편이 다섯 아이를 남기고 죽어 도금양 가지로 화관을 만들어 파는 크리튈라는 비극작가들이 사람들을 신이 없다고 믿게 만들어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투덜댄다. 이 떄 인척이 나서 여자 목소리로 말한다.

"왜 우리는 그자에게 자꾸 그런 죄를 덮어씌우며
  노발대발하는 거죠? 그자는 우리가 범하는 천 가지
  잘못 가운데 두세 가지만 언급했을 뿐인데 말예요." - 473~475행

마침 여자 같은 남자인 클레이스테네스가 여인들에게 에우리피데스가 첩자를 여인들 사이에 보냈다고 알린다. 인척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여인들에 발각되어 수모를 당한다. 옷을 벗기자 숨겨둔 남근이 드러난다.

"이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어요. 거참, 색깔 한번 좋네." - 643행
(희극배우들은 커다란 남근을 단 의상을 입었는데 남근 끝부분에는 흔히 빨간 색칠을 하곤 했다.)

인척은 에우리피데스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에우리피데스의 <팔라메데스>에 착안해 나무판자에 글자를 새겨 던져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이번에는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으로 B.C.412년 디오뉘소스 제에서 우승했다.-를 흉내내자 에우리피데스가 메넬라오스로 변장하고 등장하지만 구출에는 실패한다. 

그 사이 여자 같은 남자 클레이스테네스의 신고를 받은 당국자가 스퀴타이 출신 궁수와 함께 인척을 잡으러 온다. 인척은 널빤지에 묶이자 탄식하며 도움을 호소한다. 에코 여신이 나타났지만 궁수에게 쫓겨난다. 에우리피데스도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러 온 페르세우스처럼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나타나나 여전히 역부족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여인들에게 그간 그들을 폄하했던 것을 사과하고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여인들이 받아들이고 에우리피데스는 마지막 방법으로 피리부는 소년 테레돈과 무희 엘라피온을 동행한다.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무희가 현란한 몸짓으로 유혹하자 스퀴타이족 출신 궁수는 홀딱 넘어가고 만다. 스퀴타이족 궁수가 무희를 데리고 나간 사이 에우리피데스도 인척과 함께 도망간다. 여인을 그렇게 욕하던 그였지만 결국 여인의 도움으로 인척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비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여인들의 불만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뤼시스트라테'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작품은 픽션이지만 유사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로마 시대 여자들만 참석할 수 있는 축제에 한 남자가 변장해 들어왔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헤매다 그만 잡히고 말았다. 그와 그가 사랑한 여인의 염문설이 재빠르게 퍼졌나갔다. 그녀를 아내로 둔 남자는 소문에 타격을 받을까 두려워 그녀와 헤어졌다. 변장한 남자는 클로디우스였고, 그가 사랑한 여인은 폼페이아였으며, 그녀와 헤어진 남편은 카이사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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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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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11년 공연된 작품으로 34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극본을 쓰고 칼리스트라토스가 연출했다.

B.C.413 년 시칠리아 원정에 나선 아테네는 지도부의 무능함 때문에 시라쿠사군에 참패한다. 아테네 제국의 참패 소식에 힘입어 이오니아 지방의 식민지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페르시아 제국은 스파르타군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리스 제국의 몰락을 꾀하고 있었다. 아테네 본토에서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B.C.412년 쿠데타를 통해 과두정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과두정은 다음해 붕괴되었다. 과두정만 붕괴된 것이 아니라 아테네 제국이 붕괴하고 있었다.

뤼 시스트라테(Lysistrate)는 '군대를 해산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녀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올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하나는 잠자리 파업이고, 다른 하나는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전쟁기금을 쓸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남자들이 평화조약을 맺지 않으면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스파르타 여인들은 자기나라로 돌아가고, 아테네 노파들과 여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한다. 많은 여인들이 남자를 그리워하며 도망치려 하지만 뤼시스트라테의 설득 덕분에 모든 여인들이 잠자리 파업에 돌입한다.

