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다이어리 - 연애보다 재미있는 압구정 이야기
정수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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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제목 ‘압구정’이라는 말에 호감이 가서 구입했다. 조금은 답답하고 짜증나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재미있기는 하다. ‘압구정 다이어리’는 말 그대로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된장녀’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의 극소수인 부유층의 집합지인 압구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즐비하다. 이를테면,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하는 헤르메스 백과 몇백만원 하는 구두, 명품중의 명품의 의류와 악세사리, 제니퍼 로페즈가 만들었다는 브랜드 J는 츄리닝값만 몇십만원을 육박한다. 요즘 대세인 성형수술 그리고 차는 억대를 능가하는 외제차들을 선호하는, 그리고 음식도, 취미도 연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아니면 그 이상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1%~5%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야기이다. 언젠가부터 명품만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된장’이란 말이 붙어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된장녀들의 이야기’이다. 

Hermes...겁나게 비싼 명품

된장녀들의 ‘굶주린’ 이야기

 된장녀들의 끊임없이 굶주려 한다. 그 굶주림은 단순한 음식에 굶주림을 지칭하는 것만 아니다. 

“응, 외모, 연봉, 집안, 장래성, 매너, 미적 센스.
이중에서 외모는 저 남자 정도면 되고.”

 

이건 압구정동 지도이다. 책 안에 있다. 

 

‘이 압구정. 청담 바닥에서 외제 차 몰고 다니는 잘생긴 남자들은 딱 세 부류인 거.

연예인, 청담동 도련님. 그러니까 나 같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스트!’

 

주인공의 남자 친구였던 상준의 말이었다. 돈이 최고라는 시대, 포스트모던 시대의 후유증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나가는, 강남의 압구정동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된장녀들의 굶주림의 정점은 ‘광림교회’에서

이 책의 정점은 마지막 대목에 여자 주인공들이 ‘광림교회’를 가게 되는데, 거기서 된장녀들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이처럼 물 좋은 교회가 이곳 말고 또 있을쏘냐?’(누구나 한번 와 보면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완전히 GG다. 이런 된장녀들의 몸짓들을 보면서 광림교회에 있는 주인공의 고백이 의미심장하다.

‘그렇다! 그들이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마음속 공허함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돼버렸을까. 뭐 이런 심오한 생각들이 나와 전혀 어울리진 않지만, 가끔은 이런 기분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라는 장소적 특성 때문일까?...’

시대적인 대세 가운데 터져 나온 한 마디!

책 표지에 이런 말이 있다.


‘연애보다 재미있는 압구정 이야기’

그래, 재밌긴 재미있다.





이 차가 30억이 넘는 차였던가?

작중 유라가 이 차에 반해서, 이 차주인-키가 작지만 돈이 많기에-인 남친을 사겼다가,

1주일만에 둘이서 같이 운동하는 와중에 헬스클럽에서 만난 알리샤와 바람나서 파토난다.

나이트 클럽에서 친구 소개팅 시켜주려고 애쓰는 주인공과 친구, 지안! 상대 남자가 3시리즈의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길래, 된장녀는


“아, 저도 예전에 BMW3 타고 다녔어요. 무슨 색이에요? 전 파랑색이었는데.”

“하하, 전 BMW가 아니라 삼성 건데.”

“.....”


뭐, 뭐라고? 그럼 그 3시리즈가 SM3였어? 맙소사! 얘 뭐야? 세상에 어떤 사람이 SM3를 3시리즈라고 하는 거야? 젠장, 이젠 내가 더 이상 여기 있을 여유가 없어졌다. 괜히 시간만 버렸어.


이런 이야기들의 일색이다.

하지만 그 발칙한 것이 조금은 상큼하게 다가온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전혀 꿈꿀 수 없는 것들이지만.

머리 식히기 위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발상! 

된장녀들의 발칙한 행위를 훔쳐보면서 커피 한잔하고 머리 식히는 것도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는 좋은 방법!


  말 그대로 이러한 것에 극도로 집착하는 굶주림과 갈증의 된장녀들이 주인공이다. 헬스클럽 1년 회원권도 이지훈이 CEO로 있는 헬스클럽, 엄청난 금액이다. 나이트 클럽도 명품 나이트클럽이 따로 있고, 거기엔 연예인들도 들낙거리는, 하지만 사인공세를 받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의 성역(?)과도 같은 압구정동!


