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405년 공연된 작품으로 40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연출했다.
B.C.406년 아테네는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스파르타에 승리했지만 더이상의 여력은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알려진 대로 B.C.404년 펠레폰네소스 함대에 포위된 아테네인 스스로 아테네의 방벽을 허물고 모든 전선을 인도한 후 스파르타의 동맹국이 되면서 끝난다.
디오뉘소스는 창조적인 시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아이스퀼로스(B.C.525~456), 소포클레스(B.C.497~406), 에우리피데스(485~406), 3명의 위대한 시인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디오뉘소스는 헤라클레스로 분장해 하인 크산티아스와 함께 저승으로 내려가 시인을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저승의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를 잡는 과업을 수행했던 진짜 헤라클레스를 방문해 조언을 얻는다. 저승으로 내려간 그들은 디오뉘소스만 카론의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노를 젓는 디오뉘소스의 구호 소리에 맞쳐 강에 사는 개구리들도 화음을 맞춘다. 그곳을 지나니 엘레시우스 비의를 펼치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한바탕 춤추고 노래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플루톤의 문에 도착한 그들은 소포클레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싸우는 모습을 본다. 아이스퀼로스는 시작 기술에 있어 최고로 인정받아 플루톤 오른쪽에 있는 옥좌에 앉아있었다. 소포클레스가 죽은 후 내려왔으나 그는 아이스퀼로스를 존경해 옥좌를 양보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자기가 최고라며 옥좌를 요구한다. 만약 아이스퀼로스가 진다면 소포클레스는 기꺼이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우선은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중 누가 최고인지 겨루고 디오뉘소스가 심판관으로 승부를 지켜본다.
에우리피데스가 먼저 공격한다. 아이스퀼로스가 무언의 배우에게 베일을 쒸워 무대에 앉혀둠으로써 관객들이 기대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었으며,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노란 말수탉이나 염소수사슴 같이 관객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허풍스럽고 혐오스러운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은 비극에서 필요없이 산만한 표현을 줄이고 우리에게 유용한 일상사를 무대에 올려 새로운 비극을 개척했다고 말한다.
이제 아이스퀼로스 차례다. 자신은 시민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잖은 영웅들을 묘사했지만, 에우리피데스는 뚜쟁이들(<힙폴뤼토스>의 유모), 신전에서 아이를 낳는 여인들(<아우게>의 여사제), 오라비와 살을 섞는 여인(<아이올리스>의 카나케), 자식을 죽이는 여인(<메데이아>의 메데이아) 등 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악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고 비난한다.
에우리피데스는 화를 내며 아이스퀼로스의 프롤로고스에서 드러나는 동어반복을 지적한다. 아이스퀼로스도 에우리페스의 프롤로고스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지적하고, 간단한 문장의 덧붙임만으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이에 질세라 에우리피데스도 아이스퀼로스의 코로스들이 부르는 서정시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망쳐버린다.
어떤 방법으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에 처하자 두 시인이 말하는 시행의 무게를 저울에 재기로 한다.
에우리피데스 "차라리 아르고호가 날아가지 않았더라면."
아이스퀼로스 "스페르케이오스 강이여, 그리고 가축 떼가 풀을 뜯는 나라여."
자신의 말을 강물에 적신 아이스퀼로스가 승리한다.
에우리피데스 "페이토의 유일한 신전은 말이로다."
아이스퀼로스 "신들 가운데 죽음만이 선물을 좋아하지 않노라."
가장 무거운 재앙인 죽음을 사용한 아이스퀼로스가 승리한다.
에우리피데스 "그는 오른손에 무거운 무쇠를 댄 몽둥이를 집어 들었노라."
아이스퀼로스 "전차 위에는 전차가, 시신 위에는 시신이 쌓였노라."
볼 것도 없이 아이스퀼로스의 승리다.
아테네를 위험에 빠뜨렸던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평가와 위험에 빠진 도시에 대한 대책에 대한 시험 끝에 디오뉘소스는 아이스퀼로스를 지상으로 데려간다. 에우리피데스가 승복하지 않는 가운데, 빈 옥좌는 소포클레스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비극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 두 시인의 작품에서 따온 인용문들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더 남았지만 둘 다 아테네 패전 후 스파르타의 지배기에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리스 희극의 절정을 말해주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2500년 전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300개에 가까운 주석에 인용문들의 완벽한 출전을 밝혀놓으신 천병희 교수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