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원도 이야기
우리 엄마는 전라북도, 우리 아빠는 전라남도가 고향인데 어쩌다 보니 강원도 원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셨다.
때는 5.18사태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3년이었다. 길 가다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단 폭행을 당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실제 우리 삼촌이 타지에서 전라도 사투리 썼다가 죽도록 맞았다고 함) 우리 부모님은 전라도 출신이라고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쩌지 하고 내심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동네 사람들이 너무 순박하고 착하더란다. 아마도... 전라도보다 사람이 귀한 동네라 그랬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원주에서 12월이 다 끝날 무렵, 내가 태어났고 이젠 미영엄마, 미영아빠가 된 우리 부모님은 아빠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시골인 홍천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부터가 내가 아빠한테 듣고 엄청 웃었던 이야기인데, 전라남도는 겨울에 웬만해선 얼음도 안 얼고 산도 대부분 완만해서 술술 올라갈 수 있는데 홍천에 있는 산은 도저히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산이 아니더란다. 깎아지른 산에 겨울에는 생존 이외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춥고. 그렇다고 강원도의 여름이 시원하냐 절대 아니다. 내가 알기론 홍천이 우리나라 여름 고온 신기록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름에는 미치게 덥고,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이 추운데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이랑 다르게 순하디 순한 그 곳에서 우리 엄마아빠는 참 젊었다. 지금 나보다 훨씬 더 젊으셨네. 젊은 엄마아빠는 강원도를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을지 모르지만, 난 강원도에서 재밌었던 거 같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난 맨날 나가서 혼자서도 열심히 잘 놀았다.
2. 이후 여정
결과적으론 강원도가 우리 가족과 기운이 맞는 곳이었던 건지, 나 7살 때 드디어 강원도를 벗어난 후 우리 집의 가세는 미친 듯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아빠 직업에 따라 충청도와 경기도, 전라도를 어지럽게 이사 다녔고, 총 15번 이상의 이사를 하게 된다. 중학교 때까지 12번 정도 했으니, 아마 합치면 총 15번 이상은 되겠지. 하여튼 결국 나는 초중고 모두 입학한 학교에서 졸업하지 못했고, 특히 고등학교 때 전학은 내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고 만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맘고생을 심하게 한 게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다.
3. 마지막 집
엄마 건강이 계속 악화되어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우리 부모님은 2020년 6월 9일에 경기도 파주로 이사를 가셨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인천과 결별하신 것이다. 지금 세어보니 우리 가족 인천으로 전입신고만 다섯번 했네 ㅋㅋㅋ 어휴 질긴 인연.
몸이 멀쩡한 젊은 사람도 죽도록 힘든 게 이사인데, 흉관을 꽂은 데다 모든 피검사 수치가 불량한 상태로 이사를 하셔야 하는 엄마가 걱정됐지만 이미 결정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사날은 참 더웠다. 비가 오지 않은 건 감사했지만 말이다. 대출이랑 집 관련해서 내가 엄마 대신 처리할 게 많아, 나도 며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빠는 영산강변에서 태어났는데 인생 전체에 걸쳐 결국 임진강까지 북진했다고 소감을 전하셨다. 임진강 넘어 대동강까지 가실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꽤 시골 모습이 남아 있는 파주에서 엄마아빠가 제발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사를 무사히 끝내니 나도 너무 후련하다.
2020/06/11 사무실에서 몰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