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 마크 트웨인 걸작선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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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한번도 안 펼쳐본 것 같은 새책을 아주 싼값에 구입해서 읽었다.이 책에는 마크 트웨인이 쓴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번째 소설인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에서는 정직하고 의젓한 주민들이 모여사는 것으로 유명한 마을 해들리버그 주민들에게 원한을 가진 어떤 젊은이가 기필코 그들의 마을을 망하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교묘하게 어떤 사건을 꾸며 결국 마을 주민들을 온 세상에 망신시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 정말 신기한 게 젊은이가 왜 그렇게까지 주민들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젊은이가 원한을 품게된 이유가 아니라 근엄한 척 살고 있는 주민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가식적인지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있기 때문에 마크 트웨인은 과감하게 과거 사건에 대한 서술은 생략해 버렸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구구절절 서술하지 않고 오로지 한가지 확실한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굉장히 간결한 느낌이 든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캘러버러스군(郡)의 악명 높은 점핑 개구리' 였다. 이 작품이 그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데뷔 소설이라는데, 소설가로서 처음 내놓은 소설이 이 정도라니, 역시 인정받는 덴 다 이유가 있나보다. 다 합쳐 3장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소설인데,  요즘에도 가끔 이 소설의 주인공 '스마일리' 생각에 피식피식 웃는다. 켈러버러스군에 살고 있는 스마일리라는 젊은이는 내기에 미쳐 있는데, 하루종일 거의 모든 일에 푼돈을 건다. 이 스마일리가 얼마나 내기에 미쳐 있는지 써놓은 본문의 한 부분을 읽으면 내가 왜 피식피식 웃을 수 밖에 없는지 알 것이다.


  참으로 묘한 녀석이었다고. 언젠가 한번은 워커 목사님의 부인이 앓아누워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 어느 날 아침, 목사님이 나타나자 녀석이 다가가 그에게 사모님 소식을 물었지. 목사님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대답했어. (중략) 그러자 스마일리 녀석은 아무 생각도 없이 불쑥 이렇게 말하는거야.

  "하면, 전 사모님이 완쾌되지 않는 쪽에 2달러 50센트를 걸겠습니다."


-p.177


  2달러도 아니고 2달러 <50센트>를 사모님이 완쾌되지 <않는다> 에 거는 이 부분 너무 웃기지 않은가. ㅋㅋㅋㅋㅋㅋ

  내기에 미친 이 얼간이 스마일리는 어떤 개구리를 잡아 멀리 점프하는 훈련을 시켜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개구리 멀리 뛰기 내기를 제안하고 다닌다. 상대방이 내기할 개구리가 없다고 제안을 거절하면 다른 개구리를 손수 잡아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말 스마일리 이 캐릭터는 마크 트웨인 아니면 창조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머지 '100만 달러 수표'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귀신 이야기' 도 읽으며 즐거웠다.  그가 이 소설들을 통해 꼬집고 싶었던 건 돈 앞에서는 영락없는 노예면서 아닌 척하는 당시 미국 사람들과 그 세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풍자한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모두 2017년 한국 어딘가에서도 분명히 한번쯤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틀에 박힌 말이지만, 이 소설들 역시 시대를 초월했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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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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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를 무척 기다렸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배우 한명 안나오는데도 정식 개봉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줄리언 반스의 원작 소설의 인기 덕분이리라.

  영화를 보며 나는 정말 나의 기억력에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나의 '망각력' 에 놀랐다. 분명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강력한 책이었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결말 외에는 기억나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읽었고, 이 영화를 기점으로 독후감을 제대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좀 밀리긴 했지만 아직까진 잘 지키고 있다.