보통 사람들이라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압구정동의 점포라면 ‘맥도날드’정도?

수많은 잡지와 연예계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즐비하게 담겨져 있어 흥미롭게 줄줄 읽혀져 내려간다. 이 책에서는 ‘압구정을 돌아다니는 이들이 연예인을 봐도 모른 척 하는 이유’, ‘새벽녁 압구정에서 술 마시기 좋은 포차 Best3’, ‘Best dress code in night or club’, ‘압구정 젊은 남자들이 타고 다니는 차종 & 성향’,‘나이트 초기녀(~3개월) VS 나이트 후기녀(3개월~)’등이 열거되어 있다. 이런 가십같은 정보는 잡지에서나 어울리지만 이렇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색다른 맛이 있다. ‘압구정동 다이어리’라는 소설의 독특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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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다시 읽기 - 철학과 예술에서 경제와 과학까지, 우리가 알고 싶어했던 지식의 모든 것
커크 헤리엇 지음, 정기문 옮김 / 이마고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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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다시 읽기/ 커크 헤리엇 지음, 정기문 역/ 이마고


우리가 알고 싶어했던 지식의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처의‘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이란 책을 끈질기게 읽어 치웠다. 나는 그 책을 읽는 와중에 서점에서 꽂힌 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교양, 다시 읽기’였다.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은 이 두 책을 어떻게 읽을 용기가 있었는지 구입을 하는데 전혀 거리낌 없이 구입했지만 막상 읽는데는 굉장한 시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전자의 책은 나에게 ‘역사, 세계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후자의 책은 내게 지식의 방대함에 혀를 내두르게 했다고나 할까?

  솔직히 커크 헤리엇이 병리학자 즉 의학박사이면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이력을 보면서 그의 바탕이 인문학이 아니라 의학이었기에 글의 느낌이 많이 달랐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영문학자이게에 인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굉장히 이해가 빨랐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커크 헤리엇이 보여준 정말 파리 뒷다리가 가진 세밀한 정보와 역사 훑기는 정말 솔직히 질릴 정도로 지루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탄복할만한 것은 의학자로서 출발한 그가 이렇게 방대한 교양적인 지식을 9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엮어냈다는 데서 굉장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는 이러한 방대한 양의 교양지식을 이야기하면서 인류는 한 사람의 독점적이고 창의적인 지식과 발명에 의해 움직여진 것이 아니라 우연과 함께 협력된 수 많은 사람들의 아이템의 도움이 있었음을 분명히 짚고 가고 있다. 독불장군은 없다는 것이다. 벨이 전화기를 혼자서 발명한 것도 아니고, 증기기관을 와트가 혼자서 발명한 것도 아니다. 수많은 발명가들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진면목은 한 사람의 발명은 수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업적의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또한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의학자의 원래 신분이 없었다면 작가는 과연 이렇게 많은 정보를 나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 많은 용어와 신체기관과 설명을 달달달 외워서 적재적소에 순간적으로 적용시켜야하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학자만이 이런 다양하고 굉장히 나열성이 짙은 교양지식서를 펴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책을 중간에 읽으면서 이 책에 건질만한 것은 이를테면, 벤츠 회사의 이름이 왜 메르세데스 벤츠냐 하면 카알 벤츠가 자기와 자동차 기술을 동업하기로 한 사람의 딸 이름이 메르세데스여서 회사 이름을 ‘메르세데스+벤츠’로 했다는 이야기나 아니면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LG-OTIS라는 상호가 나오는데 그 오티스는 엘리베이터를 발명한 엘리샤 오티스에서 온 것이라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이를 악물고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수많은 지식인들 중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분야에서만 전문성을 띠지 다른 분야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는 현실이 오히려 각 분야와 전공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단절시킴으로 말미암아 교양의 결여를 초래함으로써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장벽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다는 딜레마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오늘날의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을 꼽고 있다.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작가의 결론이 다소 의아하긴 했다. 하지만 그가 수없이 나열한 정보와 지식과 교양을 생각해본다면 그럴만도 하다 싶다.