그 소식을 들은 노인들과 남자들이 찾아와 온갖 협박을 하지만 여인들은 굴하지 않는다. 키네시아스(도발자)라는 남자는 아내인 뮈르리네(도금양가지)를 찾으러 온다. 키네시아스는 아이를 데리고 와 협박을 하고 뮈르리네는 미안해하며 아크로폴리스를 나온다. 하지만 남편을 감질나게 유혹할 뿐 끝내 즐거움을 주지는 않고 아크로폴리스로 되돌아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들은 욕망을 참아낼 수 없어 고통스러워 한다. 멀리 스파르타에서 온 전령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호소하며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사절단이 외투 자락을 벌려 발기된 남근을 보여준다)
코르스장                       끔찍하군요. 그대들의 이런 고통은 점점 더 팽팽해져서
                                    전보다 더 심하게 달아오를 것 같소 그려.
라케다이몬인들의 사절  죽을 지경이오. 말도 마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휴전을 해야 하오.

- 1077~1081행

뤼시스트라테의 계략이 성공했다. 마침내 남자들이 전쟁을 멈추고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그리스에 평화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들 사이엔 기쁨이 넘친다. 더이상 고통은 없을 것이며, 즐거움은 밤낮없이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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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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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14년 공연된 작품으로 31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극본을 쓰고 칼리스트라토스가 연출했다.

주전파인 아테네의 클레온과 스파르타의 브라시다스가 죽고 나자 평화가 찾아왔다. B.C.421년 전쟁에 지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니키아스 강화'라는 이름의 50년 간의 동맹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들의 조약에 불만을 품은 다른 국가들은 국지전을 계속했고 결국 그들도 욕심을 다스리지 못한 채 다시금 전쟁의 수령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다시 시작된 전쟁은 더욱 잔인해졌다. B.C.416년 '멜로스 회담'으로 유명한 멜로스 섬의 최후가 대표적이다. 아테네의 굴욕적인 항복 요구에 동의하지 않은 멜로스는 당당하게 저항했으나 패배하고 만다. 멜로스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살해되고 부녀자들은 노예로 팔렸다.  텅 빈 멜로스에는 아테네 사람들이 옮겨가서 살았다.

새로 시작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고 아테네의 지도부는 시칠리아 원정이라는 강수를 꺼냈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식민지로 주요 식량 공급지였다. 이 곳을 점령하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리라 믿었다. B.C.415년 아테네 함대는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를 점령하기 위한 출정에 나섰다.

작품의 배경인 B.C.414년은 펠레폰네소스 전쟁 18년째로 시칠리아 원정이 한창이었다.

두 주인공 페이세타이로스(Peisetairos, 친구를 설득하는자)와 에우엘피데스(Euelpides, 낙천가)는 전쟁이 그치지 않는 아테네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그들은 후투티 새로 변한 뒤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테레우스-트라케왕 테레우스는 생전에 프로크네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았으나 처제인 필로멜레를 겁탈한 후 혀까지 자른다. 그 사실을 안 프로크네는 테세우스아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튀스를 죽여 그에게 먹인다. 이 사실을 안 테세우스가 그녀들을 죽이려 하자 제우스는 테우스는 후투티로, 프로크네는 밤꾀꼬리로, 필로멜레는 제비로 변신시킨다. 그들은 불행한 과거를 잊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를 찾아간다.

후투티를 만난 그들은 아테네 말고 살기 좋은 곳을 추천받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이 때 페이세타이로스가 아이디어를 낸다. 하늘나라는 신들의 영토이고 땅은 인간들의 영토라면, 그 사이는 새들의 공간이 아니겠는가. 여기에다 새들의 나라를 세우고 인간들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피우는 연기를 가로채 신과 인간을 동시에 지배하자는 것이다. 새들은 자기들을 구워먹던 두 인간에게 적대적이지만 그들이 신들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원래 세상의 주인이었다는 감언이설에 설득되고 만다. 드디어 '구름뻐꾹나라'가 만들어졌다. 페이세타이로스가 아르콘에 즉위해 본격적으로 정책을 펴나가자 시인, 예언자, 측량기사, 감찰관, 법령장수 등이 한몫 잡으려 찾아오지만 쫓겨난다. 그 때 경비를 서던 어치가 날개 달린 신을 잡았다고 말한다.