  조금 두렵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각색을 거쳐 쓸 수 밖에 없겠지만, 약 10년 전 내가 겪은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을 상기해내고 또 이렇게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설 속 베로니카처럼 어떤 남자에게 나를 저주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내가 받은 건 이메일이었지만, 어쨌든 그가 나에게 품은 건 이 소설의 주인공 토니 웹스터가 베로니카에게 그랬던 것 처럼, 오로지 증오와 혐오 뿐이었다. 내가 그런 편지를 받은 이유는 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익명이긴 해도) 썼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바보같이 난 그가 내 블로그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 없는 블로그였으니까. 어떻게 내 블로그를 알게됐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내가 블로그에 그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나고 그가 나에게 쓴 편지 내용만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는 거다. 그 편지에 내가 답장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이 그에 못지 않게 지저분한 내용이었을 수도 있는건데 그건 전혀 기억이 안나니 말이다.


  베로니카와 비슷한 사건을 한번 겪고 보니, 내가 어린 나이에 치기어린 마음으로 써갈겨 친구 혹은 애인에게 건낸 수많은 편지를 근거로 누군가 나의 인생을 연구한다면 나는 얼마나 추하고 봐주기 힘든 인간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찔해졌다. 내 필체와 완벽히 일치하는 그 증거들을 앞에 둔다면 사실은 내가 이 정도로 별로인 인간은 아니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헛발질과 실패를 하며 제법 나이가 들고보니 가끔 지인들이 나에게 고민을 상담할 때마다 내 대답은 거의 '하지마.' 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방의 고민이 뭔지 들을 필요도 없는 경우도 꽤 많다. 뭔가를 안한다면, 적어도 최악은 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꼰대가 되어버렸다. 내 품위와 자존심을 다 버리면서 나는 왜 사랑을 했을까. 나는 왜 그딴 편지를 썼을까. 나는 왜 매달렸을까. 왜 울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한동안 나는 '왜 했을까?' 라는 생각에 수없이 괴로워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도 이미 헤어진 베로니카가 자기의 공부잘하는 친구 에드리언 핀과 사귀든 말든, 조금만 참고 그냥 침묵을 지켰다면, 그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는 결국 썼고, 보냈고, 그 일을 의도적으로 완전히 잊고 살아왔다.


  줄리언 반스는 한 사람의 역사이든 한 나라의 역사이든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 혹은 '추억'이라 불리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한지 '토니 웹스터' 라는 참으로 정떨어지는 주인공을 통해 뼈져리게 일깨워준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토니 혹은 베로니카 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난 그런 적 없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다들 어떤 기억은 남김없이 다 지웠거나 혹은 나에게 유리한대로 왜곡하여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 또 한번 결심했다. 죽는날까지 자기 미화의 욕구와 싸우며 살겠노라고. 나란 인간은 내가 지금 기억과는 전혀 다른 인간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입니다."

(중략)

"그 일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사소하달 순 있지만요. 그러나 최근 일이지요. 따라서 역사로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린 그가 죽었다는 것,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녀가 현재 임신했다는 것, 아니면 과거에 그랬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요? 단 한장의 문서 ‘엄마 미안해‘ 라고 쓴 한 장의 유서가 있습니다. (중략) 선생님, 그러니까 오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롭슨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의 여자친구도 사라져버리고, 어쨌거나 누구도 그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에, 어느 누가 롭슨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요? 문제점이 보이시나요, 선생님?"

-P.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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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37
오스카 와일드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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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좋아하는 동화책이 너덜너덜해지고 모든 문장을 다 외울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읽는 어린이였다. 그렇게 내가 좋아했던 동화 중에는 '오스카 와일드' 의  '행복한 왕자' 도 있었다. 아직도 그 동화의 삽화가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어렸을 때 '행복한 왕자'를 좋아했던 어린이였고, '스미스' 의 모리세이가 오스카 와일드의 광팬이란 걸 어디서 들어서, '행복한 왕자' 외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간 그의 작품을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던 중 구입한 e-book 단말기 테스트 겸 단돈 천원에 이 책을 e-book 으로 구입하여 읽었다.