  이 책은 부제처럼 ‘철학과 예술에서 경제와 과학까지’총체적인 모든 역사와 지식을 담고 있다.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특별히 작가는 과학지식에서 굉장히 세밀화를 기한 대신에 문학사나 예술사에서는 다소 줄기만을 잡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문학도인 나로서는 과학사를 접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로켓이 나오고 세포가 나오는데...병리학자인 작가야 익숙해서 닳고 닳은 지식영역이겠지만 나에게는 완전히 ‘쇠귀에 경읽기’수준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록 가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 질문하며 미래의 세대들을 향해 글을 적고 있다. 커크 헤리엇은 특히나 기독교가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했다는 비교종교학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좀 의아했다. 작가의 눈에서 비친 개인적인 지식의 여정 가운데서 서양 뿐만 아니라 동양까지 다룰려고 했다는 데서 점수를 주고 싶지만 전체적인 교양의 모든 것을 다 다룰려고 하다 보니 양은 비대해졌다. 숲은 비대해졌지만 숲에 심긴 나무들이 다소 앙상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상식들이 우리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저자는 고발하기 위해 상식의 파격적인 면을 노출시킬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이 책의 후기에서 이 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류 교양의 총서이자 상식에 대한 도발적 질문 제기”

  나는 저자가 이러한 모든 교양지식을 집대성하여 마무리하는 대목에서 결론적으로 인간은 ‘장기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첫 번째, 두 번째는 교육의 절실한 필요를 말하며, 세 번째는 인구과잉에 따른 가족 계획을 들고 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TQM(Total Quality Management)를 들고 나와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인류가 총체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개인의 발견과 발전과 아울러 제도적인,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요구되어야 함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디트리히 슈바니처의 책,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이 훨씬 재미있다. 하지만 이 책은 끝까지 다 완독한 자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지적 사유의 여운이 남는다. 한 지식인이 자식의 전공과 영역을 넘어서서 총체적인 교양을 다룰려고 했다는 점-심지어 의사가 음악의 대위법을 운운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을 이야기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이 너무나 탁월하다. 하지만 커크 헤리엇은 인류의 교양사가 그냥 독보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모든 인물과 인물의 도움과 도움으로 이뤄진 것임을 자신의 책의 내용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공외의 수 많은 학자들과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으로 이 지적 산물을 탄생케했다.


모든 전공과 학문에 통달한 지식인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Walking Dictionary라고 해도 모든 분야에서 No.1이 될 순 없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No.1이라고 절대 이야기하지 않고 학문하는 자의 성실한 자세로 다른 학자들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여 이 저작을 탄생시켰다. 이 점에서 나는 커크 헤리엇을 더 높이 사고 싶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가지고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하고자 하는 총체적인 교양을 말하기 위해서 자기가 모르는 부분들을 조언과 충언과 피더백을 구하면서 방대한 저작으로 다듬어갔다는 사실, 그러한 사실이 그가 박사학위 Ph.D 학위를 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보여준다. 정말 그래서 Ph.D 학위가 있는 자는 자기가 전공한 전공이 아니더라도 철저하게 연구하고 준비하면 또 다른 분야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 말인 듯하다.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피더 드러커가 3년마다 자신의 공부하는 영역과 분야를 바꿔가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철저한 연구자의 자세가 커크 헤리엇에게서 엿보인다. 아...정말 지루했고 힘겨운 지적 탐색이었지만 ‘교양, 다시 읽기’정말 멋진 놈을 만난 기분에 감상을 적어 보았다.

20080625.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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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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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문학계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신예 작가들이 등용되고 있다. 내가 뭐기에? 나는 세상의 중심이기에, 주관적이고도 이기주의적인 발상을 해 본다. ‘스타일’의 백영옥처럼 시원시원하게 글을 적어가고 있다. 백영옥은 잡지기자출신 답게 모든 것을 브랜드와 트랜드로 이미지화시키면서 소설을 재미있게 적어 나가고 있고, 박주영은 제목처럼 ‘냉장고’에서 모든 연애이야기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누굴 만났는데 무슨 레스토랑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인공이 요리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한지 하루만에 읽어버렸다. 연애이야기를 너무 재미나게 써내려가고 있다는 생각! 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 연애의 시선! 보통 남자 작가들은 ‘성’, ‘섹스’이야기를 반드시 하고야 만다. 하지만 박주영은 여류작가이다. 그는 정말 ‘섹스이야기’를 하나도 언급하지 않는다. 남녀관계에서 반드시 개입되어질 ‘성’이 빠진 굉장히 건전한(?) 소설의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이다.