잡힌 이리스 여신은 인간들이 바친 제물을 받아 신들에게 전하러 가는 길이다. 잡힌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처벌로 불사신인 신을 사형에 처한다고 하니 헛웃음만 난다. 페이세타이로스의 푸대접에 단단히 화가 난 이리스 여신은 복수를 다짐하며 떠난다. 때마침 인간들에게 보냈던 전령이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인간들이 기존의 신 대신에 새로운 신, 즉 새들을 섬기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새에 미쳐 매사에 새들이 하는 짓을 흉내내고 있다.

'구름뻐꾹나라'가 새로운 신들의 나라가 되자 그 곳에서 살고자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불효자, 시인 키네시아스, 밀고자 등이 찾아오지만 그들은 인간의 나라에서만큼 새들의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어수선한 가운데 프로메테우스가 외투를 뒤집어쓰고 나타난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그는 더이상 인간들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자 굶주리고 있으며 곧 사절을 보내올 것이라고 말한다. 페이세타이로스에게 제우스의 딸과 혼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강화조약을 맺지말라고 권한다.

신들의 사절인 포세이돈, 헤라클레스, 트리발로스가 그를 찾아오고 그들은 굶주림에 지쳐 페이세타이로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 마침내 새들의 축복 속에 페이세타이로스는 제우스 딸과 결혼해 최고신이 된다. 신들에 제사를 지내도 얻지 못하던 평화를 그만이 얻었다.

이 작품은 '이솝의 일생'에 나오는 '리쿠르고스왕의 수수께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솝은 바빌론의 리쿠르고스 왕에게 잡혀왔다. 이솝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라이벌인 이집트의 넥타네보스 왕이 보낸 수수께끼를 풀게 한다. 

"하늘에도, 땅에도 닿지 않는 탑을 세울 수 있는가?"

이솝은 네 마리의 독수리 등에 아이들을 태우고서 그 아이들에게 천의 네 귀퉁이를 잡고 날아오르게 하여 탑을 세우는 방식으로 수수께끼를 푼다. 

이솝처럼 페이세타이로스도 새들에게 그들의 나라를 지을 것을 명령한다.

"하늘과 대지 사이의 이 모든 대기 주위에다
 큼직한 구운 벽들로 성벽을 두르시오. 바뷜론처럼 말이오." - 551~552행 
 


P.S.  아이소포스(이솝)는 다른 곳에서도 언급된다.

"언젠가 델포이인들이 아이소포스를...." - 아리스토파네스, 벌, 1448행
(델포이인들이 아이소포스를 모함해서 죽였다는 아이소포스가 어떻게 해서 죽게 됐는지 증언해주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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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제3판 개역본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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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년 44살의 마키아벨리는 은둔생활을 벗어나 현실 정치에 참여할 목적으로, 당시 피렌체의 새로운 지도자인 21살의 로렌초 디 피엘로 데 메디치의 도움을 얻고자 <군주론>을 집필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중용되지 못하고 책은 그의 사후에야 출간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 하며 인민에게 경멸과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민들에게 경멸과 미움을 받지 않는 선에서 악덕, 즉 음모나 폭력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플라톤의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국가에 대한 논의를 비판하며 여우와 사자들로 가득찬 현실정치에서는 '덕(virtu)'만 추구해서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실정치를 다룬다는 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해답에 있어서는 정반대 입장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의 많은 인문주의자들은 현실정치를 잘하려면 '악덕(vice)'을 피하고 '덕'이 있는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방법이 현실에서는 무기력하며 오히려 '악덕'까지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도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덕'이 있는 군주가 되는 것도,'악덕'에 능하지만 '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군주가 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며 소수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전자는 오답이고, 후자만이 정답이다.

비록 항상 '덕'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때때로 '악덕'을 행하며 실제로는 아니지만 겉으로는 '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군주는 권력을 획득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운명을 운에 맡기거나 타인의 호의에 맡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역량과 인민의 호의에 의지하는 군주라면 권력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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