  다 읽은 후 결론은? 너무너무 별로였다...... e-book 으로만 산 게 천만 다행이다. 

  왜 그렇게 별로였는지 말하라면 첫번째로 말하고 싶은 건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헨리가 진심으로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헨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은 실제 자기의 모습,  도리언은 자기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생전 오스카 와일드는 참으로 정나미 떨어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헨리 이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헨리는 대단한 통찰력으로 인생의 진리에 대해 멋진 말을 수도 없이 하며 유머 넘치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나에겐 오히려 이런 모습이 꼰대같이 느껴졌다. (몇 개 문장은 좀 멋지긴 하지만) 자기가 대체 뭔데 인생에 대해 그리 쉽게 단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어휴 정말 재수없고 오만방자한 인물이다.

  그리고, 난 소설에서 작가나 주인공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열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에서는 도리언이 만지는 가구는 네덜란드에서 온 거고 작은 상자는 일본에서 가져온 거고, 뭐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무슨 도리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값진 물건들에 대한 묘사가 시도때도 없이 나온다. 헨리가 도리언에게 준 프랑스 책에 쓰여진 전세계의 사치품들과 진귀한 풍습들이 쭉 쓰여진 11장을 읽을 땐,  대체 이건 뭔가 싶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리언 그레이가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타락한 이유도 터무니 없고, 해설에는 이 소설이 겉모습만 중시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교훈이 있는 소설이라는데 글쎄 나에겐 '다른 거 다 필요없다, 젊고 예쁜 게 최고다.' 라는 것 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텅빈 소설이었다.

  나는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에서 쓰여진 소설이 가끔 과대평가되고 있단 생각을 가끔 했는데, 이 소설이 딱 그런 사례인 것 같다. 이런 소설에도 '유미주의'란 말을 붙여서 대단한 양 평가해주다니 너무 우스꽝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알프레드 경과의 동성애 사건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말년은 참 딱했고, 그의 희곡과 단편소설은 꽤 훌륭한 편에 속한다지만, 당분간은 오스카 와일드 책은 안 읽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모리세이의 취향에도 실망했다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아래는 헨리의 말 중, 좀 멋지다 생각한 것들.


P.S  e-book 으로만 산 거라 정확한 페이지를 표시하지 못해 e-book 으로 703 페이지 중 몇 페이지 인지 표시했다.

"도리언, 결혼은 절대 하지 말아요. 남자들은 지쳐서 결혼하고 여자들은 호기심으로 결혼을 하죠. 여자든 남자든 결국에는 모두 실망해요."

-p.151/703

"도리언, 건드리고 싶은 것만이 신성한 것예요. 왜 그리 화를 내는 건가요? 언젠가는 그녀는 당신의 것이 될테지요. 인간이란 사랑할 때 처음에는 언제나 자신을 속이는 법이에요. 그리고 사랑이 끝날 때는 상대방을 속이고 말이죠. 그걸 바로 로맨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쨌든 당신은 그녀와 알고 지내는 거죠?"

-p.167/703

"바질, 자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도리언은 틀림없이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야 말 거야. 분명히 그러고도 남을 친구야. 인간이 철저히 바보짓을 할 때는 항상 고귀한 동기가 있거든."

-P.23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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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1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좋은 줄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빅토리아 시대 영국 문학 과대평가 말씀도 공감합니다.

케이 2017-10-11 09:4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정말 이 작품 너무 별로였습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작품이 ‘지루한 이야기‘ 라 더더욱 재미없게 느껴졌어요.
 