나는 800페이지에 달하는 ‘교양서’를 몇 달 동안 읽어 내려가면서 완전히 지적인 파김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더 나아가 소설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박주영의 소설은 거기에 속하는 글이다. 일단 재미있다. 나영, 수진, 유리 그리고 은주...이렇게 여자친구들끼리 얽히고 설키는 연예관계를 아주 속도감있게 전하는 박주영의 필치가 돗보인다. 연애를 요리로 비유하여 글을 적어가는 것도 신선하다. 나는 남자라서 덜하겠지만, 요리에 직접적으로 접하는 여자 독자들은 더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주인공인 나영이 과연 누굴 선택할지 끝까지 궁금해했다...읽는 독자라면 누구나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의 다소 보편적이면서도 의례적인 콤멘트를 옮겨보면,


오늘의 요리


-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한 가지쯤은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준비하자.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자.

-돌이켜보고 반성하자.

-느낌, 감각,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믿자.


작가는 요리를 연애로 보고 있다는 관점! 그게 이 소설의 특색이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특히, 박주영의 이 소설의 표지가 굉장히 이뿌다. 느낌이 사뭇 다르다. 만져보면 촉감이 다르다. 그것은 포스트잇 붙이는 부분을 볼록하게 처리함으로 디자인에 신경을 좀 썼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멋진 마켓팅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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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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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가난...경제고...

시대적인 불화...그러나 불화는 계속되고...

오늘날에도 난장이의 비극적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시대적인 불일치로 인한 깊은 교감의 부족이 아쉽고

지나치고 지루한 비평이 날 더 짜증나게 했다.

자유롭게 글에 대한 소감을 적는데

비평은 때론 방해가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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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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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구입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표지의 힘이었다. 이 표지디자인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몸매의 라인이 드러나 있는 중국전통의상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 영화 색계에서 아마도 어느 정도의 차용이 있지 않았나 싶다. 붉은 색깔의 전체배경색 가운데 벌어진 틈새로 얼굴 내민 군인의 얼굴!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단숨에 사버렸다. 작가가 어떤 인간인지 생각하기도 이전에. 물론 중국문학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하고 흥미가 있어야 한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갈 때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자야하는데 그 잠자리에 들 시간을 미룰 만큼 무언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이 소설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 소설은?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 그리고 로렌스의 소설과 닮은 점?

이 소설은 나를 압도하였다. 순전히 성적인 묘사와 스토리만으로 남성 독자의 구미를 당기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금기된 성애를 문자로 구현해서 출판 당대에 출판금지라는 형벌을 받았던, ‘색욕작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던 D.H.Lawrence의 ‘채털리부인의 사랑’ 이란 소설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떤 측면에서 옌롄커 의 소설과 로렌스의 소설은 다소 닮은 점이 있는 듯하다. 둘 소설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억압된 도덕과 윤리에서 벗어나 성애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꿈꿨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그것이라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군대라는 상황과 혁명이라는 혼돈스런 시기 가운데 만난 두 남녀의 거침없는, 그러나 아주 단말마적인 성애 그 위의 사랑이라는 설정 가운데서 드러나는 ‘해방과 자유’라는 화두이다.

‘해방과 자유’라는 화두!

우다왕과 류렌이 만약 평범한 상황 가운데 만났더라면 이렇게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지는 못했을 것이다. 원시적인 사회에서의 알몸의 남녀들처럼 원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알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원시적인 성애의 현장!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사회적, 제도적인 압박감이 강했기 때문에 발산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다왕과 류렌의 ‘강박기제’-상황적 구도

그것이 우다왕에게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사랑과 함께 가야할 결혼이 성공을 담보로 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결혼한 지금의 아내, 성적인 절정에 이를 때조차 승진과 성공을 이야기하면서 젊은 남성의 성욕을 짓밟아버리는 구도! 하지만 우다왕의 인생은 승진을 해야만 한다. 돈을 더 벌어야 가족이 더 안정되게 살 수 있다. 그는 농민 출신이다.