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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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에 이 소설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내가 이 소설의 주인공 '니콜라이' 처럼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아볼 때, 눈부신 시절로 기억할 수 있는 때가 몇이나 될까? 나에겐 한순간도 없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는 내 인생의 최고의 시절은 아직 안 왔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 좀 들고 보니 내 인생 좋은 시절은 아직 안온 것이 아니라, 그냥 영원히 안오는 것이고 내가 좋은 시절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그 시절이 어쩌면 내 인생의 절정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설령 눈부신 시절이 있었다고 한들 늙고 병든 자기의 노년 시절을 마냥 즐겁고 흐믓하게 보낼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존경받는 의대 교수이자 고위급 3등 문관으로 살고 있는 '니콜라이'는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둔 노인이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아내 '바랴'도 아이스크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딸 '리자'도, 애정을 다해 친딸처럼 기른 친구의 딸인 '까쨔'도 모두 니콜라이가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모두 흉측하게 변했고, 예전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니콜라이는 변해버린 그들이 어색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니콜라이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바로 자기 자신이 점점 흉하게 변해가는 것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가족은 물론이고 맘씨 좋은 동료교수 '미하일 표도로비치'도 자기의 교수 자리를 물려받을 조수 '뾰뜨르 이그나찌예비치' 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일 뿐이고, 니콜라이에게 위로가 되긴 커녕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조차 괴로울 뿐이다. 

  남겨진 인생에 대한 남루함을 끊임없이 토로하는 이 소설은 가슴이 아리지만, 제목처럼 지루하지만은 않다. 체호프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을 읽다보면 주인공 니콜라이의 인생에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인생이란 나중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외롭고 비루하고 시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일까. 세상 누구에게도 엄청나게 큰 기쁨도 슬픔도 되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니콜라이 같은 사람도 그 누구라도 결국... 결국, 인생은 슬픈 것일까!!

  이런 생각에 '지루한 이야기'를  다 읽고나선 결국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로 식사 후 부터 한밤이 될 때까지 사이에 나의 신경성 흥분은 극에 달한다. 나는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베개 속에 파묻는다. 이 시간이면 누군가 방에 들어올까봐 두렵고 갑자기 죽을까봐 두렵고 내 눈물이 부끄럽다. 전반적으로 내 영혼 속에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이상 램프도 책들도 마룻바닥 위의 그림자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거칠게 아파트에서 끌어낸다.

-p.57

"바람결에 저 멀리 어딘가 술집에서 손풍금 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고 담장을 따라 달려가는 뜨로이까 썰매의 방울 소리가 들려오기도했지.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어. (중략) 그리고 자, 봐, 내 꿈은 실현되었어. 나는 내가 감히 꿈꾸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어. 30년 동안 나는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고 탁월한 동료들을 알고 지냈고 찬란한 명성을 만끽했어. 나는 사랑에 빠졌고 열정적인 사랑 끝에 결혼했고 아이들을 가졌어 한마디로 말해서 뒤를 돌아보면 내 인생 전체가 재능있는 손끝에서 창조된 아름다운 예술품 처럼 느껴져. 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피날레를 망치지 않는 일 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죽어야만 하지. 만일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닥쳐온 위험이라면 나는 그것을 교사이자 학자이자 그리스도교 국가의 시민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맞이해야 되겠지. 즉 용감하고 평화로운 영혼으로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피날레를 망치고 있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너에게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그냥 빠져 죽으라고, 그게 순리라고 말하고 있어."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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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루한 이야기」 잡담
    from 케이의 책꽂이 2017-09-29 09:51 
    그런데 어제 쓴 것 처럼 '지루한 이야기' 가 내내 슬프기만 하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중간중간 너무 웃겨서 깔깔깔 웃게 되는 부분도 많다. 우리 집에서는 나와 아내와 딸 외에도 딸아이의 여자 친구 두세명, 그리고 리자의 숭배자이자 청혼자인 알렉산드르 아돌포비치 그네께르가 함께 식사한다. (중략) 그는 화려한 색상의 조끼에 짤막한 재킷, 허리께는 풍성하고 발목 쪽은 매우 좁은 커다란 체크무뉘 바지를 입고 노란색 단화를 신고 다닌다. 두 눈은 새우
 
 
잠자냥 2017-09-28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안녕, 나의 보석이여!
이 두 문장을 저는 올해의 문장으로 꼽고 싶네요...

케이 2017-09-28 17:20   좋아요 0 | URL
˝아빠는 바닐라맛이야!˝ 라고 말하며 엄지 척 하는 모습 생각만해도 너무 깜찍하죠.
안녕 나의 보석이여! 하고 별안간 느낌표로 소설 끝나는데 진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정말 좋았습니다..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폭풍의 언덕」 을 읽고


 1. 등장인물들의 가족관계

* Wuthering Heights 저택 (언쇼 집안)  : 힌들리 언쇼(오빠) - 캐서린 언쇼(여동생) 남매 / 입양한 히스클리프

* Thrushcross 저택 (린튼 집안) : 에드거 린튼(오빠) - 이자벨라 린튼(여동생) 남매


2. 등장인물들의 혼인 및 자녀

* 힌들리 언쇼 - 프랜시스 혼인 : 아들 헤어튼 언쇼

* 에드거 린튼 - 캐서린 언쇼 혼인 : 딸 캐서린 린튼

* 히스클리프 - 이자벨라 린튼 혼인 : 아들 린튼 히스클리프


  구글에서 찾아보니 폭풍의 언덕을 읽던 사람들이 그린 가계도 같은 사진이 많았다. 나 역시 소설을 읽다가 캐서린 죽었다면서 여기 왜 또 캐서린이 있지? 이런 생각에 혼자 노트에 막 가계도를 그려보았다.

  음... 주요 주인공들의 2세들이 부모 중 누구의 성향을 더 많이 물려받았는지 상징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작가는 이런 식의 작명을 했던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다른 이름으로 지어주지. 너무 헷갈렸다!

  안그래도 헷갈리는데, 민음사의 폭풍의 언덕에서는 번역까지 잘못 되어 있다. 민음사의 폭풍의 언덕 p.57 을 보면 캐서린 린튼의 이종사촌이 헤어튼 도련님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난 힌들리 언쇼랑 프랜시스가 서로 부부 사이가 아니고 프랜시스가 힌들리 엄마의 자매인 줄 알았다. 그래서 캐서린은 왜 이모한테 언니라고 불러? 이런 생각도 하고 아무리 읽어도 등장인물 관계를 모르겠어서 초반에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헤어튼 언쇼는 캐서린 린튼의 외삼촌의 아들이니까 이종사촌이 아니라 외사촌이 맞는 건데, 책에 잘못 번역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읽은 책은 헌 책으로 산거라 오래전 출판된 버전인데, 개정된 버전에는 제대로 번역되어 있겠지?


  또 한가지 궁금한 게 헤어튼이 캐서린 린튼의 외사촌이면 둘이 4촌 밖에 안되는 어마어마하게 가까운 친척인데, 옛날 잉글랜드에서는 이 정도로 가까운 친척이 사랑하고 결혼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걸까?

  토마스 하디가 쓴 '무명의 주드' 를 보면 주드가 사촌인 '수'와 결혼하는 건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다고 나온다. (읽진 않았지만, 영화 때문에 대략적인 이야기만 앎) 토마스 하디와 에밀리 브론테의 출생년도가 불과 22년 밖에 차이 안나는데, 그 사이에 갑자기 어떤 이유로 잉글랜드에서 사촌 사이의 결혼을 금지시킨 건지 궁금해 죽겠는데 찾기 귀찮아서 그냥 궁금해하고만 있다.


P.S 영화 '미녀와 야수' 를 봤는데 거기 야수로 나온 배우 '댄 스티븐슨' 이 아무리 생각해도 에드거 린튼 이미지다.



내 머리 속의 에드거 린튼은 딱 이런 이미지다.

다른 주인공들을 맡으면 좋을 배우는 떠오르지 않는다.

귀여운 헤어튼은 10대시절 니콜라스 홀트가 하면 어울렸을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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