류렌에게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병원에 근무한 간호군인이었던 그녀가 사단장의 눈에 첫눈에 찍혀 결국 결혼을 했지만 정작 사단장은 사단장이란 권력가이긴 했으나 남자로서는 성적 불구자였던 것이다. 전처와 이혼한 이유도 거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32세의 싱싱한 젊음을 자랑하는 여인에게 사단장은 사단장일 뿐! 사단장의 아내라는 혁명기의 대단한 권력의 위치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생물학적, 감성적인 욕망의 위치!

두 사람 모두, 우다왕은 성공에 대한 강박증을, 류렌은 성에 대한 강박 기제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강박증을 뒤덮고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전체적인, 제도적인, 국가적인 혁명의 압박감의 무게이다.

이런 배경 하에 중국 전체를 뒤덮고 있었던 슬로건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다.

爲人民服務[wei renmin fuwu]

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의미의 중국어

2. 1944년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 전사 장쓰더의 희생정신을 추모하며 내세운 현대 중국의 가장 유명한 정치 슬로건

3.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와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중국군의 책무를 담은 국민적 구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슬로건Slogan의 이중성

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 모토는 이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치적인 슬로건이자 대의명분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 두 남녀에게는 성애를 자극하고 요구하는 최음제의 도구로 사용되었는데 그 나무 팻말이 제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는 우다왕이 류렌의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일종의 신호였던 것이다. 작가는 진정한 의미로 볼 때 한 개인의 인생에서 지극히 중요한, 사랑과 희망과 인생을 도구화하여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 슬로건이 정작 전제주의적인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을지 모르나 정작 인생이 인생의 주체로서 당연히 만끽해야 할 그 무엇이 빠진 한 개인의 인생에 현미경을 갖다 대면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무엇이 ‘인민을 위해 복무한 것인가?


이 소설은 진지한 연애소설이다

두 사람의 사랑의 신호이기도 했고 증거이기도 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이 쓰인 나무팻말! 우다왕은 그 선물을 류렌으로부터 받고서 얼마나 더 깊은 절망과 비애를 느꼈을까?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하나의 노골적인 성애 이야기로 도배된 것이 ‘삼류소설을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는데, 책을 점점 읽어가면서 이 두 남녀의 2개월간의 육체적인 사랑으로 잉태된 정신적인 사랑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흥미만점의 필치와 스토리의 뻗어감

상징과 암시와 시적인 묘사들로 인해 독자들을 결코 지치게 하지 않고 고무시키며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라는 것은 질질 끌지 않고 앞부분부터 확실하게 스토리를 치고 나간다. 이 소설은 혁명시기의 군대 사단장의 32세의 아름답고 젊은 아내(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사랑’에서 나오는 채털리의 남편도 남성성의 장애자였지 않은가? 정말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근데 자세히 보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할 때 성적인 표출과 표현이 메신저로 애용되는 특징이 있다)와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로 발탁된 28세의 우다왕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성애의 격정적인 몸짓이 아닌 로맨스가 되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중국의 신과 같은 존재인 마오쩌둥의 모든 주상들과 표식들과 슬로건을 부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하면서까지 류렌은 류렌대로, 우다왕은 우다왕대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사랑과 존엄’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랑과 존엄’을 이야기하고자 했고 그는 문학을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과 존엄...

‘사랑과 존엄’을 말하려면, 거대한 국가나 제도나 시스템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또 하나의 작은 울타리인 가정과 커플과 개인사는 집단으로부터의 철저한 분리성이 필요하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개인의 사랑과 존엄이 지켜지기 위해선, 어떤 제도나 시스템이나 체제가 그 영역을 침범하기나 터치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혁명이라는 선전propaganda 아래 한 개인의 가장 가치 있는 결혼이 성공계약과 아울러 도매금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현실, 우다왕이 그랬고, 지도원이 그랬다는 것은 그 사회에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한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에서도 개인의 깊은 자유와 존엄이 훼손당한 우다왕이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폐쇄된 공간인 그 사단장의 관저인 1호 원자에서 사랑과 존엄을 맘껏 누렸다. 우다왕은 자신의 결혼생활과 인생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랑과 존엄’을 2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류렌과의 밀월을 통해 느꼈지만 그것을 다시 만져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말미에서 주는 강렬한 여운

사단장의 부인을 ‘누님’이라는 개인적인 호칭으로 부르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관계들은 시작되었다. 그 누님, 그 사랑의 결정체인 류렌을 25년이 지난 후에 보러 갔다. 그러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편지에 써서 전해줘.

돈이 필요한 거면 정확한 액수와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어줘.’


라는 편지내용을 읽게 된다.

문학이 아름다운 것은, 소설이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깊은 아쉬움과 여운 때문이 아닐까?


류렌의 사랑의 맹세를 이해할 수 있겠다

류렌과 우다왕은 사랑을 나누면서 대화를 나눈다.


“샤오우, 네가 나를 잊을 수 없다고 해서 나도 너를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누님은 사단장 부인이시니까 절 잊는다 해도 저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지요.”

“내가 맹세라도 하길 바라는거야?”

“입으로 하는 말은 아무리 약속하고 맹세한다 해도 소용없어요.”


우다왕은 서로의 불안한 미래와 입장들에 대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감정적인 확증을 원했고 맹세를 하기까지 한다. 그 처절한 맹세를 마지막 대목에서 차갑고도 절제된 ‘편지’ 한 통으로 대신한다. 그리고서 우다왕이 전해주는 류렌에게 전해주라고 가져온 ‘그 팻말’이 주는 그 전율은 굉장히 심오하다. 그래서 옌렌커가 멋진 작가라는 것이다.


예전에 굉장히 사랑했던 애인이 있었다. 지금은 한 남자의 의연한 아내가 되어 자식을 낳고 살고 있을 것이다. 복합적인 상황 가운데서 헤어지는 장면이다.

“우리가 헤어져는 너는 강 저편에, 나는 강 이편에 있는거구나!”

“왜 그렇게 생각해?”

“...”

“나는 언제나 네가 있는 강 이편에 같이 있는거라고 생각해.”

........................................................................

“그렇게 사랑하면 머하냐? 함께 할 수 없는데...”


나는 그때는 그 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류렌의 그 사랑의 맹세의 헤프닝 배후에 있는 류렌의 마음을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정치폭로 소설이기도 하다-‘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폭로한다?

군대장교인 사단장이 자신의 아내(류렌)와 전속 취사병(우다왕)의 불륜으로 임신하게 되자, 그 출생비밀을 입 막기 위해 사단장의 성적 불구의 비밀을 아는 모든 장교들을 강제 퇴역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 사단장은 마오쩌둥의 혁명적 기치의 새로운 실험장소로 자신의 군대를 선택하고 자신의 군대를 해산시켜 버린다. 그것이 과연 마오쩌둥이 그렇게 이야기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기치와 같이 가는 행동인가? 아니 마오쩌둥이 이야기한 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것은 과연 무엇 의미인가? 진정한 인민의 민생과 희망을 져 버리는 이런 작태가 과연 ‘인민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이야기한 ‘그 인민’은 어떤 인민이란 말인가? 한 전제군주의 횡포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인민들의 비애를 작가를 문학적으로 폭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28년간의 군대생활의 복무경험이 있던 그가 제대 직후에 해방감 속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더 한 폭로disclosure의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에필로그Epilogue를 적어본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은 그가 마흔 살이 넘으면서 얼굴에 늙어서 창망하고 막막한 표정이 뚜렷해지고 검붉은 피부에 관리가 부족하여 생기는 남자들 특유의 거칠고 촌스러운 기색이 역력해졌다는 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 자체에 세월의 주름이 새겨져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실제 나이를 훨씬 넘어서는 비애와 황량함이 짙게 드러났다. 이미 패자의 모습이 역력한 그의 얼굴에 드러난 이 변혁의 사회와 몇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겪어온 변혁이 경력이 그로 하여금 이 나이에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린 채, 삶의 방향과 힘, 그리고 내성에 직면해야 했다.’


에필로그에 드러나는 우다왕의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는 단순한 우다왕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확장된 의미의 중국이란 국가의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그 위대한 모토 하에 치러진 2달간의 뜨거운 성애와 사랑, 그 사랑이 남겨진 깊은 후유증, 깊게 패인 슬픔의 자욱이 우다왕에게 드러나는 것처럼 중국 또한 혁명으로 인한 거대한 과정을 거치면서 본의 아니게 남겨진 깊은 실패자의 어떤 상흔의 그 무엇을 작가는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닐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폭로한다!!!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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